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생계에 왔을 때부터 목소리는 속삭였다. 고향이 그립지 않느냐고.
황량한 갈색 대지에 모두가 모여 있다. 모두가 대지에 엎드려서, 누군가는 몸을 들썩이면서, 누군가는 마르고 갈라진 손바닥으로 거친 모래를 움켜쥐면서, 누군가는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모래 먼지를 들이마시면서. 모두가 자기만의 신을 찾고, 자기만의 기도를 올리면서, 돌아오지 않을 답을 바라면서 엎드려 빌고 있다. 그 누구도 감히 고개를 들 엄두도 못 내고 두려움을 속으로 삭이면서, 그러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무서워하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렇게 모두가 층층이, 하나의 점을 감싸면서 땅바닥에 엎드려 떨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그들이 둘러싼 바로 그 중심이 되는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두막의 고요함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이들이 모여 두려움의 원이 커진다. 원이 겹겹이 쌓이면서 가장 바깥쪽에서는 오두막조차 보지 못하게 될 때쯤, 드디어 오두막이 흔들렸다. 공허한 어둠으로 차 있던 오두막에서, 어렴풋한 형체가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오두막 바로 앞에 엎드려 있던 이들이 몸을 흠칫 떨고, 그 떨림은 파동이 되어 원의 바깥으로 퍼져나갔다. 오두막의 형체는 그 파동에 동조하듯이 뚜벅뚜벅 허름한 문을 넘어 밖으로 걸어 나오고, 검붉은 액체가 똑똑 대지에 떨어지면서 발자취를 따라왔다.
형체는 원의 가장 안쪽, 오두막의 입구에 가장 가까이 엎드려있던 이 앞에 멈춰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 이제야 볼만하구나. 조금은 내 고향 같아지는 걸까?”
오두막에서 걸어 나온 킷초 야치에는 주위의 모두가 자신을 중심으로 엎드려 공포를 삭이는 모습에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 였다. 그녀의 몸 전체를 뒤엎은 검붉은 피가 그 입꼬리에 흘러내리면서 그녀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모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그 모습을 볼 수 없었건만 모두가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그저 그 피가 흘러내리는 얼굴에서, 입술에서 나올 다음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 있던 녀석들은 마지막까지 재미없었어. 너희들처럼 괴롭히는 맛이 없었지. 그래서 고통도 짧았겠지만 말이야. 나는 차라리 그편이 좋을 것 같은데, 너희는 왜 이렇게 우둔하고 미련해서 제대로 반항도 못 하는 걸까? 그 덕에 답답하게 고통스러운 명줄을 가늘고 길게 이어 나갈 뿐인데. 나야 좋지만 말이지.”
야치에는 자신의 꼬리로 가볍게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손에 든 단검에서 툭툭 피를 털어냈다. 그녀의 꼬리와 단검에서 흘러내린 피가, 뿔에서 이미 흘러내린 피에 합쳐져서 자그마한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이제 나를 즐겁게라도 해줘야겠다. 안에 있던 녀석들은 모조리 어딘가로 치워 버려. 그리고 땅을 파라. 무언가가 나올 때까지, 치솟아 오를 때까지 그저 계속 파라. 대체 무엇 때문에 이 목소리가 내게 속삭이는지 확인해봐야겠으니.”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이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방금 걸어 나온 오두막을 다시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긴 정말이지 재미가 없구나. 이상한 목소리만 계속 들리고. 내 고향이랑은 너무 달라. 생기도 없고, 재미도 없어. 이 지루함은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할까? 이 안에 있던 녀석들로는 부족한 걸까? 본보기가 더 필요한 걸까?”
단검이 휘릭, 그녀의 손안에서 춤추자 다시금 공포와 동요가 파동으로 퍼져나갔다. 그녀의 바로 앞에 있던 이들부터 그 공포를 용기로 삼아 자리에서 일어나, 오두막 안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서 마치 쥐 떼처럼, 모두가 오두막 안으로 밀려들어 가 맨손으로 그 안을 파기 시작했다. 오두막 안은 순식간에 땅을 파는 이들로 가득 찼건만,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행렬은 오히려 길어지기만 했다. 모두가 서로를 밀치고 잡아당겨 가며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마치 그 오두막 안에서만 안전해질 수 있기라도 한 듯이.
야치에는 그 모습을 보고 여전히 따분하지만, 약간이나마 재미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땅을 팠다. 몇 날 며칠이고, 땅을 파다 서로를 밟고 밀치면서, 파낸 흙더미 속에 누군가 파묻히더라도 계속해서 땅을 팠다. 처음에는 맨손으로 손톱이 벗겨지도록 땅을 긁어내다가, 누군가가 나무막대로 파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삽이 쓰이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무너져 내린 굴을 다시 파내다가, 누군가가 기둥으로 벽을 지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굴이 깊어지면서, 파낸 흙은 끌어올리고 다음 희생자를 내려보낼 수 있도록 탑이 세워지고 도르래가 설치됐다. 어느덧 누군가가 다른 이들을 통제하면서 굴은 계속해서 깊어지고 탑은 더욱더 높아졌다. 야치에는 그 모든 변화를 따분한 표정으로,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 무심한 시선만으로도 모두가 미친 듯이 땅을 파고들고 탑을 높이도록 하는 데는 충분했다.
그렇게 탑이 높아지면서, 탑은 이제 파낸 흙을 퍼 올리는 게 아니라 흙을 추로 찌르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탑에 매달린 추가 지면을 찌를 때마다 흙이 솟아오르고, 손이 있고 도구가 있는 이들은 그 흙을 퍼내면서 추가 더 깊이 안을 찌를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영원토록 그 작업이 이어질 것 같던 순간,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굉음이 땅속에서 들려오고, 탑에 매달려 땅을 치르던 추가 순식간에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건 추만이 아니었다. 지면에서 대기하던 작업자들을 위한 발판이, 자기 때가 된 작업자들이 땅속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그리고 아직 거기에 발을 디디고 있던 작업자들이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다. 마치 용이 포효하듯, 땅속에서 거대한 숨결이 치솟고 감히 그 앞을 가로막던 이들은 그 거대한 분노에 휩쓸려버렸다.
운 좋게 그 자리를 피해 있던 이들, 어쩌면 오히려 운이 없어 그 광경을 보아야 했던 이들은 넋이 나간 채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가, 이윽고 뒷걸음을 치다 등을 돌려 도망쳤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탑에서 멀어지려고 혼비백산 도망치던 와중에 딱 한 명만이 그 모습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해 나아갔다. 킷초 야치에는 땅에서 하늘로 분출해오르는 거대한 숨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이윽고 그녀 앞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탑에 있던 이들은 이미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땅에 쳐박혔고, 땅 밑에서 일하던 이들은 그 안에 완전히 묻혀버렸고, 숨결에 휩쓸리지 않고 도망친 이들은 모두 킷초 야치에의 등 뒤로 도망친 뒤였다. 그렇게 도망친 이들은 이제 안전하다는 착각이 들었는지 킷초 야치에를 지켜보다가 이윽고 무릎을 꿇고, 다시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렸다. 마치 이 모든 게 킷초 야치에의 분노 때문인 것처럼.
정작 키초 야치에는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귀에 속삭이던 목소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건 고향에서 들리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고향의 모두를 파멸시켰던 그 목소리. 그 목소리는 여기에도 있었고, 그 목소리가 자신을 바로 이곳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땅에서 솟아오르던 숨결은 그치기는커녕, 오히려 불꽃을 내뿜기 시작했다. 불꽃은 탑에 옮겨붙어 바로 거대한 불기둥이 만들어졌고, 그 열기가 주위에 엎드려있던 이들에게 경이감과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땅속에서 포효하는 용이, 대체 언제 축생계의 천장으로 날아오를까. 그 공포가 강해지면서 축생계도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불기둥도 한층 더 강해졌다. 이제 주위에서는 소리내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부디 그 용이 분노를 거두기를, 아니면 킷초 야치에가 분노를 거두고 자신들을 지켜주기를.
킷초 야치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그건 용이 아니었으니까. 이 불쌍한 영혼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발견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야 곤란하다. 이게 무엇인지 모른다면, 고향과는 같아질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일깨워줄 수밖에.
킷초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불타는 탑을 뚫고 검은 기둥이 솟아나오고 불길이 한층 더 강해졌다. 열기를 어떻게든 버텨내던 탑은 이제 우지끈 옆으로 무너지고, 불길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검은 기둥에 옮겨붙어 타올랐다. 그렇게 축생계의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검붉은 불기둥을 배경으로, 킷초 야치에는 춤을 췄다.
“그래, 이제 이건 내 것이다! 너희들에게 이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 왜 욕심을 내야 하는지 알려주마! 너희들에게 탐욕을 가르쳐주마! 이곳 축생계를 내 고향처럼 만들어 주마! 이 땅은, 이 땅에서 나는 검은 물은, 그리고 그 가치는 모두 나 킷초 야치에의 것이다! 나를 위해 캐내고, 모두에게 알려라!”
킷초 야치에는 깔깔 웃으면서 빙글빙글 춤을 췄다. 그 춤은 날이 새도록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공포가 조금은 사그라들고 축생계가 다시금 밝아올 때쯤, 불길도 약해지고 그 자리에는 검은 기둥, 정확히는 솟아오르는 검은 액체와 킷초 야치에의 탐욕스러운 웃음만이 메아리로 남았다.
그렇게 축생계의 밤이 새롭게 밝아왔다. 야치에의 부하들은 솟아 나오는 검은 물을 새로운 동력으로 쓰기 시작했다. 노예들이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던 수많은 기계들이 검은 물이 불타는 기계로 돌아가게 되었다. 노예들이 일할 수 없던 어두운 밤과 동굴 속도 이제 검은 물이 불타는 빛으로 마치 태양 빛이 비추듯이 환해졌다. 그렇다고 축생계에 노예들이 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검은 물을 퍼내기 위해, 그렇게 파낸 검은 물로 새로운 기계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검은 불이 빛낸 축생계에서 더 많은 억압과 고통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예들이 밤낮없이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킷초 야치에 혼자 그 모든 걸 누릴 수 없었기에, 노예는 이제 곱절로 더 많아졌다. 이제 더 많은 주인들이 나타나, 검은 물이 솟아나는 땅을 발견하고 찾아내기 위해 싸우고, 그러기 위해 더 많은 노예들을 부리게 되었다. 검은 물이 새롭게 솟아오를 때마다 이전의 주인이 노예가 되고 새로운 주인 밑에 더 많은 노예들이 생겨났다. 검은 물을 더 많이 차지한 주인이 다른 주인들을 노예로 만들고, 그 노예 밑에 더 많은 노예들이 줄지어 따라왔다. 검은 물에 노예들의 시체가 끊임없이 쌓여가는데도 노예들의 수는 늘면 늘지 주는 법이 없었다.
우습게도, 이 새로운 세상을 축생계에 가져온 킷초 야치에가 그 누구보다도 이 새로운 세상에서 옆으로 비켜나 있었다. 처음 파낸 우물 근처에 새로운 우물만 몇 개 더 확보한 그녀는 남들이 주위에 새로운 우물을 파내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녀가 무서워 새 우물을 파내지 못하던 불한당들도, 결국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점차 그녀의 본거지 주위를 슬금슬금 파내기 시작했다. 야치에는 그 모습이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비아냥이 섞은 웃음과 함께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가 굳이 손에 피를 묻힐 때는, 새로운 우물이 아니라 자신의 우물을 탐낼 때뿐이었다.
그렇게 옆에 비켜서서, 다른 후발 주자들의 분투를 지켜보는 그녀의 행보로 인해 경쟁자들의 싸움은 되레 치열해졌다. 경쟁자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새로운 우물을 파내려고, 킷초 야치에의 우물이 아닌 다른 경쟁자의 우물을 파내려고 계속해서 싸웠다. 그런 싸움이 반복되면서 누군가의 힘이 커지고, 그 힘에 취해 킷초 야치에의 우물에 눈독을 들이면 그녀가 다시금 손에 피를 묻히고 모든 걸 처음으로 되돌렸다. 그러면 새로운 경쟁자들이 다시금 경쟁을 시작하고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나고 몰락하는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야치에의 그 무심하고 잔혹한 태도 덕분에 축생계에서 모두가 공포에 떨었다.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은 검은 물이 솟아나는 우물에 관심 없는, 킷초 야치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이 없는 무심한 이들뿐이었다. 킷초 야치에가 가진 검은 물을 부러워할수록, 그녀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커졌고 덩달아 바보 같은 도전자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축생계의 영혼들은 대체 킷초 야치에가 무슨 꿍꿍이로 검은 물을 차지하고 있는지, 왜 경쟁자들이 다른 우물은 차지할 수 있게 방관하는지, 그러면서 왜 자신의 우물에 욕심을 보이면 잔혹하게 처단하는지 자기만의 이유를 대면서 소곤댔다.
누군가는 그녀가 자신에게 반감을 품은 이들을 끝까지 뿌리뽑기 위해서라고 했다.
누군가는 그건 축생계의 모두가 사라져야 가능할 거라면서, 검은 물의 공급량을 통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누군가는 그럼 왜 경쟁자들이 검은 물을 퍼내는 걸 방관하겠냐면서, 그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변덕을 부릴 뿐이라고 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속삭이던 이들 중에도, 킷초 야치에에게 들리는 목소리에 대해 넘겨짚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또 다른 무모한 경쟁자가 킷초 야치에의 우물을 넘보았고, 다시 같은 결말이 반복되었다. 킷초 야치에는 그 경쟁자가 가장 처음 차지한 우물까지 모조리 빼앗고, 반항하고 항복하는 이들과 함께 모조리 매몰시켰다. 어차피 또 욕심을 부리는 자가 다시금 그 우물을 파내겠지만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 그들이 킷초 야치에게 아주 잠시나마 빼앗았던 작은 우물은 매몰시키지도, 다시 검은 물을 퍼내지도 못하도록 했다. 그녀는 그날 밤, 어둠 속에서 그 우물을 홀로 거닐었다. 그녀에게 속삭이던 목소리가, 지금 그 우물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그녀에게 소리쳤다.
“인정해야겠어, 너는 참을성이 보통이 아니야. 어째서지? 내가 더 차지하라고, 모조리 네 것으로 만들라고 속삭이는데도 어떻게 지금 가진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거지?”
야치에는 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우물 위의 탑을 올려다보았다. 탑의 거대한 검은 형상 속에서, 지금까지 계속 야치에에게 속삭이던 목소리가 스멀스멀 형상을 갖추기 시작햇다.
“어째서지? 처음에는 내가 속삭이던 것처럼, 석유를 차지했잖아? 하나로도 모자라서, 둘을, 셋을, 열을 차지했잖아? 왜 거기서 멈추는 거지?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하는 거냐? 모조리 차지해버리란 말이다. 네 욕심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이 축생계에서 치솟아 오르는 석유를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네가 모조리 차지해서...”
“그게 네가 원하는 바인가? 내가 축생계의 석유를 전부 독점하는 것?”
“그래! 모두 네 차지로 만들란 말이다! 모조리 다! 첫 번째 우물에서 그랬던 것처럼, 손에 피를 묻히고 땅을 파내서 모두 네 것으로 만들란 말이다!”
“글쎄, 그건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아서 말이야. “
“어째서냐, 어째서냐! 어째서 그걸 원하지 않는 거냐!”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걸. 넌 대체 왜 내가 그러길 원하는 거지? 왜 내가 더 욕심을 내서, 모조리 차지하길 원하는 거지?”
속삭이는 형체는 이제 호탕하게, 악의를 잔뜩 담아서 웃음을 터트렸다.
“되려 내게 묻는 거냐? 좋다! 알려주마! 마음에 드니까, 조바심이 나니까! 왜냐하면 나는 탐욕을 바라기 때문이다, 네가 탐욕을 부리면 부릴수록 나는 강해지고, 네가 석유를 많이 차지할수록 결국 내 몫이 많아질 테니까!”
목소리는 이제 뚜렷한 형체가 되어, 탑의 검은 윤곽에서 완전히 벗어나 킷초 야치에 앞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킷초 야치에는 이제 그 날카로운 이빨과 두 뿔, 그리고 붉은 눈동자에서 이글거리는 욕심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토테츠 유마다. 네가 갈구할수록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라고 해두지. 그러니 이제 다시 한번 물어보마. 너는 대체 왜 더 욕심은 안 부리는 거냐? 처음에는 내가 부추긴 대로 석유를 차지했으면서, 왜 더 가질 수 있는데 더 가지지 않아서, 이 내가 조바심을 내게 하느냔 말이다!”
토테츠 유마는 이글거리는 두 눈을 야치에의 바로 앞에 들이미며 물었다.
정작 질문을 받은 야치에는 유마의 질문에 답하기는커녕,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만을 유심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내 그녀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처음에 네가 속삭여준 덕분에 우물을 파낸 건 맞지만, 그게 내가 욕심이 나서는 아니었어. 아니, 욕심이 있었던 건 맞지만 그 내용물에 욕심을 부린 건 아니랄까. 거기서부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네. 그래도 네 덕분에 원하던 바를 이루긴 했으니 고맙게 생각해.”
“어엉?”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나오자 유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야치에는 유마의 당혹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등을 돌려 이리저리 널린 작업 공구 사이를 터벅터벅 걸어가며 말했다.
“축생계에 처음 왔을 때는, 마치 내 고향을 다시 보는 듯해서 재밌었지. 나를 자기들 좋을 대로 섬기다가 나중에는 자기들 마음대로 일이 안 풀린다고 쫓아냈던 내 고향 말이야. 하지만 지내다 보니 내 착각인 것 같더군. 여기는 내 고향보다 훨씬 재미가 없었어. 다들 서로가 너무 무서워서였을까? 오히려 가진 게 너무 아무것도 없어서였을까? 아무리 잔혹한 짓을 서로 벌여도 딱 거기까지. 남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어도 딱 거기까지.”
야치에는 그렇게 말하고는 유마를 돌아보며 키득 웃었다.
“그래, 너도 그래서 내게 속삭인 거겠지. 그때 여기 있는 녀석들은 어쩐지 부리는 욕심들이 너무 작았어. 그래서 나를 무서워하는 건 마음에 들었지만, 어쩐지 심심했어. 그래서 나도 계속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지. 어떻게 하면 이 축생계를 더 잔혹하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계속 물어뜯고 시기하고 반목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계기가 필요했어. 축생계의 모두가 눈을 뜰 만한... 그래서 한번 네 목소리를 따라보기로 한 거야. 밑져야 본전이니까.”
유마는 야치에의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는지 어느샌가 팔짱을 끼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네가 바라던 대로, 그 자리에 있던 물쌍한 녀석들을 처리하고 땅을 파봤다. 그랬더니 웬걸, 검은 물이 펑펑 솟아나지 뭐야. 그게 뭔지는 다행히 잘 알고 있었어. 도대체 누가 속삭였는지는 몰라도, 이런 선물을 주다니! 내 고향에서는 그보다도 못한 것을 두고 서로 치열하게 물어뜯었지. 이거면 축생계가 변하기엔 충분하고 넘치지!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이 검은 물을, 그 물이 솟아나는 우물을 탐내기 시작하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내 고향의 그 한심한 놈들처럼, 탐욕으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도록!”
“참나, 그래서 너는 정작 더는 욕심이 안 난단 말이냐?”
유마는 기가 찬다는듯이 혀를 차며 묻자, 야치에는 킬킬 웃었다.
“당연하지, 내가 왜 욕심을 부려야 하지? 내가 모조리 독차지하면, 되려 내가 무서워서 빼앗을 염두도 못 낼텐데? 한심한 놈들이 마음껏 차지할 수 있도록 적당한 몫을 남겨두면, 욕심이 나서 서로서로 물어뜯을 텐데? 내가 원하는 건 축생계도 꼴사납게 서로 싸우는 광경이다. 검은 물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싸우기만 하면 그걸로 좋다. 검은 물이 얼마나 귀한지, 내가 그걸 얼마나 차지하는지 따위는 내 알 바 아니야.”
“하, 그거참 고상하기도 한 검소함이구나! 내가 속삭였을 때는 잘도 차지했으면서!”
“그래서 말했잖아. 그 점은 고맙다고. 그럼 이제 내가 물어보지. 넌 대체 왜 그렇게 나를 부추기는 거지? 검은 물을 욕심 내라고, 모두 차지하라고. 처음에는 고마웠을지 몰라도 이제는 슬슬 지겨워지거든. 도대체 왜 그렇게 내게 욕심을 부리라고 부추기는 거지? 그러는 넌 대체 뭘 원해서?”
야치에가 그렇게 되묻자 이제는 오히려 유마가 깔깔 조소했다.
“나? 나로 말하자면 세상에서 제일 욕심이 많은 놈이기 때문이지. 아니, 내가 욕심, 탐욕 그 자체다! 네놈들이 뭘 원하던, 뭘 갈망하던, 결국 다 내게로 오게 되어 있다! 그래, 내가 엉뚱한 놈을 부추겼다는 건 인정하지. 네놈은 그래도 똑똑해서 석유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고, 끝도 없이 탐할 줄 알아서 널 부추긴 거였지. 그래야 결국은 네가 모조리 차지한 석유도, 그 탐욕도 다 다시 내 것이 될 테니까!”
“아, 그래서 지금 나타났다는 거야? 계속 부추겨도 내가 더 욕심을 안 내서? 내가 독차지한 우물들을 한 번에 다 차지하려고 했는데 내가 도통 그러려고 하지를 않아서?”
“그래,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이런 욕심 없는 바보 천치에게 뭘 더 바랄 수 있겠나! 이제는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 네놈의 그 어처구니없는 이상도 희망도 다 무너뜨려 주마, 네가 차지한 석유라도 내가 다 독차지하고, 나머지 석유도, 시추탑도 모조리 내 것으로 만들어버려야겠다!”
유마는 어느샌가 자기 키보다도 거대한 은빛 막대를 꺼내 들어 위협적으로 한 바퀴 빙글 돌린뒤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머리를 야치에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야치에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른한 눈빛으로 유마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그러니까 너는 욕심쟁이라 이건가.”
“아니, 나는 욕심 그 자체다. 그러니 네겐 승산 따윈 없어. 네가 석유를 욕심내면 낼수록, 그래서 내게서 힘으로 지켜내려 하면 할수록 결국은 그게 고스란히 네 힘이 되니까!”
“내가 욕심을 내지 않으니, 이제 네가 직접 가지겠다? 그렇게 내게서 뺏으면 어쩌려고?”
“넌 생각이란 걸 못하는 거냐? 어쩌긴 어째, 나머지 석유도 모조리 내 차지로 해야지!”
“네가 다 차지하고 나면 심심하지 않겠어? 더 빼앗을 게 없으면 이제 더는 재미 볼 일이 없지 않아?”
야치에의 질문에 유마는 자신의 속에 있던 비웃음을 모조리 담아 웃었다.
“넌 정말 바보 멍청이구나! 그런 걱정이나 하다니! 내 욕심에는 끝이 없고 남들의 욕심도 마찬가지다! 내가 다 차지해도 누군가는 내 몫을 계속 탐낼 텐데 무슨 상관이람! 내 몫에 탐을 내는 놈들의 욕심도 내 몫, 내 욕심도 내 몫! 내가 석유를 다 차지하고 떵떵거릴수록 내 몫을 탐낼 놈들이 계속 생길 테니 그런 걱정일랑 말아라!”
유마의 대답에 야치에는 잠시 시선을 옆으로 돌리고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유마가 쇠붙이를 꺼낸 순간 그녀의 오른손에도 날카로운 단검이 들려 있었지만, 그녀는 그 단검을 유마에게는 겨누지 않고 손잡이만 만지작거렸다. 느긋함마저 느껴지는 그 모습에 유마는 이를 갈면서 성을 냈다.
“하! 나랑 거래라도 할 궁리인 거냐! 그런 희망 따윈 접어두시지, 내가 바라는 건 네 전부니까! 내게 내놓던지, 의미 없이 결국은 내 것이 될 네 욕심을 안고 발버둥이라도 쳐봐라!”
“좋아, 내 우물 줄게. 전부 다.”
“그래, 어디 한 번 네 실력 좀...”
“준다니까? 전부?”
“뭐? 준다고?”
야치에가 따분한 표정으로 갑작스러운 답변을 내놓자 유마는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준다고. 말했잖아. 난 그 검은 물을 원해서 우물을 차지한 게 아니야. 굳이 너랑 욕심을 부리면서 싸워서 지킬 필요는 없지. 그래, 네가 정말 탐욕 그 자체라면 어차피 이길 것 같지도 않고.”
“혹시 이상한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면...”
“그래, 수상쩍을 테니 설명해 줄게. 그 검은 물과 우물, 네가 원하는 만큼 다 가져. 네가 말한 것처럼. 그리고 네 몫을 탐내는 놈들까지 혼쭐내주고. 나도 그걸 원하거든. 나도 너처럼 무얼 원하는지 다 말해줬잖아?”
“네 고향처럼...”
“그래, 내 고향처럼만 되면 돼. 내겐 별 의미도 없지만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바보같이 싸우기만 하면 돼. 나는 그 꼴을 보면서 비웃기만 하면 되고.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차피 검은 물은 내가 안 가져도 될 것 같아서 말이야. 네가 가지기만 하면, 더 심한 꼴로 만들어줄 것 같으니까.”
유마는 아직도 야치에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넋 나간 표정이었다. 이젠 야치에가 있는 힘껏 비아냥을 담은 미소를 보내고는 등을 돌렸다.
“그러니 제대로 해 줬으면 좋겠어. 네가 부르는 그 석유라는 걸로 이 축생계란 곳을 아주 잔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곳으로 만들어 버리란 말이야. 내 소유물을 받아 가놓고 제대로 안 하면, 그때야말로 진짜로 화낼지도 몰라. 그걸 원한다면 그래도 되겠지만, 아니겠지? 네 욕심이 얼마나 여길 잔혹하게 만드는지 기대하며 지켜볼게.”
야치에는 그러고는 빙글 단검을 돌려 옷 안으로 집어넣고는 황야로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지켜보던 유마는 갑자기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에 몸을 맡기며 칼칼 웃음을 터트리며 야치에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그래! 이 석유는 내 거다! 이 석유도, 시추탑도, 모조리 내 거다! 모두 내 것으로 만들어주마! 이 석유는 내 것이다!”
유마는 야치에의 뒷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 그렇게 외치면서,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춤에 호응하듯이 잠잠하던 시추탑이 갑자기 진동하고, 그 아래의 구멍에서는 석유와 가스가 축생계의 높디높은 천장을 향해 솟구쳤다. 마치 그 천장 정도로는 계속해서 솟아나는 석유를 막아낼 수 없다는 듯한 기세로.
“모두 내 것이다! 축생계의 석유는 모두 내 것이다! 그걸 탐내는 놈들의 욕심마저도, 내 욕심도!”
킷초 야치에는 등 뒤에서 끝없이 메아리치는 토테츠 유마의 광소를 들으며 덩달아 웃었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을 좋아한 적도, 그리워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축생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녀는 축생계가 앞으로 자기 고향처럼 변할 모습이 너무 기대가 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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