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개인 팬픽

돌과 종이와 아이패드 Pro가 전한다 (2021.01.31)

 

⊙ 하쿠레이 대결계 완공 기념비

 

요괴는 인간이 두려워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으며 세상을 지배한 인간은 점차 두려움을 잃었다. 이에 요괴의 존속을 염려한 유카리가 환상향의 터를 잡으니 이는 서력 천십삼년의 일이다.

 

인간의 발전에 사후를 부정당한 저승에서 환상향에 염마를 임명하고 피안의 길과 삼도천 저승문과 명계를 두니 이는 서력 천이백구십오년의 일이다.

 

마타라 비신을 자처하는 이가 야쿠모 유카리와 결의를 맺고 환상향의 뒷면을 관리하니 이는 서력 천육백삼십삼년의 일이다.

 

인간이 요괴를 잊어 요괴는 현실의 작은 틈바구니에서 생존하는 것조차 부정 당한다. 야쿠모 유카리를 비롯한 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변혁을 꾀하니 이는 서력 천팔백오십년의 일이다.

 

환상향의 모든 인요가 뜻을 모아 용신께서 미래를 언약하니 금일 서력 천팔백팔십오년, 메이지 십칠년을 맞이하여 환상향과 바깥세계의 단절을 고한다.

 

(중략)

 

환상향의 결계를 관리하는 것은 야쿠모 유카리의 책무이며 저승을 관리하는 것은 시왕들과 그 아래 염마의 책무다.

 

환상향의 뒷면을 관리하는 것은 마타라 비신의 책무이며 환상향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무녀의 책무다.

 

하쿠레이의 무녀는 요괴들과 협약하여 인요의 균형을 조율하는 존재지만, 그 근간이 인간임을 잊어선 안 된다.

 

따라 내 자손, 혹은 하쿠레이의 성을 잇는 모든 이에게 전한다. 그대들은 앞으로 다가올 모든 고난과 환난 속에서도 자신을 잊지 말지어다.

 

그 몸을 바쳐 바깥으로부터의 위협을 막아내고, 그대에게 목숨을 맡긴 인간들을 돌보고 또 주시하여라.

 

그대의 몸은 그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 시대가 변하고 그 본질이 퇴색될지언정 평온과 안락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시대가 오더라도 하쿠레이는 하쿠레이로 남아야 한다. 그대는 낙원의 무녀이며 인간의 수호자, 그대가 제 본분을 잊지 않는다면 나는 항상 그대들을 굽어 살필 것이다.

 

- 환상력 영계오월십일일 건립 -





⊙ 인간 마을의 광장 게시판



최근 마을 주민 분들의 마음을 옥죄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밤마다 들려오는 알 수 없는 괴성과 밤사이 엉망진창으로 헤집어진 농작물로 인하여 농가 일대의 주민 분들이 근심으로 밤잠을 설쳤습니다. 이에 저희 마을반상회는 주민 분들의 안녕을 위하여 무녀님과 의논한 끝에 방범대를 소집하여 수차례 야간 순찰을 이어나갔고, 끝내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괴성의 정체를 밝혀냈습니다. 조사 결과 밤마다 고라니 떼가 숲을 빠져나와 밭을 헤집고 있었습니다. 이에 무녀님께서 직접 나서서 고라니 떼를 내쫓고 결계를 강화하셨으니 앞으로는 고라니가 마을로 넘어오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금일을 기하여 인간 마을은 무사고 1000일을 맞이하였습니다. 무사고 1000일 기록은 백여 년 전 대결계 완공 이후로 이례적인 기록입니다. 농가의 여러분들께서는 안심하시고 다가올 풍년제를 준비해주시기 바라며, 행여 레이무 양을 마주하게 되는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정답게 맞이하며 감사의 뜻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오후에는 광장에서 무사고 기념식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모쪼록 많은 참여 바랍니다.

 

환상력 135계 / 5월 / 11일

마을반상회장 ▒▒▒▒ ▒▒▒ 올림





⊙ 히에다노 아큐의 청첩장



아레의 아이는 선대라는 실에 얽매인 목각인형과 다를 바 없다. 이 목숨은 온전히 제 것이 아니라 선대님들의 비원을 완수하기 위해 빌린 삶. 9대 환상향연기를 퇴고한 후에는 이 삶도 끝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환상향연기를 마무리 지음으로서 아레의 아이는 그 소임을 다했지만, 히에다노 아큐의 삶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홀로 오롯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눈치 채지 못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제 부족함을 채워주고 있었습니다. 취재를 요청받은 요괴들은 서스럼 없이 제게 손을 내밀어 주었고, 첫 인쇄를 위해 서점을 찾을 즈음에는 생애 둘도 없을 단짝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길고 긴 방황의 끝에 찾은 그 이는, 제 명이 끝나는 날까지도 저를 사랑해주겠다고 맹세했습니다. 히에다노 아큐는 빈껍데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레의 아이는 최후의 최후에 삶의 의미를 되찾았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죠. 히에다노 아큐는, 아레의 아이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혼사는 그 새로운 시작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하쿠레이 레이무 ​님, 부디 귀한 걸음 하시어, 저희의 인연을 축복해주셨으면 합니다.

 

일시 : 환상력 135계 6월 17일

장소 : 히에다 가




⊙ 붕붕마루 354호



금일 환상력 135계 5월 11일을 기하여 인간 마을은 무사고 1000일을 맞이하는 기념식이 진행되었다. 대결계 수립 이후 괴이하고 소란한 사건이 끊이지 않았던 환상향에서 1000일이나 지속된 평화는 확실히 이례적인 기록이다. 마을의 인간들은 1000일의 평화가 10000일로 이어지고 백년해로 무탈하기를 기원했지만, 아쉽게도 그 기록이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정정하자면, 135계 5월 11일은 무사고 1000일이며 동시에 무사고 0일이 되었다.

 

긴 시간동안 이어진 무사고 기록을 무너뜨린 사건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인간 마을의 수호자 역을 자처하는 낙원의 무녀, R양(가명) 이었다. R양은 기념식 이후 광장 주변을 배회하다가 별안간 이상증세를 보이더니 스즈나안으로 달려가 K양(가명)의 멱살을 잡았다. 무녀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불제봉을 휘두르며 K양을 위협하니 상가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방범대가 출동하여 이상증세를 보이던 R양과 대치한 후로도 한동안 일촉즉발의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다행히 R양의 지인인 Y여사(가명)가 R양을 제압하고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K양은 인터뷰를 통해 영문을 모르겠다는 발언과 함께 두려움을 표했고, 이번 소동의 관계자인 R양과 Y여사는 사건에 대한 진술을 거부했다.



⊙ Caffe De Gensou 일일 장부



* 퇴근 시 커피 기계 세척 (필수!!!)

* 기계 오작동시 삼거리의 캇파 철물점에 문의

* 꼬마 손님들은 공짜로 (사장님께 말씀만 드릴 것)

 

- 09:03

아메리카노 / 200엔

- 09:32

아메리카노 / 200엔

- 09:44

아이스 아메리카노 / 250 엔

 

- 13:45

Caffe De Gensou 스페셜 파르페 / 1800엔

- 13:53

그린 티, 카페 모카 (휘핑X) / 650엔

- 14:02

아이스티(얼음 가득), 트로피컬 블래스트, 흑당라떼 / 0엔

 

매출정산 : 68020엔

* 점장님, 2번 커피머신 고장 났어요. 내일 캇파 철물점에 인계 부탁드려요.

* 2시쯤에 꼬마손님이 셋 다녀갔어요. 밤참새 양은 바빴던 모양이네요.




⊙ 하쿠레이 레이무의 일기



환상력 135계 5월 11일

 

혹시라도 유카리 이외의 누군가 이걸 읽게 된다면 비웃지는 말아 줬으면 해. 나도 일기 같은 건 처음 써보는 거니까. 까놓고 말해서 일기도 아니고 반성문 같은 거지. 오늘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반성문.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였어. 이변도 없고, 마을 사람들은 얼굴에 미소 가득하고, 그 틈에 스리슬쩍 스며든 요괴들도 이냥저냥 잘 지내고 있었지. 무사고 1000일 기념식이라잖아. 누군들 그런 경사를 깨고 싶었겠어. 그냥 물 흐르듯 지나가리라 생각했지. 오늘도 평화롭게, 아무 일도 없이.

 

그런데 말이야. 어째선지 슬금슬금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하더라고. 정신이 나간 게 아니야. 아마노자쿠에게 빙의당한 것도 아니야.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일단은 읽어 줘. 기념식에 참여해서 어르신들 좋은 말씀도 듣고, 신께 기원도 바치고 떡도 좀 얻어먹고, 기분이 나빠질 만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어. 본격적으로 정신이 나간 건 그 이후의 일이지.

 

무사히 기념식을 마치고 광장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우연히 아큐를 만났던 거야. 이변이 없으면 취재도 없으니 소식이 조금 뜸하긴 했지. 평생 소녀일 줄 알았는데 어느새 요조숙녀가 되어 있더라고. 아무리 나라도 좀 놀랐지. 잘 지내셨나요, 못 본 새에 많이 컸네, 그러는 레이무 씨도 어른스러워지셨네요. 이러쿵저러쿵. 시답잖은 안부를 전하고 있었는데, 대뜸 아큐가 청첩장을 내밀었어. 순간 정신이 멍해져서 이게 뭔가 싶더라고. 아큐의 말인즉, 자기는 이제 결혼한다는 거야. 집안에서 정해준 정략결혼 따위가 아닌, 줄곧 마음에 담아왔던 소중한 사람. 이제 아레의 아이가 아닌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짧은 생의 마지막을 함께해 줄 배우자를 찾았다고 하는 거야.

 

그래, 그 때를 기점으로 아주 정신이 나가버렸던 거 같아. 마을 여기저기를 미친년처럼 소리 지르며 돌아다니고, 스즈나안에 들러서는 불제봉을 휘두르며 깽판도 쳤었지. 무슨 일 없냐, 이변 없냐, 요마서는 뒀다 뭐 하냐, 아무 일 없으면 불이라도 질러서 제발 이변 좀 만들어줘라. 그렇게 오만진상을 다 부리다가, 결국 유카리한테 얻어맞고 정신을 잃어버렸어.

 

정신 차려보니까 유카리가 심란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지. 눈 뜬 곳은 스즈나안도 아니었어. 카페라고, 커피인지 뭔지 검은 콩 볶아서 차로 내오는 거기 있잖아. 종업원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차를 내오니, 그제서야 유카리가 입을 열었어. 대체 왜 그랬냐. 글쎄, 왜 그랬을까. 대체 뭐에 씌어서 그런 행동을 벌인 걸까. 나도 내 생각을 정리하려고 한참동안 끙끙댔어.

 

아무래도 나는 심심했던 거 같아. 조금 나답지 않게 풀어보자면, 하쿠레이의 무녀로서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던 거야. 언제부터 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하쿠레이라는 성을 받아 무녀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어. 그때까지만 해도 환상향은 혼란스러웠고, 나는 하쿠레이의 무녀라는 이름 아래 이변을 해결하고 요괴를 퇴치했어. 돌이켜보면 하루하루가 정신없는 삶이었어. 그 어린 나이에 요괴들 머리통을 깨면서 보수라고는 쥐꼬리만큼도 못 받았으니, 바깥세계에서 봤더라면 노동법 위반에 대해 성토해도 좋을 나날들이었지. 하지만, 조금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싫지는 않았어. 그 때의 나는 삶이 팍팍할지언정 공허하지는 않았으니까. 괴롭고 힘들어도 하쿠레이의 무녀라는 이름 아래 빛나고 있었으니까.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물고기는 물 아래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하잖아. 그럼 나는 이변 해결이라는 나뭇잎을 먹고 자라는 애벌레였겠지.

 

모두가 경애하는 인간의 수호자. 그런 나였기 때문에 변해버린 세상을 견딜 수 없었나봐. 아니, 세상은 변하지 않았어. 변한 건 나지. 사람들은 언제나 평화롭기만을 바라왔고, 오직 나만 멀쩡한 세상을 직시하지 못하고 거꾸로 뒤집혀 있었던 거야.

 

유카리가 웃었어. 별 시답잖은 이유였네. 시시한 이유지. 그런 시시한 이유 때문에 죽도록 괴롭다는 사실이 더욱 짜증나지만 말이야. 솔직한 심경을 말하자면 그 대화를 나누던 카페조차도 짜증났어. 바로 옆 테이블에선 명련사의 주지승과 성덕태자가 사이좋게 커플 디저트를 먹으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카운터에선 어린 요괴들이 돈도 없는 주제에 음료수를 타가려고 줄을 서고 있잖아. 왜 종교가의 지도자라는 것들이 데이트를 하고 있는 거야. 왜 요괴가 상점을 털고 있는데 귀엽다고 머리나 쓰다듬고 있는 거야. 욱해도 참아야겠지. 내가 봤을 때는 세상이 완전히 거꾸로 뒤집혀 버렸는데, 뒤집힌 건 세상이 아니라 나뿐이라니까.

 

뭐, 대충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거야. 나도 앞으로 스즈나안에 쳐들어가 코스즈를 위협하는 짓 같은 건 하지 않아. 반성도 했고, 유카리도 나를 위해 이런저런 해결책을 세웠어. 이 일기도 유카리가 제시한 해결책의 일부야. 뭐라고 했더라, 소임을 다하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당장 너에게는 하쿠레이의 무녀로서의 의무보다 교양을 먼저 쌓을 필요가 있다.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어라. 사람의 삶은 쓸데없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나. 솔직히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고, 유카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이렇게 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면, 조금은 기대해보고 싶어. 아큐도 자신의 삶에 순응했는데, 나라고 언제까지 뒤집힌 채로 살 수는 없잖아. 내일부터는 조금 바빠질지도 몰라. 유카리가 같이 영화를 보자더라고. 그 영화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 CINE-KAN App.



트루먼 쇼 (자막)

코미디 / The Truman show / 1998

 

바로보기(CINE-KAN 멤버십 이용 중)

 

전체 / 개요 / 출연 / 관객평 / 명대사

 

==========

 

- 보라구름소녀 (yakumo17)

[★★★★☆] (4.5/5)

 

이게 영화다- 라는 느낌. 닫힌 공간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네요. 우리가 세상을 관찰하는 걸까요? 아니면 세상이 우리를 관찰하는 걸까요? 여러모로 인상 깊은 영화였습니다. 이 모든 내용을 익살스럽게 연기하는 짐 캐리의 연기력. 명감독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구도와 연출 또한 좋은 볼거리죠. 명작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 법이네요.

(20.05.12. 14:33)

 

==========

 

- 하쿠레이레이무 (aaa1123)

[★★★★★] (5/5)

 

영화는 ㅊㆍㅓ음인데 생각힜던거보다ㅏ 재미있네. 유카리에게 감ㅁ사해야 할지도. 만족. 다른 것도 보고 싶어.

(2020.05.12. 14:58)



<完>





============

 

 

2021년 제4회 동갤 모티브 팬픽대회 출품작.

'개인 팬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즈나안에서 출판 거부당한 엉터리 소설 (2020.10.11)  (0) 2021.01.29
내 얘기를 들어라 (2020.8.29)  (0) 2020.09.12
세상의 끝을 (2016. 01)  (0) 2020.06.23
마시다 (2015. 10)  (0) 2020.06.22
역날逆刃 (2015. 7)  (0) 2020.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