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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글알못 팬픽대회

육욕 - 물부포도 (감평 및 입상후보 제외작)

파리가 내 입 근처를 기어다니는게 느껴져 저절로 눈이 뜨였다. 불쾌한 기분을 억누르며 내 잠을 방해한 파리를 대충 내쫓고 소매로 침을 닦으며 바싹 마른 입안을 그나마 축축한 혀로 적셨다. 입속이 조금 적셔지자 주릴 대로 주려있던 배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음같아선  배를 부여잡고 주린 걸 잊고자 더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창문을 통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푸른 빛이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할 때임을 알려주고 있었기에, 옷을 갈아입고 방 밖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기나긴 복도를 지나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코를 들썩여 보았지만, 역시나 오늘도 느껴지는 것이라곤 차가운 냉기와 먼지냄새뿐이었다.

“토지코여, 오늘도 밥은 안 하는 겐가”

계단을 내려와 복도에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 토지코에게 힘없이 물었다.

“당연하지”

 토지코는 나보단 난의 상한 부분이 더 신경 쓰인다는 듯이 눈을 떼지 않은 채 비꼬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쌀이며 고기며 한 톨도 없거니와 산은 나무껍질이고 풀이고 전부 뜯겨 나가 눈 내린 겨울이라도 된 것 마냥 새하얀데, 어디서 음식을 구해 요리한단 말이니”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야!”

 토지코가 내 말을 칼같이 끊었다. 시선을 화분에서 나에게로 돌려 목소리를 높여 가며 나에게 잔소리를 마구 내뱉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시해선이자 태자님을 섬기는 자라면 욕망을 다스리고 인내할 줄 알아야지. 설사 음식을 구한다고 해도 저기 추위를 막기 위해 넝마를 움켜쥐곤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대사묘 앞 불쌍한 신도들 몫이지, 너한텐 쌀 한 톨도 안 올 거 잘 알고 있잖아!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어 굶어 죽지도 않는 시해선이면서 벌써 며칠째 배고프다고 징징거리는 거야!”

“... 시해선은 불로인 거지 불사는 아니란 말일세…”

 나는 기가 팍 죽은 채 벌 받는 아이처럼 바닥을 내려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배가 고파지는 게 싫었으면 너도 망령이나 되지 그랬어 누구 덕분에 망령이 되고 나선 몸도 가벼워지고 배고플 일도 없고 얼마나 좋은데.”

 순간 나는 꿀먹은 벙어리라도 된 듯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토지코는 그런 날 놀리기라도 하는 듯이 자신의 무 같은 다리를 좌우로 살랑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됐고, 우물에나 가서 세수도 좀 하고 물로 배나 채워둬. 꾀죄죄한 채로 배고프다면서 난리 치다가 태자님 망신이나 시키지 말고. 아, 그리고 오늘 마을 꼭 내려갔다 와야 한다 기억하고 있지”

“자네도 파리 잡는 거나 잊어버리지 말게, 파리가 어찌나 많은지 내 방 안까지 들어올 정도일세!”

 쏘아붙이듯이 말한 나를 노려보는 토지코의 입이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말할 듯이 움찔거리자, 나는 헐레벌떡 우물로 도망가 세수를 하고 물을 마셨다. 비어있는 위장에 물이 들어차자 밥이라도 들어온 듯이 더욱 심하게 요동쳐 허기가 더욱 심해진 느낌이 들어 물을 괜히 마셨나 하는 후회 감이 다소 들었다.

 준비를 끝마치고 마을로 내려가기 위해 대사묘 정문을 열자 수많은 신도가 대사묘 앞 계단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나오면 가까스로나마 몸을 일으켜 예를 갖추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지를 움직일 힘조차도 없어 얼굴에 파리가 기어 다녀도 미동조차도 안 하니 누가 산 사람이고 죽은 사람인지 쉬이 분간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송장과도 같은 사람들을 외면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려 하는 도중, 누군가 발을 붙잡아 내려다보니 피골이 상접한 여인이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태자님은 어떠하십니까”

 죽어가는 와중에도 태자님의 안부를 묻는 그녀에게 차마 시선을 고정하진 못한 채, 그저 앞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신도들 걱정에 식음을 전폐하시고 불철주야 고생하고 계신다.”

“그럼… 제 딸은, 제 아이는…”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음에도 그녀의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시선이 느껴져 속이 울렁거렸다.

“걱정 말아라. 그걸 위해 마을에 가는 것이니.”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잠시 흐느끼다가 조용해졌다. 그녀를 슬쩍 내려다보니 내 발을 잡은 그대로 미동조차도 하지 않았기에, 발을 조심스레 앞으로 내딛어보았다. 그녀의 손은 아무런 저항 없이 나를 놔주었다.

 마을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신도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일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대사묘엔 쌀 한톨 안 남아있어 태자님은 식음을 전폐할 수밖에 없으시니까, 가을 신들이 사라져 흉작으로 모두가 죽어가는 와중에 신도를 모아 이 기약 없는 고통의 행군이 끝났을 때 자신들을 이 고난에서 살아남게 해준 태자님을 우러러보고 칭송하게 하여 환상향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만들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중이시니까. 대사묘에 모아둔 시체들이 썩는 걸 막기 위해 떨어진 방부제를 대신할 소금을 사오기 위해 날 마을에 보내시는 것이니까, 멍청한 저들이 자초한 일이다.

 마을은 오싹할 정도로 조용했다. 차라리 곡소리와 앓는 소리가 들리던 때가 그리워 질정도였다. 길거리엔 살 한 점 안 남은 뼈다귀들이 굴러다녔고, 그런 뼈다귀라도 뺏어 먹기 위해 서로 싸우는 쥐들의 울음소리만이 가끔 적막을 깨트렸다. 한때 짚으로 되어 있던 지붕들은 전부 먹어치우기라도 했는지 하늘에서 보면 집 안이 훤히 보일것 같은 몰골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런 마을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보다는 허탈감이 앞섰다. 이런 상황에 소금은 어찌 구한단 말인가. 태자님을 실망하게 해 드릴 생각을 하니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가기에도 민망했다. 정말 슬프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주림과 좌절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으려는 순간, 골목 구석 끄트머리에 이상한 게 보였다. 빠르게 다가가 보니 웬 가마니가 구석에 있었다.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열어보니 선홍빛 가루가 들어있었다. 가루를 살짝 찍어 맛을 보니 비린 맛이 강한 소금이었다. 침을 퉤 뱉고 잠시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색깔과 소금인걸 미루어 보면, 파계승 놈들이 요괴를 위해 만드는 소금 같아 보였다. 인간이 굶주리면 요괴도 같이 굶주리는 게 당연한 일. 파계승들은 굶주린 요괴가 인간을 공격할까 걱정되어 요괴들을 위한 소금을 만들었는데, 요괴들이 먹으면 배고픔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기묘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헌데 이런 게 어째서 인간 마을에 있는 걸까. 설마 마을에서 숨어 살고 있는 요괴가 있는걸까. 잠시 고민해보았지만, 어차피 요괴들 사정은 내 알 바 아닌 터, 태자님의 명령이 더 중요했다.

 쫄쫄 굶은 몸으로 소금 한 가마니를 옮긴다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날씨가 쌀쌀했음에도 땀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힘을 쓰고 있자니 밥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숨마저 턱까지 차올랐다. 어쩔 수 없이 숲 한가운데서 잠시 가마니를 내려놓고 위에 앉아 쉬기로 하였다. 과연 이 소금을 대사묘까지 가져갈 수 있을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기껏 소금을 구했는데 태자님을 실망하게 해 드리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우울해졌다.평소였으면 날아서 순식간에 가져다 놓았을 거라는 생각에 더욱더 밥이 간절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쉬었지만 잃은 기력은 도통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무껍질이라도 먹고 기운을 차려야겠다 싶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이리도 숲이 울창한데 나무껍질은 모조리 벗겨서 새하얀 자태를 내뿜는 게 무척이나 기괴하게 보였다. 그때 난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나무 아래에서 날 노려보고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옮겨가며 자세히 살펴보니 시체였다. 환상향의 다른 이들처럼 비쩍 말라 있었다. 아마 나처럼 나무껍질이라도 먹으러 올라왔다가 그대로 절명한 모양이다.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시신은 비교적 멀쩡해 보였다. 보통이라면 눈을 바로 돌려버렸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쉽사리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 그 요괴 절 놈들이 만든 소금을 살짝 맛본 것 때문일까, 군침이 흘렀다. 배는 더욱 요동쳤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머리로는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몸은 나뭇가지를 모은다. 소매에서 성냥을 꺼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모아둔 나뭇가지에 불을 붙였다. 불이 내 몸을 조금씩 녹이기 시작하자 내 몸은 바로 시신을 끌어당겨 팔을 불 위에 올렸다. 고기 타는 냄새, 이성이 조금씩 흐려졌다. 그렇게 한동안 그저 멈춰선 채로 냄새를 맡다가 문득  토악질이 나왔다. 토악질을 잔뜩 하고 입맛을 다셔보니 씁쓸한 맛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바닥을 내려다보니 위액만이 잔뜩 쏟아져 있었다. 물과 위액만을 게워낸 배는 더욱 배고프다는 듯이 울렁였다. 비틀거리면서 사체를 다시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죽은 사람 눈이 생선 눈깔 같다는 건 누가 한 말이었을까. 초점 없이 날 쳐다보는 검은 눈빛은 나의 양심을 사정없이 후벼 파며 생선 눈깔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말, 너무나도 소름 끼쳤다. 같은 인간이 맞나 싶었다. 그러다 번뜩, 정말 같은 인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해선 아닌가 태자님도 누누이 말씀하셨다. 우리 같은 뛰어난 존재들이 인간을 다스려야 한다고. 굶주림에 이성이 먹힌 게 아니다. 태자님의 말씀은 무조건 옳으시다. 나는 생각을 끝마치자마자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팔에 바로 달려들어 한입 크게 물어뜯었다. 입도 데고 매우 질겨서 좀 고생했지만, 성공적으로 살점을 뜯어내어 조심스레 씹었다, 한입 한입 곱씹을 때마다 퍼져 나와 내 식도를 흘러내려 가는 육즙과 함께 내 죄의식도 함께 흘러내려 갔다. 하지만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이 간만의 만찬을 뭔가 부족한 채로 끝내기엔 너무나도 아까웠다. 고개를 돌려 가마니를 바라봤다. 싱거운 고기의 간을 맞춰줄 소금을. 씹던 팔을 내려놓고 가마니로 달려가 소금 한 줌을 꺼내 재빠르게 고기 앞으로 돌아왔다. 불 위에 그대로 놓여 구워지고 있는 그것에 소금을 솔솔 뿌리자 소금이 타오르면서 마치 폭죽이 터지는 축제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설렜다. 그렇게 한껏 들떠 오른 채 계속해서 소금을 뿌려가며 폭죽놀이와 간이 환상적이게 된 고기를 즐겼고, 내장은 물론 뇌수와 눈까지 죄악감과 함께  먹어치우고 더는 배가 요동치지 않게 된 육체로 소금을 대사묘까지 무사히 가져다주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태자님이 소금 포대를 내 앞에 가져다주셨을 땐 들키지 않았나 조마조마하였지만, 시체를 염장하라는 명령을 받고선 안심이 되었다. 처음으로 염장하게 된 시체는 작은 소녀였는데, 안쓰러움이 아닌 군침이 돌고 배가 요동치기 시작한 건 어째서일까

 

 

 

 

< 주최자의 말 >

제출 기한을 넘겨 입상후보 및 감평대회 대상에서 제외되는 작품입니다...만.
대회 총 결과 발표 시 주최자 개인 감평은 달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