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참. 짓궂으셔라......”
“허허, 너에게 푹 빠진 남자에게 그 무슨 섭한 소리냐.”
뚱뚱한 중년의 남자는 나체인 상태로 자신의 옆에 있는 기녀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기녀는 앙탈을 부리며 옷을 느릿느릿하게 벗기도록 유도했다. 남자는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양물을 이 아름다운 기녀에게 꽂고 싶었지만, 그녀가 이곳에서 간간히 왕족들까지 얼굴을 보러 온다는, 제일 비싼 기녀인 만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빈민가에서 자수성가한 자신이었지만 아직 자신의 기반은 불안정 했으니까.
“제가 어떤 왕족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 보실래요? 다들 무서워서 지렸다고요~? 만약, 듣고도 멀쩡하시다면 특별한 서비스를 해드릴게요. 후후......”
“으음......”
솔직히 말해, 듣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특별 서비스라니 상당히 기대되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차피 밤은 길었다.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야, 그렇게 생각한 남자는 결국 제안을 수락했다.
“좋네, 들어보지.”
“후후, 그럼 이야기 시작 할게요?”
기녀의 요염한 목소리와 몸짓에 발정하던 남자는 기녀가 불을 끄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자 흥분 대신 묘한 긴장감에 빠졌다. 아무래도 역시 한밤중의 기담은 결코 좋은 인상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예전에 우연히 들었던 기담들이 한밤중 뒷간에 갈 때마다 떠올라 공포에 떨며 변을 보았던 일이 떠올랐다.
“옛날에 한 요괴가 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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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는 이미 한 마리의 대요괴로서 자신의 백귀야행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것도 헤이안쿄의 중심에서. 당대 최고의 대요괴라고 불릴 수 있을만한 업적까지 달성했으니 이제 무엇이 두려우랴. 그러나 최근의 헤이안쿄는, 누에의 백귀야행은 왠지 모르게 소란스러웠다.
바로, 누에가 짝사랑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거 들었나? 누에님이 짝사랑을 시작하셨다는 소문 말이야.”
“나도 들어봤네만, 그래서 상대는 누구인가?”
“사실 그게 의견이 분분하다네. 어떤 이는 인간 남자라 주장하고 어떤 이는 은거하던 대요괴라 주장하고 있으니......”
“그럼 짝사랑을 하는지 안하는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어찌 그걸 알고 있나?”
“그야 나도 모르지. 하지만 전부 다 누에님이 짝사랑을 한다고 말하고 있어. 소문이 겨우 하루 내에 이 일대 요괴들에게 전부 퍼진다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흐음, 그것도 그렇군. 이런 식이면 당사자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소문의 근원을 추적하기도 힘들고......”
“뭐, 우리가 깊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술이나 마시자고!”
“그거 좋지!”
이 일대 요괴들의 대회는 대부분이 비슷했다. 확실히 신경 쓰이는 일이지만, 어차피 제대로 밝혀진 사실도 없으니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그냥 무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거다. 그래, 어차피 우리 백귀야행의 주인은 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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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옆에 있던 냉수로 목을 축였다. 남자의 양물은 이미 말라가는 나뭇잎처럼 시든지 오래였지만 추잡한 욕망만큼은 더 거세게 불타고 있었다. 한시 바삐 욕구를 해소하고 싶었던 남자는 기녀에게 말했다.
“음, 왜 그러나? 설마 이야기는 이게 끝인가? 무서울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생각하네만......”
“어머나, 성격도 급하셔라. 아직 이야기는 도입부도 채 끝나지 않았다고요? 어차피 밤은 기니까......”
기녀의 요염한 몸짓에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옛 카구야 공주도 울고 갈 아름다운 외모와 남자를 현혹시키는 화술, 모든 이의 시선을 빼앗는 몸짓은 천황이 이 기녀와 하룻밤을 보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아, 저 흰 살결을 보라. 기녀가 살짝 움직일 때마다 옷 사이로 그녀의 나신이 살짝이나마 보였다.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겠지. 흥분은 이미 자신의 양물에까지 전달되었다. 그 광경을 본 기녀는 쿡쿡 웃더니 남자의 허벅지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더 듣는다면, 내가 뭘 어떻게 해줄지는 아무도 모를걸요~?”
기녀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아름다운 두 굴곡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자신을 가지고 노는 기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을 현혹시키는 이 기녀에겐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문득, 자신이 불나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은 기녀가 아닌 자신의 욕망이었다. 아아, 이 얼마나 추잡한 욕망인가!
“그러고 보니, 누에라는 요괴는 지난번에 요리마사 공께 퇴치 당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요리마사 공과 사랑에 빠지기라도 했던 건가? 허허허!”
“글쎄요~? 이야기를 마저 듣다보면 알 수 있겠죠? 그럼, 다시 시작할게요.”
“이번엔, 당신이 듣고 싶어 하던 누에의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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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저런 요괴가 있었다니. 산에서 은거하던 요괴인가? 저렇게 강한 요괴가 이 근처에 있었다면 당연히 내가 알았을 터.”
누에의 앞에서는 한 남성 요괴가 자고 있었다. 설마 이런 산중에서 이런 거물을 발견할 줄은 몰랐는데. 누에는 미소를 지었다. 다른 세력의 요괴가 아니라면 이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이 헤이안 백귀야행의 주인인 자신과 맞먹는 요괴라니. 저 남자를 피해 없이 우리 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지. 게다가, 마침 후계자도 만들까 하던 참이다.
“하지만, 그를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군.”
오호,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누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에는 곧바로 자신의 본거지로 날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가장 충실한 수하를 은밀히 만나 명령을 내렸다.
자신이 한 남성을 짝사랑한다는 소문을 퍼트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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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그것이 그렇게 이어지는가. 과연, 처음에는 재미없는 연애사라고 생각했건만. 확실히 흥미로운 이야기군. 하지만 아직도 무서워질 기미는 안 보이는구나.”
“원래 이런 기담은 점점 무서워지는 법이죠. 호호호.”
기녀가 이야기의 한 부분을 끝내고 물로 목을 축일 때마다 남자는 연신 애가 탄다는 듯 반응했다. 물론 재밌을 법한 이야기지만, 자신이 여기에 온 본 목적을 망각하진 않았다. 하루 빨리 이 기녀를 취하고 싶을 뿐이었다. 기녀는 그런 남자의 반응을 깨닫고는 말했다.
“알았어요. 그럼 기분전환으로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번엔, 어린 시절 누에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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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때리지 마! 아빠 미워!”
아이는 울면서 아버지의 다리를 붙잡았다. 어머니에겐 절대로 보내지 않겠다는 듯.
“저 년이 바람을 피워! 내가 어떻게 먹여 살렸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간단하게 아이를 떼어내고 자신의 아내에게 다가갔다. 아내는 주저앉은 채로 간신히 뒷걸음칠 쳤으나 어느새 벽에 가로막혀 도망칠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얼굴은 이미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고, 갈비뼈가 몇 개 부러져 내장을 찌르고 있었다. 다리에는 힘줄에 칼이 박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아이도 그 폭행이 두려운 건지 용기 있게 말리려던 태도는 어디가고 어느새 구석에서 엎드린 채 눈과 귀를 막고 울고 있었다.
“이 정도면 어차피 놔둬도 죽겠군. 빨리 이걸 버려야겠어.”
그는 집에 있던 천 몇 개를 엉성하게나마 꿰매 큰 보자기를 만들었다. 그는 그것으로 아내를 감싸고는 다시 큰 나무상자에 넣었다. 그는 준비가 끝나자마자 울며 공포에 떠는 딸을 깨우고 협박했다.
“잘 들어. 내가 갔다 올 때까지 도망치거나 누군가에게 오늘 본 걸 알렸다면, 네 엄마처럼 만들어주마.”
그는 어린 아이들이 폭력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심, 그는 이 일이 자신의 딸에게 있어서 트라우마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딸을 좀 더 다루기 쉬울 테니까.
그는 작업용 옷으로 갈아입고 나무상자를 들었다. 마치 자재를 나르는 인부처럼 보임을 나름 흡족해하며 그는 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절대 들킬 일은 없을 거라 굳게 믿으며.
늦은 밤에 그가 돌아오자 그의 딸은 이불을 머리 끝 까지 덮고 덜덜 떨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딸을 한 번 걷어찬 뒤 이불을 강제로 들춰냈다.
“제발 때리지 말아주세요...... 아무에게도 말 안할게요......”
남자는 웃음을 지었다. 완전히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고 있다. 적당한 폭력을 곁들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그는 딸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오늘 본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면, 그리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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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마치 못 볼꼴을 본 사람마냥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기분이 나빠 보였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녀에게 말했다.
“누에가 인간이었고, 학대를 당했단 말인가? 아니, 그것이 정말 그 대요괴가 당한 일이 맞단 말인가?”
“네, 맞아요. 그녀는 인간이었죠. 믿기지 않겠지만, 그런 일을 당한 것도 사실이고요.”
그는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치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을 알아버린 사람처럼.
“그만, 그만. 그 이야기는 더는 듣고 싶지 않군. 아까 그 누에의 가짜 짝사랑 이야기를 마저 해주겠나?”
“어머나, 벌써 무서워지신 건가요? 그럼 이 이야기로 갈까나~”
남자는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의 표정은 기담의 공포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인간이었던 요괴의 인간 시절 과거사를 들추는 것은 금기라고 들었다.”
“이미 죽은 요괴이거늘 무엇 때문에 금기를 신경 쓰나요?”
기녀는 이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은 듯 했다. 남자는 기녀가 목을 축이기 위해 놓아둔 물을 강제로 뺏어가듯 가져가 마셨다. 저 이야기도 아까 말한 왕족에게서 들은 것일까. 아니면.
“사실, 누에는 치명상을 입긴 했지만 도주 했다네. 아직도 누에의 흔적을 찾지 못했어. 지금쯤 몸을 회복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일지도 모르지.”
“정말인가요?! 이런, 제가 큰 실수를 했군요.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되었네. 아마 퇴마사를 부른다면 한 번 쯤은 씻어낼 수 있겠지.”
“어머,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죄송하지만 물을 다시 떠오겠습니다. 그 후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죠.”
기녀는 잠시 밖으로 나가더니 얼마 후 돌아왔다. 그 후 잔을 내려놓고 목을 가다듬더니 기모노의 앞섶을 살짝 풀어헤쳤다.
“역시 한여름이라 그런지 밤에도 습하네요. 그럼 마저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저것이 진짜 더워서 그러는 것인지 나를 유혹하려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설령 착각이라도 저 동작이 자신을 유혹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럼, 그토록 바라시던 ‘요괴’ 누에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쿡쿡.”
마지막의 웃음은 지레 겁먹은 남자를 놀리는 것이리라. 괘씸하단 생각은 들어도 기녀의 외모를 감상하자면 작은 분노는 어느새 저절로 풀려있기 마련이었다.
“이번엔, 당신이 좋아할만한 내용으로.”
-
어느 새 이 주변에는 누에의 짝사랑에 대한 소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누에 또한 최근 외출이 잦아져 만날 기회도 없었기에 물어볼 수 있었던 존재는 없었다. 허나 이 외출로 인해 누에의 짝사랑은 그들에게 있어선 기정사실이 되었고, 짝사랑 상대에 대한 궁금증만 더 증폭될 뿐이었다.
한편 그 순간 누에는 오늘도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를 만나는 주변 장소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웬만한 인요는 다가올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누에가 언제나의 장소로 가자 그곳에는 그 요괴가 있었다.
수차례의 만남동안 그 요괴는 말이 없었다. 단지 본성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물론 그런 요괴는 널려있다. 하지만 이만큼 강한 요괴가 일말의 이성도 갖지 못했다는 것은 누에가 줄곧 생각했던 그에 대한 의문점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점을 이용해 누에는 그를 조교했다. 때론 옷을 벗고 본능에 충실한 그 요괴에게 지고의 쾌락을 안겨주었으며, 쾌락에 눈을 떠 시도 때도 없이 성욕을 분출하려 한다면 힘으로 찍어 눌렀던 것이다. 그 덕분에 그는 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선 고분고분하게 누에의 말을 따랐던 것이다.
누에가 그에 대해 좀 더 알고 나서, 누에는 크게 후회했다. 이런 바보라면 굳이 그런 소문을 퍼트릴 필요도 없지 않았는가. 어차피 이미 엎질러진 물, 누에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배우자로서는 적절치 않지만 아이를 낳기 위한 기둥서방 정도로 생각하면 될 터. 그래, 결국 자신의 수족으로 부릴 수만 있다면 상관없으니까.
“후후, 참. 성질도 급하긴.”
누에는 옷을 하나하나 벗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가 달려와 거대한 양물을 꽂아 넣으려 하고 있었다. 옷을 완전히 다 벗고 나면 전희고 뭐고 무차별적으로 자신의 안을 탐할 터. 하지만 누에에게는 오히려 그런 부분이 최고의 전희가 아닐 수 없었다.
“흣, 흐읏, 흐으응, 힛, 흐아아아앗!”
이 요괴와의 질펀한 하룻밤은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십? 수백? 주변은 이미 둘의 액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자궁과 질을 남김없이 채우고도 끊임없이 행위를 지속하고 있던 덕분에 배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정말로, 요괴가 아니라면, 이런 거, 못 버텨, 흐으앙!”
누에는 슬슬 힘으로 이 남자를 떨쳐낼까 생각 했지만 본 목적을 떠올리고는 깨끗하게 생각을 접었다. 아이를 낳는 것이 한 번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니 쉬이 그만 둘 수는 없었다. 물론, 자식을 낳기 전에 허리가 끊어지진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허리만 아프면 다행이지, 아까부터 성교를 위해 이 요괴가 몸을 잡을 때 마다 힘을 준 덕분에 그의 손이 지나간 곳은 고통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렇게 이 주변 흙바닥을 전부 뒤덮을 만큼의 행위가 간신히 끝난 것은 전혀 예상지 못한 이유였다.
복상사. 아니, 정말로 우습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복상사였다. 설마 누가 알았을까. 아니, 그의 끝도 없는 사정에 이미 횟수 따윈 망각해 버린 건지도 모른다. 정말로 셀 수 없을 정도로 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요괴도 기껏 해봐야 수십 번이 한계건만, 그 수치를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다.
누에는 내심 아쉬움을 느꼈다. 연심 같은 것이 아니었다. 막 조교가 끝난 충견이 허무하게 죽어버린 느낌. 시체를 먹어 요력을 회수할까 했지만, 이미 요력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결국 시체 섭취는 포기하고, 누에는 한동안 이 장소에서 은거하기로 했다. 임신 같은 사실이 함부로 알려졌다간 세력을 노리는 주변 요괴들에게 노려질지도 모르니까. 대신 배가 부풀어 오르기 전에 이전의 그 수하를 만나 조금 다른 소문을 퍼뜨렸다.
짝사랑은 거짓이었으며, 누에는 헤이안 침공을 준비했었다. 이제 다시 침공을 위해 잠시 은거할 것이며, 천황을 죽일 것이다.
-
“설마 그것이......”
“네, 헤이안 백귀야행이 궤멸하게 된 그 날의 시발점입니다.”
설령 이것이 거짓이라 해도, 어이없는 복상사만 뺀다면 이런 이야기를 생각한 사람에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겠지. 중간에, 두 요괴의 교합을 생생하게 들려주기 위함인지 신음소리를 직접 내던 기녀의 모습을 보고 흥분했던 남자는 어느 새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남자의 모습은 처음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자아, 그럼 이제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시작해볼까요?”
어쩐지 점점 불 속으로 다가가는 기분이 든다. 마치 불나방처럼. 아니, 그것과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꿈에 취한 장자처럼. 그래, 호접지몽. 이 말이 딱 어울릴 것이다.
“이번엔, 누에와 어떤 소녀의 이야기. 자, 그럼 시작합니다.”
-
그로부터 1년 후, 아이를 잉태한 누에는 깊은 숲 속 그 은신처에서 자신의 아이를 무사히 출산했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소문이 새어나가 그들, 천황과 그 개들도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이다. 헤이안 침공은 진작 계획하던 일이긴 했지만, 하필 이런 타이밍에 전쟁이 발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이를 막 출산하고 약해져 있는 타이밍에, 하필이면.
“어, 여긴 어디지?”
들린 것은 어린 인간 소녀의 목소리였다. 이제 막 어린애 티를 벗은 앳되어 보이는 소녀. 하지만 어떻게 평범한 인간이 결계를 뚫고 들어온단 말인가. 저 소녀에게선 어떤 특별한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넌 여길 어떻게 온 거지?”
“사실, 어머니 무덤을 찾다가 여기까지 흘러왔어요. 길을 잘못 들었나 봐요”
저 소녀가 결계를 뚫고 지나왔다면 그만한 재능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이 전세를 뒤집진 못하더라도,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
“내 친히 너에게 부탁을 하나 하마.”
“좋아요, 대신 당신도 언젠가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셨으면 좋겠네요.”
“흐음, 좋다. 그리 하마. 제안도 듣지 않고 협상이라니, 담이 큰 아이구나. 마음에 들었다.”
누에는 마음에 든다는 듯 흡족한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등에 달린 기괴한 모양의 날개를 펴 소녀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요괴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내 후계자지.”
“요괴......!”
담이 커 보이긴 했어도 역시 인간은 인간이라는 걸까. 소녀는 적잖이 놀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소녀는 호흡을 가다듬더니 다시 평정심을 되찾고는 누에를 바라보았다.
“호오, 보고도 그리 놀라지 않는구나.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군.”
“글쎄요, 그냥 제가 생각하던 요괴랑 달라서 그랬을 뿐이에요. 어릴 적, 동화 에서 읽었던 요괴는 무자비하게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나왔었거든요.”
“맞아, 그런 요괴도 있지. 아닌 요괴도 많지만.”
소녀는 그 말을 듣고는 조용히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뒤쪽 돌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요괴보단 인간이 더 무서워요. 요괴에게 인간이 산채로 잡아먹히는 것보다 인간이 어떻게 같은 인간을 처리하는지가 더 무섭죠. 어릴 적부터 시궁창에서 살아서 사람 죽는 건 여럿 봤어요.”
“어쩐지, 여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
누에는 그제야 이해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소녀가 그런 누에의 반응을 보고 의문을 짓자, 누에는 설명을 시작했다.
“간단해, 아직 미성숙한 시절부터 정신이 극한까지 몰리니 침식 당한거지. 각종 악령이나 잡요괴들에게 말이야. 운 좋게도 네 정신력이 아슬아슬하게 잘 버텨줘서 별 탈 없이 자란 것 같군. 그리고 그런 놈들이 들러붙은 덕분에 요괴나 악령같은 존재들에 대한 친화력이 높은 거다.”
누에는 소녀의 어깨에 양 손을 올려놓고는 말했다.
“그리고, 그 친화력을 바탕으로 넌 내 힘을 받아들이는 거지.”
“저보고 요괴가 되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니, 반인반요가 되는 거지. 일단 너는 기본적으로 인간이고 내 힘의 일부만 받는 거니까.”
소녀는 주의 깊게 누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직 누에는 제안의 절반밖에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음 제안은 무엇일까. 아무리 그래도 요괴다. 위험할 수밖에 없다.
“난 헤이안쿄를 침공한다. 그 동안 음양사들이 들어올지도 몰라. 들어오면, 그 때 도망가라.”
“당신은?”
“내 아이는 이미 내 힘의 절반을 가져갔어. 내 힘의 일부가 있다면 설령 내가 퇴치 당하더라도 불완전하게나마 부활할 수 있지. 영혼에 걸어둔 술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설령 그 아베노 세이메이라도 영혼 자체를 매개로 한 주술은 절대 건드리지 못해.”
“그렇다면, 좋아. 할게.”
누에는 소녀의 등에 토끼의 피로 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진이 그려지고, 그 진을 통해 누에의 강대한 힘이 몸속을 파고들었다. 고통으로 망가지는 몸을 요괴의 힘이 치료하고, 다시 망가지는 몸을 요괴의 힘이 치료한다. 심지어 고통의 잔재마저도 들어오는 힘이 흡수한다.
등에서 누에가 보여줬던 기괴한 모양의 붉고 푸른 날개가 돋아났다. 생살을 찢고 나온 날개임에도 고통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원래 있던 것처럼 편안했다.
-
“인간이, 요괴의 힘을 받았단 말인가. 허어.”
“자, 그럼 이제 마지막 이야기의 차례군요.”
남자는 깜짝 놀랐다. 설마 겨우 이걸로 마지막 이야기라니. 그러나 남자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이미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럼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
누에는 궁에 있는 천황을 암살하려 했으나 그곳은 이미 무수한 음양사들이 여러 술식을 적어놓은, 적어도 요괴 한정으로는 절대 뚫리지 않는 철벽과도 같은 요새였다.
물론 누에도 방법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누에는 곧바로 크게 날아올라 가장 높은 건물에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사념을 담아 포효하기 시작했다. 포효를 들은 평범한 인간들은 온 몸에서 피를 쏟고 죽었다. 음양사들과 그들이 보호하는 천황은 비교적 안전했지만, 그들도 충격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누에가 다시 포효를 내지르자, 음양사들의 대열이 흐트러졌다. 그 틈을 노린 누에는 빠르게 천황에게 돌진하며 가로막는 궁의 벽과 함께 음양사들을 쓸어버렸다. 드디어 천황을 죽일 수 있다. 앞으로, 한걸음만 더.
그와 동시에, 요리마사가 화살을 쏘았다.
화살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화살은 누에의 배를 직격으로 관통했다.
“커헉!”
관통당한 배를 부여잡고 누에는 벗어날 준비를 했다. 이런 치명상을 입은 채로는 승산이 없었다. 누에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다시 한 번 돌진해 음양사들을 쓸어버리며 아까 부순 벽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그것을 놓칠 요리마사가 아니었다. 그는 재빨리 두 번째 화살을 발사했다.
쾅!
거리가 멀어서 일까, 두 번째로 발사한 화살은 누에의 다리를 망가트리는데 그쳤다. 누에는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내 다시 자신의 은신처로 돌아갔다.
그러나 은신처에는 이곳저곳에 피가 튀어있었다. 하지만 시체는 없었다. 어째서인가. 누에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피를 쏟으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데도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문득, 어디선가 무언가를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녀가 그곳에 있었다. 소녀는 갓난아기의 다리를 먹고 있었다.
그래, 누에의 아이를.
물론 그냥 먹는 건 아니었다. 입을 기괴하게, 크게 만들어 뼈째로 씹어 먹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피는 마치 술을 마시듯 한 방울도 남김없이 들이켰다. 그렇게 천천히 아이가 먹혀갔다.
누에는 그 광경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움직이던 한쪽 다리도 힘이 풀려 더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무어라 말을 하고 싶어도,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마치 악몽과도 같았다.
그렇게, 머리까지 남김없이 식사를 끝낸 소녀는 그 큰 입을 벌린 채 누에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먹고, 또 먹고, 먹고, 또 먹고. 결국 누에는 소녀에게 완전히 먹혀버렸다.
그리고 소녀는? 누에는? 이성이 돌아왔는지, 인격이 바뀐 건지. 누구에게? 말헀다.
“우린 닮았어. 몽환 속에서 살고, 몽환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지. 그렇지?”
-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들고 기분 나쁜 내용뿐이로군. 정말, 기분 나빠.”
그녀는 이전과도 같이 요염한 동작을 취하며
“어머, 그렇다면 특별히 해설을 들려드릴까요? 정말, 다른 사람에겐 말한 적도 없는데......”
해설 같은걸 들을 기분은 아니었지만, 이 기괴한 내용에 대한 호기심은 결국 자기도 모르게
“좋아, 들려주게.”
말을 꺼내고 말았다.
내 입에서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기녀는 해맑게 웃었다. 아니, 섬뜩하게? 아니, 역시 해맑게 웃었던 것이 맞는 것 같다. 잘못 본 게 아닐까.
“누에가 봤던 남자가 환영이었다면?”
“어째서?”
“잘 생각해 보세요. 누에는, 자신이 만족할만한 남자를 찾지 못 했던 거예요. 정체불명의 능력이란 꽤나 복잡해서, 단순히 인식만 못하게 하는 정도는 아니거든요. 사람의 인식이나 기억, 심지어 힘이 닿는 부분이라면 다른 인식의 구현화도 가능하죠. 그리고 이걸로 자신의 물건을 남자라고 인식하도록, 환각을 걸어 자신을 임신 시킨 거예요. 그거죠. 자웅동체. 결국 자기 스스로 임신한 누에는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결계를 만들었고, 그를 죽게 했어요. 아니, 그도 아니지만.”
“스스로 아이를 잉태한건 힘과 혈통 때문에 그렇다고 치지. 하지만, 어째서 자신에게 환각을 건 거지?”
남자는 간신히 떠오른 의문점을 던졌다. 그리고 돌아온 누에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사실 그 임신조차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었거든요.”
“무슨?”
“자기 자신을 임신 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일부를 떼서 자기 자궁에 집어넣은 거죠, 쉽게 말하자면, 능력은 일종의 진통제 역할과 임신을 대신하여 아이를 만드는 역할을 했던 거죠. 누에가 아이를 낳고 힘이 약해진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자신의 반신을 내보낸 거니까. 말 그대로 힘을 담아버린 거죠.”
남자는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표정은 전혀 좋지 않았지만.
“그럼, 해설을 마저 이어주게.”
“좋아요. 두 번째 해설. 소녀는 왜 미쳤는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누가?
“요괴의 힘을 불완전하게 이어받은 거죠. 요괴는 인육을 매우 좋아하거든요. 특히 소녀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반요가 된 것이 아니라 인육을 보고 미쳐버리는 사태가 발생한 거죠. 막상 음양사들을 죽이고 나니 식욕이 나타난 거고. 그렇게 음양사들을 먹고 소녀는 인육에도 미칠 정도로 불완전했던 자신이 약간이나마 완전해진 걸 느낀 거예요. 그렇게 아이와, 그에 이어 누에까지 먹고 완전한 요괴가 된 거고요. 진짜 누에는 부활 따위 할 수 없었죠. 이미 전부 먹혀버렸는데.”
이해가 되는데, 뭐기 뭔지 모르겠군. 어라, 그럼 이해가 된 건가? 그걸 이해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좋아요, 마지막 해설. 학대당하던 소녀와 어머니의 무덤을 찾는다던 소녀는 누구인가.”
“이건 설명할 필요도 없겠네요. 그렇죠, 아버지?”
그래. 눈치 채곤 있었는데. 내 딸을 팔고. 빚을 갚고. 그렇게 자수성가한 나는.
“너는 분명히 인간시절 누에의 이야기라고......” 애써 부정해도
“그러니까, 내가 누에잖아요?”
기녀의 입이 비정상적으로 쩍 벌어진다. 그리고 탐욕스럽게 남자의 머리를 씹어 먹었다.
-
“으음......”
어쩐지 바지가 축축하다. 설마 이 나이 먹고 지려버린 건가. 요실금이라니, 나도 늙었어.
그래, 요실금 따위가 아니지.
우드득, 우드득.
먹힌다. 머리가 먹힌다. 머리부터 먹힌다.
이번엔 다리부터. 이번엔 목부터. 끊임없이 먹힌다.
이야기는 엉성하고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떠온 물처럼.
덧없는 꿈은 결국 깨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누가 누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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