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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글알못 팬픽대회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나에 - 안쓰는계정

 

새하얀 눈이 내리는 날.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여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자아냈다.

 

나도 이 순백의 눈처럼 마음속 고민이 해결되면 좋으련만.

 

하지만 나는 여러 가지 고민들로 인해 마음에 안개가 낀 상태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러하다.

 

 

"우리 모리야 신사가 인간을 습격하는 요괴 퇴치에 대한 의뢰를 제일 먼저 받았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일을 해결하는데 막힘이 생겼다면 카나코님과 스와코님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게 아니겠냐고.

 

하지만 지금의 나, '코치야 사나에'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두 분한테 기대기만 한다면 어엿한 한 명의 무녀가 될 수 없을 테니까, 나 스스로 성장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두 분의 도움 없이 나 혼자 해결하겠다고 조금 고집을 부린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조금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스스로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는 도중 커다란 벽에 부딪혔다는 얘기다.

 

 

"뭐, 말은 이렇게 했어도... 그 요괴의 습격에 대한 내용이 하쿠레이 신사와 묘렌사에까지 퍼지긴 했지만 모리야 신사가 제일 먼저 의뢰를 받았으니 내가 해결해야 해."

 

 

레이무 씨와 히지리 씨.

나와 같이 환상향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말이다, 나는 나 스스로 해결하고 싶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인간 마을로 향하는 중이었다.

 

인간 마을을 습격한다는 요괴에 대한 단서라도 찾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그와 동시에 눈이 밟히는 소리가 자박자박- 들려오더니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머, 사나에 양이군요.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묘렌사의 히지리 씨가 나타났다.

그런 히지리 씨가 대나무 삿갓을 쓴 채로 달려오는 모습에 나는 조금 의문에 빠졌다.

 

그 이유는 일부러 우연히 만났다는 듯이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인간 마을 입구에서 서성이는 나를 히지리 씨가 우연히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때쯤, 히지리 씨가 나의 손을 덥썩- 잡았다.

 

 

"저랑 잠깐만 앉아서 얘기를 하시겠어요? 분명 사나에 양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어떻게 내가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챈 걸까.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바람에 날 끌어당기는 힘에 그대로 몸을 맡기고 말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적당한 높이의 나무 밑동이 있는 장소였다.

 

나무 밑동에 앉은 히지리 씨는 내가 앉을 자리에 쌓여있는 눈을 손으로 치웠다.

 

일단은 그 친절을 받아들여 다소곳이 앉았다.

 

 

"저는 지금 굉장히 신경이 쓰여요, 사나에 양의 초췌한 얼굴이.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인지 저한테 얘기해줄 수 있을까요?"

 

 

초췌한 얼굴.

지금의 내가 그런 얼굴을 하고 있다는 얘기일까.

 

솔직히 잘 믿기지는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됐다.

 

최근 일주일 동안은 인간 마을을 습격하는 요괴를 잡겠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었으니까.

 

그 탓에 내가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게 조금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히지리 씨를 만나기 전에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겠지.

 

아무튼 지금은 나를 걱정해 주는 히지리 씨의 질문에 대답하는 게 도리라고 할 수 있으리라.

 

 

"······실은 인간을 습격한다는 요괴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부터 빨리 그 이변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고요."

 

"모리야 신사가 이변을 먼저 해결함으로써 생길 부가적인 이익, 참배객들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인가요?"

 

"그건 아니에요... 단지 환상들이를 하기 이전의 생각이 기억나는 바람에..."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

환상들이를 하기 전의 경험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 지금의 나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그런 것이었구나......

 

한 마디로 바깥세상에서 무녀를 하던 때의 경험들 때문이리라.

 

그때는 신을 믿는 존재가 손에 꼽을 정도라 신앙심이 턱없이 부족했었지, 그래서 카나코님과 스와코님의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았었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내가 대표로서 이변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모리야의 신사의 평판과 신앙심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 때문에 그런 모양이었다.

 

히지리 씨는 내 표정을 통해 생각을 읽으셨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모리야 신사가 환상들이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말이죠, 과거의 불안한 기억들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억울하지 않겠어요?"

 

"후, 말씀은 감사해요. 하지만 모리야 신사가 제일 먼저 알게 된 이상, 저는 그 이변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해요. 다시 무력했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

 

"바깥세상에서의 저는 정말 부족한 무녀였거든요..."

 

 

격려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언정 내 마음속의 불안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한 마디로 내가 먼저 이변을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린다고 보는 게 알맞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바깥세상에서 신을 모시는 무녀의 존재가 부정되던 시절, 신의 존재 자체가 허구라고 여겨지던 시절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사나에 양, 정신 차리세요! 왜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건가요, 어째서 지금까지 쌓아온 일들의 성과를 없던 것으로 만들려는 건가요?"

 

 

히지리 씨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 덕분에 불안한 생각이 조금 사라졌다.

 

어찌하여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생각을 했던 걸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이 지금의 나를 절벽 끝으로 밀어붙인 것일지도 모르리라.

 

그래도 히지리 씨의 진심 어린 충고 덕분에 정말 조금은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의 사나에 양은 몸에 긴장이 많이 들어간 탓에 마음이 급해진 거예요, 그러니 처음부터 차근차근 생각해 볼까요?"

 

"네...? 어떤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건가요...?"

 

"지금 하쿠레이 신사, 모리야 신사, 묘렌사가 공동으로 수사해서 찾아낸 단서는 어떤 게 있죠?"

 

 

좋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마을에서 인간이 습격당한 이변의 실체는 이러하다.

마을 외곽에 사는 가정집, 부모와 자식들이 있는 집만이 습격을 받았다고 한다.

 

요괴의 공격을 받은 집의 내부는 혹한의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얼어붙었다고 했었지.

 

그리고 중요한 점은 요괴가 냉기로 습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자가 없다고 했었다.

 

최종적으로 요괴가 인간을 죽이지 않고 자취를 감췄다는 점 때문에 사건이 미궁에 빠졌다는 것이 떠올랐다.

 

 

"표정을 보니 잘 떠올린 모양이네요, 아무튼 저와 레이무는 그 단서로 인해 이번 이변을 일으킨 요괴의 정체에 대해 알아챘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인간을 극한의 냉기에 얼어붙게 하고는 정작 죽이지는 않는 범인의 정체를 알아냈다고요?"

 

"잘 생각해 보세요. 단란한 가족만을 질투해 공격함과 동시에 냉기를 다룰 줄 아는 요괴는 단 하나뿐이잖아요?"

 

"아... 그 정체는 유키온나, 즉 설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내 말에 히지리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나는 설녀라는 것을 떠올리지 못했던 걸까.

정확히 말하자면 내 마음이 너무 급했기 때문에 그 단서로 정확한 추리를 하지 못한 것이겠지.

 

그래도 이렇게 히지리 씨가 계속해서 나한테 친절을 베풀어 주신 덕분에 나 스스로 설녀라는 것을 추론하게 됐다.

 

아무튼 설녀라고 하면 그 얘기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나무꾼이 주인 없는 오두막에서 산의 눈보라를 피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찾아온 설녀가 나무꾼을 죽이려 했지만 결국은 목숨을 살려줬다는 이야기,

단, 자신의 얘기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으로 말이다.

 

그렇게 목숨을 건진 나무꾼은 훗날 '오유키'라는 어여쁜 인간 여자과 만나 자식을 낳게 됐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나무꾼은 어리석게도 오유키한테 설녀의 이야기를 하게 됨과 동시에 오유키의 정체가 설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후 설녀는 원래대로라면 나무꾼을 죽여야겠지만, 자식들 때문에 나무꾼의 목숨을 살려준 채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환상향의 인간 마을에서 일어난 이변과 더불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짐작해 볼 수 있으리라.

 

 

"자신은 이루지 못한 화목한 가정을 질투한 것이겠지요, 그 질투심이 인간의 습격으로 이어진 것이고요."

 

"그렇다면 다음 습격도 가족이 있는 집을 노리겠네요?"

 

"그렇죠, 과거의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라면 필시 그렇겠지요."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침착하게 추리를 하는 모습엔 일말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럼 일단 상황을 살피러 마을에 가요. 여기서 계속해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말은 이렇게 했어도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추구하는 이 길이 옳은지, 나아가고자 하는 방법이 맞는지.

 

그래도 말이다, 왠지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멈춰 서고 싶지는 않았다.

 

히지리 씨의 격려로 인해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됐으니까.

 

아무튼 아직 마음속의 응어리들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멈춰 서 있는 것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게 좋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나는 조금의 침묵 이후 히지리 씨를 따라 마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뽀드득뽀드득- 거리며 눈 밟히는 소리만 들려오는 상황.

이로 인해 과거 바깥세상에서 보냈던 마지막 겨울이 떠올랐다.

 

물론 그 마지막 겨울에도 신사에 찾아오는 참배객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예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공허하지 않았어.'

 

 

나를 위해 힘 써주신 카나코님과 스와코님.

두 분은 내가 과거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나를 꼬옥- 안아 주셨었지.

 

그런데 지금의 나는 두 분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이고 말았었구나.

 

이번 이변이 해결되면 꼭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역시 지금은 이렇게 말해도 마음이 조금 혼란스러울 거예요, 그러니 직접 부딪히고 경험해 봐야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티가 났나 보다.

히지리 씨가 마을로 길을 걸어가던 도중 나를 보며 말씀을 걸어왔으니까.

 

아마 평소의 나라면 이런저런 얘기를 했을 텐데 말수가 적은 탓에 그런 것이겠지.

 

나는 여기서 히지리 씨의 말에 대답을 하기 보다는 저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판단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마을 입구에 들어서게 됐다.

 

 

"자자,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만들어진 두꺼운 이불 보고 가시지요!"

 

"여기 팥이 잔뜩 들어간 단팥빵이 있습니다, 든든한 한 끼로 제격이니 와서 구경해 보십시오~."

 

"이 추운 날씨에 딱 껴입기 좋은 하오리(羽織)가 있으니 한 번 시착해 보시겠습니까?"

 

 

활기찬 마을.

설녀의 습격 사건이 어느 정도 마을에 퍼졌을 텐데 불안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다니.

 

나는 분명 마을의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말이다.

 

그로 인해 노점상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걸어가던 도중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설녀의 습격 사건이 마을 외곽에서만 일어난지라 중심부에 사는 사람들은 모르는 건가요?"

 

 

그래서 히지리 씨에게 물어봤다.

 

내 의문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이런 거다.

마을 중심에 살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슬럼가에 사는 사람들한테 관심이 없는 그런 거 말이다.

 

그러자 대나무 삿갓을 고쳐 쓴 히지리 씨가 조금 걸음을 늦추며 내 질문에 답을 해주셨다.

 

 

"그럴 리가요, 다들 알고 있어요. 요괴가 인간을 습격한 사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모를 수가 없죠."

 

"······."

 

"역시 사나에 양이 겉으로는 태연하게 행동했지만, 마음속에는 아직도 불안이라는 불씨가 피어나는 것 같네요. 그럼 이렇게 할까요?"

 

 

말씀을 하신 이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히지리 씨.

이윽고 순식간에 걸어왔던 길을 거슬러 뛰어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웠기에 뭐라 말을 할 틈도 없이 히지리 씨가 걸어간 방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후 3분 정도 지나자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타났다.

 

손에 들려있는 것은 바로 조금 전에 호객 행위를 했던 노점상의 단팥빵이었다.

 

 

"최근 이변 해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쳤을 거예요. 그러니 잠깐만 쉬도록 해요."

 

 

또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마을의 쉼터라고 할 수 있는, 한적한 곳의 나무 벤치로 말이다.

 

그보다 내가 이렇게 쉽게 몸을 맡기게 될 줄이야, 정말 최근 받은 피로가 보통이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든 나는 저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됐기에 벤치에 도착한 후, 차분하게 앉았다.

 

그제서야 만족한 듯한 히지리 씨는 내 옆에 앉아 단팥빵을 건넸다.

 

 

"사나에 양이 제일 좋아하는 빵이죠? 그러니까 어서 빨리 들어요."

 

"네, 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항상 같이 이변을 해결하는 동료인데 모를 리가 없잖아요? 그 정도쯤은 기본이죠."

 

 

그 말과 함께 빵을 보자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환상향에서는 물론이고, 바깥세상에서도 좋아하는 빵이었지.

 

카나코님과 스와코님이 어린 시절의 나한테 이걸 주셨으니까.

 

그래서 환상향에 와서도 늘 단팥빵을 입에 달고 살았어.

 

 

'근데 그러고 보니 나, 최근에 단팥빵을 먹은 적이 없구나. 최근 이변 해결을 하겠다고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고, 모리야 신사에서는 잠만 자고 대부분을 밖에서 활동했으니까...'

 

 

나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히지리 씨가 준 단팥빵을 받았다.

그 직후 바로 입에 갖다 대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폭신한 빵의 촉감과 함께 팥에서 느껴지는 알맞은 수준의 단맛이 나를 반겨줬다.

 

그렇게 한 입, 두 입씩 베어먹자 나도 모르는 사이 단팥빵이 내 손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후... 이제 좀 진정이 되네요. 그보다 아까 마을 사람들이 설녀에 대한 습격을 알고 있다고 했잖아요, 근데 왜 사람들이 내색하지 않는 걸까요?"

 

"그건 간단해,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안해할 필요가 없으니까."

 

 

깜짝 놀랐다.

나무 벤치 뒤에서 갑자기 레이무 씨의 목소리가 들려 왔으니까.

 

내가 얼마나 단팥빵을 먹는 데 집중했으면 레이무 씨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걸까.

 

아무튼 레이무 씨는 내게 그런 말을 한 이후, 내 옆에 앉았다.

 

참고로 지금 풍경을 요약하자면 셋이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았는데 내 양옆에 레이무 씨와 히지리 씨가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보다 레이무 씨가 한 말은 무슨 뜻일까.

 

 

"한 마디로 마을 사람들이 나랑 히지리, 사나에가 이변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런 거야."

 

"우리를 믿어서...?"

 

"그래, 그러니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 지금까지 네가 보여준 스스로의 가능성과 능력을 믿고 행동해."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믿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믿으라고 얘기했다.

 

그로 인해 나는 드디어 깨닫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걸어왔던 길에 대한 얘기이리라.

 

걸어온 길을 부정하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길을 걸으면서 이루어 낸 결실들을 되새겨야 하는 것이겠지.

 

그 격려로 인해 드디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가 나를 믿고 당당하게 행동해야 마을 사람들 역시 나를 믿음으로 인해 신앙심이 생겨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그런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데 이리 오래 걸릴 줄이야.

 

고개를 숙이며 사색에 빠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두 사람과 시선을 마주하자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레이무 씨는 대단하네요. 불안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의젓하시니까."

 

"나도 너랑 똑같은 무녀야, 그런데 어떻게 마음속의 불안함이 아예 없겠어?"

 

"네? 그럼 어째서..."

 

 

당황했다.

레이무 씨 역시 나처럼 마음속에 불안함이 있다고 말했으니까.

 

나는 레이무 씨가 환상향에서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그 불안함을 없앤 걸까.

 

그 방법이 무척 궁금해리져던 찰나 레이무 씨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시원하게 해줬다.

 

 

"나를 도와주는 유카리가 있기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그건 히지리 역시 마찬가지겠지."

 

"맞아요, 저 역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묘렌사의 식구들이 있기에 힘을 낼 수 있는 거랍니다."

 

 

그렇구나.

쓸쓸히 혼자 해결하는 게 아니라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

 

그 말 덕분에 또 하나 알아챈 게 있다.

 

바깥세상에서는 카나코님과 스와코님이 보통의 사람들한테 보이지 않아 신사의 일을 나 혼자 했다면 환상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걸.

 

환상향에서 신사의 포교 활동을 같이해주신다는 걸.

 

과거의 불안한 기억에 사로잡혔던 나는 순간적으로 지금의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아무튼 각자 정보를 수집하다 모인 거니 이번엔 다 같이 마을 외곽을 조사하러 가보자. 셋이 동시에 조사하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올 거야."

 

"거기다 이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분명 사나에 양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고민과 불안도 전부 말끔히 해소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다.

카나코님과 스와코님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나랑 같이 환상향을 위해 힘쓰는 두 사람이 있으니까.

 

그리고 히지리 씨는 이번 이변을 해결하는 것이 내 마음속의 고민과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도 얘기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요약해 보자.

 

나는 고민에 빠졌었다, 일이 잘못되면 과거의 모리야 신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하지만 둘은 내가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줬다.

 

그와 동시에 이번 이변을 해결하면 내 마음속의 응어리들을 없앨 수 있다고까지.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정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네, 지금 당장 인간 가족을 노리고 있을 설녀를 추격하도록 해요!"

 

 

나아가야 한다.

더이상 불안했던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으면 안 돼.

 

오로지 과거부터 지금까지 느끼고 있는 카나코님과 스와코님이 나한테 보여주는 애정만 기억하면 돼.

 

이로써 먹구름이 가득 낀 망망대해를 누볐던 나는 여러 줄기의 빛을 발견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그 빛을 향해 확실하게, 숨김없이 말을 내뱉었다.

 

 

#

 

 

······그렇게 결심을 한 나는 둘과 함께 마을 외곽을 꼼꼼히 조사하러 나섰다.

 

 

마을 외곽 지역은 크게 4개로 나눠지기에 최대한 서둘러야겠지.

 

첫 번째로 도착한 마을 외곽에서는 사악한 요괴가 뿜어대는 수상한 요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서둘러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하지만 두 번째 장소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요기는 감지하지 못했다.

 

그렇다 할지언정 이제 남은 후보지는 두 곳,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가는 우리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각오를 다진 마음과 함께 세 번째 마을 외곽에 도착하자 뜻밖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늘색의 긴 머리카락과 흰색의 소복을 입은 여인 말씀이신지요...? 그 여인이라면 저기로 걸어가는 것을 봤답니다.」

 

 

노파한테서 얻은 정보.

우리는 그 단서와 함께 네 번째 마을 외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뭔가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미세하게 요기가 풍겨 나오고 있다는 걸 파악했으니까.

 

만약 셋이 같이 조사하는 게 아니라 단독으로 행동했다면 그냥 무심코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 같이 위화감을 느꼈기에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네 번째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끈적하고 기분 나쁜 요기가 조금 전보다 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다른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할게, 민간인이 휘말릴지도 모르니까. 사나에랑 히지리 둘이서 갔다 와."

 

 

스스로 역할을 정한 레이무 씨.

그 말에 나와 히지리 씨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불필요한 말은 할 필요가 없으리라, 속전속결로 요괴를 퇴치하는 것으로 대답하면 될 테니까.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빈집이 많은 마을 외곽.

최대한 기척을 숨긴 상황에서 감각을 집중해 요기를 감지하는 중이었다.

 

히지리 씨와 붙어 다니면서 띄엄띄엄 있는 집들을 조사하던 찰나에.

 

 

"앗, 저기서 강한 요기가 느껴집니다! 사나에 양도 느꼈죠? 어서 빨리 갑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서늘한 요기가 느껴졌다.

그 탓에 우리는 서둘러 요기의 발원지를 향해 뛰어갔다.

 

부디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도착한 초가집.

 

나와 히지리 씨는 누가 뭐라 할 틈도 없이 각자 주먹으로 초가집의 입구를 부쉈다.

 

그와 동시에 드러난 내부에 조금 충격을 받고 말았다.

 

눈이 내리는 바깥보다도 더 서늘한 냉기가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집의 중앙에는 하늘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짐과 동시에 새하얀 소복을 입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무녀와 주지승이 나타날 줄은 몰랐군요. 하지만 제가 하는 걸 방해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본 설녀가 입을 열었다.

 

일단 주변 상황을 먼저 파악하자.

설녀를 중심으로 퍼진 냉기로 인해 집 내부가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그 집의 내부에는 거주자로 보이는 엄마와 아빠, 아들로 이루어진 3인 가족이 극심한 추위로 인해 바닥에 누워 기절한 모습이 보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우리가 조사한 대로 아무런 사상자도 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매우 위험한 상황이란 건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이리라.

 

 

"이쪽으로 오신다면 이 인간들의 목숨은 보장해 드릴 수 없습니다. 어서 이 집에서 나가시죠."

 

 

우리를 협박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 요괴가 어째서 인간을 습격하였는지에 대해 물어봐야겠지.

 

그걸 물어봄으로 인해 이 요괴가 인간을 습격한 진위를 파악함과 동시에 이 상황을 해결할 대책을 구상할 수 있을 테니까.

 

 

"어째서 당신은 무고한 인간한테 해를 입히는 거죠?"

 

"······."

 

 

설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나와 히지리 씨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조금 과격하게 나가야겠지.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인질들의 확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고, 질투로 인간들을 습격한다고 해서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웃기지 마,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침착함을 잃게 만들어 소리를 지르게 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 증거는 바로 거리가 떨어진 이곳에서도 느껴지는 거칠어진 숨소리였다.

 

참고로 누군가는 이 상황을 보고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인질을 잡고 있는 범인을 흥분시켰는지에 대해서.

 

요괴는 정신적인 공격이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니 도발을 함으로써 정신을 흔들어 놔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 과정에서 인질을 헤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랑 히지리 씨가 같이 온 상황에서 그런 어리석은 도박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 후, 나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증명하듯 설녀가 약간 흥분한 상태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로 인해 인질과의 거리를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후우... 나는 인간 가족의 화목한 모습을 보면 견딜 수가 없어. 미쳐버릴 것 같아..."

 

 

순간적으로 진정되는 듯 보였지만, 다시 감정에 혼란이 왔는지 순순히 이쪽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이로써 작전의 절반은 성공했다.

 

부상자는 있을지언정 아직까지 사망자는 없으니까.

 

계속해서 설녀가 말을 하는 것을 그대로 놔둔 다음, 인질을 구할 틈을 만들어 내면 되리라.

 

 

"무녀라면 내가 과거 나무꾼을 살려줌과 동시에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해 그의 앞에 나타난 것에 대해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어요. 그리고 훗날 나무꾼이 인간으로 위장한 당신한테 설녀의 얘기를 하는 바람에 정체가 드러난 당신이 아이들과 나무꾼의 곁에서 떠났다는 것까지도."

 

 

설화에 대한 이야기.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는 추가로 그 설화의 숨은 부분을 들을 수 있는 걸까.

 

잠깐의 침묵을 유지하는 설녀의 눈동자에서 서글픔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과거 눈이라는 고독함에 파묻혀 있었을 때, 나무꾼과 함께 가족을 이룬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지. 하지만 내 정체가 탄로나는 바람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어."

 

"······."

 

"뭐, 나무꾼이 내가 인간 '오유키'로 위장했을 때 설녀의 얘기를 하지 않았어도 달라지는 일은 없었을 거야. 평화가 이어졌더라도 인간인 나무꾼과 아이들은 죽고 또다시 나 혼자 남게 될 테니까."

 

"그래서 자신은 이제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없으니까 그게 질투가 나서 인간을 습격했다는 건가요?"

 

 

어리석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저 말로 인해 설녀가 어떤 이유로 인간을 습격했는지도 알게 됐다.

 

과거 나무꾼과 함께 화목한 가족을 이뤘다.

하지만 그게 영원히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무꾼이 인간으로 변장한 자신한테 설녀의 이야기를 한 것을 핑계 삼아 언젠가 무너질 미래에 대해 도망친 것이겠지.

 

그로 인해 가정을 이뤘을 당시의 행복했던 과거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그 과거에 사로잡힌 나머지 질투심이 생겨 인간들을 습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뱉은 마지막 말이 결정타로 작용했는지 설녀는 나를 공격하기로 결심한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난 너무 억울해... 인간들은 전부 행복하게 사는데 왜 나만 이래야 하는 거야...? 그러니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전부 부숴버릴 수밖에!"

 

 

드디어 히지리 씨의 말이 이해됐다.

과거의 불안한 기억에 사로잡힌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말의 의미를.

 

그게 지금의 설녀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만약 내가 계속해서 과거의 불안한 기억에 발이 묶인다면 환상향에서 펼쳐질 모리야 신사의 밝은 미래를 없애는 것과 다름이 없겠지.

 

어쨌든 나의 작전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설녀의 평정심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날카로운 푸른색의 고드름 3개를 만들어 내가 있는 쪽으로 날렸으니까.

 

나는 그 즉시 몸을 낮춰 날아오는 고드름을 피했다.

 

 

설녀의 이목이 나한테 쏠렸다, 그렇다면 지금 히지리 씨가 취할 행동은─

 

 

"사나에 양, 인질로 잡힌 인간들의 안전을 확보했어요! 그러니 이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연히 인질들의 확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아빠와 엄마, 아들을 품에 안고 멀찍이 떨어진 히지리 씨의 모습을 본 설녀가 당황했다.

 

내 작전에 걸려들어 과거 얘기를 하는 탓에 방심을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리라.

 

그래, 이번 이변을 해결하게 되면 내 마음속의 고민과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구나...

 

 

"당신은 과거에 나무꾼과 가족을 이룬 것에 대해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겠죠, 하지만 그 행복이라는 과거에 붙잡혀 아무런 죄 없는 인간들을 질투하는 것도 모자라 해를 입히다니.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채 과거에 사로잡힌 당신을 퇴치하겠습니다!"

 

 

나는 불제봉을 든 채로 전진했다.

그러자 이번엔 설녀가 고드름 대신 여러 개의 작은 눈꽃을 만들어 나한테 날리기 시작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공격.

 

일단 나는 달려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발을 이용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회피했다.

 

 

"크윽, 감히...!"

 

 

초조해 보이는 모습의 설녀.

그 후 다시 앞을 향해 똑바로 달려가는 나한테 눈꽃을 총알처럼 날렸다.

 

만약 여기서 한 대라도 맞게 된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테니 무조건 피해야 한다.

 

나는 그런 비장한 각오와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점프했다.

 

그로 인해 거리가 좁혀진 상황이 벌어지자 설녀는 눈꽃 모양으로 된 흰색의 투명한 방패를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제봉을 횡으로 휘둘러 방패를 깸과 동시에 설녀를 공격하는 데 성공했다.

 

쨍그랑- 하며 방패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힌 설녀, 이제 최후의 공격을 날릴 때가 다가왔다.

 

 

"기원 「장사번성 부적」!"

 

 

내 옆에 소환된 분홍색의 부적.

이 여러 개의 부적들이 슈웅- 하는 소리와 함께 설녀를 향해 날아갔다.

 

설녀는 공격과 방어로 인해 힘을 많이 소모했는지 피하지 못한 채로 공격을 허용해 벽에 꽂히게 됐다.

 

최후의 공격으로 내가 손가락에 끼운 부적을 직접 날려 몸에 꽂자 설녀의 모습이 흰색의 모래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후 설녀의 한 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나에 양, 훌륭하게 해결하셨네요. 저 눈물을 흘리는 마지막 모습이 과거에 얽매인 자의 최후겠지요."

 

"히지리 씨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는 말씀을 하고 싶었던 건가요?"

 

"네, 맞아요. 아무리 슬픈 과거의 기억을 갖고있다 할지언정 그 기억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나가지 못한다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으니까요."

 

 

이때까지는 내가 가진 과거의 기억들 때문에 불안함을 느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히지리 씨와 레이무 씨의 격려, 그리고 이번 이변을 겪고 궁극적으로 깨달은 게 있으니까.

 

과거의 불안함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고, 내가 이룬 결실들을 되새기며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좋아요, 그럼 이제 나머지 일을 처리하러 가요!"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히지리 씨도 싱긋-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참고로 처리해야 하는 일은 이 설녀라는 요괴를 쓰러뜨렸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한테 알리는 것이다.

 

그래야 마을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테니까.

 

거기다 추가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을 레이무 씨한테도 승리의 소식을 전해 줘야겠지.

 

아, 그리고 과거 바깥세상에서 스스로 부족한 무녀라고 자책하고 폄하했던 기억은 묻어둘 것이다

 

카나코, 스와코님과 함께 지냈던 행복했던 추억만을 가지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전진할 테니까.

 

 

 

 

 

·········

 

 

 

 

 

잠에서 눈을 뜬 나를 반겨주는 건 익숙한 모습의 천장.

아마 모리야 신사에 별도로 마련된 나의 방이니까 그렇게 느끼는 것이겠지.

 

몸을 일으켜 다다미가 깔린 모습의 방을 보니 최근의 일이 떠올랐다.

 

 

"설녀가 일으킨 이변의 뒤처리를 한다고 한 이틀 정도 고생했었지, 그래서 오랜만에 이렇게 늦게까지 잔 거고..."

 

 

주위를 둘러보고 깨달은 사실.

그것은 향림당에서 구매한 자명종의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와 동시에 어제 마을 사람들한테 설녀의 퇴치를 알린 후, 모리야 신사에 오자마자 기절하듯이 잠든 게 떠올랐다.

 

오랜만이었다.

최근 무언가에 쫓기듯이 잠을 설친지라 숙면을 취한 적이 없었으니 그런 것이겠지.

 

일단 밖에 나가 두 분을 봬야 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그다음 흰색의 파자마를 가지런히 벗은 다음, 거울을 보며 나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푸른색의 무녀복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상의와 하의를 챙겨 입었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머리띠와 머리 장식을 착용하면 끝.

 

신사의 거실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자 인기척이 들려왔기에 장지문을 스르륵- 열고 들어갔다.

 

 

"아, 드디어 일어났구나. 너무 늦게 일어나는 건가 싶어 깨우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바닥에 앉아 계신 카나코님의 말씀.

하긴, 내가 이 정도로 늦게까지 잔 적은 거의 없었으니 당연하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스와코님 역시 카나코님의 말씀에 동의하셨는지 좌식 테이블에 팔을 올려놓으신 채로 고개를 끄덕이고 계셨다.

 

저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덕분에 지금은 전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평소랑 똑같이 나를 대해주시는구나.

 

분명 며칠 전에 이변을 혼자 해결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스와코님이 품에서 신문을 꺼내 펼치셨다.

 

 

"와서 이것 좀 봐봐, 여기 우리 사나에가 이번 이변을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나오네. 모리야 신사의 신으로서 정말 자랑스러운걸?"

 

 

붕붕마루 신문의 1면.

그곳에는 아야 씨가 나를 인터뷰하면서 찍은 사진이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

 

그때는 인터뷰를 한다는 말에 조금 긴장을 했었는데.

 

사진상으로는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됐다.

 

어쨌든 스와코님의 말씀에 카나코님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뭔가를 숨긴다 싶었더니 붕붕마루 신문일 줄이야, 나한테는 미리 좀 보여주지."

 

"그러면 재미없잖아? 서프라이즈로 공개해야 그 감동이 곱절로 늘어나는 법이라고."

 

 

익숙한 대화.

너무나도 친숙한 대화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저 반응으로 인해 다시 한 번 모리야 신사라는 곳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장소인지도 다시 곱씹게 됐다.

 

그렇다면 여기서 죄송하다는 말을 건네야겠지.

 

어린애처럼 투정을, 고집을 부렸던 것에 대해 서운하다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니까.

 

 

"저, 할 말이 있어요. 일주일 전에 혼자 이변을 해결하겠다고 두 분의 호의를 거절한 거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그것 때문에 속상하셨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두 분이 나누던 대화 소리가 끊겼다는 걸 파악했다.

 

아무래도 내가 갑작스럽게 사과를 한 탓이겠지.

 

원래대로라면 좋은 소식에 같이 기뻐해야겠지만, 의외의 말을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리라.

 

어찌 됐든 지금의 나는 이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이제 많은 것을 깨달았기에 스스로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이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카나코님이 입을 여셨다.

 

 

"사나에는 그걸 마음에 묻어두고 있었구나, 하지만 우린 괜찮단다. 사람은 원래 다 그렇게 성장하는 법이니까,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고개를 들렴."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고개를 들라고까지.

 

그래서 고개를 들고 카나코님을 바라보자 상냥한 미소를 짓고 계신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직후 스와코님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괜찮아, 카나코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우린 어떤 모습의 사나에든 항상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렇구나.

나는 늘, 항상 사랑받고 있었어...

 

두 분이 짓는 상냥한 미소가 하늘에 떠 있는 태양보다도 밝게 빛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로 인해 나도 모르는 사이 뺨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걸 파악하게 됐다.

 

그 모습을 본 두 분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서로 껴안고 있다는 감각, 아마 이 따뜻함은 죽어서도 잊지 못 하리라.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에야 복받치는 감정이 조금 진정됐다.

 

 

"참, 그러고 보니 아까 찾아온 레이무와 히지리가 너한테 이 말을 전해달라더구나."

 

"네...? 레이무 씨와 히지리 씨가 찾아왔었어요...?

 

"그래, 사나에가 곤히 자고 있을 때 왔었단다. 그래서 말을 남기게 됐지."

 

 

내가 두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을 줄이야.

그만큼 지금의 내 마음이 안정됐다는 뜻이겠지.

 

그보다 정말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던 지라 말만 남기고 돌아갔구나.

 

과연 둘은 나한테 어떤 말을 전해달라고 했을까.

 

그 내용이 무척 궁금해지던 찰나에 카나코님이 속 시원하게 말씀해 주셨다.

 

 

"다시 자신감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앞으로 그 용기가 꺾이지 않기를 응원한다고 말이다."

 

 

둘은 진심으로 과거의 나를 걱정해 줬었구나.

하지만 이변을 해결한 직후부터 나는 변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과거라는 이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의 최후를 봄과 동시에 내가 추구해야 할 것이 뭔지 확실히 깨달았으니까.

 

요약하자면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고,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현재에 집중해야 미래라는 도화지에 아름다운 색을 입힐 수 있을 테니까.

 

모든 일들이 일단락된 상황 속에서 스와코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슬슬 배고프지? 이거 받아, 수고한 사나에를 위해 나와 카나코가 준비했어."

 

 

내게 건네신 건 아담한 크기의 단팥빵.

나는 그 빵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았다.

 

어린 시절의 나한테 힘을 내라면서 이렇게 단팥빵을 주시곤 했었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빵과 스와코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니 어서 빨리 먹으라고 손짓을 하고 계셨다.

 

아무래도 내가 늦게 일어난지라 배가 고프지는 않을까 걱정하셨기 때문에 저런 행동을 보이시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 친절함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게 올바른 도리일 것이다.

 

 

"네, 잘 먹겠습니다!"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지금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까.

 

그러니 이제 앞서 말했듯 나는 새로운 미래를 보며 달려 나갈 것이다.

 

 

 

새하얀 눈이 내리는 날, 나는 더이상 불안하지 않아. 이 순백의 눈이 가져다주는 포근함을 알았으니까.

 

 

 


 

 

 

 

2번 승화로 쓴 소설, 다른 인물들의 격려와 직접 겪은 사건들로 인해 스스로 무엇이 중요한지에 깨닫고 한 걸음 나아간다는 내용으로 씀

 

전에 쓴 것보다 묘사 자세하게 적고, 중간 부분 채워넣고, 전투씬 수정.

그리고 마지막 부분 전개는 아예 확 바꿈

 

근데 ~하리라 말투는 빼기 애매해서 그냥 유지함

 

전에 말한 대로 레티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