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고요한 죽림, 그 깊은 곳에 존재하는 영원정.
영원정 뒤편 정원 달이 잘 보이는 자리에 공주가 앉아 있었다.
백금과도 같이 흰 피부에 옥처럼 빛나는 눈을 가진 그녀, 호라이산 카구야는 그저 달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마치 모든 것이 정지한 한 장의 명화처럼 그녀는 그저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주님, 이제 추워지니 이만 안으로 들어오심이..."
멈춰있는 세상에 붉은 파장이 일렁이었다.
카구야를 부른 그녀는 레이센 우동게인 이나바, 달의 현자의 아래에서 조수를 맡은 지상의 토끼였다.
"응...? 이나바 왔어? 알았어... 곧 들어갈게."
스승의 명령으로 공주를 데리러 온 이나바와 자신을 부르는 이나바의 부름에 답하는 카구야.
카구야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서늘한 밤의 죽림은 한순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쾅 소리와 함께 고요한 죽림을 어지럽히는 굉음.
"꺄앗!"
순간 바뀌는 온도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강한 충격이 귀로 가해지자 이나바는 귀를 잡으며 뒤로 넘어졌다.
"카구야!!!"
"어라, 모코우 왔어?"
공주의 이름을 외치며 붉게 타오르는 백발의 소녀, 후지와라노 모코우가 붉은 날개를 펼쳐 달을 잡아먹었다.
그런 모코우를 보며 일상처럼 태연히 인사를 건네는 카구야.
실제로 이는 그녀들의 일상이었다.
"오늘도 너를 죽고 또 죽을 때까지 계속 불태워 줄게!!"
모코우는 주변의 모든 것이 타들어 갈 정도로 강한 불꽃의 기둥을 카구야에게 내던졌다.
"공주님!!"
자리에서 겨우 일어난 이나바는 자신이 막기엔 너무 늦은 불꽃을 보며 공주를 향해 외쳤다.
카구야는 날아오는 불꽃의 기둥을 보며 자신의 팔을 들고 내리치며 상쇄했다.
열기에 목이 타들어 가던 이나바의 외침이 무색하게 공주는 아무런 상처도 없이 사라져 가는 불꽃을 둘러싸며 그 미모를 더 발할 뿐이었다.
"모코우, 여기서는 이나바들이 깨버리니까 다른 데로 갈까?"
온화하게 말을 건네는 카구야.
"하? 귀찮은데 그냥 여기서... 컥!"
"미안, 말을 실수했네. '다른 데로 가'라고 하려고 했어."
영원정의 정원에서 날아올라 순식간에 모코우의 배에 주먹을 꽂으며 같이 달을 향해 날아오르는 카구야.
의식을 잃은 채 하늘 위로 떠 오르는 모코우는 금방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어머, 의식을 잃어버린 거야? 조절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신이 난 걸까나."
잠시 뒤 바닥에서 불꽃이 솟구치며 뜨거운 공기가 한순간에 카구야가 있는 곳까지 구름을 뚫으며 올라왔다.
열기와 함께 올라온 불타버린 심장에서 빛이 나더니 그곳에서 모코우의 몸이 만들어졌다.
모코우는 몸이 다시 만들어짐과 동시에 카구야에게 불꽃의 발톱을 만들어 달려 든다.
카구야는 다시 한번 모코우의 불꽃에 손을 내리쳐 불꽃을 흩어지게 했다.
하지만 그때 자신의 가슴에 연결된 붉은 실을 발견한다.
카구야가 인지한 순간 붉은 실을 타고 격발하는 격렬한 폭발.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아름다운 옥체는 얼마 안 가 빛과 함께 다시 그 미모를 되찾는다.
"이걸로 1대1이구만."
손을 머리 뒤로 깍지끼며 웃는 모코우.
그녀의 날개는 한층 더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2대1이잖아? 추락으로 한번 부활한 뒤 심장을 뽑아 위로 올려서 한 번이니까 내가 2점이지."
"뭐? 후자는 내가 직접 한 거니까 노카운트거든?"
공중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항의하는 모코우를 보며 웃는 카구야.
잠시 뒤 소녀들은 탄막을 뿌리며 달 아래 밤하늘을 물들였다.
달이 점점 떨어지고 태양이 하늘을 넘보기 시작할 무렵 밤하늘을 밝게 빛낸 은하수의 탄막놀이가 끝을 고했다.
죽림의 어느 장소, 바닥에서 둘은 힘이 풀린 채 쓰러져 있었다.
밤 축제의 소란이 끝나고 여명과 함께 찾아온 고요 속 카구야는 나즈막이 입을 열었다.
"있잖아 모코우...."
"...왜."
"불로불사를 치료하는 방법, 알고 있어?"
"...몰라."
"불로불사를 치료하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불로불사의 약, 봉래의 약이야."
"..."
"봉래의 약은 먹은 사람한테 불로불사의 저주를 내려. 하지만 애초에 월인들을 위한 약, 불로불사를 위한 불로불사의 약은 모순되어 있잖아?"
"애초에 약이니만큼 봉래의 약은 치료하기 위한 약이야."
"그건 바로 고독을 치료하는 약."
"!..."
"불로불사라는 윤회를 끊은 자들은 필히 그 고독을 느끼게 되지. 그렇기에 겁이 많은 월인들은 봉래의 약을 만든 거야. 그들은 고독을 몰랐기에 고독을 두려워했고 마시기를 꺼렸어."
"그러던 중 약을 마시게 된 자가 상아. 그녀는 고독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봉래의 약을 마시게 되었어. 그렇게 그녀는 고독을 지웠어."
"고독을 지우는 방법은 바로 사랑이었어. 그녀는 달토끼들을 사랑했고 달토끼들도 그녀를 사랑했어. 고독을 치료하는 방법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 월인들은 고독을 몰랐기에 사랑조차 몰랐고. 사랑을 두려워한 월인들은 봉래의 약을 지울 수 없는 죄라고 생각했어."
"..."
"나는 사랑을 알고 싶어서 봉래의 약을 마시고 지상으로 내려왔어."
"지상에서 많은 사람과 만나고 사랑을 점점 알게 됐어. 나는 지상의 모두를 사랑했어. 지상의 부모님도 천황님도 그리고 너희 아버지도. 하지만 난제를 내린 뒤 사랑을 점점 배우면서 한 가지 알게 됐어. 사랑은 진정 사랑하는 사람만을 만날 때 그 감정이 차오른다는 걸. 그렇기에 나는 한 명을 고를 수 밖에 없었어. 그래서 너희 아버지를 고르지 않은 거야."
"..."
"천황님을 사랑하던 나에게 에이린이 찾아오게 되었고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게 됐어. 그때 난 에이린에게 부탁해서 특별한 봉래의 약을 하나 만들게 되었고. 그 약을 남기고 떠났지. 지금 헤어져도 수천 년이 지나도 다시 만나 기다림의 시간이 수유가 될 만큼 영원히 사랑하자고...."
"그런 그 약을 네가 마시고 내 앞에 나타난 거야. 나를 사랑하게 되는 그 봉래의 약을 마시고 말이야...."
"있잖아, 모코우... 죽은 거야?"
"..."
"지상에 내가 사랑하던 이들은 모두 없어졌어. 모코우, 너만 빼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 사랑할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이야 모코우."
어째서일까
지상을 사랑해서일까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사랑해서일까
나는 너가 좋아
너는 과연 나를 사랑하는 걸까
너는 아직 사랑을 배우지 못한 걸까
아니면 사랑을 배우지 못한 건 나인 걸까
"오늘은... 무승부네..."
죽림에 조용히 울린 그 말은
부끄러운 듯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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