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공포
나홀로 사나에
신사의 복도에는 바깥의 달빛조차 세어들 틈을 찾기 힘들 정도로 시꺼먼 암흑이 자리하고 있었다. 찌릉거리는 벌레 소리와 함께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종소리만이 을씨년스럽게 주위를 울렸다. 아주 미세한 소리였지만 마치 누군가 고함이라도 내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나에는 마치 무언가를 들킬까 염려하는 것처럼 아랫입술을 꼭 물고 있었다. 그리곤 그 정적 속에서 서서히 발을 내딛었다. 그녀의 불규칙적인 숨소리엔 이상하리만치 짙은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끼이이..
발에 눌린 마룻바닥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사나에는 모든 행동을 멈춘 채 손을 들어 입을 감쌌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떨리는 호흡이 가쁘게 세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사나에는 차오르는 불안감에 편집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짙은 장막은 한치 앞의 사물조차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귀를 기울여봤지만 숨소리도 옷깃이 서로 스치는 작은 소리도 전부 자신이 만들어낸 소음에 불과했다.
여전히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서야 사나에는 입가를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쿵쾅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음침한 구석에 숨어드는 고양이처럼 사나에는 조용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얼마안가 자신이 생각하는 위치에 도달했을까, 손으로 왼편의 벽을 더듬자 무언가 움푹 들어가 있는 곳이 느껴져 왔다. 시선을 내리니 역시나 홈이 패인 문고리가 눈에 띄었다. 다섯 손가락이 차례로 파인 홈을 감쌌다. 사나에는 문고리의 그 단단한 감촉에 일순 숨을 멈췄다. 고민에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사나에는 쥐고 있던 힘 그대로 문을 열어제꼈다.
"..사나에? 아직 안자고 있었니?"
목재 면들이 서로 맞물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불을 망토 두르듯 감싸고 배게에 턱을 괸 채 낡은 서적을 읽고 계시는 스와코님. 그리고 잠에 드셨던건지 옆으로 누워 몸을 살짝 뒤척이시는 카나코님. 작은 촛불에 의지해 책장을 넘기고 있던 스와코는 고개를 돌려 손을 모으고 있는 문가의 사나에를 바라보았다.
"아..그러니까.."
"무서운 꿈이라도 꾼거야? 표정이 좋지 않은데..얼굴도 창백하고."
사나에는 이따금 감탄사만을 작게 더듬거릴 뿐 입을 때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와코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키려했다. 그것을 막으려는 것인지 사나에는 흠칫 놀라며 두 팔을 들어올렸다. 그리곤 작게 미소 지으며 평상시의 어투로 말을 꺼냈다.
"헤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잠이 안와서 혹시 주무시고 계시나 잠깐 와본 것뿐인걸요."
"흐음..정말이야? 단순히 기분 탓이었을까."
"네..기분 탓이에요.. 기분 탓.."
스와코의 눈길을 피하려는 것인지 사나에의 눈길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인지 스와코의 입가는 살짝 굳어있었다.
"맞다. 네가 보았다던 미래는 어땠니? 아니면 혹시 실패라도 해서 시무룩해 있는걸까?"
사나에는 뒤이은 스와코의 익살스러운 질문에 내딛으려던 발을 멈칫했다. 하지만 방금 전의 미소로 여유를 되찾았는지 그녀의 말엔 더 이상 막힘이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죠. 스와코 님과 카나코 님 그리고 저. 모두 행복하게 웃고 있는 장면이요."
너무나 이상적인 미래였을까 그 말을 들은 스와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큰 의심은 않는 것인지 작은 웃음을 흘리곤 손을 흔들며 잘 자라는 인사를 건냈다.
방문이 닫히고 또다시 칠흑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사나에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스멀스멀 올라오는 뒤숭숭한 생각을 뿌리치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을까, 떨려오는 손끝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나에는 그대로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그리곤 고개를 무릎 사이에 푹 박았다. 수많은 상념들이 머릿 속에서 돌개바람처럼 휘몰아쳤다. 아무래도 그것들이 전부 사그라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았다.
자신이 본 미래와 달랐다. 자신이 본 그대로라면 방금 전의 저 장소엔 분명 아무도 없어야 했다. 아무도 없던 암흑. 그 무엇도 비치지 않는 눈동자로 멍하니 바닥을 응시하며 울고있던 자신의 모습은 뇌리에 깊게 쑤셔 박힌채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나에는 눈을 질끈 감은채 두어번 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기분 나쁜 미래가 들어맞을 리 없다. 게다가 아무리 신앙이 약해졌다곤 하지만 저 두 분은 그 누구보다 전능하다는 신이 아닌가. 분명 자신이 미래를 보는 과정 중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사나에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떻게든 불안한 마음을 다독거렸다. 하지만 자신이 보았던 모든 것을 부정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미 구멍이 뚫려버린 마음은 파도를 만난 나룻배처럼 정처없이 흔들리며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방금 사나에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사나에가 나간 뒤에도 계속해서 문가를 지켜보고 있던 스와코는 들리지 않을만큼 작은 한숨을 내쉬며 카나코를 바라보았다. 배게에 엎드려 조용히 읊조리는 그녀의 표정엔 근심이 가득했다.
“지난번에 사나에가 미래를 보는 기적을 일으키겠다고 한거 기억나? 아무래도 별로 좋지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스와코는 걱정스러움에 양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그리곤 바닥에 시선을 둔채 말을 이어갔다.
“분명 무언가 본거야. 그렇지 않고서 저렇게 불안해할 리가..”
“글쎄..그게 무슨 상황이던 간에 우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걸 보면 어지간히 끔찍한 미래인가봐.”
“..지금 그렇게 태평할 때가 아니란 말야. 사나에의 얼굴을 직접 봤어야 했어. 한번도..단 한번도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는데..”
“그래..일단은 안심시키는게 우선이지. 하지만 알잖아? 사나에가 정말로 미래를 보았다면 절대로 뒤바꿀 수 없다는걸.”
스와코는 카나코의 말에 더욱 심란해진 것인지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촛불을 입으로 후 불어 껐다. 정자세로 누웠지만 천장조차 보이지 않을만큼 어둠은 짙었다.
“결국..우린 이대로 지켜보기만 해야하는거네.”
“..그렇다고 너무 시무룩해 있진마. 일이 벌어진다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상황도 충분히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스와코는 카나코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국 안심하진 못한 것인지 한동안 뒤척이는 소리는 끊이지않았다.
"빨리 낫고 다음에 또 들러줘."
저멀리에 있는 영원정 토끼가 치켜든 팔을 흔들며 인사를 건내왔다. 뒤돌아 그 모습을 본 사나에는 살짝 손을 들어올려 그 인사에 화답했다. 하지만 사나에의 웃는 표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서로가 보이지 않을만큼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화사했던 그녀의 미소는 곧장 땅이 꺼질 듯한 한숨으로 변해버렸다. 사나에는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손에 쥔 누런 종이봉투를 바라보았다. 영원정의 진단은 역시나 망상증이었다. 너무도 힘들었던 탓에 약기운을 빌려보려고 안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환자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사나에는 한쪽 눈을 감은채 손가락으로 집은 환약을 바라보았다. 햇빛을 등 진 환약은 동그란 음영을 만들어내며 더욱 선명해졌다. 약봉투를 왼손에 꼭 쥔채 남은 손으로 입 안에 환약을 털어 넣었다. 우물우물 씹은 뒤 약을 삼키자 향긋한 약재향이 코끝을 감쌌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괜시리 마음이 가라앉고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온몸에 은은히 퍼져나갔다. 이렇게 곧장 효과가 있을리 없을텐데도 약을 먹었다는 암시만으로 효능을 톡톡히 보는듯 했다.
나무들이 뾰족하게 솟아있는 길가를 지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해가 점점 저물어갔지만 딱히 큰 걱정은 없었다. 마을로 향하는 오솔길은 제법 잘 트여있어 요괴들도 함부로 지나지 못하는 곳이었다. 요괴들의 밤참이나 주전부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어른들의 겁주기는 이따금 모험정신이 투철한 아이들의 기행에서나 벌어지는 머나먼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길을 따라 걷던 사나에는 마침내 마을에 도착했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마을의 활기찬 모습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주변엔 무거운 침묵이 깊게 내리앉아 있었다. 자신이 눈길을 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돌리며 눈을 피했다. 길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하나씩 사그라들었다. 들린 김에 장이라도 보고 가려던 안일한 생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이와 손을 잡은 여자는 몸을 돌린 뒤 아이의 눈을 가리면서까지 자신을 피했다.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서 수근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모두가 자신을 적대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나에는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수많은 시선 속에서 점점 거북하게 느껴졌다. 걸음은 자연히 빨라졌고 종국에는 뜀박질로 바뀌어 마을 한 가운데를 빠르게 가로 질렀다.
사나에는 마을에서 벗어나 신사를 향한 숲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곤 나무에 등을 기대며 잠시 숨을 돌렸다.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가다듬으며 시선을 돌리니 저만치에 대화하는 남자 둘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대화가 바람소리에 섞여 간간히 들려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이에는 자신의 이름이 끼어있었다.
‘저쪽 신사에는 여자아이 혼자 살고 있다며?’
‘그 다 무너져가는 신사 말이야? 뭔가 이상한걸. 난 거기서 말소리를 들은게 한 두 번이 아닌데.’
‘그래 내가 말하려던게 그거야. 내가 어젯밤에 그 부근을 지나다 놓고간 물건이 있어 잠깐 들렀는데 불도 다 꺼진 방 안에서 혼자 누군가랑 대화하고 있더라니까?’
'뭐? 그걸 자네가 직접 봤어?'
'본건 아니고 들은게지. 가는 말은 있는데 오는 말은 없으니. 참 괴이하지 않은가?'
‘쉿. 지금 그 무녀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어. 입조심하는게 좋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단 말일세.’
사나에를 발견한 두 사람은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치더니 반대방향으로 쏜살같이 도망쳐버렸다. 사나에는 멍하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나에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덮쳐오는 혼란에 확답을 내리지 못한채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돼.'
만약 저 둘의 대화가 사실이라면 스와코님과 카나코님은 자신의 망상이 만들어낸 존재라는 결론에 이른다. 마을에서의 일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사나에는 어젯밤 자신이 홀로 그곳에 있었다는 상상에 일순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등 뒤를 스치는 듯한 섬뜩한 감촉을 느꼈다.
'전부..내 망상에 불과 했다는거야?'
사나에는 목 끝까지 올라온 숨을 어떻게든 짓누르며 자신이 생각하는 지점을 향해 달려나갔다. 본래라면 날아서 이동했을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 자신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이또한 모든게 환상에 불과했다는 증거가 된다는 생각에 사나에는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하쿠레이 신사. 그곳으로 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환상향의 이변들을 모두 도맏아 해결하는 존재가 칩거하는 곳. 과연 이 상황이 이변이라 불리울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만큼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이변 그 이상의 상황이었다.
하쿠레이 신사에는 역시나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는 레이무가 있었다. 사나에는 가쁜 호흡 사이로 레이무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곤 근처에 도달하자 작금의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 말을 들은 레이무는 지그시 몸을 돌려 사나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레이무의 반응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그걸 이제서야 안거야? 너도 참 무르네."
"레..레이무?"
레이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난을 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후 무거운 정적이 계속되자 사나에는 먼저 입을 열어 그 말을 부정했다.
“거짓말..이지..제발 거짓말이라고 해줘..”
"응 맞아. 거짓말이야."
레이무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사나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나에가 그 말에 의문을 품기 시작할 즈음 다시 입을 떼었다.
"이제 좀 속이 편해졌어? 네가 바라던 대로 말해줬잖아. 거짓말이라고."
사나에는 무의식적으로 레이무에게서 한걸음씩 뒷걸음질쳤다. 그녀의 입가는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사나에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이 신사를 향한 수풀로 달려나갔다.
돌아보는 마지막까지 레이무의 입가엔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야..그럴리가 없어."
사나에는 가시처럼 찔러오는 불안감을 잊기 위해 다급히 걸음을 재촉했다. 축축히 젖어 뿌옇게 흐려진 시야와 목소리는 더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저 울음을 막고 있는 제방일 뿐, 그조차 언제 추풍낙엽처럼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것이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등짝을 섬뜩하게 흝고 지나갔다. 그 역겨운 감촉에 사나에는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억지로 삼켰다.
길쭉한 나무들이 나부끼며 좌우를 빠르게 지났다. 사나에는 앞으로 고꾸라질지도 모를정도로 빠르게 내달렸다. 화끈한 감촉이 계속해서 왼팔을 긁어왔다. 시선을 두자 나뭇가지가 흝고간 것인지 기다란 붉은 상흔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에 일일히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 마음 속의 중압감은 치기어린 엄살이 파고들 틈 없이 너무도 무겁게 들어차 있었다.
땀은 비오듯 흘러내렸고 혀 끝엔 짠맛이 감돌았다. 거친 숨소리 가운데 하늘에 비친 황혼은 점차 그 빛을 잃어갔다. 이윽고 내려앉은 밤하늘에 달이 매달리고 주변의 암흑이 눈을 가리기 시작할 즈음, 호수와 함께 저멀리 자리한 신사가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억지로 움직인 다리의 근육이 불로 지진듯 아파왔다. 하지만 사나에는 휘청이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추측이 틀렸음을 증명해야했다.
사나에는 가까이 다가서며 신사를 올려다보았다. 아침에 보았던 것과 달리 허름하고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벽에는 금이 가 있었고 다 뜯겨져 나간 문짝은 폐가와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며 그곳으로 향하려는 발목을 잡아끌었다. 포기하라는 속삭임이 귀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사나에는 개의치 않고 있는 힘을 다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모든 것은 어제와 같았다. 자신은 신사의 복도를 거닐고 있었고 주변은 눈과 귀를 가로막은 적막으로 가득했다. 다만 한가지 다른 점은 자신이 보고있는 것이 더 이상 망상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레이무가 내뱉은 모든 말이 거짓이기를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사나에의 마지막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방 안엔 여전히 어둠이 들어차있었다.
"카나코님..스..아.."
자신의 숨소리말고는 아무 소음도 들려오지 않는 정적. 어둠조차 집어삼킬 듯한 고요함이 주위를 덮쳤다. 주변은 입김이라도 서릴 차가운 한기로 가득 차있었다. 가쁘게 준동하는 자신의 심장만이 살아있는 온기를 내뿜었다. 그 외에는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지 않았다.
공포? 두려움? 그런건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모든게 미쳐버린 자신의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그 자리에 있기를 바랬을 뿐이다. 어째서 지금껏 눈치채지 못한걸까. 이미 늦은 후회를 나지막히 되내이며 바보같은 자신을 원망했다. 그래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걸 알면서도. 자신의 텅 빈 눈동자처럼 마음 속에 남은 마지막 희망이 사라져갔다. 혹시 그 약 때문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퍼득 떠오른다. 그 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계속해서 미쳐 있었더라면 스와코님도 카나코님도 사라지지 않았을텐데. 떨어진 물방울이 마룻바닥을 짙게 적셨다. 사나에는 그 자국을 바라보며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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