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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글알못 팬픽대회

아래쪽이 가벼운 고구마 - 조져버리기






아키 시즈하는 오늘도 화나 있다. 투덜거리며 붉은 물감이 묻은 손으로 땀을 닦아낸다.

"아아! 또 물감 닦는 거 깜빡했어!"

손에 물감이 묻어있다는 사실을 깜빡한 채 무의식적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낸 시즈하. 이마에 단풍이 붉게 만개하고 말았다.

"우으으..."

집에서 가져올 때만 해도 새하얬었지만, 지금은 붉게 물든 지 오래인 손수건과 손잡이 부분만 새빨개진 손거울을 꺼내 이마에 묻은 물감을 닦는 시즈하. 하지만 제대로 닦이기는커녕 번지기만 하는 이마의 얼룩을 보고 울화통이 터져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으... 진짜!"

훌쩍이며 손거울과 손수건을 숲속으로 던져버리고는 쓰러지듯 땅바닥에 드러눕는 시즈하. 억울함으로 가득 찬 눈물이 눈 앞을 가려준 덕에 먹구름이 낀 마음속과는 정반대인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보이지 않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나도 이렇게나 열심히 하고 있는데... 훌쩍..."

그녀는 아키 시즈하. 단풍을 담당하는 정도의 능력을 지닌 단풍의 신. 우리가 가을에 돗자리를 펴고 단풍 구경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시즈하가 단풍을 붉게 칠해준 덕분이다. 단풍을 칠하는 것은 기계라던가, 라면 스프라던가, power overwhelming 같은 치트키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며... 그거 개소리야... 훌쩍..."

하지만 환상향에 존재하는 모든 나뭇잎을 칠하고 다니는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즈하에게 바쳐지는 공물과 신앙심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아키 시즈하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가 의문일 정도로.

"미노리코가 부러워..."

신세 한탄이라는 이름으로 던져진 돌멩이는 곧 질투라는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여동생을 향해 날아간다. 

아키 시즈하의 여동생인 아키 미노리코는 풍년을 담당하는 정도의 능력을 지닌 풍년의 신으로서, 오리지널 캐릭터 취급받는 언니와는 달리 인간 마을에서 추앙받는 대표적인 신 중 하나이다.

"항상 가득한 미노리코의 신앙심을 보면 질투나, 나는 언제나 텅텅 비었는데. 날마다 웃으면서 집에 들어오는 미노리코가 질투나, 나는 언제나 울상인데. 그리고 농사일하는 주제에 나보다 가슴이 큰 것도 질투나, 내가 언니인데."

뭔가 잘못된 질투가 하나 껴 있지만 무시하자. 시즈하는 자기보다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신앙심을 받는 미노리코가 부러웠다.

"이건 불공평해."

무언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즈하. 홧김에 숲속으로 던져버린 애꿎은 손거울과 손수건을 되찾으러 수풀 속을 뒤질까 잠깐 고민했지만, 질투의 화신이 된 그녀에게 그깟 손수건 따위가 중요할까? 그냥 손거울과 손수건을 잃어버린 샘 치고 버리기로 한 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미노리코~"

집으로 돌아온 시즈하. 물감 범벅이 된 손과 얼굴을 깨끗이 헹구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미노리코~ 있어~?"

거실로 나와 소파에 수건을 걸쳐놓고는 다시 미노리코를 불러보는 시즈하.

"...아직 안 왔나 보네. 후후."

집에 미노리코가 없음을 확인한 시즈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올라 2층에 있는 미노리코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곧바로 미노리코의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찾았다!"

눈을 반짝이며 발견한 그것을 집어 높게 들어 올리는 시즈하. 그녀가 집어 든 것은 미노리코가 평소에 입고 다니는 복장의 여분 세트였다.

"작전명 : 아래쪽이 가벼운 고구마!"

자기와 미노리코의 외모가 비슷하다는 것을 이용해 미노리코로 분장하고 인간 마을에서 행패를 부려 미노리코의 평판을 깎아 먹겠다는 못된 계획. 당연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행패'란, 인간 마을의 청년들을 따먹겠다는 소리다. 

풍년의 신 미노리코. 사실은 인간 마을의 청년들에게 마구 대주는 창녀였다?! 라는 소문을 퍼뜨리겠다는 허무맹랑한 계획.

미노리코의 옷을 챙기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온 시즈하. 환복을 끝내고 화룡점정으로 모자에 포도 한 송이를 얹혀놓고는 거울 앞에 서보았다. 순간 정말로 미노리코가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깜짝 놀라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은 시즈하. 상황 파악을 마친 그녀는 헛기침하며 일어섰고 단풍과도 같이 붉게 물든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이거 정말로 미노리코랑 똑같은걸. 헤헤."



...



인간 마을.

인간 마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양함'을 나누는 기준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종교가 있을 것이다. 산 위의 신사에 참배하러 가는 사람도 있고 인간 마을 근처의 절에 다니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도교를 믿는 자들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으뜸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풍년이라는 직접적인 축복을 내려주는 풍년의 신이 아닐까?

"오오. 미노리코 님 아니십니까?"

"이야, 미노리코 님! 괜찮은 고구마를 굉장히 많이 수확했는데 조금 드시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앗! 물론 미노리코님 덕분에 수확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하하!" 

"어서 오십... 미, 미노리코 님이잖아! 여봐라! 여기 어서 레드카펫을 깔지 않고 뭣들 하는 거야!"

미노리코로 분장한 시즈하가 인간 마을에 나타나자마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와 감사 인사를 올렸다.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것이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이 모든 환영 인사는 전부 미노리코를 향한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금방 기분이 상한 시즈하.

하지만 전부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마음이 약한 시즈하였기에 하나하나 인사를 다 받아주었고, 모여들었던 모든 사람이 각자 할 일을 하러 떠난 뒤에야 작전을 개시할 수 있었다.

"일단은... 역시 히에다 가의 하인이려나?"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하는 시즈하. 그녀가 정한 첫 번째 타깃은 최근에 히에다 가에 들어온 젊은 하인이었다. 히에다 가문은 인간 마을에서 두 번째 가라 하면 서운할 정도로 마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주요 거점으로써, 그 가문의 하인을 노리는 것은 첫 번째 타깃으로는 훌륭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히에다 가의 당주가 외출한 사이 마당을 청소하고 있는 그 하인에게 접근한 시즈하.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모습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젊은 하인의 손을 세게 잡아당겨 마당의 수풀 속으로 집어 던지고는 그대로 덮쳤다.

"아... 아앗... 오늘은 안 되는데..."

"오늘이고 뭐고, 내 마음이야."

두 번째 타깃. 그것은 카미시라사와 케이네가 운영하는 서당의 남교사다. 마을의 주요 인물인 케이네와 가까운 지인임과 동시에 히에다 가에 못지않은 중요한 거점인 서당의 선생이라는 점이 아주 매력적인 먹잇감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서류 정리를 마친 그 남교사가 바깥에 숨 돌리러 나왔을 때를 노린 시즈하. 골목길로 끌고 간 뒤에 그대로 덮쳤다.

"후후. 가을 신의 테크닉이 어때?"

"가, 감사합니다...?"

"응? 덮쳐졌는데 만족하는 거야? 뭐, 상관없어."

마지막 타깃으로는 식료품 가게 주인아저씨의 아들로 결정했다. 이 식료품 가게는 미노리코가 재배한 농작물을 비싸게 사들이는 고마운 가게 중 하나로, 아키 자매가 인간 마을에서 생필품 등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돈은 대부분 이곳에서 나온다. 직업의 특성상, 발이 넓을 수밖에 없는 식료품 가게 아저씨의 아들을 따먹는다면 금세 멀리까지 소문이 퍼질 것이다. 즉, 앞으로의 생필품은 자급자족해야 하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 만큼의 거물인 타깃은 흔치 않다는 뜻이 된다.

질투의 화신이 된 시즈하는 앞일 생각할 겨를 없이 논밭에서 밭일하는 식료품 가게 주인아저씨의 아들을 찾아내 그대로 덮쳤다.

"오, 오늘도 입니까."

"오늘도? 사람 잘못 봤어. 아니, 신 잘못 봤어."

"으윽..."



...



"더는 무리..."

"이크,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네. 어서 내 소문을 퍼트리라고 인간!"

"그건 무슨... 아앗 미노리코님...!"

덮쳐진 점원이 의문을 표했지만, 무시하고 재빨리 사라지는 시즈하. 벌써 작전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방금 따먹은 인간은 키리사메 도구점의 점원. 첫날 덮쳤던 세 청년보다는 아니지만, 마을 내에서 수준급의 영향력을 지닌 타깃이었다. 물건을 파는 사람답게 훌륭한 물건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 애를 먹었지만, 훌륭히 목표를 완수했고 주변에 목격자가 없음을 확인한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후우... 그나저나 왜 이리 소문이 안 퍼지는 거야."

일주일 동안 청년들을 덮치고 다닌 시즈하. 가끔가다 타깃이 겹치곤 했지만, 가능하다면 소문이 잘 퍼지도록 번화가부터 인적이 드문 지역까지 이곳저곳 순차적으로 방문하여 청년들을 따먹었다. 

하지만 소문이 퍼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소심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강제로 따먹힌 걸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못해?" 

신변에 위협이 가해져도 주변 사람들에게 상담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인간들을 한심하게 느낀 시즈하.

"신에게 덮쳐졌으면 조금은 주변에 소문을 내란 말야."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서 소파에 앉아 팔짱을 끼고 혼잣말로 푸념을 내뱉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미노리코가 돌아왔다.

"언니~ 나 왔어~"

"어서 오렴. 미노리..."

말을 끊고 미노리코를 바라보는 시즈하. 평소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먹음직스러운 농작물이 잔뜩 담긴 바구니를 품에 안고 있는 미노리코.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시즈하를 바라보았고 빙그레 웃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해맑고 얄미운 얼굴을 본 시즈하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미노리코."

"응? 왜 불러 언니?"

"어째서 그렇게 싱글벙글한 거야?"

"헤헤. 티 났어? 오늘은 조금 특이한 일이 있었거든."

바구니에 담긴 커다란 오이와 호박을 집어 들고 싱긋 웃는 미노리코.

"그게 말야, 오랜만에 식료품 가게에 들렀는데 주인아저씨가 덤을 얹어준 거 있지."

"식료품 가게라고?"

"응! 두 번이나 축복을 내려줘서 고맙다면서 호박은 싸게, 오이는 공짜로 줬어."

분명 식료품 가게 주인장의 아들은 첫 번째 타깃이었을 터.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자신의 아버지에게조차 말을 하지 않았던 걸까, 입에서 빠드득 소리를 내며 표정을 구긴 시즈하.

"나는 최근에 축복을 내려 준 적이 없는데 말야."

"뭐?"

쓸모없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식료품 가게 주인장 아들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던 도중에 당황스러운 말을 들은 시즈하. 얼빠진 얼굴로 미노리코를 쳐다보았다. 

"글쎄 내가 이번 주에만 두 번이나 축복을 내려줬다는 거야. 가장 최근에 축복을 내려준 건 한 달은 넘은 것 같은데. 그치만 싸게 준다고 하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왔지롱~"

"미노리코..."

"헤헤... 그, 역시 좀 너무했으려나?"

"아니. 그게 아니고,"

일주일, 두 번, 가끔가다가 타깃이 겹침, 식료품 가게 주인장의 아들, 충분히 퍼져야 했음에도 퍼지지 않은 소문, 그리고 축복. 뭔가 이상함을 느낀 시즈하. 덮친 청년들과 거사를 치른 직후 나눴던 말을 떠올랐다.

(아... 아앗... 오늘은 안 되는데...)

(가, 감사합니다...?)

(오, 오늘도 입니까...)

설마ㅡ

"언니? 뭐야, 갑자기 멍 때리고."

"미노리코... 너가 말하는 '축복' 이라는 건 뭐야...?"

"응? 축복?"

식은땀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 시즈하. 식료품 가게 주인아저씨에게 싸게 샀다는 호박을 품에서 내려놓는 미노리코. 

그러나 오이는 내려놓지 않았다.

"미노리코...?"

"축복이 뭐냐고?"

미노리코. 천천히 시즈하가 앉아있는 소파로 다가가서는,

"아얏!"

시즈하를 밀쳐 소파에 눕히고는 그대로 시즈하를 자신의 허벅지 사이에 낀 자세로 그 위에 올라탄다. 그러고는 손에 든 오이를 가리키며,

"당연히 이런 거 아니겠어?"




아래쪽이 가벼운 고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