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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 (2014. 12) 천 년 전 히지리 가에는 남자 아이가 하나 있었다. 대를 이어줄 다른 사내아이가 없어 식솔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란 그 아이는, 지식과 예의범절을 갖춘 신동으로 자랐다. 그러나 가엾게도 아이는 서당을 마치기도 전에 악병에 걸리고 만다. 어쩌면 오늘날에는 손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의 원인을 악귀에게서 찾던 무지의 시대에, 그들에겐 종교 이외에 기댈 길이 없었다. 극진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아이는 제 몸조차 가눌 수 없게 되어 매일을 이불 속에서 보내게 된다. 왜 이런 병에 걸려버린 걸까. 아이는 운명을 원망했다. 이제는 그저 짐 덩이가 되어 가족들에게도, 하인들에게도 민폐만 끼칠 뿐이었다. 내색하지는 않고 있지만, 틀림없이 모두 그렇게 여기고 .. 더보기
제 1회 패드쟝배 글알못 팬픽대회 결과 1위 : 망상증 - 스타폭스2위 : 붉은 등 - 4KOMA3위 : 즐거움이 사라진 거리 - 장기짝4위 : 환상향 - U@Dont@Gain5위 : 여기에 아무 말이나 적으십시오 - 카스페 제일 중요한 감평은 주최자가 술 먹고 삭제해서 소실되어 버렸습니다.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신 대회지만 몽환, 공포, 즐거움 이라는 애매모호한 주제를 선정해버려서 주최 측도 참여자 여러분도 골머리를 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모두 훌륭한 작품들이었고, 그 중에서 소름돋는 연출을 해주신 스타폭스 님의 망상증에 1위를 드렸습니다.공포 주제를 완벽히 사로잡았을 뿐더러, 글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니까요. 다만 지금 다시 심사한다면 붉은 등이 1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순위권자들은 누가 1위가 되어도 이상.. 더보기
Jane Doe - Gehrman “어머, 참. 짓궂으셔라......” “허허, 너에게 푹 빠진 남자에게 그 무슨 섭한 소리냐.” 뚱뚱한 중년의 남자는 나체인 상태로 자신의 옆에 있는 기녀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기녀는 앙탈을 부리며 옷을 느릿느릿하게 벗기도록 유도했다. 남자는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양물을 이 아름다운 기녀에게 꽂고 싶었지만, 그녀가 이곳에서 간간히 왕족들까지 얼굴을 보러 온다는, 제일 비싼 기녀인 만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빈민가에서 자수성가한 자신이었지만 아직 자신의 기반은 불안정 했으니까. “제가 어떤 왕족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 보실래요? 다들 무서워서 지렸다고요~? 만약, 듣고도 멀쩡하시다면 특별한 서비스를 해드릴게요. 후후......” “으음......” 솔직히 말해, 듣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 더보기
독(獨毒) - Ocsquirt 혼슈 본토의 북반부. 이름 모를 어느 험준한 고개. 그 일대에는 고동나무 고목들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어 한낮임에도 어두운 비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왜인지 그 일대에는 위험한 산짐승도. 지나가는 여행자를 습격하는 도적무리조차 없어서, 여행자들이나 상인들이 주로 다니며 그 고개 어딘가에는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자그마한 참배당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고개보다 더 깊숙이 들어선 곳 눈보라 서리 내려서 하얗게 물든 심산의 외진 길을 그저 묵묵히 나아가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등에는 한보따리 가득 등짐을 메고 머리에는 눈이 소복히 쌓인 삿갓을 쓰고 있다. 허름한 행색에 무슨 일이 있어도 가지고 있는 물건을 놓지 않겠다는 듯 꽉 쥐고 있는 두 손.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평범한 등짐 장.. 더보기
망상증 - 스타폭스 나는 어릴 적부터 겁이 많았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희한할 정도로 겁이 많았다. 남들은 구름을 귀여운 동물의 모습으로 보았지만 나는 하얀 보자기를 뒤집어 쓴 귀신으로 보았다. 부모님은 그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나에게 '망상증 있냐?'는 농을 자주 걸어왔었다.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벌써 '망상증'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배웠다. 그러나 어린아이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나의 밑도 끝도 없는 의심은 가만 두고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초등학교를 갓 마친 나를 정신병원으로 데려갔다. 나를 진찰한 의사는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은 여의사였다. 그녀가 부모님에게 말했다. '부적절한 가정환경이 망상장애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의사를 앞에 두고, 부모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직.. 더보기
경계를 넘어서, 그리고 메리가 그 곳에서 본 것 - 동프학선언 Row, row, row your boat,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너의 배를 Gently down the stream. 시냇물 따라 천천히 Merrily, merrily, merrily, merrily,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Life is but a dream. 인생은 한낱 꿈일 뿐. 나, 마에리베리 한은 문득 익숙한 멜로디를 떠올렸다. 달리 이유는 없었다. 어렸을 때는 고국에서 어머니가 자장가로 불러주기도 했지만… 그러고 보니 작년 방학 중에 렌코와 한국에 놀러갔을 때에는, 이 곡조에 한국어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꾀꼬리 목소리 개나리 울타리 오리 한 마리―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분명 2절도 있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 더보기
나홀로 사나에 - 하나베 주제-공포 나홀로 사나에 신사의 복도에는 바깥의 달빛조차 세어들 틈을 찾기 힘들 정도로 시꺼먼 암흑이 자리하고 있었다. 찌릉거리는 벌레 소리와 함께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종소리만이 을씨년스럽게 주위를 울렸다. 아주 미세한 소리였지만 마치 누군가 고함이라도 내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나에는 마치 무언가를 들킬까 염려하는 것처럼 아랫입술을 꼭 물고 있었다. 그리곤 그 정적 속에서 서서히 발을 내딛었다. 그녀의 불규칙적인 숨소리엔 이상하리만치 짙은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끼이이.. 발에 눌린 마룻바닥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사나에는 모든 행동을 멈춘 채 손을 들어 입을 감쌌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떨리는 호흡이 가쁘게 세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사나에는 차오르는 불안감에 편집적으로 주위를 둘러.. 더보기
여기에 아무 말이나 적으십시오 - 카스페 [1쪽] 여기에 아무 말이나 적으십시오. 아무 말. [2쪽] “……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 농담이 재밌어서 웃는 게 아니었다. 그냥 하란다고 정말 아무 말이나 적어버린 내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 “이게 뭔지도 모르면서 말이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방금 주운 그 노트를 앞뒤로 돌리며 살펴보았다. 그냥 별거 없는 평범한 노트였다. 크기는 책보다는 조금 작고, 굵기도 적당히 얇았다. 여기 마법의 숲에서 주운 것 치고는 상당히 깨끗하단 것만 빼면, 정말 평범한 노트였다. “뭐, 제법 깔끔하고 좋아 보이네. 들고 가서 실험할 때 메모하는 용도로 쓸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노트의 다음 장을 넘겼다. [3쪽]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노트의 다음 장을 넘겼다.’ 나는 노트의 마지막 문장을 뚫어.. 더보기
환상향 - U@Dont@Gain *본 글은 선정성 및 폭력성이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하지 않으니 그냥 봐도 됩니다. *일부 원작과 다른 설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1- “저기, 있지, 메리.” 일본의 교토 대학에 재학 중인 어느 겨울, 여느 때처럼 시작은 렌코의 한 마디였다. “혹시 ‘환상향(幻想鄕)’이라고 들어봤어?” “환상... 향?” 환상향이라니, 혹시 렌코가 만든 합성어일까? 지금 같은 몽위과학세기에 환상향이라니... 분명 우리 서클이 숨겨진 결계를 찾는 등 비과학적인 서클이라곤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향’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큰 결계나 미지(未知)를 찾는 건 좀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응,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라며 옆 자리에 아무렇게나 던져 둔 숄더백에서 작은 공책을 꺼내는 렌코. 나는 대학구 내의 카페.. 더보기
제 2회 천인 괴롭히기 대회 - 218.53 "몰라 더 이상 이런 낡아빠진 신사 고치는 일은 안할 거야. 잘 지어주고 은혜를 베풀어서 이 몸의 신사로 만들어 줬더니 왠 할머니가 와서 부숴놓고는 나한테 다시 지으라는 심보는 뭐야?" 천인은 정말로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삽을 집어 던졌다. "아니 처음부터 철거 비용도 안 받고 부숴줬잖아. 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은 부수고 다시 만드는 게 맞는 거라구.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수고비를 받아야 할 정도야. 그러니까 이젠 몰라. 배를 째던 파묻건 마음대로 해!" 나중에 가서는 정당화까지 해 가면서 신사를 고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저 게으름뱅이를 여태 일하게 만들 것도 용하다. 아니, 제 신사를 지어놓을 속셈이었으니 여태는 문제 없었으려나. 하지만 전부 무산된 이상 천인에게 의욕을 바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