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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글알못 팬픽대회

곽청아 - 콩고산콩고물

하기의 이야기는 환상향 최속의 정보를 자랑하는 본지 붕붕마루 신문에서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망령의 이야기

 

청아 공은 말하자면… 좀 별난 사람이지요. 아니, 인간의 기준으로 일평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넘도록 알고 지내는 입장으로서 단순히 별나다는 말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자님이 아직 인간의 몸으로 통치하시던 시절, 심하게 기근이 들어 수많은 백성들이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청아 공이 아끼던 몸종 하나가 죽었는데, 청아 공은 주저앉아 한참을 서럽게 울면서도 홀린 듯 시신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지요.

 

청아 공의 인간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미심쩍은 이야기입니다만… 지금까지도 제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청아 공이 워낙 서럽게 울던 탓으로, 저는 아직까지도 이 일에 대해 이렇다 할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최근의 기행들도 말하자면 수도 없지만, 따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니 잡설은 이만 줄이지요.

 

춘기가 사그러들던 곡우(穀雨) 즈음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태자님께서는 오후에 있을 인간 마을에서의 연설을 위해 의관을 갖추고 계셨고, 후토는 지난번 외출할 적에 잡상인에게서 산 돋보기란 물건으로 마당을 무리지어 행진하는 개미들을 불태우고 있었지요. 

 

아, 청아 공이라 하면, 당연하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소 놀러다니기를 좋아하는 탓에 신령묘를 비우는 것은 다반사였으니, 그 날도 분명 마을의 찻집이나 술집에라도 눌어붙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저는 마굿간에서 태자님이 타실 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문 쪽에서 크게 세 번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이리 오너라―― 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소리의 주인은 비사문천을 섬기는 쥐 요괴로, 명련사에서 신령묘 측에 전할 말이 있을 때 전령 역할을 하는 아이였거든요.

 

그리고 그 전할 말이라는 것은 대개 유쾌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후토가 또 절에 불을 지르려다가 잡혔다느니, 요시카가 묘지에서 벗어나 절을 헤집고 있으니 도로 데려가라느니 하는 일들이었죠. 

 

후토는 지금 앞마당에서 놀고 있으니, 이번은 분명히 요시카의 일일 것이다― 생각하며, 저는 대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문을 열었을 때 저는 놀랐습니다. 쥐 요괴의 얼굴에는 평소와 다르게 화난 표정도, 이제 질렸다는 표정도 없었거든요. 오히려 자신도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어안이 벙벙한 낯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토요사토미미 공 계신가?”

 

“태자님께서는 지금 바쁘십니다. 무슨 일인가요?”

 

“그쪽의 사선이 절에 민폐를 끼친 일로 왔네만.”

 

이 대목에서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청아 공이 평소 얌전한 이미지였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을 저지르는 빈도로 말하자면 신령묘에서 가장 사고뭉치였죠. 

 

청아 공이 환상향의 다른 곳을 제하고 명련사에서 일으킨 문제만 꼽아도 제가 아는 것만 책 세 권으로 모자랄 양이었고, 후토가 아는 것이 책 한 권, 태자님이 아실 것은 책 다섯 권,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일은 그 곱절의 곱절보다도 많을 테니, 여기서는 빈말로라도 그녀가 무고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놀랄 수밖에 없던 점은, 청아 공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이 아니라, 잡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수많은 일을 저지르면서도 꼬리가 밟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명련사 측에서도 심증은 있을지언정 정식으로 항의를 해오는 경우는 없었으니까요.

 

저는 혹시나 명련사의 부처님이 세 번은 진작에 넘었을, 세 아승기의 아득히 많은 미소를 지나 결국에는 심증만 가지고서라도 추궁하러 보낸 것은 아닌가, 하고 의뭉스레 떠 보았습니다.

 

“어머, 청아 공이 무슨 일로? 분명 제가 알기로는 명련사에서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 사람이라고 아는데요?”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은 집어치우게. 그간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어 책하지 못하던 것을, 오늘 드디어 잡았으니.”

 

그렇게 말하는 쥐 요괴의 얼굴에는 아까의 영문은 모르겠다는 표정은 안개처럼 흩어진 채로, 짐짓 노한 듯하면서도 통쾌함이 느껴지는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오시 경, 겁도 없이 히지리의 방에 숨어들어 물건을 훔치는 걸 잡았네. 현행범이라 발뺌할 수도 없어.”

 

“아이고, 이런. 도대체 뭘 훔치려다…?”

 

“상관없는 문제일세. 애초에 사선을 잡은 건 히지리였으니, 나는 알지도 못하고. 그것보다, 할 말은 없으신가?”

 

“하아… 면목이 없습니다. 처벌은 어떻게 되는지요? 우리 쪽에서 엄하게 문책할 테니, 가급적이면 돌려 보내주셨으면 합니다만…”

 

“마음 같아서는 태자에게 직접 사죄를 듣고 싶으나…”

 

순간, 쥐 요괴의 얼굴에서 의기양양함이 사라졌습니다.

 

“히지리는 이번 일을 불문에 붙이라 말했네. 그리고, 처벌은 없으리라는 것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야, 아무리 불도의 대자대비함이라도 그 사선이 마음을 고쳐먹을 일은 없을 텐데…”

 

“그렇다면 청아 공을 풀어주시는 건가요?”

 

“풀어주기는 진작에 풀어주었네. 아마 지금쯤 신사에라도 놀러 갔겠지. 히지리가 날 보낸 이유는 이것이네.”

 

쥐 요괴는 꼬리에 걸린 바구니를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그 안에 걸터앉은 새하얀 아기쥐는 바구니 안쪽으로 머리를 쑥 집어넣어 잡동1사니들을 뒤적이다, 이내 계란 한 알을 꺼내 쥐 요괴의 손에 올려놓았지요.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다만, 히지리는 이렇게 전해달라고 했다네. 사선에게 이 계란을 맡겨, 가장 아름답게 만들도록 하세요― 라고 말이야. 그 밖에 사선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네. 무슨 생각인지…”

 

쥐 요괴가 어째서 그렇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뭔가 의중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불가의 위선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 투성이였죠.

 

쥐 요괴는 그런 저의 표정을 보고는 한번 픽, 비웃더니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초대장을 꼭 태자에게 전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지요.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질 시간이 되어서야, 청아 공은 돌아왔습니다.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 명련사 일에 관해서는 아무리 물어도 말을 교묘히 돌려가며 빠져나갈 뿐,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답니다.

 

청아 공에게 쥐 요괴의 말을 전하자, 계란을 들고 묘한 표정을 한 채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으로 대화가 끝났지요.

 

시해선의 이야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청아 공 같은 이는, 고금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네― 물론 부정적인 쪽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천 사백년 전, 태자님이 아직 사람의 몸으로 통치하시던 시기의 일이네. 

 

그 해에 역병이 심하게 들었는데, 태자님께서 친히 온갖 약재들을 사들이고 나라의 명의들을 모두 불러들였는데도 백약이 무효라 병들어 죽은 시체가 길거리에 나무토막처럼 굴러다닐 지경이었지.

 

그 이전까지만 해도 청아 공의 연단방은 그 누구에게도 열린 적이 없었다네. 이는 태자님께도 마찬가지였고.

 

참으로 불경한 일이야, 누구 돈으로 그 연구를 하는지도 모르고… 그런데도 태자님은 내가 주의를 주려고 할 때마다 청아 공을 감싸주었지. 그렇게나 덕망이 있는 분이니 내가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으흠, 이야기가 다른 길로 세었군. 여하튼 아무리 역병이 심하더라도 청아 공의 연단방만큼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성 안의 모두가 생각했지. 

 

아아, 차라리 그 생각이 맞았더라면… 청아 공은 연단방의 문을 열었지만, 그 뒤로 이어진 일은 한 번의 생이 지나간 지금까지도 상상만 하는 것으로 몸서리가 쳐진다네.

 

가증스럽게도, 청아 공은 무료로 치료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끌어모았지. 연단방의 실험대와 서가를 치우고, 그 자리에 침대와 협탁을 들여놓았어.

 

청아 공을 아는 이라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래. 그것은 인체실험을 하기 위해서였음이 틀림없었네. 

 

물론 백성들도 바보가 아니니, 처음에는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이가 많지 않았네. 청아 공의 악행은 이전부터 유명하였으니, 많은 이들이 그 위선의 진의를 깨닫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지.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의 마음일수록 절박한 법. 가장 총명했던 이조차 무서운 고통 앞에선 그 총기를 잃었고, 결국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히 알면서도 많은 이들이 제 발로 무저갱으로 걸어 들어갔네.

 

누군가는 청아 공에 대해 너무 나쁘게 보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네. 당장 그 시대에도, 청아 공이 선의로 의술을 펼친다는 헛소문이 돌았던 일도 있고 하니 말일세.

 

허나 나는 안다네. 태자님이나 청아 공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나 또한 미약하게나마 연단술의 지식이 있으니. 청아 공이 병자들에게 처방한 환단은 그 전까지 어느 연단술의 비서에도 없던 내용으로, 필경 그녀 자신이 새로 연단해낸 환단일 것이네. 

 

중국의 신농씨와 화타는 진정한 의술을 펼치기 위해 직접 먹어보는 것으로 약초와 독초를 구분해냈다는 고사가 있지만, 청아 공에게 그런 갸륵한 심성이 있겠는가? 

 

분명 자신의 영달을 위해 죽어가고 있는 환자들을 실험 대상으로 쓴 것임에 틀림없네.

 

그래, 청아 공의 처방은 실로 기괴했다네. 의서에도 없는 괴상한 약재를 모아, 어떻게 작동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병으로 끓여냈지. 

 

게다가 이러한 환단도 환자들마다 처방이 달라, 어떤 이는 환단을 먹어 차도가 생기는가 하면 또 다른 환단을 받은 어떤 이는 그날 밤을 넘기지 못했다네. 

 

그리고 그렇게 병자들이 차례차례 죽어가는 와중에도, 청아 공은 마치 자동인형처럼 수기를 적어나갈 뿐이었네. 

 

그러다가도, 남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실험이 제 멋대로 안 된다는 분노에서인지 입술을 깨물고 부들부들 떨거나, 피가 날 때까지 주먹을 움켜쥐거나…

 

그 때의 청아 공은, 항상 그랬지만, 누가 봐도 악귀라 불렀을 것이네. 

 

여기서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청아 공에게 사람의 마음이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부터 말할 청아 공의 행동에 그렇게까지 큰 충격을 받은 까닭은 설명하지 못할 테니.

 

청아 공에게는 몸종이 하나 있었다네. 제법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왔는데도 행동마다 기특함과 영민함이 배지 않은 곳이 없어, 태자님도 많이 예뻐하시던 아이였지. 

 

역병이 돌기 전 몇 해 동안은, 그 아이가 청아 공의 유일한 인간성처럼 보였네. 청아 공은 마치 제가 진짜 어미인 양 행동하며 어디를 가건 데리고 다녔고, 무엇을 먹건 아이 입에 먼저 넣어줬으며, 직접 책을 들고 가르쳤네.

 

차라리 그 위선이 평생 갈 수만 있었다면, 그 아이는 속을지언정 불행하진 않았겠지. 허나 혼란 속에서 벗겨지지 않을 수 있는 위선 따위는 없는 법, 많은 민초들이 서로의 본성을 낱낱이 드러낸 저주받은 해에― 청아 공의 민낯은 참혹하게 드러났네.

 

청아 공이 연단방의 빗장을 열고 두 달 정도 지났을 적의 일이네. 태자님의 은덕에 병마마저도 궁을 침범하지 못하는 듯, 그 때까지만 해도 궁내에는 어느 환자도 없었지만… 꼬박 두 달을 이어진 청아 공의 악행에 하늘도 노한 것인지, 결국 역병은 궐문을 넘고 말았지.

 

앞서 말한 몸종이 병에 걸린 것도 그 무렵이라네. 청아 공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이를 연단방의 침상에 올렸지. 그리고, 다른 모든 백성들에게 한 것처럼, 환단을 먹였네. 

 

첫 며칠간은 아이가 호전되는 것처럼 보였네. 기쁘기가 이를 데 없었지. 청아 공이 아무리 악인이라 한들, 하늘이 무슨 죄로 그 아이까지 벌하겠는가?

 

그러나 5일째 되는 날, 그간의 호전이 거짓말이었던 듯, 아이는 침을 흘리며 발작하기 시작했네. 마치 아비지옥에 떨어진 죄인과도 같은 끔찍한 고통이 눈에 보일 정도였지. 장장 두 시진을 지극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아이는 결국 숨을 거두었네. 

 

그때까지만 해도 청아 공에게 인간의 마음이 남았을 거라 믿은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의 손을 붙잡고 있던 그녀를 향해 다가갔네. 위로할 생각이었지.

 

허나, 나는 그렇게 들여다본 청아 공의 눈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네.

 

거울과도 같은 안구에는, 토사물과 침으로 범벅이 된 고통스러운 아이의 모습이 비치는 채로, 흰자에는 잔뜩 핏발이 서, 눈꺼풀은 오니가 내려누르듯 일그러지고, 눈꼬리는 접힌 쥘부채처럼 찌푸려져, 그 끝에 매달린 눈물, 아래로 흘러 턱 끝에 맺혀 떨어지는 눈물. 

 

허나 눈동자의 한가운데는, 봄날 안개비에 만개해 희게 떨어지는 벚꽃을 보는 듯한 황홀함이 있었지. 

 

거기에 닿은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 뒤로 움찔 물러섰네. 등뼈에 붙은 소름이 핏출을 따라 차게 전신을 흐르는 느낌, 얼음장 같은 피가 주전자 뚜껑의 물방울처럼 터지듯 끓어오르는 느낌. 나는 구역질을 참으며 문을 걷어차고 무작정 달려나왔다네. 

 

뒤를 흘낏 돌아보자, 청아 공은 시신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예의 표정으로 죽은 아이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네.

 

그 이후로, 나는 그 얼굴 거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단언할 수 있게 되었네.

 

이 정도면 청아 공의 악덕을 알기 충분한가?

 

청아 공이 계란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겠지. 아름다운 계란을 만들라? 청아 공에게 아름다움을 묻다니, 멍청한 짓이야.

 

썩어 악취를 풍길 때까지 방치해 두다가, 어느 날 방을 치우던 토지코가 가져다 버리겠지.

 

강시의 이야기

 

세-가? 세-가는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어제는 내 팔이 떨어져서 꿰매서 붙여 줬어! 어제 어제는 인간 마을에서 사온 팥빵을 나눠줬고, 어제 어제 어제는… 뭐였더라~?

 

아무튼 세-가는 착해! 세-가의 좋은 점을 말하라면, 이것 말고도 엄청 많다구~

 

어제가 몇 번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태자가 임금님이었던 엄청 옛날에 있던 일이야~

 

나쁜 병이 돌아서 사람이 많이 죽었는데, 세-가는 의사선생님이라 아픈 사람들을 고쳐 주고 있었어.

 

세-가는 엄청 열심히 일했는데, 그래도 죽는 사람이 나와서 많이 속상해했어. 

 

그런데 죽는 사람만 문제가 아니라, 묻어야 하는게 문제였어. 무덤은 사람을 시켜서 멀리 떨어진 곳에 팔 수 있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시체를 함부로 옮기면 병이 옮으니까 큰일이었거든.

 

그래서~ 세-가랑 나랑 시체들을 전부 옮겼어. 시체가 대충 6개 정도면 손수레를 가득 채우는데, 어린아이 시체가 있으면 7명이나 8명까지도 담을 수 있었어.

 

아무튼 수레가 찰 때마다 뒷산에 올라가서 묻었는데, 갈 때마다 세-가가 많이 울어서 내가 달래주면서 갔어.

 

그래서… 어떻게 됐더라~? 맞아, 정상까지 수레를 밀어서 올라가고 나면, 세-가는 바위에 걸터앉아서 눈물을 닦았어! 그렇게 울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세-가는 정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산 위에서 보면 온 산에 잔뜩 핀 벚꽃이 보였는데, 세-가는 바위에 걸터앉아서 꽃을 한참 구경했어. 사실 그동안 할 게 없어서 심심했지만 세-가가 너무 재밌게 봐서 꾹 참고 앉아 있었어.

 

그러다가 너무 지루해서 세-가 얼굴을 봤는데~ 눈동자가 완전 투명했어! 강 위로 달님이 비치는 것처럼 벚꽃으로 새하얘진 산 풍경이 그대로 들여다보였거든.

 

벚꽃을 직접 볼 때는 하나도 재미없었는데, 어째서인지 세-가 눈동자에 비친 모습을 볼 때는 나도 모르게 한참을 보고 있었어! 세-가가 왜 그렇게 넋을 놓고 보는지 알 것만 같더라구.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다, 세-가가 얼굴을 돌려서 눈이 마주치면 우리는 같이 히히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세-가는 눈가가 살짝 빨갛게 됐지만, 그래도 기분이 훨씬 좋아 보여서 나도 좋았어!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서는, 오전에 인부들이 미리 파둔 구덩이에 세-가랑 같이 시체들을 한 구씩 묻었어. 나는 상관없었는데, 세-가는 일하면서도 시체를 보기 싫어하는 것 같더라? 

 

항상 시체가 있는 방향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눈을 질끈 감고 일하더라구. 그래서 가끔 내가 세가- 이쪽이야- 하고 알려 줘야 했어~

 

그렇게 시체를 다 묻고 나서야 세-가는 고개를 다시 돌리고 눈을 떴어. 일 끝났어요- 하고, 무덤 앞에서 합장을 하고, 도구를 정리하고 나서야 산을 내려갔어.

 

산에서 내려오면, 나는 놀러 가고, 세-가는 다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러 갔어. 그러다가 또 다음 날 해가 뜨면, 시체로 가득 찬 손수레를 끌고, 바위에 걸터앉아 풍경을 보고, 시체를 묻고, 내려왔다가 또 다음날이 되면- 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무튼 세-가는 착해서 싫어하는 장난을 쳐도 많이 혼내지 않아!

 

같이 일하러 올라간 날이었어. 시체를 묻는데, 세-가가 이제 눈 떠도 되니? 물어봤어~

 

원래는 다 안 묻혀서 눈 뜨면 안 돼~ 대답해야 됐는데, 장난으로 다 묻었어~ 대답했어.

 

세-가가 그 말을 듣고 눈을 떴는데, 아직 안 묻힌 시체를 보고 깜짝 놀라버렸어. 얼마나 놀랐냐면 움직이지도 못하고 시체를 쳐다보는 그대로 굳어 버렸거든~

 

그런데 세가 얼굴이 엄청 예뻤어! 얼마냐 예쁘냐면 같이 벚꽃을 볼 때보다도 예뻐서 나도 모르게 계속 쳐다보고 있었어~

 

나도 한참 세-가 얼굴을 보고 있었는데, 세-가 눈동자에 비친 시체를 보니까 잠에서 깬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어!

 

그래서 다시 보니까 얼굴도 빨갛고, 숨도 가빠 보였어. 장난이 심했던 것 같아서 얼른 손으로 세-가 눈을 가려줬더니, 헉- 하는 소리를 내고 뒤로 철푸덕 넘어졌어.

 

그래서 내가 세-가 한테 장난이 심했던 것 같아서, 미안해요- 하고 엉엉 울었더니, 세-가는 꼭 껴안아주면서 괜찮아요~ 앞으로는 이런 장난 치면 안 돼? 하고 타일러 줬어~

 

그 뒤로 세-가는 맨날은 아니고 가끔 나만 빼고 산에 일하러 갔어. 

 

또 저번처럼 장난 칠까봐 그랬나? 하고 시무룩했는데, 세-가한테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품에 숨겨 온 당고를 나눠줬어!

 

그 뒤로도 별 일 없이 계속 그렇게 일을 했는데, 어느 날은 세가가 많이 슬퍼 보였어.

 

세-가~ 왜 슬퍼? 물어봤더니, 세-가는 눈물을 닦고 아무 말도 없이 빙그레 웃었어. 근데 계속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줘서, 그 날은 산에서 내려가고도 몰래 세-가를 따라갔어.

 

한참 따라갔더니 세-가는 연단방으로 들어갔어. 그래서 나도 들어갔는데, 나랑 비슷한 아이가 누워있었어! 

 

세-가는 동그란 알약을 꺼내와서 아이에게 먹여주고 옆에 앉았어. 한 식경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그 아이는 온몸을 비틀면서 침을 흘렸어.

 

세-가가 그렇게 당황한 건 처음 본 것 같아. 그래서 나도 세-가가 슬프지 않도록 아이가 괜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런데도, 아이는 죽어버렸어.

 

세-가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어. 나는 어떻게 할지 몰라 몰래 방을 빠져나가려다, 세-가의 얼굴에 시선이 닿았지.

 

그 떄까지 본 어떤 세-가의 모습보다 슬퍼 보였어. 표정을 표현하자면, 세상에 있는 모든 슬픈 말을 가져와도 모자랄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같이 벚꽃을 볼 때와도 같은 느낌이 들었어. 표정을 찬찬히 뜯어보자면, 얼굴 어디에도 그와 닮은 아름다운 구석은 없었지만, 묘하게, 묘하게 느낌만은 닮아 있었지.

 

그리고, 눈동자를 보고서야 나는 깨달았어.

 

세-가의 눈동자의 한가운데는, 마치 봄날 안개비에 적셔져 벌어지는 벚꽃 봉우리를 보는 듯한 황홀함이 있었던 거야.

 

세-가는 그러니까, 어… 이해하기 힘들지만,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

 

음, 계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세-가라면 분명 예쁜 병아리로 키워낼 거라고 생각해~

 

방으로 들고 간 것도, 분명 알을 따뜻하게 덥혀서 부화시키려는 거 아닐까~?

 

태자의 이야기

 

수천, 수만 개의 밧줄이 얼기설기 얽혀, 아무렇게나 바닥에 늘어져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게. 욕망을 듣고 읽어내는 일은 그와 같다네― 밧줄들이 어느 방향으로 이어져 있는지는 쉬이 따라갈 수 있지만, 얽힌 매듭을 풀기는 쉽지 않지.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천 가지의 생각이 있는 법. 욕망이라는 간단한 말로 표현하고는 하지만, 그 욕망이 과연 욕망 자체로 존재할까? 아니면 삶의 경험과, 천성과, 교육과, 상황과, 그 밖의 개인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낱줄로 얽어져 만들어 낸 하나의 큰 동아줄을 욕망이라 부르는 걸까?

 

내가 하는 일은 욕망의 동아줄을 따라가는 일, 어째서 그것을 욕망하는가, 그것이 욕망이긴 한 것인가는 나의 능력으로도 알 수 없지.

 

넓디 넓은 환상향, 그 누구도, 심지어 가장 단순해 보이는 요정조차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라네. 

 

피단이라는 음식을 아는가? 

 

계란을 껍질째 진흙으로 싸서 겨 안에 묻어 두면, 본래는 썩어야 할 계란이 썩지 않고 푸르게 굳어진다네. 제법 감칠맛이 있어, 좋은 술에 곁들이면 천하일미가 따로 없지.

 

여기서 상등품으로 발효된 피단은 표면에 소나무 가지처럼 생긴 실 무늬가 뻗어 나가 송화단이라 부르는데, 생긴 것만 보자면 마치 보석처럼도 보이고, 잘 다듬은 석영같기도 하지만, 냄새만은 고약해 코를 감싸쥐게 만든다네.

 

더없이 아름다우면서도, 속은 그에 뒤지지 않게 고약하다니, 우리 둘 다 같은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굳이 능력을 쓰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나?

 

그래, 스승님께서는 받은 달걀을 피단으로 만드셨다네. 그것을 명련사에 들고 가, 절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더군, 하하하…

 

원래대로라면 태어났을 닭과, 그 닭이 낳았을 닭들, 또 그 닭들이 낳았을 닭들… 그 모든 가능성을 희생시켜서, 비로소 달걀은 피단으로 승화한다네.

 

그렇다면, 피단은 달걀의 승화일까, 아니면 닭의 승화일까?

 

무엇이 승화했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 결과물이 피단이라는― 석영과 같은 아름다움이라는, 지독한 부취라는 사실뿐이라네.

 

 


 

 

승화라는 주제를 듣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 이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그런 느낌으로, 보는 사람마다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갈래의 이야기를 만들려 했는데 필력이 부족했던 것 같네요...

 

원래 기획에서는 명련사의 히지리도 청아와 같은 과제를 받고, 둘 모두 피단이라는 결과에 도달하지만

 

그 과정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서로가 도달한 다른 의미의 승화를 보여주는 기획이었습니다

 

그런데 히지리 파트를 쓰지 못해서 급하게 중반부터 전개를 대폭 수정하는 바람에 생각한 대로 글이 나오지 못한 부분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