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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팬픽

돌과 종이와 아이패드 Pro가 전한다 (2021.01.31) ⊙ 하쿠레이 대결계 완공 기념비 요괴는 인간이 두려워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으며 세상을 지배한 인간은 점차 두려움을 잃었다. 이에 요괴의 존속을 염려한 유카리가 환상향의 터를 잡으니 이는 서력 천십삼년의 일이다. 인간의 발전에 사후를 부정당한 저승에서 환상향에 염마를 임명하고 피안의 길과 삼도천 저승문과 명계를 두니 이는 서력 천이백구십오년의 일이다. 마타라 비신을 자처하는 이가 야쿠모 유카리와 결의를 맺고 환상향의 뒷면을 관리하니 이는 서력 천육백삼십삼년의 일이다. 인간이 요괴를 잊어 요괴는 현실의 작은 틈바구니에서 생존하는 것조차 부정 당한다. 야쿠모 유카리를 비롯한 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변혁을 꾀하니 이는 서력 천팔백오십년의 일이다. 환상향의 모든 인요가 뜻을 모아 용신께서 미래를 언약하니 금일.. 더보기
스즈나안에서 출판 거부당한 엉터리 소설 (2020.10.11) ※교섭 결렬 “설명해봐, 레이무.”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레이무는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태도에 유카리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 “인간 마을 말이야.” “마을이 왜?” 질문을 바꿔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무성의한 대답에 유카리는 버럭 화를 낼까 생각도 해봤지만, 하쿠레이의 무녀가 요즘 마을 돌아가는 꼴을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또 한 번 관용을 베푼다. “최근 마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젊은 인간들은 퇴마사의 집을 찾아가 비술을 배우려고 하질 않나, 몇몇은 죽창에 농기구를 들고 마을 바깥을 어슬렁거리질 않나. 그러면서 ‘요괴를 몰아내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돌아다니고 있어.” “아아, 그거라면 알고 있어.” “알고 있어- 라니, 그걸로 끝이야?” “그럼?.. 더보기
내 얘기를 들어라 (2020.8.29) - 허허, 이 잡것들을 좀 보라.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왔단 말이냐? - 아이고 무섭다. 눈 감으면 코 깨물어가겠네. 누가 들으면 그 쪽이 늑대령인줄 알겠소. - 네놈들이 우리 등짝에 칼침 놓은 걸 어찌 잊겠느냐? 오냐, 원수들이 보기 좋게 모여 있구나. 싸그리 목을 따다 킷초 두령께 바쳐야겠다. - 아 그만하슈. 늙다리 수달도 애꾸 반장도 진정하슈. 저 장지문 너머에 두 두령이 회담 중인걸 잊으셨는가? 어찌 목소리가 두령들보다 크단 말이오? - 아가 말 잘했다. 저 늙다리가 다 부러진 이빨로 으르렁거리니 내가 웃겨서 날뛰었구나. - 아 근데 저 애꾸 놈이? - 고만하라 안혀유. 참, 어째 두 분은 보기만 해도 못 죽여서 안달이슈? - 왜기는, 너희 늑대 놈들이 우리 킷초 두령을 배신하지 않았느냐. .. 더보기
세상의 끝을 (2016. 01) 먼 옛날의, 내가 땅을 땅이라 부르던 시절의 기억이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거야, 마리사?” 반세기 짧은 시간동안 나를 따라다니던 금발의 마녀. 늙어 죽는 것을 마녀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인간이었다고 할 수 있었던 그 소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 집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책에 홀리기라도 했는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한 동안 묵묵부답으로 눈동자만 굴리던 소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들어 올리며 내게 이렇게 답했다. “앨리스는 바다에 가본 적 있어?” 질문에 돌아온 것은 질문. 언제나 제 말만 하던 말괄량이. 그날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어린애 같은 성격에 웃음을 지어주던 것 또한 나였지만. “바다라. 오랜만에 들어보네. 환상향에 들어오기 전에는 자주 갔었지.” “.. 더보기
마시다 (2015. 10) "자." 금발의 유녀는 차분히 술을 따라내렸다. 잔을 받은 사람은 보랏빛 머리를 한 장신의 여성. 그녀는 눈에 안대를 써서 앞이 보이지는 않는 듯 했다. "흠..." 술을 받은 여성은 천천히 술잔을 들어 코를 한번 대고는, 여유롭게 술을 들이켜 잔을 비웠다. "현무계곡 맥곡차." "호오, 좋아." 유녀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뒤이어 다른 술을 따라내렸다. "이건 어떨까?" "어디... 흐음?!" 여유롭게 코를 대고 향을 음미하던 여성은, 순간 느껴진 술의 향취에 적잖이 놀란 듯 했다. "농담이지 이거?" "냄새로 어떻게 농담을 쳐?" 조용히 웃으며 받아치는 유녀와 달리, 여성의 손이 적잖이 떨려왔다. "설마..." 여성은 부들대는 손으로, 간신히 술을 받아 넘긴다. "맙소사..." 여성이 들고 있던 잔.. 더보기
역날逆刃 (2015. 7) 어째서.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스승님이 유유코 님을 찌르신 겁니까? 어째서 제가 스승님과 대치해야 하는 것입니까? “제자여.” 어째서. “네가 나를 벨 수 있겠느냐?” 어째서 스승님께서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역날(逆刃)》 “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꼭두 새벽에 일어나 이불을 개던 저는, 이젠 이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소리를 냈습니다. 더 이상 아침 일찍 유유코 님을 깨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 유유코 님을 깨우지 않아도 된다면 이 시간엔 무엇을 할까. 딱히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에, 저는 마루에 걸터앉아 사이교우아야카시를 바라보았습니다. 죽음을 부르는 나무가, 이제는 죽은 나무가 되어 마른 가지만 앙상했습니다. 유유코 님이 떠남과 동시에 나무도 생을 마감한 것이겠죠. 처음부터 저 나무.. 더보기
남매 (2014. 12) 천 년 전 히지리 가에는 남자 아이가 하나 있었다. 대를 이어줄 다른 사내아이가 없어 식솔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란 그 아이는, 지식과 예의범절을 갖춘 신동으로 자랐다. 그러나 가엾게도 아이는 서당을 마치기도 전에 악병에 걸리고 만다. 어쩌면 오늘날에는 손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의 원인을 악귀에게서 찾던 무지의 시대에, 그들에겐 종교 이외에 기댈 길이 없었다. 극진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아이는 제 몸조차 가눌 수 없게 되어 매일을 이불 속에서 보내게 된다. 왜 이런 병에 걸려버린 걸까. 아이는 운명을 원망했다. 이제는 그저 짐 덩이가 되어 가족들에게도, 하인들에게도 민폐만 끼칠 뿐이었다. 내색하지는 않고 있지만, 틀림없이 모두 그렇게 여기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