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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글알못 팬픽대회

환상을 그리며 - hanakoi

 

여관 밖에는 꽤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늘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한쪽에선 흐릿하게 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전하게 차오른 보름달의 형상은 인간의 시간이 끝나고 요괴의 시간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

그렇지만 그것은 이제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유성군, 그것이 달에 모여드는 기현상이 며칠 연속으로 보였었다

달은 지표에서도 환히 보일 정도로 타오르고 있었고

무너져 완전한 원이 되지 못한 달은 그 힘을 잃어버렸다.

 

달의 마력이 사라지자 환상향에서 환상은 사라졌다.

우리는 무너지고, 죽고, 사라져갔다.

공포와 혼란의 아수라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정신차려보니 나는 이 콘크리트 대지 위에 버려져 있었다.

전처럼 날 수도, 바람을 일으킬 수도 없는 평범한 인간 하나로써.

 

“아야쨩 나가는 거야? 어딜 가든 상관 안하겠지만 너무 늦게 돌아오면 장사가 안 된다고?”

나가는 날 보고 주인영감이 외쳐왔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고약한 주인영감은 나를 써서 쏠쏠히 벌면서도 묵을 방 하나 공짜로 주는 법이 없었다.

많지도 않은 손님이 주는 값 싼 화대에서 수수료랍시고 대부분 떼어가고

거기서 최소한의 생활비를 빼고 나면 남는 건 정말 몇 푼 안 되는 돈.

그 마저도 없을 땐 주인영감에게 손을 벌려야 했고, 그 액수가 쌓여 지금의 나를 속박하고 있었다.

차라리 다른 곳으로 도망가 버릴까 생각했었지만...도망친다 해도 갈 곳은 딱히 없었다.

간다 하더라도 결국 이 생활에서 벗어날 순 없겠지

 

오래된 여관의 퀴퀴한 향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 밖으로 나왔지만 막상 갈 만한 곳은 없었다.

그저 정처 없이 닿는 대로 걸어갔다.

 

여러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걷다보니 갑자기 너무 힘들어서 가까운 공원 벤치에 걸터앉았다.

노을 지던 하늘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지려고 하고 있지만

놀이터에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몇몇 아이들이 있어 시끄럽게 뛰어놀고 있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은 마치 계곡을 날아다니던 요정들처럼 보였다.

해맑고 순수한, 때 묻지 않은 그 미소…….보고 있으니 무심코 옛 기억에 잠겼다.

예전엔 쓸 기사가 없으면 산 아래로 내려와 요정들을 찍는 것만으로도 기사를 몇 개나 써내려가곤 했었는데.

 

하지만 이제는 신문 같은 건 쓸 수 없다, 펜과 종이 마련도 부담되는데 신문을 찍어낼 돈을 어디서 얻는가? 또, 쓴다고 해서 누가 읽는가?

나한테 읽을 사람도 없는 신문을 찍어낼 만큼 사치부릴 돈은 없었다,

 

돈, 돈, 돈…….무녀가 그렇게 좋아하던 돈

연고 없고 의지할 곳 없는 몸이 돈도 없으니 이제야 무녀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돈 몇 푼만 더 있었어도 저런 낡은 여관방이 아니라 그럴싸한 집을 얻고 그걸 기반으로 일을 잡고 다시 벌고...최소한 이렇게 아슬아슬 벌어먹는 삶은 끝낼 수 있었을 텐데

 

내게 행복으로 가는 계단은 막혀있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끝없는 수렁에 갇힌 것처럼 맴돌 뿐.

 

그 몇 푼의 돈이 없어서 막혀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하게만 느껴졌다.

 

떨어지기 시작한 해는 금세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어두워진 하늘에 달이 그 자태를 선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 같은 달이 아닌 공허한, 그저 돌덩어리일 뿐인 달이었다.

 

해가 있을 때도 쌀쌀했었지만 밤이 되니 공기는 더더욱 차가워져 갔다.

입고 있는 얇은 셔츠로는 전혀 막히지 않는 한기에 몸이 서서히 얼어붙는 감각이 느껴져 황급히 벤치에서 일어났다.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린 채로 여관방으로 향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영감 말마따나 오늘 손님은 모조리 놓치고 말 것이다.

울적하다고 더 멀리 걸어 나온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며 잰 걸음으로 걷고 또 걷던 와중에, 문득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오오-텐구 아냐 이거……”

“...스이카씨?”

 

길바닥에 쓰러지듯 앉아 있던 인사불성 오니는 나를 보자 반갑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이야~ 아는 사람을 본 게 몇 달 만인지...나라도 외로워질 정도였다고”

“그러게요, 저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는데...헌데 왜 이리 취해 계시는지?”

“아~? 술이 너무 고파서 지나가는 인간들한테 몇 번이고 부탁해보니까 누가 사주더라구, 그치만 이거 한 병을 다 못 마시겠단 말이지…….”

 

스이카씨는 힘없이 웃었다.

어린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새빨갛게 물든 얼굴이 그녀가 만취했음을 알려줬다.

 

“...그 동안 별 탈은 없으셨는지?”

“뭐어...이런 몸이니 만큼 꽤나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먹고 사는 건 딱히 지장이 없더라, 이대로 길러줄 형편 좋은 사람이나 찾을까 봐...”

 

헤실헤실 웃는 그녀는 홀짝이던 내게 술병을 들이밀었다

 

“남은 건 네가 마실래~?”

 

반 쯤 남은 소주병.

앉은 자리에서 항아리 단위로 술을 비우던 오니는 어디가고

술이라 부르기도 아까운 액체에 고전하고 있는 어린 애만 남아있다니.

그게 어쩐지 내 모습 같아서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게 마실게요”

 

스이카씨에게서 받아든 녹색 병을 단숨에 들이켰다

내용물이 한 모금 한 모금 넘어올 때 마다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분명 도수는 낮았는데 지금껏 마신 그 어떤 독주보다도 독하다고 느껴졌다.

 

“아하하...그 맛없는걸 잘도 마시네”

 

마지막 한 모금까지 탈탈 털어 넣는걸 본 스이카씨가 키득거렸다

 

“참 낭만 없는 세상이야, 이딴 맛없는 술만 있는 세상이라니...이래서얀 살아갈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그, 그러게요...”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역한 악취, 울적함을 달래려 마셨지만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빠졌다.

 

“저 하늘 좀 봐, 별 하나 없는 새까만 하늘이라구, 요즘 사람들은 밤하늘 예쁜걸 알지도 못하겠지...그런 세상이니 술조차 제대로 못 만드는 거야...”

 

스이카씨는 벽에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맛없는 술조차 맘대로 못 먹으니까 너무 우울해지는걸...마치 감옥에 갇힌 기분이야.”

 

만취한 스이카씨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그 울림이 머리를 때리는 기분이어서 더 들을 수 없었다.

실례인건 알지만 혼자서도 잘만 재잘거릴 스이카씨를 버려두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낡은 나트륨등이 깜빡이며 머리 위를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빈속에 부어진 알코올이 빠르게 몸속을 순환하는 와중에 깜빡이는 등을 보니 어지럼증이 더욱 심해져만 갔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이 쪽이 맞는 방향인지 아니면 정 반대로 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 아마 오늘 안에 돌아가는 건 무리겠지.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던 무인 모텔로 기어들어갔다.

라디에이터의 훈훈한 공기에 취해 비틀비틀 걸으며 접수대로 향하던 순간, 방에서 나온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어라, 오랜만이네, 아야”

 

혼미한 와중에도 느껴지는 익숙한 목소리...설마…….

 

“...설마 레이무, 야?”

“그럼, 나를 누구라 생각하는 거야?”

“...읏...으으읏...”

 

엷게 웃는 레이무의 얼굴을 보니 어쩐지 그게 너무나 반갑고 안심이 되어서

그만 그대로 그녀의 품에 안기듯 쓰러져버렸다.

 

“...갑자기 울다니 뭐야...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레이무는 곤란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곤 조용히 자기 방 안으로 데려갔다

 

 

 

“...조금 진정 됐어? 주정뱅이씨”

“...응”

“나 참, 언제는 나보고 술 못한다고 하더니만...”

 

안심했다는 듯이 웃은 레이무는 캔 녹차를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아까 전 복도 라디에이터에 얹어 뜨겁게 데워놓은 녹차

이런 상황에서도 한결같다는 점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여기서 사는데 꽤나 적응했나보네? 그런 여유를 부릴 정도면...”

“딱히 그렇지도 않지만...왜, 갑자기 사는 방식을 바꾸면 곧 죽는다고들 하잖아?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거야 이건, 필수 지출이라고”

“그거 참 당신다운 논리인걸”

“그리고...이거라도 마시고 있으면...아직 내가 환상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계속 찾게 되네.”

 

레이무는 조금 울적한 표정으로 차를 홀짝였다.

한동안 서로 아무 말도 못하고 어색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몇 달째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거야, 평소였다면 무녀의 태업을 고발하는 기사가 마을에 돌아도 남을 시간이라고?”

“나한테 물어봐도 나는 이제 무녀도 뭣도 아닌걸, 너와 마찬가지로”

“그렇, 긴 하지만...”

“이제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거 같아...앞으로도 계속 이러고 살아야겠지...”

 

틀린 말은 없었다, 그렇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무녀가 이변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이변은 누가 해결해 줄 거란 말인가, 언제까지 이런 삶 속에 갇혀 살아야 하는가?

 

“나도 예전이 그립지만...이제는 여기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잖아? 계속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해봤자 변하는 건 없다구”

 

무책임한 말에 화가 났지만 거기에 반박할 순 없었다.

나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빈 깡통을 우그러뜨린 레이무는 곧바로 자리를 펴고 잠들었다.

나 역시 그 옆에 자리를 잡았으나 오던 잠기운이 몽땅 달아나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술기운은 빠졌지만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텐구 시절엔 오니를 상대해도 이정도로 괴롭진 않았는데.

 

“분명...하나 정도 들어있을 텐데...”

 

가방 안을 뒤적여서 안에 들은 담배 한 까치를 찾아냈다

어젯밤 들린 손님이 씻는 사이 그의 주머니에서 하나만 슬쩍 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레이무를 내버려두고 옥상으로 향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하늘, 그 한 가운데 보름달이 은은하게 지상을 비추고 있었다.

별 하나 없는 세상의 유일한 빛, 그것마저 이렇게 공허한 세상이라니.

 

이제 다시는 예전의 그 하늘을 볼 수 없다는 레이무의 절망적인 선언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 모금 빨아들이자마자 매캐하고 따끔거리는 담배 연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몇 백 년도 전에 처음 필 때를 연상시키는 고통, 그리고 이어지는 몽롱함

 

“...옛날 생각나네”

 

천천히 올라오는 몽롱함이 괴로움 속에서 그리움을 꺼냈다

어두운 밤하늘,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무한히 날아가는 과거를

 

그리고 그리움의 끝엔, 그 과거를 져버린 모두가 생각났다.

그저 취해있을뿐인, 남과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쟁이 오니, 자기 책무를 져버린 무책임한 무녀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비참함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예전엔 그리 높다 여기지도 않을 높이지만 이제는 그 아래로 나아갈 용기가 없어졌다.

 

텅 빈 하늘을 원망하며 끝까지 타버린 담배를 내던졌다, 다시 들어가 한숨 자고 싶었다.

 

비틀비틀 무거운 발을 끌며 계단참으로 향했다.

 

-쾅

 

향하던 중에 짧은 섬광과 폭발음이 들렸다, 옆에 있던 전봇대에서 스파크가 몇 번 일더니 주변의 가로등이 하나하나 죽어가기 시작했다

 

탁, 탁, 가로등이 터지듯 죽어감과 함께 어둠은 빠르게 번져 지상의 빛을 침식해가고, 얼마안가 주위 모든 빛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모든 빛이 내 눈에서 떠나자, 사라졌던 밤하늘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별세계에 온 듯 한 그 아름다움에 취한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별은, 텐구는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 모든 건 여전히 여기에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뒤적여봤다.

환상향에서 유일하게 챙겨 나온 물건인 취재 가방

 

언제나 들고 다니고 있었고, 이제 와서는 옛날을 추억할 만한 거의 유일한 보물.

지금도 습관처럼 들고 나왔던 그 안에서 한참동안 건드리지도 않은 수첩을 꺼냈다.

빽빽이 들어찬 소재거리, 옛날부터 적어온 환상향의 수많은 기록들, 한 장 한 장 기억나는 추억들...

 

하지만 환상향이 없어진 날을 기점으로 그 기록은 그만 끊기고 말았었다.

이젠 이런 거 써 봐야 소용없다면서 스스로를 속이고 펜을 놓아 버린 뒤, 그저 과거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무녀와 오니는 그럼에도 스스로임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환상향이 없어진 채로도 그녀들은 그녀들인 채로 살았지만, 나만은 나를 잃어버렸었다.

 

 

 

나는 가방 속에 있던 먼지 쌓인 카메라를 꺼냈다.

아마 아직 한 장 정도 찍을 필름은 남아있을 터.

 

몽환적인 별 하늘을 렌즈 안에 담아낸 나는 싸구려 볼펜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더 이상 춥게 느껴지진 않았다.

 

자아, 다시 신문을 써 볼까

 

 


 

 

그리다4: 상상하거나 회상하다

퇴고 한번 하고 걍 던짐 내일 시험이라 더 못써 응애

주제가 망향이라는데 지금 걸어둔 저거 듣고서 걍 생각난대로 휘갈겨씀

계획없이 써서 분량도 구조도 어중간한 무언가만 남았다

사실 쓰고 싶었던건 그냥 창녀 아야밖에 없는데 뭐 주제의식 상붕이 어려운거 몰라 상붕이 야설밖에 못 써

아무나 감평해줬음 좋긴 한데 그걸 읽어볼 용기가 날지 안날지는 나도 몰르게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