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햇볕이 유리창을 향해 내리쬐는 곳.
그런 장소에서 한 명의 여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드러나는 그녀의 찬란한 은발은 한쪽이 붉은색의 구슬 머리띠로 묶여 있었다.
이윽고 빛이 여인의 모습을 환하게 비쳤을 때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머, 앨리스. 정말 오랜만이구나. 마계로 오는 데 불편한 점은 없었니?"
말을 한 그녀의 이름은 신키.
마계의 창조자임과 동시에 앨리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존재였다.
그렇게 말한 신키는 방의 중앙에 위치한 2개의 소파로 걸음을 옮겼다.
그 후 앨리스가 앉은 맞은편의 소파에 사뿐히 앉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신키의 미소와는 대비되듯 앨리스의 얼굴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갈 곳을 잃은 듯 방황하는 손은 어쩔 줄 모른다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기에 그녀의 마음이 조금 불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떨떠름한 표정을 지음과 동시에 신키의 눈동자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신키가 먼저 행동했다.
"자, 여기 앨리스가 좋아하는 홍차란다. 마시면 긴장이 조금 풀릴 거야."
신키가 찻잔을 앨리스의 손에 직접 쥐여줬다.
그로 인해 앨리스의 시선은 신키의 손으로 향한 상태였다.
아무튼 그 덕분에 긴장이 풀린 앨리스는 잔을 집어 들고 한 모금 홍차를 음미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내쉬더니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마계는 언제 와도 똑같네... 이 집무실의 분위기도... 예전이랑 변하지 않았어."
"그럼, 늘 똑같은 모습이야. 그러니 앨리스가 이렇게 오랜만에 마계에 와도 한결같은 거지. 아무튼 2년 만에 앨리스의 얼굴을 보니 엄마는 무지 기뻐요."
앨리스가 마계에 오는데 망설였던 이유.
그것은 바로 그녀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계에 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오랜만에 얼굴을 비춘 자신의 행적에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렇게 생각했다.
혹시 자신이 얼굴을 비추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가 서운함을 느꼈지는 않았을까 하고, 실망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당연히 신키가 그렇게 생각할 리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 와중에 신키가 다시 말을 하자 앨리스는 잠깐 몸이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환상향에서의 생활은 어떻니? 나랑 주고받은 편지에는 간단한 안부만 얘기해서 어떻게 지냈는지 정말 궁금하단다."
말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환상향에서 지낸 날들의 일들 중 신키한테 자랑스럽게 말할 게 없었으니까.
신키는 그런 앨리스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게 됐다.
그와 동시에 마주 앉은 소파에서 일어나 앨리스가 앉은 소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후 신키가 앨리스의 옆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조금 진정된 듯 보였다.
"······환상향에서 지내면서 이뤄낸 뚜렷한 성과는 없어요. 뭔가 자랑할 법한 걸 가지고 돌아오고 싶었는데..."
앨리스의 말을 들은 신키는 놀랐다.
자신의 딸이 이런 고민을 하는 줄은 몰랐으니까.
그저 신키는 환상향에 지내면서 마법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거나, 다른 인요들과의 교류 때문에 바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앨리스가 바랐던 것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금의환향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한 마디로 앨리스는 눈부시게 성장해, 출세해 남들이 부러워 할법한 업적을 자랑하고 고향에 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신키는 앨리스의 손을 잡았다.
앨리스의 손을 두 손으로 포개어 잡은 상황에 앨리스는 이제서야 신키와 눈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뭔가를 달성하고 싶었던 거구나. 근데 그게 지금까지 잘 풀리지 않았던 거고."
"······."
"있지, 그런데 꼭 무언가를 달성해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로도 성장인데."
앨리스는 당황했다.
자신이 환상향에 갈 때 다짐했던 포부와는 정반대인 말이었으니까.
참고로 과거의 앨리스는 환상향에 가기 직전 어엿한 마법사가 돼서 돌아오겠다고 마계의 모두에게 얘기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신키가 저런 말을 했으니 오죽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눈동자가 커진 앨리스를 바라본 신키는 말을 이어갔다.
"흠, 그리고 아까 앨리스가 말했지? 마계가 늘 똑같은 모습이었다고. 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
"무슨 말이에요...?"
"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마계에 앨리스가 살면서 생긴 추억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잖니? 지금 이 순간에도."
마계.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라지지 않는 낙원과도 같은 장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언정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앨리스가 어릴 적부터 지내면서 생긴 발자국들이 마계의 곳곳에 남아 있으니까.
마법을 처음 배웠던 날, 유키와 마이랑 같이 뛰어놀던 흔적들, 지금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말이다.
"2년...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짧은 시간이라고도 할 수 없겠지. 하지만 여긴 앨리스의 집이야, 설령 빈손으로 집에 돌아온다고 해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아."
"죄, 죄송해요... 좀 더 빨리 돌아오지 못해서..."
"으응, 괜찮아. 지금이라도 와줘서 정말 고마운걸. 그러니까 슬픈 표정은 이제 그만 지어야지?"
신키는 앨리스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녀의 손길을 느낀 앨리스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아마 그 무엇보다도 따뜻한 온기를 느꼈기 때문이리라.
어느 정도 안정된 앨리스의 모습을 본 신키는 앨리스를 더욱더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추가로 건넸다.
"그리고 무엇보다 추억이라는 건 어디서 보냈냐는 것만큼 누구와 보냈냐도 중요한 법이야. 그 증거로 마계라는 추억의 장소에 내가 딱 붙어있으니 앨리스의 표정이 밝아졌잖니?'
"그런가요? 음... 확실히 지금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요..."
"같이 지내온 사람들이 있어야만 금의환향이라는 말도 의미가 있겠지, 돌아갈 고향이 있다고 할지언정 추억을 나눴던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그러니까 마계가 그리우면 언제든지 우리를 보러 와도 돼."
세상의 이치.
그 진리에 통달한 신키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녀는 살아가는 것 자체로도 성장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살아감으로 인해 생겨나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행복에 대해서도 알기에.
그런 신키의 말에 앨리스도 드디어 깨달은 듯 보였다.
같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했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그리고 성장이 꼭 겉으로 드러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환상향에서 연락을 하지 않은 2년의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키가 지금 이렇게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알려줘 내적으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그럼 앞으로는 자주 마계에 들르는 거다, 약속할 수 있지?"
새끼 손가락을 내민 신키.
그녀의 동작에 앨리스 역시 새끼 손가락을 꼭꼭- 거는 약속을 통해 대답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비쳐주는 따뜻한 햇빛이 이들을 축복해 주는 듯 보였다.
그와 동시에 나무로 된 집무실의 문이 콰앙- 하고 열리더니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이제 우리 자주 볼 수 있는 거지? 마이랑 같이 지켜보다가 숨넘어가는 줄 알았네, 정말."
금발금안에 리본이 달린 모자를 쓴 여성, 유키가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그러자 앨리스는 당황함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다.
자신이 집무실에 올 때까지만 해도 유키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었으니까.
추가로 유키의 손에 붙들려 있는 청발벽안의 마이 역시 말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겨우 평정심을 되찾은 앨리스는 신키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게 사실은 마이가 제안을 했거든. 한꺼번에 다 같이 만나면 앨리스가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르니 다른 인원은 자리를 비켜주기로."
"맞아! 마음 같아서는 앨리스랑 바로 얘기하고 싶었는데 마이가 어찌나 말리던지, 원..."
실상은 이렇다.
앨리스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유키가 버선발로 뛰어나가려고 했는데 마이가 이를 저지한 것이다.
그 이유는 앨리스가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기에 분명 유키가 엄청난 관심을 보였으면 당황했음이 틀림없으리라.
추가로 신키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펼쳐지지 않아 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을 전부 예측했던 마이는 유키를 잠깐 저지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건 뒤로 재쳐두고 나 역시 앨리스가 자주 들른다는 말은 들으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그건 나랑 유키뿐만이 아니라 유메코 씨도 마찬가지겠지."
"정말 미안... 마이한테 빚을 지고 말았네."
"괜찮아, 그 빚은 지금 당장 갚으면 되니까."
앨리스는 놀랐다.
평소 늘 차분하게 말하던 마이가 천방지축인 유키와 비슷한 소리를 했으니까.
이윽고 마이는 재빨리 걸음을 옮겨 앨리스의 머리에 뭔가를 씌워줬다.
그 정체는 바로 원뿔형의 생일파티 모자.
그리고 앨리스한테 씌워줬듯이 자신들도 동일한 모자를 썼기에 앨리스는 자신의 머리위에 있는 것이 뭔지 눈치챈 모습이었다.
"앨리스는 나랑 유키의 친구, 환상향에서 마계에 올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돌아온 친구를 위한 환영파티를 준비했어. 당연히 앨리스도 참석할 거지?"
"맞아, 나도 마이의 말에 동의해. 그보다 환영파티를 준비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지금 식당에 모두가 같이 만든 초대형 3단 딸기 케이크를 준비해 놨단다. 거기 있는 유메코가 앨리스를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가야겠지?"
모두가 준비한 환영파티.
파티를 준비했다는 셋의 말을 들은 앨리스는 굉장히 감동을 받은 상태다.
마음속으로는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불안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불안함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신키 역시 유키와 마이처럼 생일파티 모자를 쓴 채로 앨리스를 향해 밝게 웃고 있었으니까, 성대한 파티를 준비했다는 사실에 감동했으니까.
앨리스가 감동을 받고 있을 무렵, 유키와 마이가 앨리스의 손을 각각 붙잡았다.
"빨리 가자고, 잘못하면 케이크가 녹을지도 모르니까!"
"하아... 마법으로 마무리를 한 케이크가 녹을리가 없잖아..."
"그, 그런가...? 어쨌거나 유메코 씨도 앨리스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했으니 어서!"
유키의 말을 지적하는 마이.
그 모습에 앨리스는 절로 미소가 지어진 상태였다.
조금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마계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유키와 마이한테 이끌려 가는 앨리스를 따라가기 시작한 신키 역시 대화에 참가해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앨리스는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한 끈으로 연결된 친구이자 가족이라는 존재니까.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성장.
그렇기에 뭔가 대단한 것을 이뤄 금의환향을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족이라는 의미를 알게 돼 내적으로 성장했다는 내용으로 씀.
궁극적으로 고향이 그리우면 언제든지 와도 괜찮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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