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르노는 치르노 일까요?
1장
치르노가 죽었다.
살해법은 둔기에 의한 폭행, 얼마나 많이 떄렸는지 얼굴이 함몰되었다.
깨진 뼈 사이로 흐르는 골수,
벌어진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뇌수,
처참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처참한 시체.
이번 주에만 벌써 3번째,
범행은 갈수록 잔인해져만 가고 있다.
범행 간의 공통점은
피해자가 치르노 라는 것,
그리고
얼굴을 훼손했다는 것.
범인이 누구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피해자의 대인 관계는 대체로 양호했다.
짓궂은 장난을 자주 쳤지만,
그건 말 그대로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불쾌해 하기보다는 재미있다고 여겼다.
혹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었으나,
요정의 장난에 저 정도로 분개하는 사람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요괴의 소행일 가능성은 더 없었다.
애초에 요괴가 포악한 이유는 사람을 겁주어서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요정을 공격해 봐야 얻을 게 없다.
물론 요정의 시체로 사람들을 겁줄 수는 있지만,
그것으론 치르노만을 공격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물증도 심증도 없으니,
의지할 데 라고는 목격자 진술뿐인데,
유일한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치르노 녀석은
제 시체가 신기한 뭐라도 되는 양,
나뭇가지로 꾹꾹 지르면서,
열심히 현장을 훼손 중이다.
이래서는 목격자 진술 같은 걸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때에 마리사가 있었다면,
사건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2장
'A쨩 무슨 일 있는 거냐구?'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금발 아이가,
어두운 피부의 아이에게 물었다.
'B쨩 혹시 스승님을 만나기 전을 기억해?'
어두운 피부의 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쓸데없는 건 기억하지 않는다구.'
'이 몸 얼마 전에 이상한 걸 봤어,
이 몸이랑 똑같은 얼굴을 한 녀석이 있었어,
이 몸 무섭고 당황스러워서 그 녀석을 죽여버렸어.'
'잘 한거라구,
그건 틀림없이 도플갱어라구,
죽이지 않았으면 A쨩이 죽었을 거라구'
'그런데, 이 몸이 분명히 죽였는데,
그 녀석이 다시 나타났어,
그래서 또 죽였는데,
그 녀석이 계속해서 자꾸자꾸...'
어두운 피부의 아이가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거 뻔하다구,
분명 저번에 먹은 버섯이 잘못 돼서 환각을 보는 거라구,
말 나온 김에 또 버섯이나 하자구'
금발 아이는 얼핏 봐도 위험한 색의 버섯을 어두운 피부의 아이에게 건넸다.
3장
어두운 피부의 아이는 호숫가를 걷고 있었다.
금발 아이는 내버려 두고 왔다.
이상한 버섯을 처먹고 자기가 미마라고 떠드는 미친년,
애초에 미마가 뭔지도 알지 못햇지만,
그런 녀석과 함께 돌아다닐 정도로 어두운피부아이는 마음에 여유가 있지 못했다.
어두운피부아이는 호숫가를 자주 찾았다.
이곳에 오면 무언가 그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마타라를 만나기 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어두운피부아이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 오는 이유가,
그런 뭔지 모를 애틋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기 이곳에서 그 녀석을 만났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녀석,
바로 그 녀석을 마주한 것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을 죽인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녀석을 죽이고 있다.
4장
치르노는 오늘도 호숫가를 맴돌고 있다.
최근 호수 주변에서 재미있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요즘 자주 리셋되는 바람에 기억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금방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죽어!, 죽어!,'
치르노랑 똑같은 얼굴을 한 소녀가 다른 소녀의 얼굴을 뭉개고 있었다.
퍽! 찰박! 팍!
치르노랑 비슷한 차림을 한 소녀가 얼굴이 뭉개지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이 몸도 끼워줘'
치르노와 똑같은 얼굴을 한 소녀,
사실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똑같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치르노를 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끝없는 절망으로 가늑한 절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
치르노가 생각하기에 저건 도플갱어가 분명했다.
절규하며 울고 있는 것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도,
저 아이가 울부짖는 건 도플갱어를 봤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 번이나 도플갱어를 목격하다니,
가여운 아이,
이제 곧 죽겠지.
5장
어두운피부의 아이의 표정은 이전에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녀석들,
설마 진자로 도플갱어일까,
정말로 자신은 죽는 걸까?
그럴 리는 없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녀석들을 죽였던가,
녀석들이 정말로 도플갱어였다면 자신이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도플갱어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그 녀석들은 전부 자신의 손에 죽지 않았던가?
애초에 자신은 뭘까?
자신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두운피부아이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6장
'넌 뭐야?'
어두운피부아이가 물었다.
'하? 그럼 넌 뭐야?,
왜 이 몸이랑 똑같이 생긴 거야?
그보다 방해하지 말라고,
지금 얼린 개구리를 해동시키고 있단 말이야.'
하얀피부아이가 말했다.
물에 잠긴 개구리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두운피부아이는 화가 났다.
약해 빠진 녀석 주제에,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대꾸하는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과 같은 얼굴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그 개구리는 죽었어,
그러니까, 그딴 건 내버려 두고,
넌 뭔지나 말해'
'하?,
너 바보야?
이 몸은 치르노 잔아,
얼음의 요정이자, 환상향 최강,
설마 정말로 이 몸이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지?'
두 가지는 분명했다.
이녀석은 바보이고,
약해 빠졌다는 것.
7장
검은 녀석은,
하얀 녀석의 시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알아낸 것은 하얀 녀석의 이름이 치르노 라는 것,
그리고 치르노는 요정이라는 것.
이로써 모든 게 명확해졌다.
이 녀석은 도플갱어가 아니라,
단지 약해 빠진 요정이고,
요정이라 아무리 죽여도,
다시 얼빠진 얼굴로 나타난 다는 것,
절대로 자신은 이 녀석에게서 벗어 날 수 없다는 것.
8장
'여기서 뭐하는 거냐구?'
금발 아이가 물었다.
'B쨩, 혹시 치르노라는 녀석 알아?'
'알구 있다구,
약해 빠진 주제에 최강이라고 허세나 부리는,
꽤 귀여운 녀석이라구,
그러고 보니 A쨩이랑 똑같이 생긴 거라구.'
금발아이가 계속 말을 걸었지만
검은 녀석은 답하지 않았다.
사실 못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 요정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으니까.
자신은 왜 그 요정과 똑같이 생긴 걸까?
기억을 잃기 전에 자신은 어떤 존재였을까?
기억을 잃기 전 자신은 그 녀석과 연관이 있었던 걸까?
애초에 왜 자신은 마타라의 제자가 된 걸까?
그리곤 이내 검은 녀석은 그런 생각을 털어 버렸다.
녀석은 단지 약해 빠진 요정이고,
'이 몸은 스승님의 최강의 제자니까'
하지만 호숫가에 진 노을에
왠지 애틋해지는 치르노 였다.
끝
예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힘에 대한 욕망 때문에 마타라의 노예가 된 치르노 이야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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