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십여 년 만에 바깥 쪽의 모리야 신사를 방문하기로 한 카나코와 스와코는 덜컹거리는 열차에 둘만 앉아 있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오르게 하는 이 열차 안은 신들에게조차 나른해서, 카나코는 도착이 임박한 것도 모르고 평소 같지 않게 상념에 젖어 있었다.
아직 모리야 신사가 바깥에 있었을 때, 하루는 모리야 신사의 일행들이 모두 사나에를 따라 야구 경기를 관람한 일이 있었다. 사나에는 그가 응원하는 팀이 좋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었음에도 열을 올려 응원을 했고, 그것은 같은 팀을 응원하는 다른 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카나코는 사나에가 즐거워하니 따라 웃으면서도, 미소에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카나코는 만석의 경기장을 천천히 바라보며 이런 열광에 주목한 몇몇 신들을 떠올렸다. 하위권을 전전하며 연패가 일상인 팀을 이토록 열광적으로 응원하고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신앙이 아닐까? 경기는 규칙이 정해진 일련의 행동이다. 오로지 그 경기 때문에 울고 웃고, 또 그러기 위해 자원과 비용을 투입하고, 노력과 수고를 들인다. 마치 일종의 제의와 같이. 그 신들은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그 신들은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다. 카나코는 그들이 실패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들은 제의와의 유사성에 정신이 팔려 그 의식의 숭배 대상이 부재함을 잊어버렸다. 팀의 마스코트를 숭배하는 팬이 어디 있을까? 그들이 주목한 것 중에 중요성을 인정할 만 한 것은 그 많은 관중이 한 곳을 바라보며 하나를 바라는, 그 수많은 염원이 한 데에 모이는 부분 정도였다.
사나에를 학교에 보내고 난 뒤부터 독학으로나마 먹물깨나 먹은 카나코로서는 차라리 지금 올라오는 선수가 행한 행동이 원시적인 ‘신앙’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카나코님, 보세요. 제가 저번에 말씀드린 선수에요. 바닥에 글자 쓰고 있죠? ‘salt’라고.”
징크스로 유명한 선수였다. 강박증은 많은 운동선수들의 직업병이다. 그 때문에 운동선수 중 강박증의 일종인 결벽증을 앓는 이들도 많다. 인간의 많은 심리기제 중 하나가 귀인이다. 실제의 요인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상황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귀속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 ‘상상’에서 신앙이 발아한다.
징크스 신봉으로 유명한 이 선수에게는 다른 징크스들도 있다고 사나에는 소개했다. 그 가운데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경기에서 이긴 날에는 그날 밤 입었던 속옷을 갈아입지도 빨지도 않고 다시 입고 잔대요. 연승을 하면… 으! 그리고 연패를 하면 기가 다했다고 생각하고 새 속옷으로 바꾼다내요. 식당도 비슷하고. 하지만 어떤 감독은 낮에 입는 속옷까지 그렇게 한다던데, 선수라 역시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나 보죠?”
기가 다했다. 카나코는 경기가 끝난 후 이 이과 소녀에게 신앙을 가르칠 때 이 부분을 어떤 예를 들어 설명할까를 궁리했다. 이 대신(大神)의 사념은 자신이 모리야 신과 만날 때 언저리로 날아간다.
스와 지방의 ‘왕’이 죽었다. 훗날 프레이저 경이 《황금가지》에서 사제왕이라고 부를 그런 존재였다. 가뭄이 들었기 때문에 죽었다. 명확히 말하면, ‘죽임을 당했다.’
비슷한 시기에 야마토 미와 쪽에서 이쿠메 뭐시기 하는 이리 패거리의 왕도 죽었다. 지금은 ‘11대’ 스이닌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히미코 이래 두 세대 만이었다.
히미코가 이와 같이 죽었을지 모른다고 진단한 후대의 일본 학자들이 제시한 근거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부여에 대한 서술이다. 「옛 부여의 풍속에는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 오곡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고 하거나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
신앙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들은 이를 ‘왕권이 약했다’거나, ‘책임을 지운다’, ‘귀족들이 세웠으므로 끌어내릴 수도 있었다’라고 생각해 버린다. 그러나 카나코가 읽은 저자들은 다르게 설명했다. ‘왕의 신성이 다했으니, 헌 왕을 버리고 새 왕을 세운다’라고. 신성이 다했다. 기가 다했다. 승리를 기대하고 승리의 기운이 담긴 속옷을 계속 입는다. 안녕을 기대하고 신성을 지닌 왕을 모신다. 패배했으니 속옷에 더 이상 승리의 기운이 없는 것이다. 천재지변이 일어났으니 왕에게 더 이상 신성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아니라, 신성이라는 ‘자연 현상’에 대한 것이었다.
모리야 신이 나타날 적의 신앙은 그 정도의 것이었다. 카나코가 신앙을 얻을 때나 야마토 조정이 성장해 스와로 들이닥칠 때만 되어도 그런 것도 신앙인가 하는 물음을 받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런 신앙의 맹아들은 지금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카나코는 사나에가 소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횡단보도를 건널 때 곧잘 흰색만, 혹은 검은색만 밟으려 시도하며 논 것을 기억했다. 그날의 운수를 걸 때도 있었고 혹은 밟으면 안 되는 쪽이 용암이라고 한 적도 있었는데, 기복과 지옥을 갖춘 종교라고 해도 안 될 건 없었다. 그만큼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단순한 만큼 강력한.
딱.
“왔다!!!!”
사나에의 외침에 카나코의 정신이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왔다. 징크스의 선수가 경쾌하게 쏘아올린 공은 외야로 쭉쭉 뻗어나갔고, 여유 있게 담장을 넘었다.
2
카나코는 문득 자신이 왜 새삼 이때를 생각하게 되었는지 잊었음을 눈치챘다. 분명히 시작은 온도계였다. 낡은 완행열차 안에 걸려 있는 온도계. 온도계와 야구가, 징크스가 대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카나코는 아사쿠라 리카코의 집에 방문했을 때 오랜만에 방문했다는 교수와의 대화를 지켜본 적이 있었다.
“축하해. 5학년 과학으로 시작했던 전근대인이 결국 중등교육 과정을 모두 마쳤어.”
유메미는 지난 번 방문 때 선물한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러나 리카코는 기뻐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래? 기뻐 보이지 않는 걸.”
“왜 설명을 끝까지 안 하지? 그냥 믿으라고? 밖의 학생들은 의문을 표하질 않나?”
“응?”
“화학을 예로 들어보자. 데모크리토스가 최초로 원자 가설을 제안했고, 돌턴이 구체화했다고 했어. 라부아지에가 최초로 근대적인 화학 실험과 원소 개념을 주창한 것도 좋아. 그러나 그 다음 주기율표와 원자 간의 화학결합으로 넘어가 버려. 아무 말도 없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그래서?”
“알고 있잖아? 원자라는 게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게 아니란 걸 말이야. 저쪽 신입 흡혈귀 네의 마법사에게 물어보지 그래. 데모크리토스가 왜 그렇게 욕을 먹고 핍박받았는지 모른단 말인가? 제논의 역설이 어떤 논쟁 중에 제시된 것인지도?”
“그래서 원자를 못 믿겠다? 아니, 말이 너무 심한가. 왜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래. 원자가 실존한다면, 물질이 그 기본입자에 의존한다면 그 크기는 얼마나 되나? 무게는 어떻게 되나?”
“크기는 1억 분의 1cm. 무게는 탄소 원자 12g이 6.02214076×10^23개. 원자량은 주기율표에 나와 있지?”
“그것들은 원자량 말고도 교과서에 나와. 왜 자꾸 딴청을 피우지?”
유메미는 결국 금기의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유메미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마법에 대해 말한 것, 나아가 그러기만 해도 비웃는 세상에 ‘세상을 구하는 것은 종교다’라고까지 외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치유리는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건 결국 신앙일 뿐이란 거지?”
환상향 유일의 이 ‘과학신도’는 이 질문에 새삼 머뭇거렸다. 자신의 이 멸칭을 스스로 인정하는 고백이었다.
“그래.”
“지금 말 다 했어!”
발끈하는 치유리를 유메미는 말없이 체어샷으로 제지했다. 그리고 의자를 놓고 다시 자리에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
“새삼스럽네. 너는 훨씬 더 일찍 의문을 표시했어야 했어.”
유메미의 담담한 말에 리카코는 눈썹을 찡그리며 유메미를 바라봤다.
“5학년 과학에서 아무 말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사용되던 온도계. 그거 모순이라고 생각 안 해? 그걸로 온도를 재는데, 그게 온도에 비례해서 움직인다는 걸 온도를 재기 전에 어떻게 알지? 물이 같은 조건이라면 같은 온도에 끓는다는 건? 애초에 같은 조건이 무엇인지? 캘빈이 터를 닿고 볼츠만과 맥스웰이 세운 열역학의 성도 결국 온도계를 신뢰한 이후의 일.”
온도계의 츠쿠모가미가 튀어나와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단 믿을 수밖에 없지. 사실 그게 인간의 본능 아닌가? 그리고 틀리면.”
“갈아치워야지. 효력을 다 했으니까. 원자 모형들처럼. 고전역학처럼.”
리카코가 받은 말에 유메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게 사실이야. 어떤 과학자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과학적 방법론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마지막엔 믿음에 닿게 마련이지. 실재론과 반실재론과는 별개의 이야기야.”
리카코는 말없이 배신당한 이의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그러지 마. 위대한 과학자들이 납득할만한 과정을 거쳐서 얻어낸 결론이니까. 원한다면 내가 그들이 어떤 여정을 거쳤는지 설명해 줄 수 있어. 그걸 생략한 건 이 수업이 과학사가 아니라 과학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서 그럴 뿐이야.”
“고등학교라는 데에서 가르치는 건 믿을 것을 믿는 것까지, 하.”
“중등교육이란 게 그런 거야. 그 정도의 것.”
“위대한 과학자들의 결과물 만에 대한 무한한 신의.”
“물론 신의와 신앙이 같은 fides긴 하지만.”
“아니, 그것까지 뭐라 그러는 건 아니야. 그들은 신앙할 가치가 있는 이들이니까. 과학도 마찬가지고. 나는 과학신도라고 불리는 게 여전히 자랑스러워.”
유메미는 다음에 나올 말을 예상한 듯 했다.
“그렇지만… 힘을 다한 신을 갈아치우는 것과는 다를 줄 알았는데…”
리카코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물방울마다 처음 보는 요괴, 혹은 신이 튀어나왔다.
“최소한… 소립자의 이름을 한 천사들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한 과학자들의 여정을 가르쳤다면… 그들에 대한 신뢰를 요구했다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야…”
돌턴의 원자. 톰슨의 원자. 러더퍼드의 원자. 보어의 원자가 튀어나왔다. 열소가 튀어나오고, 에테르가 튀어나오고, 관심 있는 사람도 헷갈리기 십상인 한때의 ‘기본입자’가 많이도 튀어나왔다.
온도계의 츠쿠모가미는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며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이 신들, 야오요로즈의 신들은 카나코를 바라보며 집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아레의 아이는 환상향연기에 잘못 적어 넣었다. 물체만이 야오요로즈의 신이 된다고. 그러나 물체가 무엇인가. 개념과 물체는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체라고 믿어지는 개념의 신들이 여기 있었다.
그들은 믿어지는 존재였지만, 이 세상을 살았던 과학자가 아니었다.
태어나 살고 즐기고 투쟁하고 죽었던 과학자가 아니었다.
137억 년 전 태어나 영원히 상호작용하며 존재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존재.
오로지 전하와 스핀을 비롯한 단 몇 가지 수치만으로 구분되는 것으로 믿어지는 존재.
모든 수치가 같다면 서로 결코 구분되지 않는 것으로 믿어지는 존재.
그 어떤 염원에도 무심히 태초에 정해진 수식만을 따라서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존재.
카나코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는 도무지 읽을 수 없는 검은 색이었다.
그 검은 색은 너무나 깊고 검디검어서,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서,
눈동자라기보다는 구멍 같아서,
그 구멍은 너무나 깊어서,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카나코는 잠에서 깼다. 옆에 앉아 있던 스와코는 무심하게 카나코를 돌아보았다. 그 검은 눈동자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빛나지 않았으며, 읽기 어려웠다.
카나코는 신령이었다. 신앙을 얻은 망령. 스와코는 야오요로즈의 신이었다. 신앙이라고 같은 신앙이 아니었다. 과학자들에 대한 신뢰와 소립자들에 대한 믿음이 같겠는가? 전자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 카나코 이후의 일이었다면, 후자는 그보다 훨씬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것이었다. 카나코가 과학자라면, 스와코는 소립자였다. 그렇다면.
옆에 있는 이 자연신은 자신과 같은 종류의 인격체가 맞을까? 스와코와 카나코의 거리는 카나코와 평범한 인간들 사이의 거리보다도 훨씬 먼 것이 아닐까? 스와코와 자신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인격과 생각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소립자에 그런 기대를 한다면 미친 놈 취급을 받지 않겠는가?
문득 카나코는 스와 대전 이전의 스와코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검디검은 눈동자의 토착신은, 대체 무엇일까?
열차가 스와 호수 기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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