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암만 불러봐도 대답하는 이는 없다. 배가 흔들리면서 삐그덕거리는 소리만이 그나마 답할 뿐. 혼자 하던 탐험 놀이도 이제는 슬슬 지겹다. 다른 배였으면 선원들에게 혼났을 조타실도, 도대체 누가 쓰는지 모를 선실들도 이미 모두 발 도장을 찍은 뒤다. 탐험 놀이의 결과일까, 소녀는 이제 괜히 입이 심심해진다. 배가 소녀의 부름에 답한 것일까, 넓디넓은 선실의 한구석에 자리 잡은 진열장이 소녀의 눈에 들어온다. 진열장 안에 가지런히 놓인 종이봉투들. 소녀는 손을 뻗어 봉투를 하나 집어 들고 안을 들여다본다. 소녀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옛날 과자가 몇 조각 들어있다. 소녀가 좋아하는 과자는 아니지만 지금은 이거라도 고마울 따름이다.
한 입 베어먹으니 입안에 바삭하게 부서지는 것이 생각보다는 맛있다. 오히려 집에서 먹는 과자들보다도 괜찮다. 아뿔싸, 이 과자 함부로 먹어도 되는 걸까, 소녀가 뒤늦게 후회한다. 다시 생각해 보니 어차피 배 안에서 누굴 만난 적은 없다. 나중에 사과하면 되겠지 뭐. 과자 하나가 뭐 대수겠어. 소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머지 조각을 마저 입에 집어넣는다. 너무 급하게 먹은 탓일까, 살짝 목이 멘다.
그렇게 목이 멜 줄 알았다면, 먹지 않았을 텐데, 먹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 겨우 탔네.”
우사미 렌코는 바로 옆의 난간에 손을 얹고 허리를 굽힌 채로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다른 때였다면 그녀의 옆에서 뭐라 한마디 거들었을 마에리베리 한은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반대편의 녹슨 벽에 기대어 마찬가지로 차오르는 숨을 고르고 있었으니까.
“정말이지, 기차도 비행기도 이렇게 급하게 타본 적은 없는데. 하필 이렇게나 낡은 배를 타는데 이렇게 아슬아슬할 건 뭐람.”
메리가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그들이 탄 낡은 여객선은 굵은 뱃고동과 함께 선착장에서 찬찬히 멀어지고 있었다. 둘이 조금 전까지 말 그대로 붙잡혀 있던 작은 마을에서는 누구 하나 그 배를 배웅하지 않고 있었다. 렌코는 자기 모자로 목덜미를 부채질하며 짧은 한탄을 내뱉었다.
“이번에는 진짜 운이 나빴네. 하필 지금 이런 흉흉한 일이 벌어질 건 뭐람. 게다가 하필 이 마을에 찾아온 외래인이 고작 우리 둘뿐이었으니 의심 사기 딱 좋았지.”
“의심은 벗어서 다행이긴 한데, 잘 해결될까 걱정되네.”
메리의 근심 섞인 중얼거림에 렌코는 어깨만 으쓱하며 답했다.
“괜찮겠지. 크지도 않은 마을이니까 금세 찾을 거야. 우리가 돌아올 때쯤은 해결되어 있을 거라구. 아니, 그래야 할 텐데. 여전히 뒤숭숭한 분위기는 우리도 사양이니까.”
렌코와 메리가 여객선을 간신히 시간에 맞춰 탄 것도, 조금 전까지 있던 마을의 분위기를 걱정하는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 이 둘은 비봉구락부 활동의 일환으로 경계를 찾아 어느 섬으로 가던 중이었다. 워낙 외딴섬이다 보니, 섬까지 운행하는 여객선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나마 정기 배편이 이 마을의 선착장에서 운행한다는 건 알아낼 수 있었지만, 하필 둘이 마을에 도착한 바로 어젯밤, 한 소녀가 실종되어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밤새 마을을 수색해도 도통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 자연스레 의심은 외부인들에게 향하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날 마을에 방문해 묵고 있던 건 메리와 렌코 둘뿐이었고.
그런 이유로 그 둘은 조금 전까지 마을의 작은 파출소에서 사정 청취라는 명목으로 사실상의 취조를 당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둘이 묵었던 민박집의 주인 가족이 그 둘의 신원을 보증해 준 덕분에 의심은 풀지 못해도 용의선상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파출소에서 풀려났을 때는 이미 배 시간이 아슬아슬했던지라 선착장에서 막 출항하려던 참인 배에 앞뒤 안 가리고 허겁지겁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승객도 별로 없는 노선이어서였을까 아니면 출항 직전이라서였을까, 메리와 렌코를 제지하거나 표를 요구하는 선원은 없었다.
“어쨌거나 일단 배에는 탔으니, 안에 들어가서 좀 쉬어볼까? 어차피 몇 시간은 걸릴 거고.”
“그래, 보아하니 선실도 딱히 기대할 건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밖에 헐떡이며 서 있는 것보단 낫겠지.”
메리는 여기저기 녹이 슬고, 삐거덕 소리를 내며 요동치는 갑판과 선벽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볼 것도 없고 말이지. 갑자기 이 안개는 뭐람.”
렌코가 덧붙인 대로, 배에 급하게 탈 때까지만 해도 날씨는 화창했건만 어느샌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가 껴 있었다. 이미 세속의 사건에 휘말려 버린 탓이었을까, 렌코와 메리 어느 쪽도 그 갑작스러운 안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갑판을 가로질러 선실로 향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숱한 경계를 탐험해 온 비봉구락부의 둘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 둘이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당연히 있어야 할 게 없었으니까. 승객들을 위한 대규모 선실에 도착한 메리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왜 아무도 안 보이지?”
“원래도 그다지 승객이 없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선원도 안 보이는 건 이상하지.”
“안내방송 하나 없고.”
렌코는 그렇게 메리에게 맞장구를 치면서 끙 신음했다. 그렇게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나니 어쩐지 음산한 기분이 들어 몸을 흠칫 떨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여기서 당황해하거나 두려움에 빠졌을지 모르지만, 이 둘은 아니었다. 애초에 여객선을 탄 것도, 바로 이런 틈새를 찾아서였으니까.렌코는 목소리에 흥분을 담아 메리에게 물었다.
“혹시 뭐 특별히 보이는 거 있어?”
“그게, 지금까지 돌아다니면서 딱히 특별히 보인 건 없어. 그렇지만 분위기가 뭐랄까... 익숙해.”
“익숙하다는 건?”
“그러니까, 내가 꿈에서 저쪽 세상으로 넘어갔을 때의 느낌. 특이한 게 보이기보다는... 특이한 장소에 이미 와 있다는 거지.”
“이 배 자체가 건너편이라는 건가. 특이한걸?”
메리의 설명에 렌코는 한껏 들떠서 선실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거닐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반세기쯤 전에 쓰였을 법한 좌석과 잡동 사니들 사이로 여객선의 삐그덕 소리만이 부산히 들려왔다. 하지만 마치 누군가가 관리하고 쓰기라도 하듯이, 그 위에는 거미줄은커녕 먼지 한 톨 쌓여있지 않았다. 그렇게 선실을 찬찬히 둘러보던 렌코의 시선이 한쪽 벽에 붙어있는 진열장에 이르렀다.
“안에 뭔가 있는데?”
렌코의 눈에 들어온 건 진열장 위의 종이봉투들이었다. 메리의 시선도 거기에 닿자, 렌코는 손을 뻗어 가장 작은 크기의 봉투 하나를 집어서 안을 펼쳐보았다. 그 안에는 갈색의 자그마한 원통형 물건들이 자잘한 부스러기와 함께 쌓여 있었다.
“이건... 과자인가?”
메리가 종이봉투 안에서 과자를 하나 집어 들면서 그렇게 중얼거릴 때, 갑작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어느 손길이 메리의 손목을 확 낚아챘다.
“이크, 오늘은 무슨 날인가. 예정에 없던 손님들이 많네. 미안하지만 이건 여러분 몫이 아니라서 함부로 드시면 안 돼요.”
그 목소리가 돌리는 곳에는, 어느 여성이 굉장히 나른한 눈매로 메리와 렌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감이 좋은 사람이 한 번에 둘이나 오는 건 흔치 않은데, 참 신기하네. 하하. 아, 난 누구냐고? 음... 으흐흐... 지금 어째 좀 춥지 않아? 흐흐...”
메리의 손을 붙잡은 여성은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혀를 살짝 내밀고 마치 유령처럼 자세를 취했다. 어깨 앞으로 드리내린 긴 검은 머리카락으로 정말 유령이라도 되는 듯한 분위기가 풍겼지만, 그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 때문에 메리와 렌코는 어떻게 대꾸할지 모르고 서로 시선만 교환했다.
“하하, 장난이야 장난. 비슷한 거니까 반쯤 장난이지만. 어쨌든 이건 우리 밀항자들께서 함부로 만져서는 안 돼서 말이지. 압수, 압수.”
메리와 렌코가 뭐라 대꾸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 사이, 그녀는 둘의 손에서 과자와 종이봉투를 재빨리 낚아챈 뒤 진열장의 원래 위치로 되돌려놓았다. 헐렁한 검은 셔츠 위에 느슨하게 걸친 흰색 선원복을 이제야 눈치챈 렌코가 물었다.
“혹시 이 배의 선원...? 배에 타고 나서 지금까지 아무도 못 봤는데요.”
“아, 응. 선원이긴 한데. 조금 애매한 위치긴 하지. 왜냐하면 원래 이 배의 선원은... 흐흐, 아까 그건 나한테는 농담이긴 했지만 사실 반은 진담이거든. 선원들은 나 말고도 많아. 너희 같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겐 안 보일 뿐이지. 사실 지금도 여기서 다들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데 말이야.”
“엑, 그 말인 즉슨...”
여성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답했다.
“지금 이 배는 삼도천을 건너는 중이랍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이 배는 원래 망자들만 타야 하는 배고, 살아있는 여러분은 밀항자나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래서 지금 이 배의 승객과 선원들을 하나도 보지 못하는 거고.”
“그럼 당신은 어떻게 볼 수 있는 거죠?”
“그야 내 일이 여러분 같은 밀항자들을 막는 역할이니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검역관이랄까?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 안내를 따라주시겠어요?”
그녀는 메리의 질문에 그렇게 답하면서, 갑자기 어디에선가 잠자리채와 자그마한 플라스틱 우리를 꺼내 메리와 렌코에게 건넸다.
“그러니까 뱃삯 대신이랄까. 내 일 좀 도와주겠어?”
그 싱긋 웃는 표정을 메리와 렌코는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 표정 때문이 아니라, 그 둘이 볼 수는 없지만 갑자기 느껴지기 시작한 보이지 않는 존재들 때문에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으니까.
“이야, 운이 나빴네. 하필 오자마자 그런 일로 의심을 받다니.”
메리와 렌코가 배에 급하게 탑승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자칭 검역관은 키득키득 웃었다. 그 속없는 웃음에 메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분위기가 험악했죠. 도대체 마을에는 왜 왔는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묻더라니까요.”
“그래서 이 배가 원래 타려던 배인지도 확인도 제대로 못 했다니, 정말 운이 없었네. 그래도 덕분에 남들은 해보지도 못하는 특이한 경험은 해본 셈인가? 그렇죠, 다른 밀항자님?”
검역관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옆에 놓인 플라스틱 우리를 툭툭 두드렸다. 우리 안에 갇혀있는 고양이는 심기가 불편한지 다소 불쾌함이 섞인 울음소리로 답했다. 그걸 듣고 있는 메리와 렌코도 덩달아 기묘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배 안을 샅샅이 뒤지다가 그 고양이를 발견해서, 고생고생해서 포획한 게 그 둘이었으니. 검역관으로 말하자면 분명 자기 일일텐데도 뒤에서 메리와 렌코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기만 하며 낄낄 웃기만 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메리와 렌코가 기분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건 단순히 그런 고생을 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지금 그 둘은 우리에만 안 갇혀 있을 뿐이지, 그 고양이와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는 셈이니까. 고양이까지 포획하고 배의 나머지 구획까지 전부 돌아본 검역관은 메리와 렌코를 고양이와 함께 자신의 선실로 안내했다. 선실이라고는 하지만 한쪽 구석에 간단한 침구류와 살림살이만 차려져 있을 뿐, 방 안에는 온갖 잡동 사니와 상자들로 가득 차 있어서 렌코와 메리가 앉을 자리도 그런 물건들을 이리저리 옮긴 뒤에야 겨우 만들 수 있었다. 그녀의 설명대로라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그 안에 있어야 한다나. 말동무라도 해준다고 선실 안에 함께 남아준 것은 검역관 나름의 배려였을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이 심심해서였을지. 그 과정에서 검역관은 메리와 렌코가 이 배에 오르기 전까지의 자초지종을 듣게 된 것이었다.
“원래는 이런 일이 없도록 내가 탑승구를 함께 지키는데 말이지. 오늘은 하필 다른 일로 또 정신이 없었거든. 그래도 큰일 나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지 뭐야.”
“큰일이요?”
“아, 그 과자 먹기 전에 말이지.”
대체 그게 왜 큰일이라는 걸까, 메리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먹을 생각으로 집은 게 아니기도 했지만. 검역관은 그런 궁금증을 눈치챘는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런 이야기 혹시 못 들어봤어? 살아있는 자가 저승에 와서 무언가를 먹으면 이승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이야기. 왜냐하면 그건 저승의 음식이니까.”
“그럼... 죽는다는 건가요?”
“오히려 죽는 것보다 더 곤란할 지도. 아직 죽지 않았는데 이승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거니까. 명이 다 되어서 원래 저승에 올 때가 될 때까지 그렇게 사는 셈이랄까? 어쩌다가 살아있는 존재들이 이 배에 타면서 벌어질지도 모르는 그런 불상사를 막는 게 내 일이다 이 말씀.”
검역관은 대수롭지 않게 설명했지만 둘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흠칫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배가 지옥에 가는 배편이라는 말만큼이나 곧이곧대로 믿기 힘든 이야기기는 했지만, 자신들에게 닥칠 수 있는 으스스한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그럼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나 보죠?”
“자주는 아니고 아주 가끔. 보통은 여기 이 친구처럼 그냥 영감이 있는 짐승이 뭣도 모르고 배에 올라타는 경우지. 살아있는 인간이 올라타는 경우는 드문 편이지. 그래도 저승 입장에서는 역시 골치 아프거든. 굳이 이승의 사례를 들자면 여러분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온 외래종이랄까.”
검역관은 렌코의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의 등 뒤의 상자 더미를 덜컹 뒤져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완전히 색이 바랜 그 책의 표지에는 희미하게나마 “외래 생물의 영향과 그 대책”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우연히 이 배에 흘러들어온 책인데. 여기 꽤 재밌는 사례들이 있거든.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들이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온갖 종류의 생물들도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옮겨 다니게 되었다나? 화물에 들러붙은 흙에서 미생물이, 통나무에서 질병을 옮기는 모기가, 거대한 선박에서 평형을 맞추기 위해 사용하는 물을 통해서 어류가. 그렇게 완전히 생소한 환경에서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중 일부는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아예 토종 생물들을 몰아내기도 하지. 그런 침략적 외래종들의 유입을 방지하려고 인간들도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것과 내 일이 비슷하다 이 말씀.”
“그 말은 마치 우리가 침략자인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저승에서 살 의향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는데요.”
메리가 떨떠름하게 묻자 검역관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맞는 말이긴 하지. 하지만 여기 실린 생물들이라고 달랐을까? 다들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흘러들어와서, 그저 원래 하던 대로 살아남다 보니 침략 행위가 되어버린 거지. 그런 면에서는 또 인간만큼 대단한 경우가 없거든. 처음에는 운 없는 소수만 이런 식으로 저승에 유입될지 몰라도, 어쩌다가 생존해서 무리가 되면 글쎄, 저승의 망자들이라고 안심할 수 있겠어?”
렌코와 메리에게는 다소 소름 끼치면서도 어쩐지 우스꽝스러운 소리였다. 이승의 산 자들은 저승의 망자와 유령들을 무서워할 텐데, 반대로 저승에서는 이승에서 살아있는 인간들이 유입될까 걱정하다니. 렌코는 그런 감상을 담아 답했다.
“이승에서도 저승에서 누가 되살아날까 봐 무서워하는 걸 생각하면 그럴싸하긴 하네요.”
“그렇지? 그래도 내가 딱히 이승에서 그러는 것처럼 퇴마를 하거나, 아니면 배에 소독을 해서 다른 생물들을 모조리 도살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잖아. 그냥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을 뿐이라고. 그러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어.”
그 분위기가 어색해서였을까, 아니면 이야기의 주제가 마음에 안 들어서였을까. 우리 안의 고양이는 또 한 번 불만이 가득한 울음소리를 내며 우리를 툭툭 긁었다. 마치 그 소리에 답하기라도 하듯이 선실의 밖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물이 내는 울음소리보다는 인간의 발성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인간의 소리도 아닌 기묘하고 중후한 외침이 선벽을 흔들었다. 렌코와 메리의 질문보다 검열관의 답변이 더 빨랐다.
“노래야. 선원들이 하역하면서 부르는 노래지. 승객들도 내리면서 따라 부르고. 한때는 고향이었지만 이제는 돌아가지 못할 이승을 그리워하는 노래.”
검열관은 그렇게 말하면서 덩달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듣고 있자니 메리와 렌코의 귀에도 그 울림이 나름의 박자와 높낮이를 지닌 구슬픈 노래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울려 퍼지던 노래는 이내 점점 작아지더니 완전히 잦아들고, 선내에는 다시금 파도에 맞춰 선체가 삐그덕거리는 소리만 들리게 되었다. 그 노랫소리에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기라도 하듯이, 검역관이 손바닥을 짝 마주치면서 화제를 돌렸다.
“아까 하던 이야기 다시 할까? 사실 궁금하던 게 있어서 말이지. 애가 실종되었으니 마을이 발칵 뒤집힌 건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외지인을 바로 의심하다니 조금 반응이 심한 것 같은데?”
“아, 그건 또 다른 사연이 있던데요. 사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거의 이십여 년 전 일이긴 하지만 옛날에도 마을에서 꼬마애가 사라져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더라나요.”
“허어. 근데 그렇게나 오래전 일이면 굳이 이번 일과 관계가 있나?”
메리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검역관은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근데 하필 이번에 실종된 아이가, 그때 사라진 꼬마애랑도 관계가 있나 보더라구요. 어머니 쪽이 자매 관계였나 봐요. 그러니까 굳이 말하면 조카 사이였던 거죠. 그러니 마을에서도 그때 그 일을 떠올리고, 어머니도 오래된 상처가 다시 벌어진 셈이죠. 우리가 의심받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이해는 가는 상황이랄까요.”
“그래도 의심이 풀려서 다행이네.”
“민박집 주인이 그래도 경찰이나 마을 주민들에게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잘 설명해 주었으니까요. 사실 그 사연을 알게 된 것도 민박집 직원들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설명해 준 거고요. 예전에 그런 일이 있어서 다들 과민 반응한 것이니 부디 양해해달라고.”
“하하, 난처하지. 억울한데 그렇다고 마냥 화내기도 곤란한 사연이 있으니.”
“그러니까요. 나름대로 사과의 뜻으로 선물도 주셨는데, 저희 입장에서는 떨떠름하죠.”
“무슨 선물이었는데?”
“과자요. 마을의 특산물인 과자랬는데, 뭐로 어떻게 만든다고 설명은 해주셨는데 잘 기억은 안 나네요. 배 시간이 아슬아슬해서 그냥 급하게 어딘가에 집어넣고 부랴부랴 선착장으로 달려갔어요.”
“흐흐, 그런 거 꼭 있지. 딱히 맛있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특산물이라는 거. 그렇게 정신이 팔린 와중에 급하게 배에 오르다 이 배에 타게 됐다. 다시 이야기가 이어졌네.”
검역관의 표정은 다시 풀려서 이제 다시 나른한 눈매로 메리와 렌코를 바라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정작 메리와 렌코는 이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검역관과 이야기하면서 어떤 의심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용기를 내서 질문한 건 렌코였다.
“저희 이야기를 들려줬으니, 이제 반대로 물어도 될까요?”
“뭔데? 어차피 이제 막 되돌아가기 시작했으니 시간도 충분하니 괜찮아.”
“원래는 저희 같은 사람들이 이 배를 타지 못하게 한다고 하셨죠. 그런데 이번엔 다른 일로 바빴고. 이렇게 바쁜 건 흔치 않다고 했던가요?”
“그랬지.”
“가끔이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 배에 타기도 하고, 그걸 막는 게 일이라고 했죠.”
“흠. 그랬지.”
검역관은 이 질문이 어디로 이어질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제 우리가 마을에 왔을 때 하필 꼬마애가 사라졌고요. 그래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데요.”
“과연 어떤 생각일까?”
검역관은 그렇게 되물었지만 이미 메리와 렌코의 생각을 이미 다 눈치챈 듯했다. 렌코는 아랑곳하지 않고 답했다.
“혹시 그 꼬마애, 이 배에 탔던 것 아닌가요? 그 애를 대응하느라 바빠서 우리가 타는 걸 미처 막지 못한 거죠.”
작은 선실 안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우리 안의 고양이마저도 진지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우리를 건들이거나 우는 일 없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침묵을 깬 건 어울리지 않게 낮게 가라앉은 검역관의 목소리였다.
“이야, 눈치 빠르네. 부정은 안 할게. 그런데 우리가 한 이야기 중에 하나 빼먹은 게 있지 않아?”
“빼먹은 거라면...”
“이승에서 온 사람이 저승의 음식을 먹어선 안 된다는 거. 영영 돌아갈 수 없으니까. 애들은 항상 예측도 어렵고 잡아두기도 어렵지. 그러다 보니 사고도 나기 일쑤고.”
렌코와 메리는 검역관의 침울한 대답에 무심코 침을 꼴깍 삼켰다. 자신들에게 일어날 뻔한 일이, 마찬가지로 이 배에 우연히 올라타게 된 꼬마애에게도 일어났다면...
“그럼 그 아이는...”
“내가 이미 다 말했잖아. 죽은 것도 아닌 채로 이승에는 돌아가지 못한다고. 원래 저승에 가야 할 날이 올 때까지 그렇게 외래종으로 사는 거지.”
작은 선실에 다시금 침묵이 가득 찼다. 방 안의 누구도 다음에 꺼내야 할 말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메리와 렌코는 차라리 이런 생각을 하지도 말고, 묻지도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뒤늦은 후회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작은 플라스틱 우리 안에서 툭툭 소리가 났다. 우리 안의 고양이는 짜증을 담아 검역관 쪽의 벽을 앞발로 계속 두드리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검역관은 고개를 푹 숙이고 표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저기요...?”
렌코가 걱정스럽게 검역관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던 순간, 그녀는 뒤로 목을 확 젖히며 난데없이 폭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 못 참겠다! 미안! 거짓말이야!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지! 으하하하! 걱정 마, 그 꼬마애는 내가 잘 돌려보냈으니까! 하하! 아 웃겨! 진짜 미안해!”
배를 부여잡고 깔깔 웃어대며 사과인지 변명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는 검역관의 모습에 메리와 렌코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표정을 보니 검역관은 오히려 웃음보가 더 터진 듯 눈에 눈물까지 고인 채로 깔깔 웃었다.
“아이고 웃겨. 진짜 걱정했나 보네? 괜찮다니까? 그 애는 이 배에 타자마자 내가 바로 발견해서 데리고 있었으니까. 그냥 배가 이미 떠나버려서 바로 내려주지 못한 거야. 너희가 돌아갔을 땐 마을 사람들이 되려 너희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을걸? 아, 미안. 그런데 너무 재밌어서! 반쯤 장난을 쳐버렸네!”
이제야 검역관의 고약한 장난을 눈치챈 둘은 허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결국 검역관은 자초지종을 다 알면서 지금까지 장난을 치고 있던 셈이니까. 그녀는 이젠 두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변명했다.
“걱정 마, 걱정 마. 내가 있는 동안 그런 식으로 못 돌아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까. 하하. 너희들을 놓친 건 그 꼬마애가 내리기 전에 워낙 혼자서는 무섭다고 떼를 써서 말이지. 그런데 나는 이 배에서 내릴 수 없거든. 그나마 집으로 돌아가는 약도를 그려주니까 겨우 배에서 내리더라니까. 아마 그 와중에 다른 탑승구로 너희가 탄 거겠지.”
“그렇담 다행이긴 하지만 성격이 고약하긴 하시네요.”
“어쩔 수 없잖아. 이런 재미라도 없으면 일을 어떻게 하겠어? 미안하지만 좀 봐줘.”
이제 검역관은 두 손으로 비는 자세를 취하면서 한쪽 눈도 찡긋 감았다. 안타깝게도 귀엽다기보다는 더 얄미워지기만 하는 모습이었지만. 우리 안의 고양이도 그렇게 느꼈는지 우리 안에서 벽을 박박 긁으면서 울었다.
어느덧 안개 너머로 흐릿하게 선착장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검역관은 고양이 우리를 한 손에 들고 갑판 위로 메리와 렌코를 배웅하러 나왔다. 그 와중에도 보이지 않는 선원들은 분주히 정박 준비 중인지, 검역관은 종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한두 마디씩 툭툭 던지거나 가볍게 손짓하곤 했다.
“일단 이쪽 밀항자 씨부터 먼저.”
배의 우현이 선착장에 완전히 접하자, 검역관은 난간 위에서 우리 문을 열었다. 인간이라면 주저할 높이였지만, 고양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냉큼 우리 밖으로 뛰어내리고는 선착장에 능숙하게 착지했다. 고양이는 그 배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는지 아무런 미련도 없이 안개 속의 마을로 총총 사라졌다.
“역시 미련 없는 쪽이 돌려보내기 편하다니까. 그래서 이쪽은, 아무 미련 없이 떠날 건가?”
검역관이 특유의 나른한 눈매로 바라보면서 물어보는 사이, 아무도 손대지 않았건만 승객용 계단이 선착장으로 난데없이 펼쳐졌다. 메리와 렌코가 급하게 올라탔던 바로 그 계단이었다.
“덕분에 잊지 못할 경험이긴 했네요. 여러모로.”
뼈가 담긴 렌코의 말에 검역관은 오른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킥킥 웃었다.
“장난쳤다고 아직도 꽁해 있는 거야? 아, 고양이 잡는다고 조금 부려먹어서 그런가? 그래도 이번엔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고작 고양이었으니까.”
그럼 운이 안 좋은 편은 대체 어떤 동물인 걸까, 그런 궁금증이 드는 둘이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혹시나 돌아온 그 꼬마애를 보면 안부 좀 전해주고. 너무 티 나게 아는 체하거나 물어보면 마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겠지만.”
메리와 렌코는 검역관의 그 말에 한 번 더 시선을 교환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렌코는 가방 속에서 종이봉투를 하나 꺼내 검역관에게 내밀며 물었다.
“이승의 사람은 저승의 음식을 먹으면 안 되지만, 반대는 어떤가요? 아니, 당신에겐 어차피 상관없나요?”
“어, 글쎄. 아마 상관없지 않을까. 뭐야 이건?”
“과자요. 마을에서 사죄의 의미로 줬던 거요. 뱃삯은 이미 치렀지만 그래도 이것도 드릴게요.”
“이야, 고맙네. 처치하기 곤란해서 주는 건 아니지?”
검역관이 손을 뻗어 종이봉투를 가져가려는 순간, 렌코가 갑자기 손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
“대신 하나만 더 말해주세요. 어제 실종된 아이의 집의 약도는 어떻게 그렸죠? 마을에 갈 수 없으면 길도 모를 텐데. 어제 실종된 아이는 돌아왔지만, 그전에 실종되었던 아이, 그러니까 이모는 돌아오지 못했죠. 그런데 당신이 있는 동안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당신은 계속 반은 장난이었다고 했어요. 유령이라는 농담도, 아이가 저승의 음식을 먹었다는 농담도. 그럼, 나머지 반의 진담은 뭐죠?”
갑자기 말문이 막힌 검문관은 멍한 표정으로 렌코와 메리를 쳐다보다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글쎄. 침략적 외래종 같은 것 아닐까?”
검역관은 그렇게 답하고는 날랜 손놀림으로 렌코의 손에서 종이봉투를 빼앗았다.
“고마워,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잘 먹을게.”
검역관은 종이봉투를 들어 보이며 그렇게 말하고는 다른 빈손으로 작별의 손짓을 했다.
메리와 렌코가 배에서 내리자마자 안개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어느덧 마을에는 어둠이 뉘엿뉘엿 찾아오고 있었고, 그 둘을 알아본 선착장의 마을 사람들 몇몇이 수군거리더니 다가오고 있었다. 꼬마애가 돌아왔고, 의심해서 미안했다고 사과하려는 거겠지. 혹시 어디 다녀왔는지도 물어볼지 모르지만.
“이제 어쩔래? 배편은 내일 다시 있을 텐데.”
렌코가 그렇게 묻자 메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피곤해. 그냥 돌아가면 좋겠어. 오늘은 이미 늦은 것 같지만.”
“하룻밤 더 신세 지긴 해야겠네.”
둘은 조금 전까지 여객선이 있던 자리를 되돌아봤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기묘하고도 중후한 노랫가락이 파도 소리 사이사이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검역관은 자신의 선실로 돌아와 종이봉투를 열어보았다. 그래봐야 밀항자 셋이 내렸을 뿐인데, 아직도 잡동 사니로 가득 찬 방인데 괜히 텅 빈 기분이었다. 배가 출항하자마자 돌아오고 싶었지만, 다른 선원들은 출항하고 나서 분주히 움직이니 자신도 마냥 게으름을 피울 순 없다. 평소처럼 배 안을 둘러보고, 이번에는 배에 살아있는 생물이 아무것도 올라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난 뒤에야 선실로 돌아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작업일지에 살아있는 생물의 수를 기록하는 것도 까먹지 않았다. 지지난번의 항해에는 둘, 지난번 항해에는 넷, 이번 항해에는 하나.
다른 선원들이나 승객들이 그녀를 멀리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똑같이 대해줘서 곤란했지. 어쩐지 자신이 잘못한 것 같으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딱히 의도한 것도 아니지만 잘못한 건 맞긴 하다.
저승의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진지도 오래다. 옛날 고향의 과자는 원래도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목이 메니까. 봉투에서 자그마한 조각 하나를 꺼내 입 안에 넣어본다. 역시나 목이 멘다. 그냥 먹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생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른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이승에도 흔하디흔하다. 저승에서는 모두가 그렇다.
후회하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나 같은 역할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아쉬운 건, 안개 너머로 지금은 가지 못할 곳을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
그녀는 물 대신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망자들에게서 배운 노래를. 선원들에게는 선원의 노래, 승객들에게는 망자의 노래. 나에게는 외래종의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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