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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글알못 팬픽대회

사람을 사랑하다, 가을을 사랑하다. - 필첩

 

1.

 

언니, 이번에 인간 마을에서 축제 있는 거 알지?”

 

인간마을에서 추수를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에 동생인 아키 미노리코가 꺼낸 말이었다.

 

축제? 분명 축제는 여름에 한 거 아니었어?”

 

이번 여름에 불꽃놀이 축제를 한다길래 동생과 함께 탄막 콘테스트에 나갔었기 때문에 의아한 말이었다. 매년 있는 수확제도 축제라 할 규모는 아니었고.

 

언니도 참, 여름에 있었던 건 여름 축제고, 오늘 있는 건 수확제를 위시한 가을 축제잖아. 올해는 풍년이기도 하고 여름 축제는 마을에서 연 것이 아니니까 가을축제로 크게 개최한다던데.”

 

동생의 명색이 신인데 그것도 모르냐?’ 하는 표정에 나는 애써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요즘 산에서 일밖에 하지 않았으니까 마을 상황은 잘 몰랐지. 수확제야 난 참여하지도 않고.”

 

뭐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된 거지. 언니는 마을에 신경을 더 쓸 필요가 있어. 인간을 위한 신이라면서도 이렇게 산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그나마 있던 신앙도 사라질 거라고.”

 

내 일의 대부분은 산에서 단풍을 들게 하고 낙엽을 지게 하는 것이라 조금은 억울했지만, 반박은 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요즘 단풍신으로서의 신앙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래, 사람들에게도 신경을 써볼게.”

 

짧았지만 선뜻 내뱉기에는 어려운 말이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앞서 말했다시피 신앙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환상향에서 가을 단풍은 봄 벚꽃보다 인기가 떨어져 불리한 입장이었는데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었다.

갈수록 사람들은 요전번 불꽃놀이 같은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데 안 그래도 뒷전인 단풍놀이는 더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가을 단풍 중에서 가장 으뜸은 요괴의 산 구천의 폭포에서 보는 단풍이라 생각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그곳에서 단풍을 볼 수 있겠는가?

그저 가을은 과일과 농작물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동생한테 보여주면서 가을의 제일은 단풍이라면서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유로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서이다.

딱히 대단한 이유로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낙엽을 만든다는 이유로 날 싫어한다.

 

어딘가의 정원사처럼 청소하기 힘들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 나뭇잎이 다 지고 나면 난 죽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로서는 억울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들과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애꿎은 나무만 차대면서 화풀이하는 것밖엔 없었다.

 

 

그러니까 동생이 부러웠다.

 

2.

 

동생이 경쟁자들에 밀려 별로 인기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와 똑같이 신사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을에서 나보다 인기도 많고 인지도가 높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매년 꾸준히 수확제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풍양신의 특성상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해 있고 같이 교류를 하면서 일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일 것이고 나름대로 힘든 일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산에서 일을 할 때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멀리서 초계텐구에게 감시만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니로서는 하면 안 되는 일이겠지만 동생한테 질투를 느끼게 된다.

 

 

 

 

그저 나를 신앙해주는 사람만 있으면 충분할 텐데.

 

 

3.

동생한테 끌려와 축제에 왔지만, 이번 여름의 불꽃놀이 같은 대단한 이벤트는 없었다.

그저 예년과 비슷한 여름 축제에 이번에 수확한 과일과 농작물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들도 그렇고 내 동생도 꽤 즐거워 보였다.

나는 동생과 군고구마 굽기밖에 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동생은 내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바로 말을 꺼냈다.

언니 덕분에 꽤 많이 판 거 같네. 이제 안 도와줘도 되니까 언니 먼저 축제 즐기고 있을래?”

아니 혼자 팔게? 그냥 계속 도와줄게.”

아니, 나도 이제 수확제 행사 참여 때문에 더 못 팔아서 그래. 언니는 축제를 잘 즐긴 것 같지도 않고. 뒷정리는 나 혼자 할 테니까 먼저 놀고 있어.”

 

. 아니.”

난 뭐라 대답하려 했지만, 대답을 거부당하고 거의 내쫓기듯 노점에서 나오게 되었다.

 

 

즐기라곤 했지만 혼자서 뭘 하란 건지.’

축제 거리 한복판에 섰지만, 머릿속은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축제에서는 동생이 있었지만 사라지니 축제에서 붕 뜬 느낌이었다.

 

그냥 단풍이나 칠하면서 축제 구경이나 해야겠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일에서 벗어나 축제에서 노는 것 같았지만 일이라도 안 하고선 분위기에 휩쓸릴 것만 같았다.

 

결국, 축제가 잘 보이는 은행나무 아래서 잎을 칠하고 축제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와 시선이 겹친 것 같았다.

 

 

 

4.

 

마을에서 벗어나 뒤에 있는 언덕으로 가면 큰 은행나무가 한그루 있다.

마을 밖이라 사람은 없지만, 나무에 앉으면 마을 전경은 다 보이고 조용하기 때문에 혼자 생각하고 싶으면 찾는 그런 장소이다.

 

이번 축제 때도 즐기려 했지만, 어디를 가도 어색함이 느껴져 축제나 구경하고 찾으러 가고 있었다.

 

하지만 선객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은행나무의 잎과 같은 노란색의 머리와 단풍나무 잎과 같은 붉은 옷을 입은 소녀가 은행나무에 앉아 공허한 눈으로 축제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환상처럼 아직 푸른 은행나무가 점차 노란색으로 변하고 그 소녀와 시선이 겹친 것 같았다.

 

 

 

 

 

후기: 같은 제목의 조협종 노조미의 人恋秋恋를 듣고 느낌이 와서 급하게 적은 팬픽입니다. 갤은 눈팅밖에 안 하지만 상품이 맘에 들어서 참가했습니다.
닉네임은 필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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