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야 사나에의 입문
코치야 사나에가 죽었다. 이제 그녀의 몸은 연기에 실려 편히 쉬리라. 그녀가 죽을 때,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고 세상은 잠잠했다. 세상의 입장에서 볼 때 그녀의 죽음은 하찮은 일이었다. 가벼운 일이었다. 무의미한 일이었다. 그녀의 목숨이란 수십 억 생명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녀의 죽음은 수십 억 중 하나의 죽음일 뿐이다. 그녀 본인에게 가지는 의미는 그녀의 의미일 뿐이다. 타인의 죽음은 객관화되지 못했다. 그녀를 아는 누구나 눈물을 흘렸지만 누구도 슬퍼하지 못했다. 오직 슬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눈물은 슬픔보다 성급하다. 그녀의 죽음만큼이나 무의미한 눈물이었다.
코치야 사나에는 죽지 않았다. 그녀가 죽을 때, 혹은 그녀가 죽었다고 알려졌을 때, 그녀는 하늘 위에 있었고 장례식을 내려다보았다. 가족은 그녀의 죽음을 위장했다. 그녀는 아무 것도 태우지 않은 연기를 쬐었다. 그녀는 하늘에 누워있었다. 쏟아지는 빗물에 젖어 그녀는 조금 울었다. 하늘은 분명 그녀의 꿈이었다. 하늘을 꿈으로 삼은 그녀에게 땅은 멀었다. 땅 위에서 울고 있는 친구, 이웃, 친척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늘을 꿈으로 삼았기에 땅에 머무를 수 없었다.
코치야 사나에는 견뎌야 했다. 내리는 빗물에 몸이 젖어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았다. 견디기도 힘겨웠다. 그녀는 자신을 지나쳐 오르려 애쓰는 연기를 보았다. 연기가 사그라지면 그녀의 시선은 갈 곳을 잃곤 했다. 흐릿해 이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연기를 좇는 그녀의 바쁜 시선은 공허했다. 그녀는 몸을 웅크렸다. 하늘 끝과 땅 끝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늘 그랬듯이, 이도저도 아닌 듯, 하늘에도 땅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 사이에만 머물렀다.
코치야 사나에는 빗물을 받아마셨다. 이 하늘에서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은총을 그녀는 기꺼이 들이켰다. 그녀의 죽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무수했다. 그녀의 언어는 빈곤했다. 그녀는 그저 그녀의 죽음이 필연이 아닌 우연이기를 바랐다. 필연이기에는 가혹한 일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반드시 닥칠 일이 아니었다고 믿고 싶었다. 자신의 죽음이, 한 시절의 소멸이 반드시 벌어질 일이라면, 지금을 살고 젖은 몸을 무거워하며 과거와 현재 사이를 헤매는 자신조차 저 연기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일은 우연이어야 했다. 혹은 선택이어야 했다. 그녀의 죽음은 그 누구의 의도도, 그 결과도 아닌 것이다. 오로지 그녀의 몫이었다.
코치야 사나에는 들었다. 우는 게냐, 고 묻는 목소리는 평이했다. 그녀는 그 평이함이 죽음의 평이함을 대변하는 것 같아 서글펐다. 목소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고 그녀가 자신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은 충분했다.
코치야 사나에는 잘못이 없다. 이것이 꿈이나 환상의 이야기라면, 그녀가 꿈이나 환상이었을 뿐이다. 이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녀는 어렸을 때 이미 자신에게만 보이는 두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지점이 그녀가 발생한 틈이었다. 세상과 그녀, 하늘과 땅을 가른 틈은 그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그녀도 세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그녀인가 물으면 그녀이기 때문이라는 대답밖에 돌려주지 못한다. 다른 모든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유일무이한 사실은 그녀가 인간임을 증명해주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다른 인간과 같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세상에게서 벗어난 외딴 존재였다. 이 점에서는 다른 인간과 동일했다. 다만 점점이 박힌 무수한 인간들의 세상은, 그녀로서는 하늘에서 땅을 보는 것만큼이나 까마득한 일이었다.
코치야 사나에의 환상성이 꿈과 현실을 매개하지는 못한다. 오롯이 환상이기에는 그녀가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그녀는 다만 하나의 물음으로서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이 작디작은 세상 속을 보다 더 작디작은 인간으로서 살면서 스스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꿈은 꿈은 하면서 살다가 삶은 삶은 하면서 애써 환상을 부여하고 좇으며 사는 이 가련한 몸들에게, 그녀는 물음으로서만 남는다.
당신들은 저를 잊을 주제에 잊지 않을 듯이 구는 건가요?
그것은 오만이 아니던가요?
이해하지 못함을 이해할 수 없음으로 치환해버릴 거라면 그런 몰지각한 행위에 무슨 의미를 또 부여할 건가요?
세상은 또 당신들은 그리고 당신 바로 당신은 제 삶을 물어뜯고 풀어헤쳐 살피면서 제 삶을 삶이 삶은 삶으로서 증명할 것을 찾다가 포기하고는 그저 그런 인간에 불과했다고만 할 건가요?
코치야 사나에의 울음과 물음은 땅에 닿지 않는다.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하늘을 흘깃 보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누구도 그녀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 거리가 그녀와 사람들의 차이였다.
코치야 사나에는 두고 온 것들을 생각했다. 두고 온 것이 너무 많았다. 소꿉친구와의 먹먹한 우정도 첫사랑과의 막막한 만남도 부모님의 묵묵한 애정도 이제는 옛일이다. 세상에게는 흔해빠진 것들조차 그녀에게는 거대하다.
코치야 사나에는 그런 옛일을 떠올렸다. 보여요. 그녀는 말했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존재들을 본다는 이유만으로 무녀가 되었다. 할 수 있어요. 그녀는 아무도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신이 되었다. 그녀는 그 일을 원망해본 적이 없다. 아무도 보지 못하고 아무도 할 수 없으니 아무도 증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은 그녀가 스스로 보고 할 수 있었기에 현재하는 일이었다. 거짓말은 아니었으니 억울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슬플 뿐이었다. 그리고 그 슬픔은 종종 이불 속에서 마음껏 울음을 터트릴 정도로 사소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 모든 일과는 철저하게 상관없이.
기어코, 또는 드디어.
코치야 사나에는 죽었다.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사나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사나에의 머리는 정지했으며 몸은 점차 굳어간다. 하늘에 떠있는 채로 빗방울을 흘리지 않을 뿐 구름이 되어가고 있다.
시간이 됐어.
떨어지고 있다. 또는 떠오르고 있다. 사나에는 자신이 겪는 이 낯선 체험이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서술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떨어진다면, 혹은 떠오른다면 평생을 그래왔다.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늘에서 위아래는 분간할 수 없었다. 사나에는 그저 하늘에 뜬 채, 늘 그래왔듯이, 뜬 채 살아갔고 뜬 채 죽어간다. 안녕, 내가 있던 세상. 안녕, 나와 있던 사람들. 저는 이만 물러간답니다. 당신들은 보지 못하지만 저는 당신들을 보며 죽어간답니다.
외로우냐.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이지요. 거짓말이지요, 라고 말했다가 사나에는 그것마저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 삶은 제 것이지 남들 것이 아니잖아요? 유쾌하게 말하려 했지만 말끝에는 떨림이 배어나왔다. 외로움은 애초부터 지닌 것이라 굳이 말로 꺼낼 필요는 없어요. 외로움은 외로움일 뿐 그건 누군가의 개성이 특성이 어느 한 지점이 아니잖아요?
아니잖아요?
무덥고 맑은 오후였을 것이다. 사나에는 친구가 아끼던 책갈피를 잃어버렸다. 친구는 그것이 사나에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울상인 친구를 위로하며 사나에는 자책했다. 말하기에는 두려웠고 감추기에는 미안했다. 미안해, 그거 사실 내가 잃어버린 거야. 미안해, 솔직하지 못해서 더 미안. 안녕, 안녕히.
춥고 흐린 저녁이었을 것이다. 사나에는 거리에서 길거리 연주를 하던 선배를 보았다. 연주는 형편없었으나 목소리는 좋았다. 사람들 틈에 뒤섞여 사나에는 남몰래 그에게 반했다. 사람은 언젠가 거품이 될 거라고 노래하던, 거품이 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 좋았다. 안녕, 좋아했던 사람. 당신의 입에서 나오던 하얀 김, 당신의 목소리, 그래도 노래는 남을 거라던 당신의 노랫가락 모두 좋아했어요. 안녕, 안녕히.
안녕,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무수한 사람들. 안녕, 안녕히.
사나에는 이제 자신이 목소리만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빗방울은 목소리를 머금고 땅으로 떨어져갔다. 오로지 목소리뿐이다. 사나에는 이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찾지 못했다. 기억은 희미해져 다른 곳으로 이동해갔고 몸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사나에는 이제껏 그래왔듯이 수십억 중 단 하나의 꿈이었고 환상이었으며 꿈답게 환상답게 가려 한다.
사나에는 사나에로서 사나에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제 그녀는 사나에, 다른 말로는 꿈, 환상으로서 사라질 뿐이다. 꿈과 환상이 그러하듯 그녀는 고독하고 유일하다. 그것에 불만은 없다. 사나에는 사나에를 접는다. 모든 꿈과 환상이 그러하듯, 사나에가 그러하듯. 사나에였던 구름이 그러하듯.
가자.
코치야 사나에는, 사나에는, 소녀는, 너는, 는 점차 줄어들며 흐릿해지더니 이윽고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다.
두고 온 것이 너무 많다.
기어코, 또는 드디어.
코치야 사나에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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