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천(蒼天)
당신은 담수에 사는 공주님, 바다를 아직 알지 못하지.
매일같이 둥글고 아름다운 돌을 모으며 오늘도 노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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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의 죽림.
특별한 것 아무것도 없이, 하늘을 향해 길게 뻗은 푸른 대나무들만 길게 줄지어 늘어서있는 녹색의 바다.
말 그대로 미혹의 공간. 외지인이 한 번 이 곳에 들어서면 무사히 빠져나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나조차 이 곳에 들어선 이래로 몇 년을 살았지만, 가끔씩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이 곳에 들어선 인간들은 웬만해서는 그 끝이 좋지 않다. 아주 운이 좋아서 백발의 인간이나 토끼귀를 한 소녀를 만나지 않는 한 얼마 지나지 않아 유골만이 남게 될 뿐이지.
죽림에서 산쪽을 향해 가다보면 넓은 호수가 하나 있다. 이른바 안개의 호수라 불리는 거대한 호수로, 근처에 폐옥이나 대저택이 있으며 항상 안개가 껴 있어서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물고기 한 마리 살지 않는, 생명이 멎은 죽음의 호수. 단지 요정들만 그 주위를 배회하며, 인위적인 활기찬 분위기를 내고 있다.
내가 아까 죽음의 호수라고 언급했던가. 사실 이 호수는 완전히 생명이 멎어있지는 않다. 분명 평범한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지만, 특히나 환상적인 생명체가 이 곳을 혼자서 지키고 있다. 바깥 세계의 시시한 동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무언가 - 바로 인어가.
와카사기히메는 이 호수의 유일한 거주민이다. 이전에 배가 고파 이 호수까지 왔을 때 처음 조우했고, 분명 악연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서로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많이 친해졌다. 그녀는 본성이 물고기라 이 호수 바깥으로 나가지를 못하니 항상 내가 먼저 와서 함께 놀아준다. 비좁은 환상향의 더 좁은 호수. 그녀가 아는 세상은 그게 전부고, 호수 바깥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미지의 새로운 땅이리라. 내가 죽림과 인간 마을, 산, 그리고 신사 등에 관한 얘기를 해주면, 그녀는 귀를 기울이곤 마치 자기가 그 자리에 있는 상상을 하는 것처럼 즐거워한다.
그녀는 이 호수를 나가고 싶어 하지 않을까. 아니면 혹시라도 그녀가 스스로를 이 곳에 가둔 것일까. 그럴 일은 없겠지ー와카사기히메와 처음 만난 날의 기념일을 얼마 앞두지 않은 어느 날 밤 나는 우연히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 작은 모형정원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를, 아니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자가 누가 있을까? 문득, 옛 적의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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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에 헤엄치는 인어여.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인어여.
빛나는 태양보다 반짝이는 그대의 눈동자는 푸르른 남옥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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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숲.
어둡고, 습하고, 기분나쁜 숲. 알 수 없는 메아리가 푸르른 소리의 바다에서 서성이며 헤엄친다.
이름 그대로의 몽환적인 공간. 마법을 실체화하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내가 사는 죽림만큼은 아니지만 이 곳 또한 외지인이 함부로 발을 들이기 힘든 지역이다. 비록 이런 곳에 사는 자들이 있다곤 하지만, 기괴한 동식물들이 잔뜩 있는 이런 곳을 대체 그 어느 사람이 맨정신으로 가겠는가.
나도 이 곳을 처음 가 보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때도 배가 고파서였지만… 아무튼 한 번 와 본 적이 있으니 이번에는 헤매지 않고 목적지까지 잘 찾아갈 수 있었다.
키리사메 마법점. 지난번 역양이변인지 반역이변인지 하던 사건이 있던 날 밤에 만났던 금발의 인간이 사는 곳이다. 인간 마을에서 여러 정보를 취합해본 바 그녀는 마법사다. 자칭인지 타칭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여러가지 마법들을 사용할 수 있고, 또 연금술 쪽에 능한 듯 하다. 그녀에게 이야기해보면 와카사기히메가 바깥 세상을 볼 기회를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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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에 뛰어드는 인어여, 그대의 녹빛 비늘엔 무지개가 비치니,
수면의 반사광보다 눈부신 그대의 눈동자는 푸르른 남옥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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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은 준비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마법의 비약이 준비된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면 이제 그 마녀가 준비해준 이것을 호수에 살짝 타면 그녀는 물 밖을 거닐 수 있게 된다. 이 깜짝 선물을 주고 나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벌써부터 함께 이 환상향을 거닐 그 순간이 기대된다. 이제 그녀는 푸른 하늘의 밖에서 천공을 바라보며 헤엄치게 될 것이다.
비닉된 절경의 그대를 위해. 아름다운 물거품의 공주님을 위해. 그대가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나는 무엇이든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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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여, 이 쪽빛 하늘을 바라보고 웃어주기를.
비경에 피어난 한 송이의 꽃이여.
물결보다 더 아름답게 반짝이는 그대의 눈동자는 남옥석보다 더 화려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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