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회피하려고 노력했으나, 감평 특성 상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작품 감상 전이거나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먼저 작품을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1. 두근두근 위태위태 스키마탐험! - Letty
계획대로 전 작품 다 감평할 수 있을까? 게으른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써내리는 첫 번째 감평글입니다. 하루에 두, 세 작품씩이라도 해두지 않으면 마지막 날에 19작품 모두 몰아쓰는 참사가 일어날 거 같아서,, 대회 개최자 분 티스토리에 올라온 순서대로 씁니다.
작년에 여러 웹소설 사이트에서 사이다물이라는 장르가 유행했었습니다. 꽉 막힌 듯 답답한 상황을 연출한 뒤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전개로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 서술 기법, 전개 방식의 일종의 유행이었죠. 꽉 막히는 답답한 부분을 '고구마'에, 속을 뚫어주는 시원한 부분을 '사이다'에 비유해서 사이다물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작품도 어느 면에서는 비슷합니다. 저도 이 작품을 읽고 속이 뻥 뚫렸으니까요. 그렇지만 이 작품은 사이다는 아닙니다. 조금 더 나은 표현이 있습니다. 이 작품을 빗대기 적합한 물건은 사이다보다는 박카스입니다. 글로 된 박카스. 글카스. 속이 시원해지긴 하죠. 문제는 사이다처럼 묵힌 답답함을 아래로 내려보내는 게 아니고, 위로 게워낸다는 게 문제입니다. 제 속도 뻥 뚫렸습니다 하하. 하하…….
작품을… 감평을 하긴 해야 하니까… 뭔가 설명과 평가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글의 한 문장도 제대로 인용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대단합니다. 작가님의 저술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공포감이 느껴집니다..
가장 슬픈 점은, 아니 이걸 슬프다고 하면 안되긴 한데, 이 작품은 주제 의식이 굉장히 잘 드러난 글입니다. 제목에도 들어간 '탐험'이라는 주제는 글에 직접 서술되지 않았으나 너무나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탐험에 따라오는 새로운 경험의 낯섦, 미지에 도전하며 발생하는 두려움, 위기에 쫓기며 느끼는 긴박함까지. 공백을 제외하고 1281자, 단 두 명의 등장인물만으로 이 정도의 충격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그 뿐일까요. 문학적 작품성도 챙기셨습니다. 색감 표현으로 시각을, 온도나 질감 면에서 촉각을, 닭장이라는 두 글자로 후각을, 인용하고 싶지 않은 문장으로 청각마저 나타내셨군요. 정말 천만다행으로 미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글의 서두과 말미를 명확히 서술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동일한 무게와 구조로 글에 일체감을 부여하셨네요. 어째서 작가님이 작품에 공을 들였다는 게 이렇게 원망스러울까요….
물론 지적할 점이, 너무 큰 하나는 애써 무시하고, 조금 있긴 합니다. 마침표로 찍은 말줄임표, 마침표가 없는 문장, 규칙적이지 않은 문단 바꾸기, 사소한 오탈자 등 문장의 수정이 조금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만. 이 소설의 성격 상 이러한 문제들마저 일종의 서술 기법이 아닐까 하게 되네요. 그렇다면 정말 나무랄 수 없는 글입니다. 단 하나 큰 문제를 빼고요.
…진짜, 진짜로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억지로 스키마라고 생각하려 노력하는데……. "바깥에서 유카리의 신음소리가 스키마 안까지 들어와 울렸다." 이 한 문장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진짜 아니길 바라고 있는데, 주인공이 탐험하고 있는 '스키마'가 유카리의 '특정한 신체 부위'가 아닌 거죠? 그냥 그녀의 능력 중에 조금 불쾌한 틈새를 탐험하고 있는 게 맞죠?
2. 쎄이쟈 오리진 - ㅁㅇㅂㅇㅁ
감평을 위해 세 번 읽은 글입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글과 독대하기 위해 초회독을, 대략의 전개를 숙지한 채 배경지식을 덧대어 이회독을, 그리고 넓은 시야를 위해 시간을 충분히 두고 삼회독을 했네요. 읽으면 읽을 수록 더 많은 내용이 보이는, 짙은 맛이 있는 글이었습니다. 재미있었네요 정말.
내용을 요약하면 키신 사구메와 그 딸 키진 세이자의 관계와 오해 그리고 해소. 해당 구분에 따라 글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사구메의 모티브가 되는 아마노사구메(天探女) 설화로부터 시작해 설화 속의 사건으로 인해 천진신의 자격을 잃어버리며 땅으로 추락한 사구메, 동시에 한쪽 날개를 잃었으나 그 잃어버린 날개로부터 태어난 자신의 일부, 분령, 딸인 세이자와의 만남까지가 첫 단락. 세이자와의 행복한 지상 생활 중 윗분들의 달 건설 계획을 위해 사구메를 달로 데리고 가는 에이린, 그로 인해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하게 된 세이자의 분노와 타락까지가 두 번째 단락. 충분한 시간이 지나 지상에서 만나게 되는 사구메와 세이자, 그리고 오해가 완전히 풀리며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재회하게 된 두 사람의 모습이 세 번째 단락입니다.
좋았던 점과 조금 아쉬운 점이 공존하는 글이었습니다. 이번 감평에서는 아쉬운 점을 먼저 짚을게요.
의도적으로 저는 처음 소설을 읽을 때 작가가 제시한 글 원문만을 그대로 읽는 편입니다. 이 글이 인터넷에서 읽는 팬픽이기에 조금 공감하기 힘들 수 있지만, 독자로써 소설을 대할 때의 초심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책을 집어든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쓰여진 제목과 내용 말고는 더 이상의 정보가 없다는 뜻이죠. 감평의 서두에 '읽으면 읽을 수록 더 많은 내용이 보이는'이라고 했었죠? 네. 솔직히 처음 가볍게 독서를 시작했을 때 '으음?' 하며 손을 멈칫하는 구간들이 있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요.
원문의 인용입니다. 중요하니 원문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 그리고 거짓말같이 그 순간에 아마노자쿠는 자신이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지, 누구에게 원망을 가지고 있는지 물거품처럼 잊어버리고 말았다. 신으로부터 비롯된 분령인 키신 세이자가 아니라, 완전히 아마노자쿠인 키진 세이자로서 재탄생된 날이었다.
…
“내가 원망하는 딸, 세이자가 나를 영원히 기억해주기를.”
내가 사랑하는 딸, 세이자가 나를 잊어버리기를. //
처음 읽는 순간 혼란을 느꼈습니다. 해당 부분은 사구메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고 생각한 세이자가 분노하고 각성하는 장면에서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감정이 극에 달한 세이자가 원망과 저주의 말을 쏟고, 스스로 이름을 새로이 짓고는 바로 다음 장면에서 모든 걸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문단에서 그 이유가 나옵니다. 에이린의 등장으로 강제로 이별하게 된 사구메가, 자신을 잊어버리고 버려졌다는 아픔 없이 살아가길 바라며 세이자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활용(큰따옴표 부분)했기 때문이었죠.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지만 솔직히 처음 읽었을 때 이 부분을 놓쳤습니다. 다시 위로 스크롤해서 내려오고 나서야 알았네요.
두 가지 이유가 있겠네요. 먼저 글의 구조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구메의 능력 활용이 망각을 촉발한 것이 원래 순서지만, 글에 망각의 원인을 뒤로 적은 것은 강조를 위한 도치법이죠.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를 당황하도록 만든 이유 중 하나이지만, 그 당황을 만들어낸 진짜 원인은 따로 있거든요. 원문을 보시면 사이에 엔터가 들어가 문단이 구분되고 사이에 말줄임표가 들어가 있죠. 글의 이전 부분들에서는 이 방법으로 '장면 전환'과 '문단 구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부분 또한 '장면 전환'으로 읽혔습니다. 그러니까, 두 사건이 서로 상관이 없는 것처럼 읽혔다는 거죠. 복수를 다짐하던 세이자는 뜬금없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또 뜬금없이 사구메의 대사가 나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구메의 대사가 더 갑작스럽도록 만들었던 건, 저 대사가 글의 내용을 통틀어서 처음으로 "말한 것을 역전시키는 능력"이 나타난 문장이었다는 점입니다. 앞서 글의 반절정도 되는 내용에서 많은 독백과 대화가 나오지만, 능력과는 상관없이 멀쩡히 잘만 대화했거든요. 이 소설은 팬픽이기에 독자인 우리는 글의 제목과 캐릭터의 이름만으로 그 능력과 성질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만 글 자체에서 이 능력에 대한 언급이 부족했다고 느꼈습니다. 초장의 설화에서 '입에 담긴 존재의 운명을 뒤트는 입'이라는 서술 말고는 이 능력을 독자에게 상기시켜 줄 내용이 없었습니다. 소설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위기와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독자는 '엥? 뭔 내용이지?' → (고민해보고 나서)'아 맞다 얘 능력이 그거였지?' → (다시 읽으며)'그럼 이 문장은 잊혀지기 위한 목적이었구나' → (위를 올려보고 나서)'아 그래서 잊어버리게 된 거구나'의 과정을 거쳐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거죠. 괄호 안의 내용을 거치지 않는, 가벼운 독서 중인 독자라면 헷갈린 상태 그대로 결말 부분에 들어서게 됩니다.
다음 또한 원문을 가져왔습니다.
// … 지상에서 태어난 더러움 덩어리를 어찌 감히 하늘로 데려가겠는가. 사구메는 자신의 딸과 신위로의 복귀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중 후자를 택한 것이다. 실제와는 반대되는 결론을 내린 세이자는 모든 감정을 제치고 솟아오르는 한 가지 감정을 느꼈다. 분노였다. “원망한다. 아메노사구메. 원망한다 천진신들이여. 원망스럽다, 내 위에 선 모든 자들이여.” //
제가 이 부분에서 멈칫한 이유는 "도약"입니다. 글 자체가 일만 자 정도 되는 분량에 설화부터 두 사람의 만남, 이별, 재회, 이해의 내용. 그리고 본작 중에서는 감주전, 영야초, The Grimoire of Usami의 내용까지 시간 순대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장면과 배경, 캐릭터들의 감정이 시간선을 따라 훌쩍 훌쩍 뛰어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님은 분위기나 필체가 흐트러지는 일 없이 일관적으로 잘 끌고 나갑니다. 의심할 여지 없는 작가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변하면 캐릭터의 심리도 변하지요.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 중 하나가 캐릭터의 심리입니다. 예를 들어, 추락한 사구메의 심리는 추락의 고통 → 날개를 잃은 허망함 → 상황에 대한 슬픔, 절망 → 세이자를 발견한 희망감과 아직은 웃을 수 없다는 불안함 → 비로소 안도와 각오 순으로 다채롭고 섬세하게 서술됩니다. 당장 위기의 도화선이 되는 에이린만 해도, 슬픔과 미안함, 안타까움과 동정 등의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한다는 단호함을 드러내죠. 그런데 정작 절정 장면의 주인공인 세이자는 걱정과 의문을 품고, 생각(오해)를 하고는 다음에 있을 '모든 감정을 제치고' 분노했습니다. 사구메를 애정해 온 세이자가 간절함, 외로움, 슬픔, 배신감 내지는 현실부정 등의 감정의 중간색 없이 바로 반대되는 색깔인 분노에 들어서서 바로 사구메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니, 감정이 너무 급하게 도약되어 독자의 감정이입이 순간적으로 확 깨져버립니다. 다른 캐릭터들의 감정 서술과 대비돼서 더 강조되는 면도 있습니다.
엄청나게 길게 적어내려서 막 비판을 쏟아낸 거 같다는 죄책감이 조금 듭니다. 근데 사실, 저 두 지적사항은 엄청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내용을 설명해야 해서 길어졌던 것 뿐이죠. 둘 다 한 문장씩만을 추가하면 됩니다. 첫 번째 내용에서 말줄임표를 지우고 사구메가 애정과 염원을 담아 능력을 선언했다는 한 마디를, 두 번째 내용에서 세이자가 느낀 슬픔과 배신감은 점차 한 가지 생각으로 변해갔다는 한 마디를 추가하면 그만입니다. 요컨데 아주 사소한 묘사의 결핍이었다는 거죠. 다만 이 사소함이 소설에서 가장 맛있고 중요한 부분에서 나타난 게 큰 아쉬움으로 느껴졌습니다.
칭찬할 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사구메가 사실 세이자의 어머니였다는 정도의 큰 각색은 보통 그 만큼의 큰 거부감을 끌어오기 마련인데, 이 거부감을 모티브 설화와 엮어서 전개하는 노련한 구성으로 녹여버렸습니다. 앞서 계속 칭찬한 섬세한 감정선 또한 정말 큰 매력점이었죠. 이 부분은 마지막 장면에서 극대화되는데, 능력에 의해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사구메의 대사로 완벽히 정반대인 감정을 역설로 드러내는 방식은 천재적이었습니다. 하늘을 그리워하지만 땅에 있는 세이자를 버릴 수 없는 사구메의 고뇌 또한 하늘(천진신의 신위)과 땅(어머니로서의 자신)의 대비,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날개(세이자)의 은유로 도식화되는 점도 감탄이 나오네요. 이건 과해석일 수도 있는데, 설계하신거라면 정말..
읽으면 읽을 수록 더 많은 내용이 보인다는 말은 진심입니다. 많은 준비를 통해 쓰신 글이란 걸 느꼈습니다. 두 사람의 재회 장면은 The Grimoire of Usami 원작의 변주였고, 자기를 달로 끌고와놓고는 먼저 지상에 와 있는 에이린에게 은근한 분노를 드러내는 사구메의 모습에서 영야초를 언급없이 언급하셨네요. 에이린은 사건을 전개시키는 데 기여하는 악역이며 동시에 조연의 역할이지만, 스포트라이트 바깥에 있는 에이린의 행보 또한 잘 그려냈습니다. 자세히 읽으니까 완전 납븐년이네요. 글에 많은 정성을 쏟으신 게 느껴져서 저도 열심히 감평을 쓰게 되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3. 토끼, 토끼 - 민씨
제가 썼는데 어떻게 객관적으로 감평을 할까요. 자기가 쓴 글 칭찬하는 건 쉽지 않음 ㅎㅎ;; 지적할 점만 보이죠. 감평이라기보단 시놉시스를 쓰는 기분으로 써볼까 싶어요.
대회 마감일 이틀 전인 금요일에 대회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맨날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마감기한 되면 그제야 부랴부랴 쓰는 스타일인데, 이젠 글을 써야한다는 사실마저 마감기한 다 돼서 알게됨.. 마감 5분전에 완성하고 3분전에 업로드했습니다. 진자 톡기가 된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그나마 다른 주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치밀하게 구상해도 잘만 쓰면 완성도를 올릴 수 있는 탐험을 주제로 고르게 됐네요. 다른 작품들을 읽어본 바로는 메인 주제가 탐험인 소설은 이거랑 다른 하나 총 두개로 보이는데, 그 하나가 너무 강력해서 솔직히 벽 좀 느꼈습니다. 궁금하면 념글에 두근두근 스키마 대탐험 찾아보면 알거임ㅇㅇ
사실 그 탓에 플롯 짤 시간이 충분하지가 않아서 기존에 구상만 해둔 거 가져왔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테위랑 레이센 비중이 정 반대였을 거에요. 레이센이 동일한 사건을 계기로 달을 탐사하고 테위는 마지막에 구조선 역할으로 등장하는 서스펜스 모험물이 될 예정이었어요. 대회 주제가 탐험이다 보니 시점을 확 틀어서 테위가 주인공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무래도 달에 처음 와본 테위가 주제를 드러내기 더 적합하다 생각했거든요.
전 원래부터 월인들 엄청 싫어합니다. 달나치들이 기본적으로 가진 선민의식 자체가 좀 같잖아서요. 자기들이 가진 잘나신 선민의식과 사상에 당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걸 비꼬기 위한 장치가 따라쟁이 말랑이였죠. 오히려 인간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하찮은 땅의 존재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점까지 해서 제 방식으로 비웃은 거죠. 근데 테위가 주인공이 되고 나니 이 부분이 중요도가 팍 식어버려서 그냥 배경설정 정도가 됐네요. 막 아예 버려진 수준은 아니지만, 좀 아쉬워서 에이린이 설명충으로 등장한거죠. 원래는 레이센 귀나 만지고 있을 예정이었음. 테위가 주인공이 돼서 제일 좋은 점은 달나치쉑들이 안나왔따는거?
탐험이란 주제에 맞춰서 나름 위기에서 분위기를 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약간 모티브 삼았다고 하긴 뭐하지만, 분위기 자체는 Liminal Space와 Dreamcore이라는 장르에서 따왔어요. 답답하고 은근한 공포감이 전해졌다면 좋겠네요.
뭐 그래도 나름 감평이니까 지적은 해야게슴
1. 오탈자, 띄어쓰기 << 글 쓸 때마다 항상 하는 습관적인 오탈자랑 띄어쓰기 실수가 있는데, 그걸 수정 못하고 올림. 문 닫기 5분 전이라고 검토를 못 돌려본 거긴 한데, 대회에서 시간없어서 못했다고 하면 잘도 감안해 주겠다...
2. 늘임표(-) 쓰는 습관. 사실 글을 쓸 때나 읽을 때 속으로 소리 내어 읽는 스타일이라서, 어감이나 분위기를 '스스로' 내려고 쓰는 거임. 근데 그걸 본 모든 사람이 나랑 똑같이 '아 조금 더 늘어지는 부분이구나' 할 것 같진 않음. 오히려 읽는데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이라 자제하기.. 사실 표현력 부족 때문이죠 ㅜ
3. 반점(,) 과다. 2랑 똑같이 끊어 읽는 부분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 또 반점을 너무 써서 문장이 길어지는 것도 보기 좋지 않음. 읽는데 불편하지. 퇴고하면서 항상 반점 수를 의식적으로 줄일 것.
4. 이번 소설에선 절정 부분이 조금 허무한가 싶음. 열심히 긴장감 조성하고 피크가 될 부분에서 확 꺾어버렸는데, 좋게 포장하면 골계미인데, 그냥 확 김빠지는 걸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유.
5. 엔딩이 조금 아쉬움. 끝맺는 문장 자체는 원래 구상하던 문장이 맞는데, 원래대로라면 모코우 위치에 카구야가 앉아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봉래인(에이린), 봉래인(카구야) 사이 토끼(레이센), 토끼(테위) 해서 밖에서 안는 쪽과 안에서 안긴 쪽의 대비 + 달에 다녀옴으로써 동일한 공감대를 가지게 되어 더 돈독한? 영원정 4가족이 되는 그림이었습니다. 바꾸게 된 이유가 초반부랑 후반부 무게를 비슷하게 하는 걸 좋아해서.. 개그성으로 모코우를 앉히느냐 감성적으로 카구야를 앉히느냐 고민했는데, 그래도 테위가 주인공이니만큼 좀 가볍게 가보자 했습니다. 근데 문장을 제대로 못 짜서, 요상한 감성이 된 듯. 제일 마지막 문장이 붕 떠버렸어요 덕분에. 능력 부족입니다...
6. 큰 주제는 탐험이 맞는데, 나름 소주제 삼은 게 토끼들끼리 투닥대지만 서로 죽고못산다는 그런 거였음. 하 이걸 대놓고 글로 쓸까 아니면 그냥 숨길까 하다가 숨겼는데, 덕분에 안느껴졌을수도 있을 듯. 제일 첫 문장 질문의 (보물을 받으러 왔다는 명분 말고) 진짜 답은 '레이센이 안 돌아오니까'입니다... ㅜㅜ 못 느끼셨다면 죄송.
항상 글을 쓰고나면 가장 고민되는 건 글이 남한테 어떻게 읽힐까죠. 개인적으로 손편지를 나누는 사이인 여사친이 있는데 걔 말고는 현실에서 글 써서 보여주기는 쉽지가 않더라구요,, 게다가 걔한테도 개십오타끄 똥퍼팬픽 이런건 못보여주죠. 개인 연재하는 사이트는 독자들이 찾아오는 거다 보니, 좀 더 다양하고 많은 랜덤한 사람들한테 글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써서 올림. 편하게 읽어주신다면 저로서는 더없이 감사합니다.
4. 나다운 방식으로 - 하나름
쿠모이 이치린과 모노노베노 후토는 보증된 조합이죠. 원래부터 공인된 라이벌 관계에, 심비록에서는 아예 콤비로 나와서 숙적 케미를 그려냈죠. 그런 이치린과 후토의 투닥투닥 콩닥콩닥 일담을 그려낸 작품이었네요.
가벼운 지적을 하겠습니다. 요전번 감평에서 작품이 너무 재밌어서 감평도 지적도 정성들여 했더니 작품을 쓰신 작가님을 서운하게 해버리는 결과가 일어나서, 이번부터는 진짜 가볍게 할거에요. 먼저 저랑 똑같은 습관이 있으십니다. 반점(,)이 많아요. 저랑 똑같은 이유로 반점을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문장이 끊어지지 않아도 될 부분이지만 문맥 상, 혹은 표현 상 한 템포 쉬어가면 좋겠다 싶은 부분에 반점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적당하면 표현이지만 조금 많습니다. 문장이 조금 짧게 끊어지더라도 긴 문장보단 마침표로 맺어진 두 짧은 문장이 독자의 눈에는 더 편안하답니다. 제가 쓰는 초고와 꼭 같아서 더 신경이 쓰였네요. 그리고 또 다른 부분은 말줄임표(…)로 문장을 끝맺는 실수입니다. 특히 인물의 대사가 말줄임표로 끝나는 경우 꼭 마침표(.)를 찍어주고 따옴표를 닫아주시길!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난 글이었답니다. 승화⑴ 어떤 현상이 더 높은 상태로 발전하는 일. 승화⑶ 자아(自我)의 방어 기제의 하나. 정신 분석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충동ㆍ욕구를 예술 활동, 종교 활동 따위의 사회적ㆍ정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치환하여 충족하는 일이다. 둘 다 말이에요.
내용을 풀어 시간 순으로 정리한 뒤, 가장 처음부터 열거해 보면 사건을 촉발시킨 것은 후토의 한 마디였습니다. 동방빙의화 직후의 시점에서, 두 사람은 여느 때처럼 실컷 싸우고 있었는데 후토가 실언을 뱉습니다. 운잔을 상대하는 것에 집중하다가 이치린의 기습적인 공격에 피탄당하고 '정작 네놈을 잊고 있었군'이라고 해버리죠. 이 문장은 이치린의 자존심에 제대로 상처를 내고, 이치린은 그 결과 괴로움을 잊기 위해 불법 수행에 전념하기 시작합니다. 후토는 평소와 달리 잘 보이지 않는 이치린이 신경쓰이고, 거기에 이치린이 수행에 집중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당황해서는 이치린을 직접 찾아가기로 하며 소설이 시작되죠.
이치린이 무너진 자존심과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수행에 집중하는 것. 현실에서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승화⑶의 예시겠죠. 마음속 괴로움과 번민을 종교적인 수행으로 치환하는 일, 승화 그 자체죠. 중·고등학교 국어 수업을 열심히 들으신 분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법한 작품에 동일한 흐름의 승화의 예시가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실린 제망매가(祭亡妹歌). 기억나지 않나요? 급작스럽게 떠난 누이를 그리워하며, 미타찰에서 재회할 때를 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다고 하는. 슬픔을 불도로 승화시킨 것이죠.
계기가 무엇이든 간에 수행은 수행입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변하면 주변의 반응부터 달라진다고들 하죠. 불법 수행에 집중하기 시작한 이치린은 해탈했니, 덕이 높아졌니 하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죠. 불교의 수행자로써 더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 겁니다. 승화⑴이겠죠? 모든 사건이 지난 뒤 후일담인 미코와 히지리의 대화에서 조금 더 이 주제에 집중하죠. 어찌됐든 둘에게 더 높은 경지에 이를 기회가 되었으니 이를 승화⑴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없다 하는 논쟁으로 글은 맺어집니다. 이치린과 후토가 주인공인 이 소설에서 종교적인 색채는 필연적인 요소죠. 종교와 관련된 승화는 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겉으로 드러나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승화는 재밌게도 종교의 색감을 지우고 두 캐릭터에 집중했을 때 잘 보입니다. 두 캐릭터의 심리 묘사를 나열해 보면 종교적인 대립 구도나 고민 따위는 그저 표면에 불과합니다. 후토에게 삐졌던 이치린의 감정이 완전히 풀어지는 것은 후토에게서 진지한 사과와 인정을 받은 이후죠. 후토가 태자님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마음, 그리고 가장 두려워한 것은 바로 이치린을 잃는 것이었습니다. 작중 두 캐릭터가 가진 가장 큰 고뇌는 모두 종교적 승격이니 수행이니 하는, 소설 속에 직접 언급된 승화⑴과 승화⑶과는 관계가 없었답니다. 둘의 다툼은 꼭 사춘기 청소년들의 다툼과 같습니다. 그런 둘을 바라보는 어른스러운 두 성인들의 시선 때문에 더 부각되어 보입니다. 둘의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둘이 어느 종교에 있고, 누가 더 강하냐가 아니었던 거죠. 친구의 사소한 말 실수에 토라졌다가 진심어린 사과에 녹아드는 것. 갑자기 변해버린 친구의 태도에 당황하고, 떠나버릴 까봐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찾아가서 평소엔 전할 수 없던 말들을 하는 것. 청춘이네요. 서로는 떨어지고는 못 사는 둘도 없는 친구지만, 표면적으로는 종교적 입장과 사회적인 위치의 차이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자기 감정을 잘 모르는 - 혹은 인정하기 싫은 - 사춘기 아이들 같은 마음 때문에, 진솔한 감정은 드러낼 수 없죠. 그런 두 청춘이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하는 방식은 태자님이 가볍게 언급했듯이 대련 혹은 탄막놀이로의 승화⑶입니다. 두 성인께서는 이미 둘의 사이를 잘 알고 있으니 이에 대한 언급은 '친하다' 정도로 줄이고 이후에 둘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논쟁하는 거죠.
재미있었습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후토와 이치린의 복잡미묘한 감정이 잘 그려져서 좋았어요. 주제 삼으신 승화를 여러 방식으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하게 다루신 부분은 오히려 다른 부분에 비해 적게 언급하며 숨겨버린 서술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오히려 하지 않게 되는 법이겠죠. 오히려 너무 적게 언급하셔서 내 과해석인가 싶었지만 둘의 심리묘사를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는 것 같아요. 글이 주는 묘한 두근거림은 둘의 감정선에 이입하면서 나타난 것이었거든요. 어떤가요, 제목의 의미가 확 살지 않나요?
마지막 두 성인님의 담화에 대해서, 암만 생각해도 저는 두 사람이 승화⑴을 통해서 불교와 도교의 높은 경지에 오를 것 같진 않습니다. 연회마다 불쑥불쑥 참여하며 고기를 먹고 술나발을 불어대는 땡중이나, 절에 불을 붙일까 말까 고뇌하는 방화범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긴 글러 처먹은 거 같습니다. …그거 말고도, 소설 속에서 둘의 오해가 완전히 풀리고 극이 절정을 지날 때 나온 서술에서 암시하거든요. [ 하하핫. 이치린은 덕 높은 미소가 아닌, 평소대로의 호쾌한 웃음을 지었다. ]
그보다도 두 성인이 걱정해야 할 건 따로 있습니다. 둘이 청춘이라고 설명했지만은 그 청춘의 색깔이 파아란 하늘색이 아니라 옅디 옅지만 분명한 연분홍색이거든요. 이치린이 비밀이라며 밀당하는 장면에서 약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 두 사람, 좀만 더 친해졌다가는 바보도 알 수 있는 비빔엔딩 100%에요….
5. 망상향 - 반짝반짝
이질적인 첫인상을 주는 작품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팬픽보다는 소설로 대하는 편이 더 좋은 작품이 되겠습니다. 팬픽이 일종의 소설이지만은, 분명히 독자가 글에 쏟는 집중력과 무게감은 팬픽 쪽이 훨씬 가볍죠. 종이책을 한 권 들고 읽는 마음으로, 조금은 더 집중을 쏟아야 가장 잘 읽히는 글입니다.
가장 치열하고 치밀한 부분, 그래서 제일 재밌는 부분을 설명하려면 글 전체를 풀어 나가야 됩니다. 이 감평을 어떻게 쓸 지 많이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그냥 제가 느끼고 떠올린 것만 쏟아내면 감평을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공감할 수가 없어질 것 같았어요. 먼저 줄거리를 어느 정도 풀어쓰고 나가야 할 것 같네요.
가장 처음 접하는 문단에서는 사실 많은 것을 알기 어렵습니다. 이 문단은 사실 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가져온 것이라서 그렇죠. 정보를 얻어가기보단 글이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 전체적인 분위기를 시사하는, 일종의 에피타이저로 읽고 지나가면 ok입니다. 그 다음 구분 표시 이후에 적힌 문단부터가 본격적인 소설의 도입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만,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읽어도 비유와 대조, 상징과 암시가 많이 쓰인 것은 바로 느낄 수 있죠? 앞으로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모르나, 첫 문단부터 이러한 표현법이 자주 쓰이는 글이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고 간다면 좋습니다.
도입부부터 등장하는 주인공 '그녀'가 누구인지 첫 문단에서는 알 수도 없습니다. 문단을 더 지나서 '그녀'에 대한 힌트를 덧붙여야만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우사미 스미레코입니다. 스미레코를 초점 삼고, 바깥 세계를 배경 삼은 소설입니다. 그리고 스미레코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이 세계관은 상당히 디스토피아적입니다. 2039년의 근미래이지만, 우리가 아는 바깥 세계와도 동떨어진 서술이 쏟아집니다. 네온사인 투성이인 우울한 도시, 인간은 수술을 통해 신체 일부를 차가운 기계 따위로 개조하고, 식물이나 동물들마저도 개조되어 원형을 잃어버린 세계. 더 역겨운 것은, 그런 현실에서 도피해서 다양한 기계가 주는 단순 쾌락에 몸을 맡기고, 동태눈깔로 돌아다니는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 스미레코는 그런 세계를 말 그대로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스미레코가 혐오스러운 도시를 바라보며 떠올리는 것은 환상향입니다. 역겨운 물질 문명과 반대로, 요괴들의 정신 문명이 발달한 그 곳을 자신이 있을 곳이며 진정 자기가 속한 고향으로 떠올립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스미레코는 꿈을 꿔도 더 이상 환상향에 갈 수 없어졌습니다. 처음엔 몇 달, 그리고 이제는 몇 년째. 결계를 뚫고 환상향에 침입할 수 있지 않을까, 노력도 해 봤지만 결국 환상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스미레코는 포기할 수 없었기에 계속 환상향으로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지속합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바깥 세상의 하쿠레이 신사를 조사하던 스미레코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마침 그 주변에 있던 광신도들이 올리는 기도 소리를 듣다가, 그 기도의 대상의 묘사를 종합해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하쿠레이 레이무라는 것이죠. 그 뿐만 아니라, 여러 사이비 종교의 교리에서 환상향의 여러 인물들과 공간들에 대한 묘사를 발견합니다. 바깥 세상에서 잊혀진 것들이 모이는 환상향이, 바깥 세상에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분명 단서일 것으로 생각하고 조사를 이어나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어느 사이비 집단의 일원에게서 키리사메 마리사와 완전히 똑같은 목소리를 듣습니다.
키리사메 마리사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스미레코는 한 가지 가설을 떠올립니다. 자신이 꿈을 통해 환상향으로 찾아가는 원리처럼, 순간적으로 정신만이 적합한 육체에 깃들어 마리사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환상향의 모든 주민이 동일한 방식으로 바깥 세계에 나온 것이고 그렇기에 환상향에 갈 수 없게 된 것이 아닌가? 그리곤 첫 문단이 다시 반복됩니다. 환상향에 대한 가설을 떠올린 스미레코가, 고향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떨리고 벅찬 마음으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오며 소설은 끝납니다.
먼저 특징적인 것은 글의 구조네요. 문단이 상당히 무겁습니다. 문단 구분을 최소화해서 쓰셨어요. 그래서 더 소설책을 읽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스미레코가 마리사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에서 드러나듯, 작가님의 의도가 담긴 문단 구분입니다. 표현의 한 방식으로 쓰신 거죠. 그러나, PC화면에서나 모바일 화면에서 이 정도 밀도로 써진 글은 읽기 상당히 어렵습니다. 장점도 단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벽돌 같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신 발언인데, 밑의 필체까지 합쳐져서 한 번 읽어서는 이해하기 정말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특징적인 것은 필체입니다. 한 서술 대상에 다양한 이름, 여러 의미를 부여하는 서술 방식이 돋보였어요. 한 대상에 많은 의미를 담아서 여러 가지 표현으로 쓰셨습니다. 소설의 단어가 아니고, 시어를 다루듯이. 또한 그런 특징적인 표현이 한 문단에서 쓰이고 마는 것이 아니고, 이후 전개에서도 조용히 등장하며, 집중해서 읽는다면 몇몇 단어와 그 변주들에 담긴 의미가 소설 전체에 걸쳐서 발전되고 전개되는게 느껴집니다. 대단한 필력입니다.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주제인 망향 또한 끊임없이 잘 드러납니다. 당장 스미레코가 소설 전체에서 뛰어다니는 이유도 환상향에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서잖아요? 스미레코는 시종일관 잿빛인 끔찍한 바깥 세계와 대비되는 환상향을 그리워하고, 추구하며, 회상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가장 빛나는 점은 주제인 망향을 그리움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스미레코는 환상향을 추억하며,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고향"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독자들의 마음 속에 물음표가 하나 새겨집니다. 스미레코가 본래 속한 곳은 바깥 세계에요. 냉소하며, 혐오하며, 증오하는 바로 이 곳. 꿈 속에 있는 세계가 아니고, 자기가 벗어나고자 하는 이 곳이 스미레코에게는 고향입니다. 그런데 스미레코는 환상향을 "고향"이라고 표현합니다. 자신이 본래 속해야 할 곳으로 생각하는 거죠. 명명백백한 현실도피입니다. 글은 이러한 스미레코의 모순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그리고 스미레코의 희망 섞인 시선에서 투 톤으로 조명하며 대비시킵니다. 시점 활용이 정말 탁월했습니다. "입면 후의 환상향만을 기다리는 것과 퇴근 후의 사이버스페이스를 기다리는 것의 차이도, 그녀는 그런 식으로 납득하고 있는 것이다." 스미레코가 비웃은 바깥 세상 사람들의 현실도피와 자기 스스로의 환상향에 대한 동경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꼬집으면서요.
이러한 스미레코의 모순이 더 강조되는 부분은, 본인도 이런 스스로를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알 뿐만이 아니고, 스미레코 본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댄 것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향이 단순한 망상이 아님을 증명해 줄 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이 속해야 할 이상향인 환상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모두 그저 망상이 되어버린다면 자신은 이 바깥 세계에 버려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더더욱 환상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죠. 총에 맞은 상처보다도, 자신이 이 도시의 일부에 녹아든다는 사실이 더 고통스러웠기에.
소설의 첫 문단은 곧 소설의 마지막 문단입니다. 수미상관이죠. 아주 살짝의 변주가 가미된.
바깥 세상의 하늘에서 쏟아지는 '중오염수'를, 모자를 푹 눌러써서라도 가리고, 눈에서 흘러내리는 '자신의 순수'를, 팔로 받아내면서라도 막아서 두 '물방울'이 만나 섞이지 않도록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끝일 것 같아서". 과연 스미레코가 마리사의 목소리를 통해 떠올린 가설이 맞아서, 환상향을 다시 만나게 되는 걸까요?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그저 고향에 대한 망집이 만들어 낸 망상일까요? 제목인 망상향은 환상향에 대한 망향이란 뜻일까요, 환상향에 대한 망상이란 뜻일까요.
…쏟아지는 빗물이, 이유 모를 눈물이 어째선지 불안합니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우리는' 알 수 없겠죠.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솔직히 수준이 너무 많이 높았어요. 감평글을 쓰는데 네 시간 걸렸습니다.. 작가님 살살하세요….
6. 당신의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 피네
미리 죄송합니다..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요..
① 문장 수정!
자잘한 오탈자는 꼭 수정해 주세요! 의도적으로 쓰신 게 아니라면, 오탈자는 집중력을 흐트러지게 한답니다. 특히 반복된다면 몰입이 확 깨져버려요. 맞춤법 검사기를 돌려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많은 작가님들이 하신 실수인데, 말줄임표(…)만으로 문장은 끝나지 않는답니다. 꼭 말줄임표 뒤에 마침표를 찍어줘야 해요.
② 묘사 부족
팬픽이라서 많은 것을 생략할 수 있죠, 다들 기본적인 지식을 어느정도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캐릭터에 대한 설정 정도야 크게 다루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유유코와 요우무가 주종관계다, 요우무가 누관검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실들은요. 굳이 언급해 봐야 입만 아프죠.
그런데, 장면에 대한 묘사는 절대로 놓치시면 안됩니다. 중간에 유유코가 유카리에게 질문을 하러 가는 장면이 있었죠? 작가님이 글로 적기 전 떠올리신 장면에는 분명 마요이가라는 배경도 있었을 것이고, 시간도 밤이었겠죠. 유카리는 자다 깨서 흐트러진 모습이구요. 그런 상황에서 둘이 대화를 하는 거죠? 근데 글로 옮겨적은 부분만으로는 두 캐릭터가 하얀 배경에 둥둥 떠서 대화하고 있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나요?
소설은 작가님의 상상력을 글로 그려내는 거에요. 글만을 사용해서 독자들에게 그 상상을 보여주는 거죠. 충분히 장면을 그려넣지 않으면 독자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답니다. 이 부분이 가장 두드러져서 예를 든 것 뿐, 전체적으로 배경이나 행동, 상황 등을 떠올리기 힘들어요.
또 다른 부분은 표현이 너무 단순해요! 소설에서 이유없는 반복은 독이랍니다. 뭐든지 읽는 사람의 눈에 비슷한 것이 여러 번 반복되면 좋지 않아요. 효과가 떨어지고, 집중력도 흐트러집니다.
~는 ~했다. ~는 ~하며 ~했다. << 단순한 문장이 너무 많이 쓰인답니다. 다른 패턴, 아니면 새로운 표현들을 써가며 문장이 반복되지 않는게 좋아요. 이걸 잘 쓰는게 문장력이고, 작가의 실력입니다.
③ 시점전환?
시점을 바꾸는 것 자체가 글을 쓰는 스타일 전체를 바꾸는 일을 요구합니다. 저는 한 가지 시점을 유지한 채로 글을 쓰기에도 부족한 실력이라, 여기에 다른 시점까지 추가해서 쓰는 건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아서 자제하는 편이에요. 거기에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피로를 유발한답니다. 잘 쓰기만 하면 효과적인 표현이 되겠지만요. 양날의 검인거죠.
이 글에서는 3인칭 -> 요우무 1인칭 -> 3인칭 -> 유유코 1인칭으로 시점이 바뀌네요. 시점 전환이 좀 잦아요.
그리고 이 중, 요우무 1인칭이 문제에요. 1인칭이면 생각도 모두 요우무의 생각이라는 거겠죠? 존댓말 캐릭터고, 주인을 상대하고 있고, 서술하는 말투도 존댓말로 쓰고 있어요.
그런데 1인칭은 '나', 유유코의 호칭은 '유유코'네요. 다른 부분은 모두 존댓말인데 이 두 부분만 존댓말이 아니에요. 요우무가 주인을 생각하는 데 '유유코님'이 아니고 '유유코'라뇨. 어색합니다.
④ 요우무가 건방집니다.
요저번에 다른 작품에 감평을 쓰다가 이런 내용을 적었어요. 큰 각색은 그만큼의 큰 거부감을 끌어온다고. 팬픽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특성이죠.
앞서 팬픽이라서 많은 것을 생략할 수 있다고 했죠? 독자들에게 굳이 설명하고 그려주지 않아도 어느 정도 통용되는 정보가 있으니까요. 이미 독자에게 정보가 있다는 것은 팬픽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의해야할 약점이기도 해요.
기본적으로 독자가 떠올리고 있는 고유한 이미지가 있죠. 그 이미지가 깨져버리면, 독자 입장에선 엥? 하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답니다. 이미 알고있는 것을 다시 이해해야 하니까요. 물론 그런 일반적인 이미지를 바꾸는 것도 하나의 표현 방법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납득 갈 만한 설명을 독자들에게 전해 줘야 해요.
이번 팬픽에서 제일 아쉬웠던 점. 요우무의 성격이 요상해요. 유유코와 요우무의 대련에서 요우무는 주인에게 선을 넘어도 세게 넘은 말을 합니다. 폭주 중이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어요. 과격한 대사 이전에 눈이 훼까닥 돌아버렸다거나,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일종의 빌드업이 먼저 나왔어야 했어요.
폭주가 끝나고도 여전히 이상하답니다. 주인한테 비꼬는 말을 꽂지 않나, 주인에게 친구 관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거나. 캐릭터성이 깨졌답니다.
반대로 유유코의 캐릭터는 잘 잡으신 거 같아요. 마망 그 자체네요. 시종을 위해서 유카리도 찾아가고, 요우무랑 대련도 하고, 꽃꽂이도 준비해 주고. 유유코 치곤 좀 열심히 일하는데, 요우무가 저 모양이라 괜찮네요. 앞서 설명한 유유코의 1인칭도 그렇고 귀엽습니다.
팬픽의 매력이 이거에요. 이미 어느 정도 캐릭터성과 설정이 보장되어 있어서, 선만 잘 지켜준다면 그만큼의 재미와 매력도 보장되는 거죠.
⑤ 요상한 장면들
상상해 보면 참 요상한 장면이 여기저기 나옵니다.
첫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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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왔어~”
“웬 놈이냐!”
그녀는 소리가 난 쪽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유감스럽게도 소리의 근원지에는 그녀의 주인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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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에서 주인이 '목소리로' 불렀는데, 거기에 대고 검을 휘둘렀어요. 요우무가 주인 목소리도 못알아듣고 베려드는 미친년이 됐어요...
하나 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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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진 나도 유카리도 검 폭주의 근원을 제거할 방법을 찾지 못했어. 당분간은 꽃꽂이하며 전투욕을 다스려보자꾸나.”
최근 자신의 주인이 꽃꽂이에 관심이 있다는 것쯤은 알았지만, 그것을 자신에게도 권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거실에 도착한 둘.
그곳에는 꽃꽂이의 재료들이 있었다.
“엣. 천하의 유유코님이 꽃꽂이도 할 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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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꽃꽂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주인한테 꽃꽂이도 할 줄 아냐고 비꼬는 미친년이 됐어요...
살짝 요상한 장면이죠? 이런 부분은 한 장면을 다 쓴 뒤에 다시 읽어보면서 스스로 장면을 그려보면서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저는 장면을 쓰고 나면 영화나 연극처럼 인물이 행동하는 것으로 상상해 본답니다. 떠올려 보고 어색하다면 계속 수정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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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한 부분들은 나쁜 작품이라고 하는 게 절대 아니에요. 조금 고치면 더 좋아질 부분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주종의, 아니 이 작품에선 주인 쪽의 귀여운 모습이 좋네요. 요우무짱은 다음 기회에 귀여워지렴.
제목이 '당신의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죠. 요우무가 주인공이에요. 독자들이 집중하게 되는 요우무의 모습이 아쉬워서 작품 주제에도 집중하기 힘들어졌어요. 전체적으로 악영향을 미친거죠.
묘사가 부족하다곤 했지만, 그렇다고 많기만 하다고 좋은 건 아니에요. 적당한 쪽이 언제나 최고입니다.
내용도 주제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7. 말괄량이 조각가 - 피네
동일한 작가분이 올린 글이다 보니 스타일 또한 동일합니다. 지적사항 또한 중복되긴 하는데 굳이 여기서 두 번 때리지 않을게요.
개인적으로, 아마 객관적으로, 이 작품이 더 좋습니다! 옛날에 블로그에서 다운로드 받아서 읽던 감성의 개그 팬픽이에요. 아니다, 글이 짧으니 오히려 네이버 카페 같은데서 일일연재되는 일상물쪽에 더 가깝네요. 추억버프가 살짝 붙었습니다.
일단 작가님의 스타일인 가벼운 묘사가 강점으로 나타났어요. 지적사항이었던 묘사 부족이 많이 나아졌어요. 서술이 상당히 길어졌네요. 여전히 조금 부족하고, 단순한 문장이 반복되긴 하지만 치르노의 1인칭이 되면서 오히려 더 캐릭터성을 살리는 포인트가 됐네요. 주제나 분위기 자체가 가벼워서 어울리는 거죠.
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치르노, 커여운 대요정, 개틀딱 스와코, 뇌가 없어진 사나에, 상식인이 된 마리사, 그저 레이무, 기레기 아야. 이번엔 단 한명도 캐릭터 붕괴가 없었어요. 저번 작품에선 솔직히 요우무짱이 불편했거든요. 이번 작품에선 딱 개그물에서 나오는 캐릭터성 그 자체입니다. 주제와 서술이랑 똑같은 무게감으로 가벼워서 딱입니다.
불편하지 않습니다. 집필하시면서 전작의 피드백을 수용하신 걸까요? 기존 문제점을 많이 개선하신 거 같아요.
그런데 이 불편하지 않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주의하셔야 돼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습, 그 행동 그대로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쉽게 예상이 된답니다. 너무 캐릭터의 스테레오타입대로 행동한다면 안 봐도 알 수 있죠. 치르노가 누군가와 경쟁해서 이겼을 때, "역시 이 몸은 최강이야!" 하는 건 뻔하디 뻔한 클리셰잖아요. 이 글에서 아야의 "호외요, 호외"가 그렇습니다. 상황이 특별하던지, 서술을 평범하지 않게 하던지, 캐릭터의 행동이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던지 하는 변화구가 필요할 때가 있어요. 앞이 다 예상이 되는 뻔한 소설은 가장 중요한 재미가 없는 소설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포인트가 있어요. 이야기의 큰 흐름이 있다면, 거기에 작은 곁가지를 붙여주는 걸 좋아합니다. 큰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캐릭터들의 상호작용과 다양한 모습들을 비춰주면서 캐릭터가 확 입체적으로 변하거든요. 소설 전체적으로도 독자가 잠깐 쉬어가며 흥미를 느낄 만 한 포인트가 되고요. 이 글에서는 아야의 주식 얘기가 그런 장치가 될 수 있었죠. 아야와 마리사의 반응에서 둘의 캐릭터성이 좀 살아나지 않았나요? 레이무가 멱살을 잡는 덕분에 곁가지가 아니게 됐지만요.
주제의식에 대해서는 아쉽게 생각합니다. 조각하는 행위가 치르노의 무엇이 승화된 것인지 와닿지 않습니다. 변화하기 이전에 하던 개구리 얼리기도 그렇고, 사나에의 칭찬에 대한 반응도 그렇고. 어떤 욕구의 승화보다는 그냥 어린아이의 흥미본위의 행동으로 느껴졌어요.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진짜에요. 이번 대회의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다른 글들이 전부 진지하고 묵직한 글들이 많아서 가볍게 통통 튀는 이 글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네요. 맘이 편안해졌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평한다고 분석하면서 읽던 저한테 꿀같은 힐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8.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나에 - 안쓰는계정
이번 작품에서는 지적을 먼저 하고 가겠습니다!
첫 번째로, 제목이 너무 직설적이네요. 아쉽습니다. 소설을 넘어 어떤 창작물이라도 제목이라는 것이 가지는 힘은 대단합니다. 접하는 사람이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글귀니까요. 작품의 첫인상이죠. 심리학 용어 '초두효과'가 말해주듯, 첫인상은 이후 인간관계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이 첫인상을 바꾸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다루고 있는 매체인 웹소설, 팬픽에서는 조금 더 심해요. 첫인상인 제목에 끌리지 않으면 애초에 읽지도 않습니다. 아쉬운 첫인상을 날려버릴 기회조차 없죠.
내용을 그대로 제목에 때려박는 라노벨식 제목이 유행한다지만, 그 라노벨식 제목을 쓰는 일도 사실 꽤 신경을 쏟아야 한답니다. 작품의 매력의 총집합으로, 가장 재미있고 자신있는 부분을 스무 자 내외의 한 줄 글귀로 강렬하게 던지는 거죠. 마치 요리에서 가장 맛있는 부분을 시식하게 만들듯. 이 팬픽에선 제목이 흥미를 끌거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했고, 중요한 내용을 완벽히 보여주지도 않는 주제에 전개를 쉽게 예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생겨버린 독자의 예상을 확 뒤집어서 가지고 논다면 모를까, 그 예상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아니었거든요.
다음으론, 시점 선택이 아쉬웠네요. 이 작품은 사나에의 1인칭 주인공 시점 작품이죠? 사나에의 감정 변화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작품이니만큼,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습니다. 문제는 활용이었죠.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서술되고 그려지는 세상은 모두 '주인공이 보는' 세상이어야 합니다. 상황 서술도 '주인공이 읽어주는' 거에요. 그런 이유로 '-리라'라는 종결어미가 더 이상하게 느껴졌답니다. 다른 감평에서 지적받으신 부분인 것 같더라고요? 원래 그리 자주 쓰이는 표현은 아닌데 과도하게 많아서 독자들 입장에선 계속 눈에 띕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사나에는 정중한 성격에 의기소침한 심리 상태로 그려지는데, 다른 캐릭터들과 대화할 때와 너무 다른 말투로 서술하는 거죠. 꼭 사나에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주는 것처럼요. 뿐만 아니라, 상황의 묘사도 사나에보단 제 3자가 사나에 주변을 바라보면서 서술하는 것 같아요. '제한적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초점을 사나에에 둔 채로 써졌다면 더 자연스러웠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챙기려고 하신 사나에의 감정 묘사도, 객관적인 상황 묘사도 다 챙길 수 있었을 테니까요.
작품 외적인 지적은 일단 여기까지! 작품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갈까요.
이 작품에서 사나에는 꽤나 현실적이게 그려집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나에입니다. 사나에는 자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감 부족인 상태입니다. 심리적인 이유와 상황적인 이유가 있어요.
심리적인 이유는 사나에의 묘사를 파본다면 쉽게 파악할 수 있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하쿠레이 레이무의 존재 때문입니다. 같은 무녀이고, 비슷한 나이대의 소녀인데 레이무가 너무 출중합니다. "나는 레이무 씨가 환상향에서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라는 사나에의 생각이 말해주죠. 스스로 레이무와 비교해서 부족하다고 움츠러들고, 일종의 열등감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상황적인 이유는 히지리와의 대화에서 나옵니다. 모리야 신사가 환상들이를 하게 된 배경이 사나에에게 곧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신사가 신앙을 잃어 자신이 모시는 두 신을 잃을 뻔 했다는 사실이, 신사를 발전시켜 신앙을 모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위의 심리적인 상황과 맞물려서, 자기가 더 잘 해서 신사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부담감을 진 채 뛰어다니지만, 불안한 마음으로 열심히 한다고 뭐가 제대로 될 리가 없죠.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고, 더 큰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자기가 자기 꼬리를 쫓고 있는 악순환을 그리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현실적이니까요. 이 현실적이라는 표현은, "납득이 가는"이란 뜻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우리에게도 익숙한"이란 뜻입니다. 딱 그 나잇대의 사춘기가 가질 마음입니다. 모두가 한 번쯤은 비슷한 마음을 가져 봤다고 확신합니다. 내 또래들은 나보다 뛰어난 것 같고, 내가 못해서 이런 상황에 몰린 것 같고,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열심히 하지만 잘 안되는, 그래서 더 작아지는 기분. 작품 속 사나에와 같은 마음이었던 거죠. 나도 사나에로 태어나고 싶
아무튼 그런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변하는 과정이 이 소설이 줄거리입니다. 히지리, 레이무와 합류해서 마을에 등장한 설녀 이변을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변을 끝낸 뒤 모리야 신사에서 두 신님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소설이 끝납니다. 이변 해결에서 얻은 경험과 두 선배들에게서 얻은 격려로, 그리고 신님들에게 자신의 마음의 짐을 풀어놓고 사랑을 확신하며 사나에는 한 층 성장합니다. 사춘기의 모난 마음이 사건을 통해 무너지고, 그 과정에서 더 단단한 마음을 얻게 되는, 사춘기 사나에의 성장기인거죠.
쉽게 읽히게 잘 쓰셨습니다. 편하게 읽을 수 있어요.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쉽게, 너무 편하게 읽힙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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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아무리 슬픈 과거의 기억을 갖고있다 할지언정 그 기억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나가지 못한다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으니까요."
이때까지는 내가 가진 과거의 기억들 때문에 불안함을 느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히지리 씨와 레이무 씨의 격려, 그리고 이번 이변을 겪고 궁극적으로 깨달은 게 있으니까.
과거의 불안함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고, 내가 이룬 결실들을 되새기며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좋아요, 그럼 이제 나머지 일을 처리하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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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사나에가 두 이변해결사와 같이 이변을 해결한 직후의 장면입니다. 소설 전반적으로 나타난 문제점입니다. 이렇게 쓴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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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아무리 슬픈 과거의 기억을 갖고있다 할지언정 그 기억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나가지 못한다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으니까요."
이때까지는 내가 가진 과거의 기억들 때문에 불안함을 느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좋아요, 그럼 이제 나머지 일을 처리하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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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두 개를 통으로 삭제했지만, 앞 부분과 이어진다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죠. 깨달음은 이미 첫 대사로 나타났고, 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사나에의 말투 때문에 사나에의 감정 변화는 쉽게 읽히죠. 지워진 두 문장은 필요없는 묘사였다는 거에요. 필요없고 반복되는 글들은 지루함만 더할 뿐입니다.
지적하자면 묘사 과다입니다. 대사나 주제 전달 뿐만이 아니고, 상황 묘사조차도 너무 세세히 적혀 있어 독자가 생각하고 상상할 여지를 남겨주지 않습니다. 소설을 읽으면 상상력이 자극되고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이 떠다녀야 하는데, 화면 너머로 영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는 기분까지 듭니다. 아예 몇 문장을 통으로 삭제해 버린다면, 그 부분이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워져 반대로 더 재미있어질 거라고 확신해요. 소설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마 묘사 부족이라는 지적을 듣고 피드백을 과하게 해서 오히려 묘사 충만이 된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ㅋ
지적한 부분을 제외하고 제 감상만 말하자면 꽤 따뜻한 글이었습니다. 성장기의 어린 마음이 고민과 괴로움을 양분삼아 자라나는 모습, 그리고 겨울이라는 계절과 대비되도록 가족적으로 단란히 그려낸 마지막 구도가 참 좋았어요. 인간극장 다큐멘터리 한 편을 감상한 뒤의 휴머니즘을 느끼고 있네요. 히지리와 만나 겨울을 걷는 두 사람의 구도는 뭔가 소설 「동행」이 연상됐구요. 따뜻하고 달짝한 단팥빵같은 글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P.S. 주제의식에 대한 평가는 저는 포기하겠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따지면 승화이긴 한데… 뭔가… 뭔가…. 네. 그냥 뭔가 뭔가네요. 주최자분 미리 감평 화이팅입니다.
9. 최후의 상주 - 초핫
미친. 미친…. 이 글도, 아직 감평을 올리지 않은 다른 한 글도, 작품을 쓰기 전에 읽었다면 저는 아마 대회에 참여조차 않았을 것 같아요. 마지막 날에 올리셔서, 그리고 저도 마지막 날에 달리느라 바빠서 놓치지 않았다면 경쟁을 포기했을 거에요. 네. 벽 느꼈습니다. 느껴지는 내공이나 글솜씨가 남다릅니다. 그만큼 저를 매료시킨 글이고, 이 감평에도 제 감상이 여실히 실릴 겁니다.
간단히 줄거리만 시간 순으로 읊겠습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지금 당장 한 번 읽어 보셨으면 해요. 스포일러 당하기에 아까운 글입니다.
환상향이 멸망합니다. 결계가 무너지며 나가노 댐의 저수와 연결되어버린 환상향은 물로 가득 찹니다. 환상향의 대부분이 물에 휩쓸려 익사하고, 그나마 일부 인원은 스키마를 통해 바깥 세계로 탈출하지만, 그마저도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환상의 존재들이 하안 연기로 승화되며, 인간들만이 바깥 세계의 이물질로 남게 됩니다. 어떻게든 적응하여 살아가던 옛 환상향의 인간들에게도 수명의 끝이 다가오고, 그 중 한명인 모토오리 코스즈도 세상을 떠납니다. 남은 인간 중에는 모코우도 있었습니다. 환상향을 기억하는 이들의 모임인 '망향회'에서 유일하게 어리고 젊은 몸인 모코우는 코스즈의 상주가 되어 그녀의 빈소를 지키고, 화장터를 지나 장지에 향하며 끝맺어집니다.
가장 강하게 끌어당기는 중력은 문체입니다. 첫눈에 먼빛이라는 단어에 흠칫. 본가에서 본 듯한 먼지 낀 종이책의 옛 향기가 나는 단어들. 산일, 신산, 불콰, 퇴조, 구태, 이태…. 무자맥질, 카미카쿠시(神隠し), 히에라르키(hierarchy), 비전향 장기수…. 익숙지 않아 더 선명히 남는. 그리고 문장, 구성마다 집착에 가까운 대비와 외형률로 채워 넣어져 있습니다. 조소된 소도, 수몰되었으나 몰수되지 않은, 젖었으나 멎지 않을…. 세태로 시작한 문장 뒤에 성경 번역에나 쓰이는 이태라는 고어로 운을 맞춘 걸 보고 현실에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제가 너무나도 가지고 싶은 문체입니다. 완벽하게 제 취향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문체라지만 처음에는 이걸 단점으로 읽었습니다. 너무 심하게 고풍스러워서 쉬이 읽히지 않는, 그래서 작품을 읽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는 서술이 아닌가 했었습니다. 하, 아니였어요. 이 작품, 주인공이 모코우죠. 그리고 서술하는 목소리도 모코우의 것이고. 서술에서 나는 퀴퀴하고 씁쓸한 옛 것의 향취는 모코우의 정서에 스민 세월의 내음입니다.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 이 작품의 모코우에게 미친듯이 매료됩니다.
대비되는 것은 문장 뿐만이 아닙니다. 여러 이미지들 또한 수많은 대비로 그려집니다. 환상향은 침수 사건을 기점으로 이분됩니다. 신과 요괴를 포함한 환상의 존재들은 두 가지 결말을 맞습니다. 물에 가라앉아 끝을 맞이하거나, 어떻게 탈출해서도 바깥 세상의 공기에 승화되어 세상에서 사라지거나. 그와 대비되는 존재들은 환상이 아닌 존재들, 인간들입니다. 인간들만이 인간 세계에 받아들여지죠. 인간들에게 주어진 결말은 하나 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죽음과 마주하죠. 이 소설에서는 코스즈가 대표로 죽음을 만나네요. 그런 코스즈의 마지막이 대미입니다. 1000도가 넘는 초열에 하얀 연기로 승화되고, 남은 유골은 댐에 산골되어 물에 가라앉겠죠. 우습게도 환상향의 모든 존재가, 환상이든 인간이든, 같은 결말에 닿게 됐습니다. 물에 가라앉은 침전물이 되든, 대기에 산산히 흩어지든. 단 한 명, 이분선 위에 선 사람을 제외하고요. 모코우입니다.
모코우는 이 모든 일을 바라보며 담담히 서술합니다. "충분히 오래 살아 세상의 격변에 익숙한 사람은 자기 뿐"이라며, "이번에도 상주는 자기가" 맡습니다. 허한 울상을 짓는 아큐나, 약간 홀가분해 보이는 레이무와 달리 그저 해야 할 일을 한다는 투로 서술합니다. 마치 자기는 여기에 속하지 못한 것처럼. 환상도 인간도 아닌 존재로, 어느 한 쪽으로 구분되지 못한 채 혼자 살아남게 될 테니까. 그녀는 선분과 직선 그 사이의 반직선입니다. 환상들은 환상향에서 대홍수로써 심판됐고, 인간들은 화장터에서 불로써 심판됩니다. 모코우는 영원히 멸망치 아니하는 영생을 가지고 있어서 이 중에서 홀로 심판을 받지 못하고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음으로서 지옥에 살아가게 되겠죠. 그녀는 죽지 못한 채 어디에도 없는 환상향을 홀로이, 외로이,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그녀는 내심 저들을 부러워합니다. "언제쯤 이 사람들은 넋이라도 그들의 낙원에 돌아갈까." 자기는 돌아가지 못할 낙원에. 담담한 서술에 외로움과 그리움이 사무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인 척 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입니다. 결국 잿빛의 문체로 그려진 것은 모코우의 쓸쓸한 망향입니다.
너무 매력적이지 않나요. 여타 수명물과 다르게 영원히 곁에 남을 에이린과 카구야도 없는 모코우라니.
필체부터 내용까지 완--벽하게 취향 저격 당했네요. 한 편만 더 써주시면 안될까요?
10. 검은 불꽃을 밝히다 - 장기짝
축생계에 오게 된 킷초 야치에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유혹하려 드는 '목소리'의 말대로, 인간들을 시켜 땅을 파내고 석유를 뽑아냅니다. 제목의 '검은 불꽃'은 시추된 뒤 검붉게 타오르는 석유의 모습이죠. 언뜻 탐욕을 비치는 듯 했던 야치에는 어느 순간 석유 사업의 확장에 미지근해지고, '목소리'는 이런 야치에가 답답해져 직접 나타납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토테츠 유마였고, 야치에로부터 석유 우물을 강제로 빼앗으려 하지만 야치에는 그냥 유마에게 소유권을 넘겨버립니다. 그리고 떠나는 야치에의 뒤로 웃으며 춤추는 유마의 모습을 비추며 페이드아웃 됩니다.
이후에 동방강욕이문으로 이어지겠네요. 토테츠 유마는 결국 석유 산업을 지배하게 될 것이고, 곧 마타라 오키나가 등장해서 환상향에 빵꾸내러 가겠죠? 유마가 석유 산업에 진입하는 장면을 원작 밖의 캐릭터인 야치에를 데려와 그려내셨네요. 원래 두 명은 서로 경쟁하는 조직의 수장 관계이지만, 원작에서 둘이 만나는 일은 없었거든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제목에도 들어간 "석유"입니다. 석유는 검은 황금이라고도 불리죠? 이 글에선 석유 대신 보석이나 황금, 어떤 가치있는 자원의 이름을 적어넣어도 상관 없습니다. 탐욕과 권력의 심볼이거든요. 현실에서도 전쟁과 경쟁을 불러온 석유는 축생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축생계의 인간들은 석유를 가지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일부는 공포와 경외의 대상인 야치에의 석유마저도 탐냅니다. 이런 석유에 대한 야치에와 유마의 반응이 가장 중요합니다.
쏟아져 나오는 석유에 대한 두 명의 반응은 각각 처음과 끝에 나옵니다. 둘 모두가 동일하게, 춤을 추고 탐욕스러운 웃음을 흘리죠. 그런데 정작 석유 산업에 대한 둘의 행보는 정 반대입니다. 적당히 자리잡은 뒤 확장을 멈추는 야치에와, 강욕이문에서 그려지듯 축생계의 모든 석유를 가지려는 유마. 이 둘의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그려지는 장면이 이 작품의 절정 부분입니다. 석유 생산지의 소유를 놓고 싸우자는 유마는, "그래 너 가져라"라고 쿨하게 포기하는 야치에의 말에 벙찐 표정을 짓습니다. 황당한, 멍한, 넋이 나간 표정이라고 세 번이나 표현됩니다. 도철이 커엽네요.
유마에게 석유는 목적입니다. 자신의 힘이고 권력인 동시에 모든 인간들의 욕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죠. 야치에한테는 석유가 목적이 아닌 수단입니다. 야치에가 얻고 싶었던 것은 석유 그 자체가 아니고, 석유를 탐내는 인간들의 욕망과 광기가 섞여,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며 폭력적인 자신의 고향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소설 전반에 걸쳐 완벽히 조성된 긴장감을 철저히 우그러뜨리며 나타낸 것은 그만큼이나 일그러진 야치에의 망향입니다. 자신을 유혹한 목소리의 주인이 고향을 망가뜨리고 멸망시킨 목소리의 주인임을 깨닫고도, 본인인 유마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일말의 분노도 나타나지 않죠. 애초에 야치에가 사랑한 것은 고향의 모습이 아니고, 혼돈과 파괴 속에 미워하며 싸우는 고향의 모습을 보면서 비웃는 것입니다. 제대로 곱게 미친년이에요.
오히려 독자 입장에서 더 이해하기 쉬운 캐릭터는 토테츠 유마 쪽이죠. 굉장히 상식적으로 석유가 곧 힘이고 권력이니까 가지려고 하는 것이고, 동시에 강욕이문에서처럼 그녀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야치에의 고향을 망가뜨리며 그녀를 축생계로 유도하고, 그런 그녀를 유혹하고 자극해서 자기는 힘을 들이지 않고 축생계의 석유를 차지하려는 치밀한 계획까지 진행시키고 있었죠. 힘에 대한 욕망이 확실하고, 동시에 굉장히 똑똑하기까지 한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그런 그녀가 제대로 미친년인 야치에의 말 한마디에 당황하는 그림은 정말 재미있네요. 희대의 골계미입니다.
읽는 맛이 있는 글입니다. 첫 장면부터 느꼈지만 글이 흡입력이 굉장합니다. 나무랄 데 없는 깔끔한 서술도 마음에 듭니다. 제가 뭐 이것저것 살을 붙여 설명을 적었지만은, 굳이 제 감평과 설명이 없었어도 이 글을 읽는 독자 모두가 동일한 이해와 감상을 느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소설 외의 다른 어떠한 매체 없이도 그려내고 싶은 것을 충분히 잘 그려낸, 잘 써진 글이 확실하네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뭐 더 적을게 없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꼭 이 소설은 밤에 올려야 할 것 같아서 지금까지 버티다가 업로드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봤던 밤이 가장 쓸쓸하고 아름다웠나요? 햇빛이 짱짱해서 마음까지 하늘빛이 되는 화창한 날도 좋지만, 저는 워낙에 밤을 좋아해서요. 수많은 밤풍경이 떠오릅니다.
어떤 말이 가장 공감대를 자극할까요. 여러분에겐 여러분들의 마음 속 밤풍경이 있겠죠.
그냥 꼭 그런 기분입니다. 주접 떨어서 죄송해요. 메밀밭에만 접어들면 자꾸 언젠가의 추억에 돌아가는 장돌뱅이가 됐었네요.
사실 이 팬픽, 다른 팬픽들처럼 줄거리를 써 내리면 조금 아쉽습니다. 배경은 너무너무 좋아요. 환상을 잃어버린 환상향의 존재들. 환상향의 하늘을 누구보다 빠르게 가로지르던 아야는 추락해 여관에서 손님을 받는 입장이 됐죠. 이런 매력적인 구도를 그렸지만 일어나는 사건과 전개는 이걸 잘 활용하진 못한 느낌이랄까요. 서술도 살짝 어색합니다. 마침표 세 개로 찍어버린 말줄임표, 작은 오타들, 마침표 없는 문장들.
요며칠 감평을 쓰느라 지치긴 했었나봐요. 이번 감평에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원고가 있었지만, 어쩐지 주제가 어떻고 캐릭터가 어떻고를 논한 글을 퇴고하다 보니 답답해져서 싹 다 지우고 새로 썼습니다. 아마 내일 다시 읽으면 오글거려서 좀 삭제하고 싶을 것 같긴 한데, 내가 읽으면서 느낀 게 이거라는데 어쩔 거에요. 이게 감평이 아니면 뭐가 감평임ㅋㅋ
잘 읽었습니다. 환상향의 하늘보단 덜하겠지만, 어쩐지 흐붓한 도시의 달빛 아래 담배냄새 나는 아야가 좋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좋은 밤 되시길.
12. 향수병 - Koakuma
선생님들 왜 대체 마침표로 말줄임표를 쓰시는 겁니까. ㄱ+한자로 쓰는 특수문자열 중에 말줄임표(…)가 있습니다. 모를 만한 작가님이라면 말도 안하죠. 근데 선생님은 아시잖아요. 아니, 아셔야죠..
원작 출연율에 비해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동캐는 소악마가 아닐까요. 대사도 한 마디 없는데, 잘도 인기 캐릭터 라인에 껴 있습니다. 원작에선 이름조차 나오지 않고 BGM조차 배정되지 않은 중보스인 대요정, 소악마 둘 다 중간 이상은 갑니다. 신작의 어지간한 캐릭터들은 얘들 밑에서 기어다녀요.
매 작품마다 열 명 내외의 미소녀들이 새로이 참전하고 있는데, 이 두 캐릭터는 신작 등장도 없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간단합니다. 원작 말고, 저 바깥 2차 창작을 본진 삼아 살고 있습니다. 그 생존 비법도 조금 눈여겨볼 만 합니다. 이 둘의 소속이 역대 최고의 개적폐 집단인 홍마향이라서 가능한 거죠. 홍마향은 정말이지 적폐란 말 이상 가는 표현이 없습니다. 홍-요-영 트릴로지가 다 적폐지만, 홍마향은 그 중에서도 격이 다르달까요. 저보다 1년 늦게 태어난 작품이면서, 작품의 모든 캐릭터들이 아직까지 현역 중의 현역입니다. 난 전역하고 아저씨 됐는데.
예. 한 줄로, 이 둘은 명품 조연입니다. 슈퍼스타인 치르노나 홍마관 가족들의 곁에 그려져 주연들의 매력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딱 적당한 무게감, 캐릭터성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소악마 없는 파츄리, 대요정 없는 치르노는 뭔가 허전할 정도로 세트메뉴가 되어 있습니다.
영화배우 김성균씨를 아시나요? 이름만 들으면 모르실 지 모르겠지만, <범죄와의 전쟁>과 <이웃사람>,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하셨던 그 분입니다. 처음부터 주연으로 발탁된 것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작품에서 악역 혹은 조연으로 열연을 보이며 그 실력을 인정받고 주연 못지않는 매력을 뿜는 배우로 인정받고 있죠.
소악마와 대요정 또한 동일합니다. 하도 많은 작품에 조연으로 등장하다 보니, 이젠 조연을 넘어서 그 둘만의 독자적인 캐릭터성과 팬층을 갖추는 데 성공했어요. 원작 등장이라는 근본도 없이요. 뭔가 떠오르는데, 베개영ㅇ
그런 소악마에 푹 빠지신 작가님입니다. 아주 푹이요. 닉네임부터 소악마에요. 소악귀가 따로 없습니다. 그 만큼 한 우물을 오래 파오신 분이란 거겠죠. 「방망이 깎던 노인」, 「독 짓는 늙은이」 등에서 그려지는 장인정신이 느껴집니다. 뭔 뜻이냐면, 캐릭터 묘사가 아주 진득하니 맛있어요. 이런 비유 하는 저 스스로도 웃기지만, 막 화려하고 대단한 재료와 기술로 만들어진 고급 요리가 아니라, 한 자리를 오래 지켜온 원조 맛집의 보장된 손맛이 느껴집니다.
소악마에 대한 애정으로 주연과 조연을 뒤집어서, 주조역전세계를 그리신 작가님이 이번에는 레밀리아를 조연 삼으셨네요. 레밀리아와 소악마라, 정말 뜻밖의 조합입니다. 소악마를 얼마나 파오신 건지, 홍마관의 면면들도 참 맛깔나게 표현하셨네요.
맛깔나는 건 캐릭터 해석만이 아닙니다. 글을 쓰신 필체도 굉장히 맛집입니다. 장면은 계속 전환되지만 모든 서술은 대화를 위주로 하시는 특징이 있고, 그 사이사이에 [ ~는 ~했다.]는 형식의 문장으로 상황을 설명합니다. 작품 내내, 아니 이 작품을 넘어서 작가님의 특징이죠. 사실 어떻게 보면 단조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배경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지만 문체는 항상 일정하게 인물 간의 대화, 그리고 그 장면을 그리는 설명문이 대부분이니까요. 어느 정도냐면, 글 전체에 [레밀리아]라는 이름은 103번, [소악마]라는 이름은 165번 나옵니다.
어지간하면 반복되고 단조로운 것은 제 기준에서 감점사항인데, 이 작품에서는 아니에요. 다른 모든 감평에서도 제가 하는 지적의 기준은 단 하나, '그 작품에 방해되는 요소'입니다. 앞서 말한 작가님의 캐릭터 묘사에, 모난 곳 없는 일정하고 부드러운 서술에, 적절한 주제 선정과 무게감 부여, 글의 길이나 문장을 끊는 호흡에 완벽히 부합해서, 오히려 "팬픽스럽다"라는 표현에 정확히 들어맞는 작품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합니다.
한 편의 단편 팬픽으로써 참 적절합니다. 소설 연재 사이트에서 동방 팬픽을 검색하면서 만난다면 '그래, 이 맛이지' 할 글입니다. 맛은 굉장히 안정적이야. 역시나 보장된 맛입니다.
어지간하면 이 글의 완결성을 위해 제가 여기서 끊으려고 했는데, 이 부분은 언급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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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의 햇빛처럼 밝지도 않고, 한 여름밤의 보름달처럼 매혹적이지도 않은 붉은 노을이 두 사람을 비추었다.
"그러고 보니, 둘이 다니는 건 처음이네. 홍마관의 밖도 처음이랬지? 오늘 하루. 어땠어?"
녹슨 자전거. 삐걱거리는 아치교. 떠드는 아이들. 버려진 신발 한 짝. 굴뚝의 연기.
"... 좋았어요. 정말로. 마계와는 다른 느낌이고... 꽤 멋있고 좋았어요."
오래된 간판. 바람 빠진 공. 어색한 웃음. 어설프게 칠해진 하늘.
"... 저번에 말했었지? 예전엔 네 나름의 꿈이 있었다고."
수줍은 들꽃. 자유로운 새. 레몬 사탕. 잠깐의 침묵.
"... 네. 지금은.... 오래되서 기억은 안 나지만요."
색이 벗겨진 나무 의자. 노을의 주황색 빛.
"뭔진 몰라도 응원할게. 네 꿈을."
꿰뚫는 미소. 잃어버린 꿈.
"아......"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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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대미大味입니다.
분위기를 바꾸어 명사어의 연계로 바뀌는 서술.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의 오감을 다 어우른 감각적 표현으로 그린 낭만적 배경. 대사, 지문, 대사, 지문의 교차. 현대시 「이 사진 앞에서」가 떠오르는, 의도적으로 길이를 조절하여 시선을 끌어모으는 트릭.
행의 길이가 줄어들 수록 같이 줄어드는 것은 두 사람의 마음의 거리감입니다. …물리적인 거리일 수도 있습니다. 저러고 둘이 뽀뽀했을지 누가 알아요. 제가 보기엔 저 때는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할 것 같긴 합니다. 큰 소악마와 작은 대악마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이렇게까지 힘을 빡 주고 쓰신다면 그 정성을 제가 어찌 그냥 넘어갈까요. 같은 작가로써 할 짓이 못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건 감평이 아니고 개인적인 질문, 쓰고 계신 거 연재 중단하신 건 아니죠?
13. 나의 그리움 - 교복입은 레이센
짚고가는 지적이 좀 많습니다. 후기에서 소설가를 꿈이라고 하셔서 리미터 해제됐네요ㅈㅅㅋㅋㅋㅋ
1. ㄱ+한자+아래로 내려서 1에 말줄임표(…)가 있습니다. 마침표 세 개 말고 이거 쓰시면 됩니다.
2. 자잘한 문장 수정도 필요합니다. 오탈자, 띄어쓰기, 닫히지 않은 따옴표 등.
3. 이 글, 모바일로 쓰신 것 같아요. 맞죠? 문장이 끊어질 곳이 아닌데 다음 줄로 넘어간 부분이 있고, 글이 어느정도 길이에 도달하면 대부분 엔터로 끊어지네요. PC로 보는데도 모바일으로 읽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ㅋㅋㅋㅋㅋ
4. 문장 자체가 좀 많이 짧습니다. 그리고 [~는 ~했다.] 형식의 문장이 너무 많습니다. 서술이 단조로워요.
5. 레이센이 보는 세계를 그려낸 것은 참 좋습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다워요. 그런데 서술이 대부분 행동만을 서술합니다. 팬픽이니 서술 없이도 어느정도는 그려져서 괜찮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좀 부족하다고 느껴진달까요. 공간적 배경이 어디인지, 어떤 캐릭터가 어떤 모습인지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행동과 대사 위주라서 약간 시나리오 스타일입니다.
6. 글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동일한 목적에는 동일한 형식을 써 주셔야 독자들에게 필요없는 혼란이 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분에서는 큰따옴표[ " " ]로, 어떤 부분에서는 작은따옴표[ ' ' ]로, 어떤 부분에서는 소괄호[ ( ) ]로 레이센의 속마음을 표현하셨네요. 엔터를 넣어서 문단을 구분하는 기준도 들쭉날쭉합니다.
8?? 레이센의 자기묘사가 살짝 오글거립니다 ㅎㅎ; 자기애 넘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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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옛날 생각 확 올라오는 글입니다. 제가 중1때 처음 읽었던 동방팬픽이 네이버 블로그에 업로드 된 txt파일이었는데, 그 때 당시 팬픽의 국룰이었죠.
주인공은 오리지널 남캐, 혹은 오리캐가 빙의된 동캐였고, 1인칭 주인공 시점에, 원작 캐릭터들과 이런저런 일상을 보내다 갑자기 본편이 진행돼서 이변 해결에 나서는. 이변이 줄거리의 메인으로 올라오니까 확 그 때 감성이 물씬 나네요. 추억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에이린과 카구야를 만나 지상에 적응하는 영야초까지의 탈영병 레이센, 감주전 때의 이변해결사 레이센이 나오네요.
조금 아쉽습니다. 원작을 끌고온 것 자체는 저는 괜찮게 봐요. 근데 원작을 너무 그대로 읽으셨습니다.
탈영병인 레이센의 설정도, 영야이변 이전까지의 배경도 좀 그렇지만, 감주전 부분이 특히 심합니다. 인트로부터 1에서 6면까지 진행을 순서대로 다 넣어야 했을까요?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 큰 감흥을 불러오기 힘든데, 대사와 진행도 그대로 가져와서 더 심합니다. 작가님만의 오리지날한 부분은 레이센의 생각과 감정인데, 이것도 위의 지적사항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어서 조금 아쉬웠네요.
저도 이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확하겐 문장이나 서술을 다른 것의 패러디로 채워넣는 습관이 있었는데, 나중에 되돌아보면 큰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끽해봐야 아 그거 패러디네, 하는 감상 이상을 내기 힘들고, 글의 무게가 확 가벼워집니다. 뭣보다, 나만의 글인데 내가 쓰지 않은 문장들로 채워진 게 싫더라구요.
이건 완전 제 취향이 섞인 부분인데, 레이센의 캐릭터 해석이 저랑 반대네요. 저는 달에 있던 달토기쉑들보다 영원정 멤버들과 더 가족같다고 생각합니다. 테위쟝 왜 안나옴ㅜㅜ
처음 쓰신 팬픽이라고 하셨죠! 지적을 많이 했지만, 당연히 처음이라 어색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고, 고치면 더 나아질 부분을 짚은 거에요.
지적 받으면 주눅들거나 부끄러울 수 있는데, 저도 똑같았습니다. 막 생각하고 상상한 건 많은데, 정작 쓰고 나니까 제 눈에도 오글거리고 읽기 힘든 글이 돼 있더라구요. 재미없다는 평가가 진짜 뼈아픈 평가였던 것 같아요. '이딴걸 왜 썼지ㅋㅋ' 이 댓글에 한 달동안 내상 입었었네요. 그렇게까지 상처 입을 필요가 전혀 없었더라구요. 당연한 일이고, 발판 삼으면 그만. 아니면 생까도 그만입니다 ㅋㅋㅋㅋㅋㅋ
18kb나 되는 글 용량과 원작 여럿 분량의 설정을 활용하신 부분에서 들이신 정성이 보입니다. 정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냥 꾸준히 글을 많이 쓰셨으면 좋겠어요. 큰 작품, 대회를 준비하는 것도 실력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지만, 제가 느끼기엔 요령 부족을 타파하는 데는 경험치만한게 없더라구요. 응원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14. 마계의 모두와 함께 - 안쓰는계정
오, 저번에 다른 작품으로 감평했었던 작가님이시네요. 동일한 작가님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읽어도 재미있죠! 가장 큰 특징으로, 시점을 바꾸셨네요. 헤헤, 저번 작품에서 캐릭터의 감정을 다루는 동시에 객관적으로 쓸 수 있는 시점을 추천드렸는데, 나쁘지 않은 언급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앨리스의 감정을 잘 살리면서 자연스러운 상황 서술이 나타나네요. 물론 제가 감평을 쓴 게 대회 한참 뒤라서, 제 추천과 조금도 상관없는 작가님의 판단이었지만요. 틀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제목에서 나오듯, 마계에 오랜만에 찾아가게 된 앨리스와 그런 앨리스를 반기는 마계의 식구들 이야기입니다. 중요하게 짚은 내용은 마계에 돌아오기 굉장히 부담스러웠던 앨리스의 마음이네요. 앨리스의 무거운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언제 어떤 모습이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더라도 괜찮다며 따뜻하게 안아주는 신키와 마계 식구들의 모습에 성장하는 내용입니다.
음, 음. 좋습니다. 서술도 어색함이나 부족함이 없고, 내용도 주제도 만족스럽습니다. 근데 뭔가 짧습니다. 공백 제외 4천자가 안 되는 소설이니 실제로 짧은 분량인게 맞지만, 그것 이상으로 짧게 느껴져요. 왜 그런가 생각을 조금 해 봤습니다.
인물간의 대화 내용이나, 앨리스의 감정 변화를 제외하고, 소설의 줄거리만 읽어 볼까요. 2년만에 마계로 돌아온 앨리스와 신키의 만남, 대화를 통한 성장, 유키를 위시로 한 다른 식구들의 등장, 파티에 참여하러 가면서 끝. 실제로 줄거리 자체가 좀 많이 짧죠? 제 감상은, 소설 한 편보단 소설 속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각 인물들에게 동선이라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어요.
짧다고 해서 부족하단 말은 아닙니다. 말씀드렸듯 내용도 주제도 잘 읽히도록 이야기 안에서 결말을 잘 지었어요. 그렇다면 한 장면의 앞뒤를 살짝만 늘리면 그만입니다. 앨리스가 마계로 돌아오게 되는 intro를 그리거나, 이어질 파티 장면을 outro로 그리거나.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앨리스의 생각 속에서 언급되는 2년의 내용을 살짝 덧대는 게 어떨까 싶었습니다. 마계에서의 신키와의 대담을 외화, 환상향에서의 2년간의 분투를 내화 삼아서 액자식 구성으로 그렸다면 어땠을까요? 앨리스가 2년동안 분투했다는 내용이 구체화되면서, 그럼에도 이룬 것이 없다는 앨리스의 마음과 부담이 조금 더 깊어지겠죠. 조금 더 분량이 늘어나는 건 덤으로 챙겨갈 수 있구요! …제가 이런 소리 하는 이유는 그냥 아쉬워서입니다. 조금 더 읽고 싶은데, 쩝.
그거 말고, 참 맘에 든 구석이 있습니다. 전 작품의 감평과 거의 똑같은 포인트에요. 작가님과 제 취향이 비슷한가 봅니다. 전작의 사나에가 현실의 사춘기 소년소녀같다고 느껴졌다면, 이번 작품의 앨리스의 마음은 갓 성인이 된, 사회 초년생의 마음과 비슷하네요. 성인이 되고 나이를 하나둘 먹어가면서 해야 할 일들, 해내야 할 일들이 점점 많아지지만 정작 내가 이룬 것은 제대로 된 게 하나가 없고. 지극히 한국적으로 표현하자면, 추석이나 설 명절에 친척들 얼굴을 보기가 왠지 부담스러워진 내 모습 같아요. 갑자기 현타가 확 올라오네요. 저번 편은 옛날 모습이라고 회상할 수 있지, 이건 그냥 지금 나잖아….
가족적인 엔딩은 전작과 같습니다. 사나에가 큰 어른 두 명에게 안기던 모리야 신사와 달리, 마계에서는 신키마망과 함께 있는 생기발랄한 유키와 마이의 모습이 그냥 빼박 명절 사촌동생들 모습이에요. 전작을 읽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따뜻해서 좋습니다. 소설의 첫 문장처럼 따사로워요.
하아, 맛있는 요리인데, 양이 살짝 부족해요. 주인장 1인분 더 내와. 이번 작품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5. 환상은 한낱 봄꿈 - 대공분실우산마술
유카리가 달을 보다가 감성이 자극돼서 한 밤중에 요괴들을 모아 연회를 열게 되는 이야기네요. 구체적인 문장을 잡기는 조금 어렵지만, 튀는 일 없이 담백하게 서술하는 유카리의 감정이 중요시되는 글입니다. 각 요괴를 만나며 연회장에 모이게 되는 과정이 일종의 여로형 소설처럼 읽혔습니다. 길을 따라 순서대로 걸어 볼까요.
인용으로 시작되는 글입니다. 바깥 세계의 마에리베리 한 - (실존인물)라프카디오 헌 - (일본 귀화명)코이즈미 야쿠모 - 야쿠모 유카리순으로 연결고리를 맺고, ZUN이 야쿠모 유카리에 대한 은유로 코이즈미 야쿠모를 사용한 바 있기 때문에 해당 인용 자체를 야쿠모 유카리와 연계해서 읽을 수 있겠죠. 인용에 아무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더라도 읽다 보면 누구의 심정을 대변한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문장입니다. 인용이 표지하는 것은 야쿠모 유카리의 허무함입니다.
장면을 구분해볼까요. 밤 벚꽃 장면, 레밀리아 스칼렛과의 대담, 백옥루로 걸어가는 유카리, 사이교우지 유유코와의 대담, 연회 장면으로 구분됩니다. 이렇게 보니까 완벽하게 5구성이네요? 밤 벚꽃 장면은 말 그대로 발단이 되는 장면입니다. 벚꽃을 바라보며 유카리의 감정이 촉발되는 것이죠. 왜인지 모르게 서글프고 쓸쓸해진 유카리가 연회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됩니다. 그 와중에 오밤중에 연회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대서 밤에 술 심부름 하게 된 란이 불쌍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카리가 처음 향한 곳은 홍마관입니다. 레밀리아 스칼렛을 초대하며, 홍마관 특산품 와인을 조금 받을 심산이었죠. 여러 잡다한 얘기를 - 사쿠야가 맛이 갔니 하는 얘기를 포함해서 - 나누지만,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와인"입니다. 정확하겐 "바깥 세계의 와인"이죠. 1945년 열강들을 끌어당기며 세계를 집어삼키던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지은 것은 인류 최초이자 마지막 핵폭탄의 투하였습니다. 방사능 동위원소인 세슘-137 또한 전 세계에 퍼지며, 그로 인해 핵무기 사용 이후에 제조된 와인에서는 세슘이 검출됩니다. 이 와인이 나타내는 것은, "시간이 흐르며 새기고 가는 되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유카리의 엔트로피 얘기처럼,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며 이전과는 달라지기 마련이죠. 레밀리아는 그럼에도 '최소한 홍마관은 그 때와 같다'며 만족하죠. 유카리는 어떨까요?
다음 장면에서 유카리의 진심이 조금 더 드러납니다. 유카리는 백옥루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생각하죠. 시간이 흐르며 변한 인간과 요괴의 관계를. 인간의 무지로 인해 환상과 신화가 태어나고, 그렇게 세계에 나타난 환상의 존재들을 인간들은 두려워합니다. 유카리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바깥 세계는 변했다며 사무치게 서글퍼하죠.
백옥루에서 유카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유유코입니다. 상당히 중요한 캐릭터입니다. 통보 없이 찾아온 유카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유유코는 이 작품에서 어딘지 초월적인 시선을 가진, 일종의 신탁을 내리는 무녀같거든요. 마찬가지로 많은 대화를 하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벚꽃"입니다. 바깥 세계의 벚나무가 과거와 현재에서 달라졌는가?라는 설의법으로 유카리의 마음을 꿰뚫습니다. 벚꽃은 변했지요. 개량과 교접을 거친 현재의 벚꽃나무는 그 때와는 원형만을 남긴 채 확연히 다릅니다. 다른 모든 작물과 과일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여전히 벚꽃은 아름다운 정취를 자아내며, 그 아래서 벚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과거와 마찬가지, 그대로입니다. 벚꽃이 나타내는 것은,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유코와의 대담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유카리는 하쿠레이 신사로 향합니다. 레밀리아와 유유코, 그리고 란까지 네명이서 연회를 즐기고, "가끔씩은 괜찮겠네, 결계 밖에서의 꽃놀이도."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로 마지막 문장을 남깁니다.
음. 줄거리를 읽었는데, 마지막 문장이 잘 해석되지는 않죠? 제가 처음 느꼈던 감정입니다. 다시 읽어본 제 감상은 아주 살짝 불친절한게 맞는 것 같아요. 조금 더 해설을 가미하면 그제야 해석되더라구요. 그게 느껴졌으면 해서 의도적으로 이렇게 썼답니다. 부족한 해설이지만 조금 덧대어 볼까요.
유카리에 대한 몰입 없이 가볍게 글을 읽었을 때, 그래서 유카리가 그리워한 게 바깥 세계라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에요. 유카리가 진정 그리워한 것은 바깥 세계가 아니고, 환상향이 없었기에 세계가 안팎으로 구분되지 않던, 그 시절의 세계입니다. 인간에게 환상은 환상다웠고, 요괴는 요괴다웠기에 그녀 또한 그녀다울 수 있었던 시절. 말하자면 그녀의 호시절이죠.
그런 시절은 앞서 레밀리아의 대담에서 드러나듯 시간 앞에 스러집니다. 인간이 합리와 이성을 부르짖기 시작했을 때, 인간의 무지로부터 탄생한 환상과 신화들은 그 설 곳을 잃게 되었죠. 세계에서 환상들이 쫓겨나는 것을 본 유카리가 만든 것이 환상향입니다. 더 이상 잊혀지고 사라진다면 환상종들 자체가 멸종하게 생겼습니다 - 노아의 방주와도 같은 역할이죠. 그리고 환상향은 나름, 아니 꽤나 성공적입니다. 레밀리아의 "그래서 너에게는 감사하고 있어. 어찌 됐던 부지를 제공해 준 셈이니까."라는 대사가 말하듯, 환상은 그 안에서 온전히 살아남았거든요. 저는 스노우글로브가 떠올랐네요. 시간에 맞서 아름다운 한 때를 보존해 둔. 유카리는 이런 환상향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 태도는 유유코와의 대담에서 드러납니다. 유유코는 지금의 환상향에서의 삶이 불행하냐는 질문을 던지고, 그건 아니라는 유카리의 대답에 "그럼 문제 없는 거지, 뭐"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유카리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침묵으로 부정했어요. 유카리는 환상향을 만들었죠. 하쿠레이 대결계로 분리한 이유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환상향이 필요했던 시점부터, 이미 그녀가 그리워하는 호시절은 지났습니다. 게다가 바깥 세계를 자주 넘나드는 그녀는 이 세계가 그 시절의 세계의 모형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죠. 그렇기에 더 "사무치게" 그 시절을 떠올리는 거에요. 어떻게 해도 그 때 그 시절은 진정으로 돌아올 수 없으니까.
유유코는 다시 한 번 벚꽃에 대한 물음으로 그녀를 꿰뚫습니다.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지 않냐고. 그제서야 유카리는 깨닫습니다. 인간의 근본 또한 변하지 않았구나. 인간이 두려워한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세계의 위대함에서 인간세계의 치열함으로 변한 것 뿐, 여전히 인간은 두려워하는 그것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고 있습니다. 신화와 환상은 그 탄생 배경을 생각하면 시대의 흐름에 거스를 수 없는 존재이기에 뒷세계, 환상향에 밀려난 것 뿐이죠. 시간이 스치며 변한 것은 시대이지, 인간도 유카리도 아닙니다.
마지막 대사는 깨달음으로 변한 유카리를 드러내는 대사입니다. '과거의 바깥 세계', '현재의 바깥 세계', '환상향'으로 구분되는 세 세계를 유카리의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그 중 최악은 '현재의 바깥 세계'죠. 그 시절은 진즉에 지나갔으며, 인간들은 변했고, 환상은 한때 주어졌던 자리를 박탈당했습니다. "가끔씩은 괜찮겠네, 결계 밖에서의 꽃놀이도." 시대가 흐르며 변하는 것들을 안타까워하며 괴로워했으나, 그녀는 인정하게 됐습니다. 세상은 변할 수밖에 없으며, 그럼에도 가장 근원적인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고. 지나버린 그 시절을 조금은 놓아주는 법을 알게 됐죠.
분명히 원문 안에서 있는 내용들만을 써서 해석했는데, 처음에는 왜 쉽게 안 읽혔을까요? 저는 두 가지 정도 꼽을게요. 결국 유카리를 이해하려면 유카리의 감정 조각들을 끌어모아 퍼즐을 완성해야 하는데, 그 조각들이 흩뿌려져 있습니다. 글 전체에 걸쳐서 읽히는 것은 괜찮죠. 근데 소설에서 유카리가 걷는 여정에서 시간 순으로도, 시간 역순으로도 아닌 순서로 정리하고 나서야 파편들끼리 연결이 되더라구요. 비판은 아닙니다. 소설의 특징인거죠.
다음은, 여정이 완만하지가 않다는 부분에 있습니다. 독자는 여정을 유카리와 함께 걸으며,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밤 벚꽃을 보며, 레밀리아와 대화하며, 백옥루 계단을 걸으며 유카리의 감정은 고조됩니다. 사무친다는 표현이 절정이죠. 그리고 유유코와의 대담으로 다시 가라앉으며 마지막에는 완전히 평탄한 상태에 이릅니다. 벌써 느껴지죠. 오르막은 세 계단을 걸었으나, 내리막은 한 계단 뿐이기에 낙차가 큽니다. 독자는 급하게 떨어져야 해요. 그렇기에 유유코와의 대화에서 유카리가 깨달음을 확 확 얻는 것이 살짝은 어색합니다. 갑자기 보폭이 커지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영원정의 봉래인들이 등장했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계단이 하나 더 놓이며 단차를 줄여주게 되고, 무엇보다 시대가 변하며 변하는 세상을 놓아주지 못하는 유카리에게 봉래인보다 적절한 조언자가 어디에 있을까요. 셀 수 없는 시간을, 시대를 흘려보내며 살아왔을 그녀들이니까요. 변화 앞에 담담한 사람들은 그들 뿐이니까요.
란쨔마랑 레이무가 뒷정리한다고 할 고생이 벌써 뻔하네요. 이기적이지만 이기적이기에 가장 그녀다운 유카리의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이기적이지 않았다면 애초에 환상의 존재들을 위한 낙원을 만들 수도 없었겠죠. 봄이기에 더 봄날이 그리워지는, 어쩌면 우리와도 같은 모습의 유카리가 안타깝고 아름답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제목이 그냥 스트레이트 펀치네요. 카구야랑 모코우 얘기입니다. 무려 영야초 출시때부터 이어졌으니 2004~2023 20년을 채워가는 커플링이네요. 그만큼 대 근 본 조합이고, 솔직히 우릴 대로 우려낸 찻잎입니다. 여기 두 명이 연애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 없을듯 ㄹㅇㅋㅋ
그렇기에 처음 두 명의 싸움 장면은 과감하게 스킵! …하려 했으나, 살짝의 향신료를 넣어서 펀치를 주셨군요. 레이센이 존나 귀엽습니다. 대사 두 문장으로 이렇게 커여워질수가 있나?? 귀 잡고 넘어지는 장면, 꼭 톰과 제리에서 봤던 한 장면 같아요. 제리가 땅에 박혀있고, 톰은 그런 제리를 골프채로 날려버리려고 하는 장면. 제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귀로 자기 몸을 감싸는 장면이 있었는데 졸커였거든요.
헛소리 ㅈㅅㅋㅋ
몇 번째인지 모를 둘의 죽림에서의 혈투가 끝나고, 나란히 누운 둘의 대화부터가 진짜죠. 먼저 구도부터 저는 「동백꽃」이 떠올랐습니다. 하. 근본 소설에서 나오는 치트키 구도에요. 티격태격하던 둘이, 갑자기 낭만적인 배경에 놓이고, 티격태격 아래 숨겨뒀던 마음을 꺼내는… 이미 이 구도부터 둘의 뜨거운 비빔을 암시하는 것 같네요.
카구야의 대사로 전개됩니다. 둘이 이렇게까지 엮이게 된 이유인 봉래의 약에 대해 진실을 늘어놓죠. 직접 짜신 설정인데, 제가 느끼기엔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애초에 수명이 없다는 월인들에게 왜 봉래의 약이 필요했는지에 대한 모순부터 지적하며 호기심을 확 끌어들이셨어요. 그리고 나온 '고독을 깨닫고, 사랑을 알게하는 약'이라는 설정은 성경쪽의 선악과가 계속 떠올랐네요. 앎이 죄악이 되어서 낙원에서의 추방을 끌어온단 점까지요. 감평 전반에서 드러났지만, 제가 종교인이라 더 이런 게 눈에 보이는 것도 있구요.
어찌됐든 그러한 진실의 고백은 어느덧 사랑의 고백으로 변합니다. 적극적이에요 카구야님. "내가 사랑했던 사람, 사랑할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이야 모코우." 과거, 미래, 현재의 3시제로 읊는 고백, 어쩌면 흔하고 진부할 수 있지만 그야말로 영원을 살아가며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 그녀이기에 조금 더 특별한 문장이 되네요.
그리고 고백에 이어지는 누구인지 모를 한 마디를 끝으로 소설이 끝납니다. 극단적으로 두 갈래 길을 제시하셨어요. 이게 카구야의 대사이냐, 모코우의 대사이냐에 따라 분위기가 조금 다르게 읽히거든요. 당연히 둘 모두가 가능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모코우의 대사였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길고 긴 카구야의 고백에 침묵을 지켜온 모코우의 대답으로 맺어지는 대화가 구조적으로나 구도적으로나 완벽해요. 부끄러워서 빙빙 돌린 인정으로 고백에 수락하는 모코우라니, 존내 귀엽잖아요 ㅇㅈ?
그야말로 짧고 굵은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7. 곽청아 - 콩고산콩고물
와우. 저는 일단 이런 구성을 짜신 것 만으로 고평가를 드리고 싶습니다. 굉장히 머리 아프고, 많은 정성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구성이에요. 그런 구성을 오류와 붕괴 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짜낸 것 자체가 고생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요. 그 구성의 출처 또한 아야의 붕붕마루 신문인 점도 재밌네요. 4명의 다른 관찰자, 그리고 그들의 공통되고 상반되는 진술로 그려낸 곽청아의 또 다른 기행의 목격담입니다.
쉐도우 아트를 아십니까. 사물 그 자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여러 사물의 조악한 집합체지만, 그것을 빛에 비춘 그림자는 어떠한 분명한 형상을 가지고 있도록 하는 예술 기법이죠. 이번 팬픽은 그 쉐도우 아트의 역추론 같습니다. 4개의 다각도의 조명을 통해 4개의 형태의 그림자가 주어지고, 그 그림자를 통해 원형태가 무엇인지 추측하게 됩니다.
작가님이 후기로 남겨두신 글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을 언급하셨죠? 저는 동일한 작가의 「나생문」이 떠올랐습니다. 해당 소설을 원작으로 한 불후의 명작 영화 <라쇼몽>으로 더 유명하죠. 구성이 꽤나 비슷하더라구요. 영화처럼 소설에서 4명의 진술자가 등장합니다. 정확하게는 3명의 진술자와 1명의 해설자입니다.
제목이 지시하듯 주인공은 곽청아입니다. 단 한 번도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3명의 진술자 각각이 곽청아에 대해 진술하고, 평가하며, 예상함으로써 곽청아의 등장 없이 곽청아의 행보가 그려집니다. 진술에는 공통되는 것도 있고, 상반되는 것도 있으며, 진술하는 사건의 시간대 또한 겹치기도 하고, 독립적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진술자와 곽청아의 관계, 진술자의 심리에 따라 동일한 사건이 다르게 진술되므로,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고 사건만이 공통분모로 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 명의 진술자의 진술을 읽어나가며 곽청아가 어떤 인물이며 어떻게 행동했고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그래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어떻게 행동할 지 "추측"하게 됩니다.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제가 1명은 해설자라고 했었죠? 그 한 명은 토요사토미미노 미코, 태자님입니다. 태자님 파트도 동일하게 아야의 취재에 진술하는 형식을 따르긴 하지만, 태자님은 위의 세 명의 진술과 구분선을 넣어도 될 정도로 다른 시간대에서 서술하거든요. 앞서 말했듯이 독자가 그 귀추를 추측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는데, 이 사건 이후에 그것을 회상하고 감평하는 식의 진술이거든요. 그렇기에 추측의 정답을 알려주는 해설에 가깝습니다. 이 정답이라는 건, 일어난 사건에 곽청아가 내놓은 답 뿐만이 아닌, 곽청아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추측의 힌트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식으로 감평을 씁니다. 등장인물과 어떤 플롯인지만 소개하고, 나머지는 독자분들이 직접 글을 읽으며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추리 소설에서 사건의 전개와 결말을 내뱉으면 그 소설은 읽는 이유가 없어지거든요. 게다가 추측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답안도 태자님을 통해 친절히 설명되니, 제가 해설과 코멘트를 달 필요도 없을 듯 합니다ㅎ
아쉬움. 그래 아쉬움 또한 당연히 있지요. 아마 작가님이 가지고 계신 아쉬움과 같을 겁니다. 태자님이 원래 등장할 예정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원래 계획에 있으셨더라도, 이 정도로 친절한 서술자는 아니었을 것 같네요.
앞서 <라쇼몽>을 언급했었죠? <라쇼몽> 또한 진술자들의 진술이 겹치고 부딪히며 의문을 남기고, 그 사이에서 진실을 찾아 추측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거든요. 이 소설 또한 동일하게, 추측하는 부분이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소설을 다 읽고 여운에 가장 남은 것은 사건에 대한 전개와 해답이 아니고, 해답이 나오지 않은 부분입니다. 후토와 요시카의 진술에서 상반되는 부분이에요. 과연 세이가가 연단방에서 한 것은 인체실험일까, 치료행위일까? 세이가가 죽어가는 병자들을 보며 느낀 것이 슬픔일까, 분함일까? 두 사람의 진술과 태자의 설명에서도 해답이 내려지지 않기에 끝까지 물음표로 남은 부분이죠.
제가 사토리가 아닌지라 작가님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을 수는 없지만, 후기를 읽어보면 아마 맞는 듯 해요. 조금 더 큰 물음표를, 조금 더 추측의 여지를, 그래서 읽은 뒤의 더 큰 여운을 남겨둘 생각이셨던게 아닐까요? 물론! 지금 쓰신 글 자체도 태자님을 통해 완결되고, 독자들 입장에서 껄끄러움 없이 깔끔하게 잘 해결되는 재미있는 글입니다. 부족함이 아니고 아쉬움이에요! …아주 살짝 반점이 많은 것도 아쉬움이지만, 뭐 소설 자체가 재미있는데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4명분의 이야기, 4명분의 목소리, 4명분의 생각으로 정말 공을 많이 들여서 쓴 작품입니다. 게다가 4명의 발화가 스스로에 대한 것도 아니고, 4명이 공통적으로 조명하는 1명의 인물의 이야기부터 구성해야 하니 총 5명의 주인공을 그린 셈이에요. 그 5명의 대사와 행위가 전혀 어색함 없이 너무 잘 읽어집니다. 박수가 절로 나오네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D
18. 극중극의 마법사 - zzzzzzzz
솔직히 고백합니다. 처음 몇 편 감평 쓸 때까지도 이 작품 안읽었습니다. 재미없다거나 뭐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그냥 조아라로 한 번 더 들어가서 읽어야 했어서 그래요. 그냥 몇 번 클릭 더 하는 게 그렇게 귀찮더라고요. 조금 미룬 상태에서 처음 읽게 됐는데, 이게 뭘까, 생각보다 훨씬 재밌습니다. 진짜로 재밌습니다.
왜 작가님이 조아라를 택하셨나,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용량에 있습니다. 다른 참여작들이 적게는 2.8kb, 많게는 25kb 내외의 용량인데, 이 작품은 좀 격이 다릅니다. 무려 70kb내외에요. 용량 제한에 걸려 DC 게시글로 못 올려서 대신 조아라에 업로드하신 거죠. 이런 이유에서 한 편짜리 팬픽보다는 단편 팬픽으로 읽으면 좋습니다.
오랜만에 조아라에 들어가면서 느꼈습니다. 이 감성 좀 사기입니다. 물론 대회에서 우승자를 정하기 위해 평가한다면 동일하고 공정한 기준을 위해 텍스트만을 읽어야 하지만, 저는 일반 독자 입장이잖아요. 적당히 넉넉한 편 수에, 짧게 짧게 나눠서 길지 않은 한 편의 분량. 정말 조아라에서 동방 팬픽 읽던 감성입니다. 아니 애초에 조아라로 동방 팬픽을 읽고 있는 게 맞잖아? 추억 보정이라는 강점 말고도, 한 편씩으로 짧게 나누어지는 것도 굉장한 강점입니다. 원래 팬픽에서 과거 회상이나 장면 전환 타이밍도 신경써야 하는 부분인데, 편을 넘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네요. 장면 전환, 혹은 호흡 조절 모두가 편안하게 이루어집니다.
이 모든 특징의 시발점이 큰 용량입니다. 팬픽 외적인 특징 말고, 팬픽 자체 내용의 큰 특징을 잡자면 그 큰 용량을 잘 활용했다고 요약할 수 있겠네요.
볼륨 자체가 훨씬 큽니다. 다른 대부분의 팬픽이 많아 봐야 세, 네 장면을 힘을 주고 제대로 묘사할 수 있는데, 용량이 크다 보니 묘사할 수 있는 장면이 훨씬 많습니다. 떡밥, 과거 회상, 설정 소개, 만담, 상황 설명, 전투씬, 엔딩씬까지 다 분량을 위해 힘을 빼는 일 없이 설명하고 넘어갈 수 있어요. 이렇다 보니 이야기 안에서도 작은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있고, 단편 팬픽으로 느껴지는 거죠. 특히 크고 작은 떡밥들을 뿌리고 회수하는 장치들을 너무 좋아하는데, 정말이지 듬뿍 들어있습니다. 할머니 저 배불러요. 진짜 건더기 많은 국밥같은 든든함이에요. 덕분에 너무 재밌습니다. 단순히 용량이 많아서 내용이 많은 것만이 아니고, 많은 요소들을 아낌없이 다루신게 참 좋았어요.
이야, 줄거리를 쓰고 싶은데 도무지 요약할 자신이 없습니다. 한 편짜리 팬픽이라면 아무리 내용이 길어도 어떻게든 요약해 낼 수 있는데, 던지고 회수하신 떡밥도 너무 많고, 세세한 장면들도 너무 많아요. 그래서 이 팬픽은 큰 줄거리를 읽고 갔던 다른 팬픽들과 다르게 그냥 바로 장면과 장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려고 해요. 스포일러 100%일 수 밖에 없으니 아직 안 읽으신 분이라면 알아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1. 앨리스와 앨리스
2화에서 앨리스가 일어나면서 본편이 시작되죠. 그러고 마리사가 찾아오는데, 여기서 서술이 존나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앨리스가 일어나서 마리사를 맞이했는데, 또 동시에 앨리스가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하. 둘 다 앨리스가 맞았어요. 정확하게는, 구작의 앨리스는 "진짜 앨리스", 신작의 앨리스는 "인형 앨리스"입니다. 구작의 앨리스 쪽이 마계에서 환상향으로 넘어오며 활동하기 위해 만든 - 사실은 신키와의 약속에 의한 것이지만 - 보여주기 위한 인형탈을 만든 셈이죠. 구작에 대한 언급 뿐만이 아니고, 구작과 신작에서의 차이를 설정으로 가져와서 캐릭터를 만든 게 너무 신박했습니다. 이 두 앨리스들에 대해 설정과 이야깃거리가 너무 많아서 나열하기도 힘듭니다. 압도적 용량의 힘.
2. 앨리스와 마리사
이 팬픽, 마리사가 진짜 매력적입니다. 원작인 영야초, 지령전에서부터 나온 근본 콤비인걸 100% 살려서 이 두 작품에 대한 언급을 넘어 원작 떡밥까지 활용하셨어요. 게다가 본체이든 인형이든 앨리스와의 케미도 너무 재밌습니다. 둘의 만담 장면만 해도 작은 팬픽 하나 나오겠어요. 마리사는 조연이 아니고, 앨리스랑 합쳐서 주연 콤비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둘의 은근한 러브라인도 좋네요.
3. 앨리스와 신키
우리의 마망 신키님도 등장하십니다. 무려 1화부터 등장하시네요. 1화의 목소리의 주인공이 신키입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떡밥인지라, 이거 다 설명하기도 어려워요. 이 작품에서 신키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전투를 위해 희생한 앨리스를 부활시키는 것도 신키. "진짜 앨리스"와 "인형 앨리스"라는 떡밥을 만들고 회수하는 것도 신키. 사식·사충의 마법을 너무 일찍 익힌 앨리스의 성장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신키. 너무 많은 설정들과 떡밥들이 뭉쳐 해결되지 못할 때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설명해주는 것도 신키입니다. 게다가, 그 장면조차 최종화 전 한 화만에 끝나버립니다. 예. 말 그대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죠. 저야 뭐 해피 엔딩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어찌 되었든 다 해결되고 모두가 행복해졌으니 만족입니다만, 뭔가 그럴거면 진작에 등장해서 해결할 수는 없었나? 하는 의문은 조금 남았죠.
4. 주제의식
…어. 처음에는 확실히 재밌는 탐험물이구나 했는데, 끝 페이지에 갈수록 잘 모르겠습니다. 그… 이변도 그렇고, 여러 재밌는 설정들도 그렇고, 전투씬도 그렇고 탐험적 요소가 대두되었던 것은 확실해요. 그런데 다른 이야기가 좀 많다고 할까요. 이야기가 많아서 재미는 확실합니다만, 각 이야기가 모두 동일한 주제로 매듭지어지는게 아니라서요. 마리사와 이변 해결을 나갔던 것은 탐험 이야기로. 메디슨의 이야기는 동료애에 관한 이야기로. 마리사의 이야기는 친구간의 우정과 애정의 이야기로. 츠쿠모가미가 된 인형 이야기는 자아에 대한 고민과 성장의 이야기로. 신키의 이야기는 모성애와 가족애 이야기로.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야기가 많다 보니 여러 주제들이 드러나는데, 그 중 특출나게 이거다! 하나로 요약할 수 있는 주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별로라는 건 절대 아니고, 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맞아요. 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 거 같다 이거죠. 많은 소년만화의 큰 주제가 모험이긴 하지만, 청춘, 로맨스, 성장, 고찰, 우정 등의 여러 주제를 다룰 수 있는 것처럼요.
제가 뭘 여기서 설명하기보다는, 그냥 진짜 한 번 읽어보시는 걸 추천 드리는 작품입니다. 떡밥 투척과 회수가 굉장히 노련하고, 용량과 정비례하는 볼륨이 여러 이야기들로 꽉꽉 차있는, 재미있는 한 편의 팬픽이에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더 연재하셔도 되겠는데요 ㅋㅋㅋㅋㅋㅋ
19. 외래종의 노래 - 장기짝
제가 예전에 [최후의 상주]를 감평하면서, 찬사와 함께 다른 한 작품도 같이 벽을 느꼈다고 했었죠. 바로 그 작품이 이 작품, 외래종의 노래입니다. 둘 다 처음 읽을 때부터 저한테 직격으로 꽂혀버려서, 하나는 가장 가운데 순서로, 하나는 마지막 순서로 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첫 감평도 만만치 않게 임팩트가 있긴 했지만요. 조금 결이 다르게요 ㅋㅋㅋ
두 작품에 벽을 느꼈다고 표현한 데는 제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썼지." 저는 절대 이렇게 못 쓸 것 같았거든요. 저번 작품의 포인트는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문체였다면, 이번 작품의 포인트는 플롯입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떠올렸지? 캐릭터나 설정을 떠올렸더라도 어떻게 이런 구성으로 쓸 생각을 했지? 무한 원숭이 정리에서처럼, 저한테 타자기와 무한한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저는 절대로 이렇게 못 쓸 것 같습니다. 제가 절대 쓰지 않을, 아니 못할 문체와 구성이니까요. 그래서 제 입장에서 이 두 소설이 정말 남다르게 느껴지는 겁니다. 원래 가지지 못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제 감평으로 스포일러 당하기엔 아까운 글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꼭 읽어 보시길 바래요.
정말 간단하게 요약할까요. 마에리베리 한과 우사미 렌코는 비봉클럽 활동의 일환으로 경계를 찾기 위해 어느 섬에 가게 됩니다. 섬에서 아이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나 하필 섬의 유일한 외래인이던 두 명은 의심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조사를 받다가 돌아가는 배를 놓칠뻔 합니다. 급하게 탄 배는 어딘가 수상쩍은 느낌을 풀풀 풍기고, 두 명은 야릇한 기분에 배 안을 조사하다가 유일한 살아있는 생물인 '검역관'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거의 작품의 인트로만 소개했는데, 이 이상 설명하기가 곤란합니다. 좀 전에 올린 감평에서 말했듯, 추리물은 독자들의 주도적이고 독자적인 추측과 예상이 그 작품을 완성시키는 꽃이기에 제가 그 부분을 꺾어버리기 너무 아깝습니다.
이 작품은, 메리와 렌코가 우연히 만난 배와 검역관을 조사하면서 그에 대해 추측하고 추론하는 일종의 추리물로서의 성격이 있습니다. 물론 플롯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장 재밌고 손에 땀을 쥐는 부분은 감히 그 부분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검역관의 존재와 사건의 전말에 대해 메리와 렌코의 시점에서 같이 추측하는 것. 메리와 렌코는 사건의 도입부터 끝까지 초점이 잡힌 주인공들이지만, 이 초점화자 설정은 그 둘의 시선이 꽂혀있는 지점을 함께 바라보기 위한 구도입니다. 두 명은 관찰자인거죠. 말 그대로 망원경의 렌즈와 같은 역할입니다. 제한된 전지적 시점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보여주지만 그 시야와 정보는 둘이 알 수 있는 것으로 제한됩니다. 그렇기에 독자인 우리도 이 둘과 함께 추리하고 추론하는 행위가 가능한 거죠.
의뭉스럽기 짝이 없는 배에 오르고 내리며, 일종의 입몽入夢과 각몽覺夢의 서사가 나타납니다. 이 배는 사실 현실 세계가 아닌 곳으로 향하는 배거든요. 환상에 속한 세계로 향하는 배부터가 이미 환상이죠. 몽유록에 나오는, 꿈을 통해 환상을 탐험하고 돌아오는 구도와 비슷합니다. 그렇게 그려지는 둘의 탐험과 위의 시점 활용이 어우러져, 마치 나도 같이 한 차례 환상을 체험하고 오는 착각이 듭니다. 그렇게 함께 탐험하며 그려지는 세계관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빼놓을 수 없는 점은 서스펜스입니다. 추리물의 필수요소죠. 첫 도입부터 나타난 어딘가 모르게 꿉꿉하고 섬뜩한 감성이 전반부에 너무 잘 그려져, 배라는 환상의 공간의 분위기를 더 몽환적으로 만듭니다. 약간의 살떨림을 유발하는 서스펜스는 분위기가 한 층 누그러진 이후에도 한 켠에 숨어있다가, 진실이 드러나는 극의 절정에서 확 뒤집힙니다. 제가 벽을 느낀 부분은 여기에요. 저라면 분명 한 번 뒤집어서 강조시킨 뒤에 퇴장시켰을텐데, 오랫동안 끌어왔던 서스펜스의 소재를 절정에서 써먹은 뒤에 끝자락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등장시키며 극 전체를 환기시킵니다. 게다가 여기선 완벽하게 다른 분위기와 의미를 가진 소재로 확 변해버립니다. "과자"는 정말이지…. 목이 멘다는 표현조차, 같은 표현이지만 아예 다른 의미로 변주되어서 더 주제의식을 강조시킵니다. 하… 어떻게 이런 생각을??
주제의식, 네, 주제의식은 결국 그리움이죠. 처음 읽을 때가 너무 재밌었던 이유는, 앞서 서술한 서스펜스를 메리와 렌코와 함께 추론해 나가며 도달한 그 끝에서야 드러나는 것이 주제의식이라서 그렇습니다. 서스펜스로 깔린 긴장감 속에 오르막길을 오르고, 그 정상에서 진실을 마주하며 긴장감은 사라지고 깔린 소재들의 진정한 의미를 확 깨닫는 거에요. 소설은 주제로 향하는 등산이죠. 그런데 그 산 정상에 도달하는 순간에 보란듯이 주제가 덮쳐옵니다. 뒤집혀진 전개에 충격을 넘어 카타르시스까지 느꼈어요. 처음 배에 들어서게 된 배경 사건이 되는 아이의 실종사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주제로 꽃피는 지 생각해 보세요.
메리와 렌코의 역할도 너무 좋았습니다. 결국 비춰지는 것은 배라는 환상세계, 실종사건의 실마리와 검역관의 이야기죠. 이 둘의 역할이 그냥 사건을 관찰만 하고 일방적으로 서술을 듣기만 하는 촬영 카메라 수준에서 끝나기 쉬운데, 이 둘이 멍청하지 않습니다. 독자의 이해 속도에 걸음걸이를 맞추어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의문을 던지며 진실을 캐묻습니다. 어떻게 그 시점에서의 독자의 이해 수준에 딱 맞출 수 있는지 아직도 신기하네요. 아니면 글에 너무 빠져들어서 그 속도로 달릴 수밖에 없었던 걸까요.
…제 기준 꼽을 수 있는 단점은 딱 하나입니다. 메리와 렌코라는 캐릭터 이름을 빼고 나면, 동방프로젝트 팬픽인지 모르겠다는 점. 둘의 이름을 셜록 홈즈와 존 왓슨으로 바꾸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환상향에 대한 얘기도, 메리와 렌코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도 뒷편의 배경에만 살짝 쓰일 뿐이죠. 근데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그래서 어쩔거에요, 소설이 재밌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설의 제 1목적은 재미입니다. 이게 소설이지 ㅋㅋㅋ
'검역관'이라는 캐릭터가 정말이지 너무 매력적이네요. 조금의 스포일러라도 피하기 위해서 검역관에 대한 서술은 최대한 피했지만, 얘 얘기만으로 감평 하나를 다 쓸 자신이 있습니다. 목이 멘다는 표현에서 제 목도 같이 메었습니다. 배의 기록지에 적힌 하나라는 숫자가 정말이지…. 그러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꼭, 반드시 꼭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걸로 전 작품의 감평을 다 썼네요. 길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후기를 하나 따로 남길까 싶어요. 부족한 감평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번외. 후기
드디어 대회가 끝났습니다!
팬픽대회 출품작 1작, 감평대회 전작품 감평 작성.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특히 목숨 걸고 참여한 건 감평대회네요.
감평 총 19작품에 공백 제외 39,986자. 용량은 78kb. 한 작품에 최소 1시간 20분에서 4시간 10분까지.
매일 몇 시간씩이나 읽고, 쓰고, 고치고…. 이제야 여가시간이랑 운동시간을 좀 가질 수 있겠네요.
그래도 최초 목표였던 팬픽대회 참여, 전 작품 감평 작성을 마쳐서 뿌듯하고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모든게 만족스럽냐, 하면 절대 아니죠. 출품한 팬픽도, 감평도 아쉽습니다. 특히 몇몇 감평은 아예 새로 쓰던지, 지워버리던지 하고 싶네요. 공정해야 된다는 생각에 칭찬과 지적을 모두 썼는데, 지적은 아예 하지말 걸 그랬습니다. 작품에 방해되는 내용만 지적하려고 노력했지만, 밸런스를 놓쳐 제 감상보다 지적이 더 많아진 감평들이 있습니다. 너무 후회스럽죠. 제가 지적하기엔 너무 좋은 작품들, 충분히 재미있는 내용들이었는데, 그걸 비추기보단 아쉬움만 부각시켰으니까요.
그럼에도 부족한 감평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작가분께서 고맙다고 하시는 게 제일 감사했습니다. 사실 갤러리에 업로드한다지만, 진짜 감평을 읽어 주셨으면 하는 분은 작가님이니까요. 제가 글을 써보니 제대로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이 저한텐 큰 응원이 됐어서,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 작품에 감평을 쓴 거랍니다.
저 스스로도 많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읽고 분석하는 시간을 길게 가져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꼭 동방팬픽도 한 번쯤은 연재해보고 싶네요. 너무 매력적으로 그려진 동캐들을 보다 보니 빠져들더라고요. 레이센 너는 디졌따 ㅋㅋ
모든 참가자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팬픽과 감평을 막론하구요. 상붕이들 고생해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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