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녹슨 추억들. 늦은 아침 침대에서 들리던 풍경 같은 소리들.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그녀의 따뜻한 향기.
“사나에~~이것 봐봐”
“이게 뭐여요 신님?”
“내가! 사나에 주려고 만들었어 흐헤헤 신이 주는 증표야!”
그녀는 작은 개구리 모양의 브로치를 내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아..” 꾸벅
“사나에? 왜 그래 맘에 안들어?”
내 울적한 표정을 보고 그녀가 말했다.
“실은 아빠가요오... 또 술먹고..엄마 때리고,, 신이 어딨냐구.. 만약 있어도 분명 고약할거라구.. 그랫어요..”
“내 눈엔 다 보이는데.. 스와코님도 카나코님도 착한데...그냥 아빠한테도 빨리 모습 보여줘요...네?”
난 칭얼거리며 작은 손으로 그녀의 옷깃을 잡아 흔들어댔다.
“사나에”
“어떻게 인간이 신을 이해하겠니”
브로치가 손에서 재로 녹았다.
따뜻한 향기는 악취로 상냥한 그녀의 표정은 처음보는 낯선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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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헤헷... 사나에~~~” 쿠당탕 쿵
늦은 새벽 난 문을 때려 붓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재수없는 악몽을 깨워준 게 오늘만큼은 고맙다.
“야! 사나에 이 년이...주인..아니 신님이 오셨는데 기척도 안하니?”
그녀는 술에 절어 몸도 못 가눈채 작은 손으로 날 마구 흔들어댔다.
이 신사의 주인 모리야 스와코.
“어..아직도 말안하네...야..아직도 삐져있는거야? 흐헤.. 아 뭐야~~애기 때 준..딸꾹! 브로치 또 안했어...”
역겨운 년
“내가 억지로 끌고와서 그러는거지? 야 여기 생활이 백배 더 나아!! 사나에 한테도 말야...”
술마신 사람 상대 만큼 무의미한 일이 있을까. 더군다나 상대가 저 여자라면.
다시 무시하려는 찰나 뭔가가 눈에 띄었다. 스와코의 뒤편에서 작게 몸을 떨고있는..
“아이?..”
“응? 아 헤헤 데려왔어”
“하..이젠 저렇게 어린 아이한테도 손을 대시네요”
“헤헤 야 웃기지마 내 입장에서 보면 20살인 너나 7살인 쟤나 동갑이야”
“자! 이리온 누나랑 같이 자자 흐헷”
스와코는 그아이를 억지로 끌어안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독한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 좋을테지.. 몇 백년 만에 신 노릇한다는게.
저 여자와는 같은 곳에서 자기도 싫었다. 난 방을 나와 다른곳에서 눈을 붙였다.
#
이곳 환상향에 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일본의 신교는 마치 패스드푸드처럼 간단히, 그저 필요할때 동전이나 던지고 비는 수준이었지만 이곳은 달랐다.
신의 존재는 인간들의 피부에 와 닿았고 요괴는 망상이 아닌 현실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새로운 신이 왔다'
그 한마디로 끝이었다. 더 이상의 홍보도 포교도 필요하지 않았다.
호기심 기대감 두려움.
저마다의 이유로 찾아온 사람들로 신사는 첫날부터 터질 듯 했고 스와코는 많은 신앙을 얻었다.
내가 내 삶의 모든것을 잃은것과 반대로.
난 옆에 있는 그녀를 흘끗 쳐다보았다.
전날 과음한 신이라곤 믿기 어려울정도로 멀쩡하게, 온갖 음행을 저지르는 신이라
곤 믿기 어려울정도로 근엄하게, 오늘도 본당에서 참배객들의 절을 받고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그녀가 씩 웃었다.
그리곤 나지막히 말했다.
‘전달할게 있으니 사나에가 말해’
신은 절대로 직접 말하지 않는다. 모든건 나를 통해 했다.
“모두 멈추어라”
‘네 이제 말씀하세요’
‘...’
그말을 듣고 난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제 그 아이...
침묵이 계속되자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난 호흡을 가다듬고 어제 데려온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아이는 신의 아행(夜行)에 동참할 것이다”
참배객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과 감사가 흘러나왔다.
#
“아~오늘도 힘들었다! 사나에도 수고했어!”
그녀가 신사의 마루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그거 꼭 해야되는건가요”
“뭐 야행? 당연히 해야지 전통있는 곳에 왔으니까 전통있게 행동해야지 않겠어? 헤헤”
야행. 신이 밤을 타고 요괴를 멸하러 가는 고대 의식이다.
인간들의 편에 서겠다는 선언이며 요괴들을 적으로 삼겠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 만큼 자신의 신격이 강하다고 과시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어린아이를 필요로하며 선택된 아이는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생활하다 몇 개월 후 의식의 날을 맞이한다.
하지만... 환상향에서는 잔인하기만한, 요괴와 짜고 치는 연극일 뿐이다.
“카나코님이었으면 절대 반대했을걸요”
“뭐, 이미 죽었는데 상관없잖아”
난 치가 떨렸지만 참았다. 몸이 가늘게 떨렸다.
“고아에요 그 아이?”
“아니 부모있어”
“왜 하필..”
“원래 뺏어오는게 더 맛도 좋아”
난 울컥했다 더 이상 참지못하고 소리질렀다.
“그래서 내 부모도 죽였나보죠?”
그녀는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날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게 더 참을 수 없었다.
“왜 내 부모를 죽이고 카나코님까지 죽여야 했냐고! 내 친구들 동생들과 생이별을 시키고 가기 싫다는 날 억지로 납치하듯이, 이 망할 곳에 끌고 오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잖아!!”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눈에 눈물이 흘렀다. 잊고 살으려 했다. 잊고 싶었다.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떠올려봤자 남는건 없으니까.
신격 높은 과거의 명문가.
그 껍데기만 가진 자존심만 높은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난 장녀로서 악착같이 살아왔다.
그래도 행복했던건 내 눈엔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의 목소리가, 모습이, 날 향한 다
정한 위로가.
그렇게나 의지 했었는데.
“사나에. 다 널 위한거야”
그녀는 마음 넓은 자신이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할머니가 칭얼대는 손녀를 바라보듯 말을 이어 나갔다.
“폭력만 휘두르는 부모, 폼만 잡고 신앙만 뺏어먹는 카나코... 전부 사나에에게 방해만 되는 족속들이지.. 여기 온 것도 다 너 위해서 온거라니까? 너의 신력, 좀 만 다듬으면 여기서 최고가 될거야 헤헷”
여기 온 뒤로 계속 보아왔던 저런 뻔뻔한 모습과 거짓말들. 말해봤자인 그녀에게 순간 욱해서 화를 낸게 후회되었다.
“웃기지마 다 당신 좋으라고 여기 온거잖아? 신이라는게 신앙 하나 제대로 못 얻어서 도망쳐온 주제에...여기오니 왕 행세 하고 맘대로 하니까 좋겠지.. 날 위한다고? 그냥 죽어버려”
난 그녀가 가장 싫어할 만한 말을 내뱉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하하 사나에 많이 변했네 그런 독한 말두 할줄 알고~”
#
악신.
이곳엔 그런 놈들 밖에 없었다. 적당히 요괴랑 신이랑 타협해 인간을 거름삼아 세워진 디스토피아.
요괴는 인간을 착취하고 신은 구해 주는 시늉을 하면서 뒤로는 요괴와 작당을 한다. 요괴는 당해주는척 물러나고 신은 답례를 요구하며 인간을 또 착취한다. 야행도 그런 연극의 일종이었다.
스와코도 똑같다. 신앙을 모으지 못해 존재 자체가 사라져 가던 그녀가 이런 천국을 못 본 척할리 없다.
몇 백년만에 자신을 알아보고 믿어주는 나의 신앙의 힘과, 카나코를 죽이고 얻은 신앙의 힘을 이용해 이곳에 겨우 온 것이다.
한 없이 자상했던 스와코는 단지 힘없는 자의 연기였을 뿐, 힘이 생기자 본성이 드러났다.
전에는 왜 땅을 조종하는 재앙의 신인지 이해가 안됐지만 여기서 그녀는 어쩔 때는 나까지 강제로 끌어들이면서 색과 재물을 탐하고 살육을 즐겼다.
그리곤 신앙 운운하며 날 절대 손아귀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이름에 걸맞는 악신.
그렇게 생각해도 다시 눈물이 나왔다.
모든 추억이 거짓이라는게 인정하기 싫었고 무서웠다.
카나코님이 엄격했다면 스와코는 항상 어머니처럼 상냥하게 날 대해주었다.
내가 슬플때도 기쁠때도 때론 친구같이 엄마같이 연인같이.
더 생각하기 힘들었다. 난 눈물을 멈췄다. 불현듯 추억이 생각날때도 눈물은 마지막엔 항상 증오로 변했다.
그 여자를 죽이고 싶다. 그 여자를 원망한다. 날 속인 그 여자를.
#
“사나에 님을 보면 항상 슬퍼보여요”
자상한 미소를 짓는 여자. 곽청아라고 했던가. 온갖 위험한 약을 제조하는 괴짜 선인이라고 들었다.
“환상향에 오기 싫었나 봐요? 스와코님이랑 반대로”
스와코에게 배신당한 이후 난 타인을 향한 문을 닫았다.
이 곳 신과 요괴가 몰래 화합하고.. 뒷거래를 하는 모임에서는 더욱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는 나는 오히려 그녀에게 어린 아이처럼 보였을까.
“그래도 신요(伸妖) 모임인데.. 너무 뾰루퉁하게 있어 보이면 티나는 걸요.. 신의 무녀씩이나 되시는 분이.”
난 속내를 들킨 것처럼 표정이 어색해졌다.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나에님을 가장 아껴주는건 스와코님 아닐까요”
“무녀는 아니지만 저 역시 사제를 키워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스승의 애정이 클수록 서로 애증이 많은 법이에요”
그녀는 추억에 잠긴 듯 말했다.
“그만큼 제자한테 많이 주고 싶어하니까요”
“에헤헤헤! 어이 사나에! 이번 야행은 리글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무녀로서 더욱 정진하도록!!!!”
저 편에서 요괴들과 같이 있던 스와코가 잔뜩 만취해서 말했다. 아무래도 요괴들과의 뒷거래가 끝난 모양이다.
“아 말이 길었네요. 그럼 재밌게 즐기다 가세요. 모처럼이니까요”
하지만 난 그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떠나면서 흘리고 간 작은 병 하나.
난 홀린 듯이 그 병을 바라보았다.
#
모리야 신사의 밤.
난 뒤척이며 잠을 못이루고 있었다.
의식의 날이 당장 내일인 만큼 머리가 복잡했다.
그 병에 담긴건 설마 했던 독이었다. 근처의 요괴에게 소량 먹여 봤을 때 죽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던 맹독.
망설이길 수백 번. 여태까지 끝없는 고민을 반복해왔다.
두려움과 기대감. 죄책감과 통쾌함.
항상 그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 했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 할 때 마다 지금처럼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내 안에서 꼬리를 물었다.
설마 신인데 죽을까
왠지 버티지 못할지도
내일은 의미있는 날이야
멋대로 사람들을 착취하고 자신의 욕심에 이용하고
그런 날 자기도 당해보는 거야
꼴 좋지 않겠어?
아니야 그렇게 수많은 추억들이 다 거짓일리없어
만약 지금까지 해온게 정말 날 위한거면?
그럴 리가 없잖아
설마 그랬어도
부모를 죽이고 카나코님도 죽였는걸
그 여자의 죄는 없어지지 않아
그 여자는 죽어야 돼
#
날이 밝고 의식의 날이 되었다.
아침이 되면 밤의 감정에 젖었던 생각은 어느정도 희석되어 간결해지기 마련이다.
난 거울속의 퀭한 내 눈을 보며 생각했다.
‘이대로 살아가기 괴로워..’
많은 밤을 지새며,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을 더듬으며 그녀의 행동에 대해 저울질 하는 것.
혹시 모를 신의 뜻을 알기위해 노력하는 것.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녀에 대한 원한은 결코 없어지지 않겠지.
애초에 시간이나 대화가 풀어줄 매듭이 아니었다.
난 마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아이는 어차피 죽을 목숨.. 의식의 직전 그 아이를 씻길 때 몸에 독도 함께 발라주었다.
그래.
저런 악신 따위.
고대의 행위답게 의식은 무척 기괴했고 원시적이었다.
요괴 가면을 쓴 채 제단에 묶여있는 나체의 아이. 그 위에 분장을 한 스와코가 올라타 관계를 했다.
가면을 쓴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쌓고 격렬해지는 움직임에 맞춰 북소리를 높여 갔다.
사정을 시키는것은 요괴의 혼을 빼는 것, 마지막으로 그 아이를 제단 위의 장대에 매달아 불태우는건 요괴의 육체를 멸한다는 의미였다.
난 또렷히 보았다. 아이의 몸이 스와코와 맞대어 지고 그의 성기가 들어가는 것을.
독이 그녀에게 스며든 것을.
아이는 비명하나 지르지 못하고 불태워졌다.
의식을 끝낸 스와코가 다소 피로한 얼굴로 제단 밑에 있는 나에게 다가 왔다.
역시 신이라 바로 독이 듣진 않는건가.
야행의 마지막 순서는 신이 직접 인간을 괴롭히는 요괴를 퇴치하러 가는 것이었다.
물론 지난번 거래한대로 리글의 구역에서 적당히 싸우는 척만 할..
‘..전해라 사나에 이번 야행은 홍마관이다’
...뭐?
난 어이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쳐다보았다
‘빨리 말해’
“시..신께선 홍마관으로 야행을 결정하셨다”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한번도 침략받지 않은 성. 당연하다 짜고치는 연극이라도 희생되는 요괴가 조금은 나와야 했다. 그딴 곳을 정할 리가 없다.
“지..지금 무슨.. 리글이랑 짠 거 아니었어요? 웬 홍마관.. 아 거기서 자고 오는건가..?”
난 당황해서 말도 횡설수설 나왔다.
“걔네가 이 근방에서 제일 강한 애들이잖아. 걔네 없어지면 주변 요괴는 힘도 못 쓸걸”
“음 근데.. 의식을 마친 것 치곤.. 힘이 안 늘어나는데.. 아무튼 다녀올게 사나에”
거대한 백사들이 튀어나와 스와코를 태우고 순식간에 날아갔다.
“아..잠깐만...”
#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녀의 모습과 정반대되는 행동에 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설마 지금까지 일부러.. 아니 그냥 장난치는건가..? ’
복잡한 마음에 초조해진 난 바로 그녀를 뒤따라 날아갔다.
하지만 밤하늘 속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장난이면.. 이렇게나 빨리 날아갈리..’
‘아니야 홍마관에서 놀래키려고 그럴수도..’
한참을 날아간 후 홍마관의 모습이 보였다.
불타고 있는 홍마관의 모습이.
“아...”
도착한 홍마관의 주위엔 문지기의 목이 나뒹굴고 있었다. 장난일 리가 없었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녀였지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은 최상층을 향해 급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올라가며 악마들과 마법사와 메이드의 시체들을 볼수록,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나의 감정은 더욱 혼란스럽게 소용돌이 쳤다.
환상향에 온건 다 너를 위한거라는 스와코의 말, 온갖 쾌락에 절여살며 잔인하게 아이를 불태우는 스와코.
날 제일 아껴주는건 스와코일거라는 곽청아의 말, 부모와 카나코님을 죽이고 피 묻은 채로 나타난 스와코.
그녀와의 추억들과 그녀의 악한 행동들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고민하다 결국 독을 바른 나.
모든 일이 필름처럼 지나가며 곧이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난 최상층의 문을 열었다.
#
“이....망할 년이...! 도대체 뭐하는 거야...”
그곳엔 이 성의 주인인 레밀리아가 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 거리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인간한테 부탁받았다니까. 요괴 퇴치해준다고 아이 까지 먹었는데 모른 체 할 수 없잖...우웨에에엑”
레밀리아와 대치중이던 스와코가 돌연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난 황급히 달려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대체 왜...”
“사나에 제법이구나 나한테 독까지 멕이고.. 어엿한 재앙신의 무녀답구나.”
그토록 증오하던 여자가 내 품안에 쓰러져 있다. 난 입술을 깨물었다. 대답을 피하는 그녀에게 더 이상 질문해 봤자 무의미 할 것이다.
“일단 가요.. 집에”
“헤헤..인간이 어떻게 신을 이해하겠니...쿨럭..”
난 그 말을 듣곤 아무말도 하지않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소용돌이 치던 감정이 내려앉고 그녀를 묘한 눈으로 바라 보았다. 그녀 역시 아무 말도 없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꿈에서도 들었던 말. 우리가 이토록 서로 멀어진 이유.
지금도 정확히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바라본 눈동자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생각이 읽혔다.
날 위해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내려다보이는 스와코의 눈동자에 붉은 빛이 맺혔다. 붉은 빛은 곧 온 주위를 뒤덮고 굉음과 함께 유리로 된 천장의 파편들이 흩날리며 플랑드르와 악마들이 나타났다.
유리의 파편이 눈처럼 우리 주위에 떨어져도 세상엔 오직 둘만 남겨진 느낌이었다.
마침내 신과 닿는, 그저 눈에 보이는것과는 다른 기묘한 느낌
“말씀하세요 스와코님”
스와코는 이제야 좀 말이 통한다는 듯이 씩 웃었다. 그리곤 입을 뗐다. 죽기 직전의 사람처럼, 내 팔을 힘없이 붙잡으며
“사나에 너는 야사카의 축복밖에 받지 않았지.. 너한테 줄 수가 없었어.. 재앙신의 축복을 담기엔 너무 여려서... 이젠 될거 같아 아마도...”
왜 이제서야
“야사카는 바람, 난 땅인줄 알겠지만 땅이 아니야..”
겨우 이런걸 위해
“..기적이지”
그녀는 마지막 힘으로 축복을 두르는 손짓을 시작했다. 따뜻하고 익숙한.. 어렸을 적 카나코님이 해주었던 그 것과 같은 손길.
“그대 나의 혈족이자 현신이 된 사나에를 축복한다 나의 모든 기적의 힘을 그대에게”
하얀빛이 나를 감쌌다.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이제 시간은 우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플랑드르는 우리의 코앞에 다가와 창을 휘둘렀다.
빛이 나를 감싼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녀의 영혼에서 영혼으로 전해진 듯한 이 기분.
어떤 능력을 받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 알 수 있었다.
“대기적 야사카의 신풍 大奇跡「八坂の神風」”
“헤헤..그래도 사나에의 이런 모습도 보고 가는구나...카나코 볼 낯이 있겠어”
거대한 빛과 백사들이 홍마관을 덮치고 곧이어 수많은 부적이 우리의 주위를 감쌌다.
두 명의 강대한 신의 힘 앞에 그들은 그저 한낱 요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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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에..사나에!”
“아..마리사...”
“앗..미안 참배중이었구나 좀 이따 올게”
“아니 괜찮아 말해”
“이계 쪽은 정리됐어 그리고 유카리가 하쿠레이의 신사에서 만나자네”
마리사는 들떠서 말했다.
“레이무있던 때로 돌아온 것 같아”
그녀의 시선은 나의 시선을 쫓아 위패로 향했다.
“이 분들..사나에가 모셨던 신들의 위패지?”
“응 맞아”
“대단하신 분들이야.. 무녀 한명에 두 명의 신의 힘이라니..”
그녀는 결국 그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의 마지막이라곤 너무나도 허무한 말과 죽음.
환상향은 홍마관이 터져 버린 초유의 사태에 발칵 뒤집혔다.
재앙 신이 요괴들을 배신했고 재앙의 그릇으로 다듬어온 무녀를 자신 대신 현인신으로 만들었다.
홍마관을 파괴한 기적을 일으키는 무녀의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요괴들에게 나는 공포의 대상이자 표적이 되었다.
반대로 요괴를 피해 숨어 있던 과거 세대의 이름 있던 인간들은 나를 찾아와 같이 대항하였고 긴 싸움 끝에 인간과 요괴는 나름의 균형 상태를 되찾았다.
그.. 레이무란 무녀가 살아있을적처럼.
스와코가 죽은 이상 그녀의 진짜 생각들은 알길이 없었고 그녀에 대한 애증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를 진정한 무녀로 만들기 위해 그런 짓들을 한건지 이곳의 인간들을 위해 그런건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심하게 할 필요가 있었는지..
그녀의 말대로 아버지도, 나도, 어떤 인간이라도 신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지막, 그녀에게 닿았다고 생각한 접신에 가까운 순간에서조차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축복을 전해줄 때 어렴풋이 전해진 것 같은 그녀의 마음..
나에게 선물해 준 추억들은 거짓이 아니었다는걸.
나는 그녀의 개구리 브로치를 다시 머리에 썼다.
따뜻하고 상냥한 봄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흐드러졌다.
“가자, 마리사”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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