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주전" 4면에서 첫 등장한 달의 현자 중 하나. 순호 일행에 의한 공격으로부터 달의 도시를 지키고자 도레미에게 의뢰하여 꿈의 세계의 달의 도시에 월인들을 피난시켰고, 나아가 지상과의 통로 또한 지키달라 부탁했다. 사구메 자신은 달의 도시에 남아 있었지만, 꿈의 통로를 통해온 인간들이 이 사태를 맡길 수 있다 판단하여 실력을 알아보고 위해 한차레 교전을 벌였다.
입 밖에 낸 말들과 반대 방향으로 사태가 들러간다는 강력한 능력을 지녔기에, 무척이나 과묵하다. 또한 오컬트 볼로써 달의 돌을 섞어 놓은게 사쿠메로, 도시전설이변이 발생되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ㅡ 인요 명감 ㅡ
달의 백성이다.
평소에는 달의 백성 중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어 그다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일단, 신령이라는 부류에 들어가지만 그 성질은 신에도 오니에도 정령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과묵한 성격이나, 그 이유는 능력 때문이다.
ㅡ 감주전 오마케 파일 ㅡ
“안녕하세요, ‘월간 도레미’의 도레미 스위트입니다.”
“안녕하세요, 도레미 님. 그리고 옆에 계신 환상향 침공의 주범, 내놓은 자식 때문에 늘 고생 많은 월인 그리고 설화를 불러오는 여신, 키신 사구메 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히에다노 아큐 님.”
하룻밤 자고 사라질 공허한 꿈에서 한 사람 분의 목소리가 빈다.
4인 테이블에 한쪽 편에는 도레미와 사구메가 앉아 있다. 아큐는 그들을 바라보며 맞은 편에 앉았다. 목소리와 함께 한 자리가 더 비게 되자 도레미가 그 쪽으로 눈길을 줬다. 그러자 아큐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 분은 어른의 사정으로 나오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곳은 꿈에 불과하지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제가 전부 전해 들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주변에는 도레미가 꿈으로 만든 비누방울 신사들이 토론회의 패널처럼 자리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공연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이들에 불과해서 이야기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아큐는 각양각색의 신사들을 쳐다보다가 헛기침과 함께 서두를 뗐다.
“그럼 전해 들은 이야기를 잠깐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전해 들은 이야기라면 나오지 못하는 분 말인가요?”
“네. 바깥 세계에서 환상들이를 한 사람이라 그런지 할 말이 굉장히 많으시더라고요.”
“바깥 세계는 상식 때문에 고생이 많다는데, 힘들겠네요.”
테이블 우측에는 회사 회의에나 쓰일 법한 빔 프로젝터가 있다. 아큐가 부채로 손을 탁, 치자 프로젝터가 보라색으로 빛나더니 곧 ‘모순’이라는 글자를 보여줬다.
“이번 주제는 모순인가요?”
“여러가지가 섞여 있긴 하지만, 핵심 주제는 모순입니다. 우선 이걸 봐주시죠.”
“그럼 무슨 자료를 준비했는지 다 같이 한 번…… 아, 이건 그거네요. 그거. 실제로 많이 언급됐죠?”
“우스갯소리로 많이 이야기했죠.”
부채의 움직임에 맞춰 프로젝터가 화면을 넘긴다. 처음에 보이는 홍마관의 당주, 레밀리아 스칼렛이었다. 화면 속에서 레밀리아는 빛나는 달빛 아래에서 그녀의 종자 이자요이 사쿠야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고, 화면 우측 상단에는 환상향연기에 적힌 기록이 함께했다.
종족 명 흡혈귀.
취약한 것은 햇빛.
“흡혈귀는 햇빛에 취약한데, 어떻게 달빛 아래에서 걷느냐, 이거죠?”
“정확합니다.”
“아. 유명한 거라도 청자들을 위한 설명은 꼭 부탁드립니다.”
아큐는 고개를 끄덕이고 간단한 설명을 시작했다.
바깥 세계의 과학에 따르면 달빛은 달이 내는 빛이 아니다. 햇빛을 받고, 일부를 반사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레밀리아는 달빛 아래서 걸어 다닐 수 있는가? 홍마관이 환상향에 나타난 뒤로 끊임없이 제기된 의문이지만, 아직까지 홍마관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
“아직까지 홍마관은 입장을 밝히지 않은 거로 아는데요. 혹시 최근에 이야기한 사실이 있나요?”
“없습니다.”
“환상들이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인데 아쉽네요.”
“환상향에서 그런 건 따지지 마라! 라고 전해 들었으니 앞으로도 말해줄 생각은 없는 모양입니다.”
양측이 가벼운 아쉬움을 토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홍마관의 당주가 그 사실을 몰라서 태연하게 달빛을 견뎠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인가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깝게 지내는 인요들은 그 사실을 깨닫고 한동안 밤에도 돌아다니지 못했다, 라는 농담을 하더군요.”
“어… 그렇다면 지금 그녀의 상태는 어떤가요? 달빛 때문에 홍마관 안에서만 꽁꽁 갇혀 있나요?”
“최근에는 달빛과 함께 햇빛마저 극복했다는데, 원체 더위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낮에 그녀를 본 기억은 없네요. 아마 허풍이 아닐까 합니다.”
흡혈귀에 대한 대화는 그걸로 끝이 났다. 그리고 아큐의 손짓과 함께 화면이 다음으로 넘어가자 이번에는 사쿠야의 사진이 두 장 보였다. 도레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진을 가리키곤.
“틀린 그림 찾기인가요?”
“아, 이건 넣지 말자고 했는데, 기어코 넣고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바로 넘어 갈게요.”
“……아아, 알겠습니다. 아무리 주제가 주제라도 낡은 네타는 들고 오기 그렇죠.”
“괜히 이런 걸 넣어서 욕을 먹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큐가 부채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자 다시 프로젝터가 화면을 넘긴다. 프로젝터의 빛은 사진 두 장 속 사쿠야의 가슴에 아른거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제 본 주제 시작입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네요.”
“애초에 모순이라는 주제부터 재미와는 상당히 거리가 머니까요.”
“그래도 여기까지 함께해주신 분들은 끝까지 함께할 거라 믿습니다.”
신사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프로젝터가 사구메의 그림을 띄울 때, 회장의 조명이 사구메를 비췄다.
“사구메 님, 지금이에요. 일어서서 인사해주세요.”
사구메의 손에는 과연 화이트 보드와 세가지 색깔의 매직이 들려 있었다. 도레미의 재촉에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쉬곤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이상한 자세 안 하시네요.”
“그런 말 하다가 꿈에서 죽을 수도 있어요.”
“어차피 깨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 못할 건데, 정상 참작은 안 되나요?”
도레미는 고개를 저었다. 사구메는 표정에 미동도 없이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제야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다.
“네, 바로 본론을 말하겠습니다. 키신 사구메 님, 당신은 자신의 능력을 ‘입 밖으로 낸 것을 역전하는 정도의 능력’이라고 한 게 분명합니까?”
작은 까닥거림. 아큐에게는 잘도 보였지만, 멀리 있는 관중이 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주변을 흘끗 쳐다보던 도레미가 작은 기침과 함께 사구메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사구메 님, 고개만 끄덕거리지 말고 보드에도 적어주세요.”
원체 말수가 적은 건 이해하지만, 이런 곳에서도 아무런 언행을 보여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사구메는 인상을 찡그렸다가 펴고, 보드에 글을 적었다.
[응]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주장을 바탕으로 환상향연기에 능력을 적었습니다. 하지만 무녀와 어떤 분이 연기가 잘못됐다고 컴플레인을 걸었어요. 연기에 적힌 능력은 완전 거짓말이라고요.”
“그건 이상한데요. 제가 지인이라 편을 들어주는 건 아니지만, 사구메 님의 능력은 그게 맞는데요?”
“그게 편을 들어주는 거에요.”
아큐가 째려보자 도레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마이크를 넘기듯 자연스럽게 사구메 쪽으로 이목을 넘겼다.
[뭐가 거짓말이라는 거야?]
“우선 무녀 측의 입장부터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처음 무녀를 만났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기억해]
“그 때 당신은 ‘적의 본거지로 향하라’ 등의 말을 하셨습니다만, 이러한 말에서는 능력이 발현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까?”
잠깐 정적이 흐른다. 사구메는 손으로 화이트 보드의 글씨를 지우고, 손가락을 놀렸다. 그 사이 도레미가 물었다.
“잠깐 궁금한 게 있는데, 무녀 말고 질문은 하신 다른 분은 누군가요?”
“처음에 이야기했던 그 분….”
“아, 알겠습니다.”
어른의 사정은 복잡하다. 도레미가 정적을 지우려고 멋쩍게 웃을 때쯤 사구메가 글을 다 적었다.
[역전은 일어났어]
“어어, 방금 일어났다고 하셨는데, 그럼 어떤 역전이 일어난 거죠?”
[하지만 결과는 나도 잘 몰라]
답변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아큐는 맥이 빠지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런 식으로는 답변이 되지 않습니다.”
“잠깐만요. 이 경우에는 그거죠, 그거.”
“그거라면…?”
“능력 밖의 일이다, 라는 걸로 괜찮나요?”
무언가 생각나는 게 있는지 도레미가 입을 열었다.
“평소 사구메 님이 말하지 않는 이유도 제어할 수 없는 능력 때문이죠.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모른다, 달리 말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도 본인이나 다른 사람이 모를 수도 있다. 아마 이런 식으로 능력이 발현된 게 아닐까요?”
“아하, 능력은 발현됐는데 결과가 어떤지 모른다는 말이시군요.”
“네, 네. 그렇죠.”
“확실히 그런 거라면 뭐라 말할 수 없겠네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질문을 회피하는 건… 제 연기를 읽는 분들이 과연 납득할까요?”
질문은 다시 사구메를 향한다. 도레미를 대타로 세우지 말고 본인이 직접 나서서 답을 하라는 뜻이었다. 사구메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손을 움직인 뒤,
[물론이지]
“오… 자신감 넘치는 대답입니다. 글을 봤을 뿐인데도 그 기세가 느껴질 정도네요. 혹시 근거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게 내 능력이니까]
슬며시 입 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딴죽을 걸기 힘들 정도로 자신만만한 답변에 아큐는 멍하니 사구메를 바라보다가, 도레미가 눈치를 준 뒤에야 뒤늦게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 그렇군요! 네, 네. 과연 그런 이유라면 납득할 수밖에 없겠네요.”
[당연한 이야기지]
“그럼 이제 본론이라 할 수 있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본론이 도대체 몇 번 나오는 거죠?”
“이번에야말로, 최후의 마지막 본론입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큐는 차를 한 잔 마시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준비했던 종이에 적힌 글을 나지막이 읽었다.
“사구메 님의 능력은 어떤 원리로 발현되나요?”
“…그게 무슨 말이죠?”
“이해를 돕기 위해 그 분이 참고로 보내준 자료를 띄우겠습니다. 화면 봐주세요.”
다시 모두의 시선이 화면을 향한다. 사구메도 손에 쥔 화이트보드를 내려놓고 화면을 쳐다봤다. 화면에는 흰색 바탕과 초록색 상단 바가 보였고, 좌측 상단에는 ‘나무위키’라 적혀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도레미가 그려진 만화가 그려져 있었다.
“저건… 전가요?”
“그렇습니다. 잘 그렸지 않나요?”
“왠지 그림으로 그려진 저를 보니 뿌듯하네요. 그런데 제가 왜 케이크를 만들고 있죠?”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케이크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만화 속에서 도레미는 여러 개의 케이크를 굽다가 실패하고 울고 있었다.
“제 우는 모습이 중요한 건가요?”
“아니요. 자, 저기 나무위키라는 것과 그림을 잘 봐주세요.”
“네, 보고 있습니다.”
“저 만화를 정리하면 내용은 이렇습니다.”
키신 사구메의 능력은 애매모호하다.
사구메의 능력을 간단하게 ‘역전’을 기준으로 살핀다. 케이크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동전의 앞면과 뒷면. 단순한 역전이라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구메가 이변을 해결하러 간 무녀에게 한 말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적의 본거지로 향하라’라고 들었으니 ‘향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무녀는 적의 본거지로 향했다. 그러니 이 가정은 소거한다.
사구메는 자신의 능력이 어떤 식으로 끝을 맺는지 모른다. 그래서 케이크와 동전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구메는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다. 다른 해석으로는 능력에 ‘가능성’을 염두로 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림에서 도레미의 케이크가 어떻게 되었는가? 사구메는 자신의 말로 인해서 케이크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일단 대충 보기는 했는데,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건가요? 저기에 적힌 내용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추측한 내용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나왔습니다.”
“그 다른 이야기란?”
“키신 사구메는 미래를 알 수 없으므로 결과 또한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했을 때, 사구메 님이 무녀한테 한 말의 결과 또한 아무도 모릅니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능력은 발현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아까 이야기했잖아]
이야기가 길어지자 사구메가 눈을 찌푸렸다.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게 정녕 바깥 세계 인간의 주장일까?
“이제 이걸 다르게 해석하겠습니다. 사실 능력이 발현되지 안 된 게 아니라, 사구메 님이 의도적으로 능력을 안 사용한 게 아닐까요?”
[바보 같은 소리]
“의도적으로요? 하지만 사구메 님의 캐릭터 설정은 능력을 제어 못해서 과묵한 타입 아니었나요?”
“네, 그렇죠. 하지만 이번에 저희는 사실 그 캐릭터 설정은 모두 키신 사구메가 의도적으로 컨셉을 짠 거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다시 화면을 봐주세요.”
다음의 예시와 함께 사구메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한국 브랜드 바비큐 치킨집이 일본에 체인점을 열었다. 일본에서는 바비큐 치킨을 바비큐 ‘카라아게’라 부르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세이자가 맛을 비교하기 위해 한국 본사에서 바비큐 치킨을 하나, 일본 체인점에서 바비큐 카라아게를 하나 구매했다.
세이자는 사구메와 함께 치킨과 카라아게를 먹는다. 그런데 실수로 음식을 포장한 박스의 위치가 바뀌고 말았다.
세이자는 ‘치킨’을 ‘카라아게’로 소개하고, ‘카라아게’를 ‘치킨’이라 소개했다.
그리고 사구메는 카라아게를 먹고 ‘치킨 맛있네’라고 말한다면, 능력은 어느 쪽에 발현되는가?
만약 말한 대로 치킨의 맛이 바뀐다면 사구메의 능력은 단순히 그녀가 말하는 ‘언어’와 관련돼 있다.
그러나 반대로 카라아게의 맛이 바뀐다면 사구메의 능력은 그녀가 ‘인지하는 대상’과 관련돼 있다.
단, 이 때 양쪽의 맛이 변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복잡해지기 때문에 그 경우는 제외한다.
“……꽤 난해하네요.”
“난해하긴 하지만, 이게 저희 주제에 핵심이므로 꼭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렇군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다른 예시를 들어줄 수 있나요? 하나만 더 보면 완전히 이해할 것 같아요.”
“좋습니다. 다른 예시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해외에서 서비스하던 리그 오브 레전드가 한국에 출시했다.
세이자의 부탁으로 사구메는 리그 오브 레전드 ‘북미 서버’를 같이 플레이하다가 ‘한국 서버’로 옮겨 왔다.
한국 서버에서 사구메는 유미, 세이자는 노머고를 골라서 봇 듀오를 가게 됐다.
게임 도중 세이자는 3코어 아이템으로 ‘피바라기’를 뽑는다.
여기서 사구메가 ‘블써’ 쓰레기인데 왜 감? 이라고 말한다면, 노머고가 산 피바라기는 어떻게 되는가?
가능성의 경우를 배제하고, 단순히 상황만으로 생각할 경우,
사구메가 말한 ‘북미 서버’의 ‘블써’가 상향을 받는가,
노머고가 현재 구매한 ‘피바라기’가 상향을 받는가?
전자의 경우에는 ‘언어’가 중심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사구메의 인지’가 중심이다.
물론 이 때도 두 서버 모두 상향을 받는 건 제외한다.
“이제 이해 되셨나요?”
“그런데 왜 이야기에 키신 세이자가 계속 나오나요?”
“아마노자쿠인 세이자 측에서 싫다는 연락이 와서 나오게 됐습니다.”
아큐의 이야기에 도레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해는 했습니다만, 다시 한 번 정리를 해주실 수 있나요?”
“네, 알겠습니다.”
사구메의 능력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언어를 중심으로 능력을 해석하면, 무녀가 적의 본거지로 향했으니 환상향연기에 적힌 ‘입 밖으로 낸 것을 역전하는 정도의 능력’은 모순이 된다.
인지 대상을 중심으로 해석하면, 무녀의 일은 설명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환상향연기에 적힌 내용은 모순이 된다. 그리고 이 경우 사구메는 능력을 제어하지 못해서 말수가 적은 게 아니라 단순히 과묵한 컨셉질을 한다는 게 된다.
“이제 괜찮습니까?”
“네, 충분히 도움됐습니다.”
길고 긴 설명이 끝났다.
아큐는 다시금 목을 가다듬기 위해 차를 마셨고, 도레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신 설명을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긴 질문을 받은 사구메는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요지는 이렇습니다. 정말로 키신 사구메는 자신의 능력을 제어할 수 없어서 말하지 않는 건가? 그게 아니라 사실 컨셉 하나 잡고 밀고 가는 게 아니냐?”
“후자는 도대체 누가 말한 건가요?”
“일단 저는 아니에요.”
사구메는 침묵했다. 그녀는 긴 시간 동안 말이 없었다. 아큐의 말대로 환상향연기에 적힌 키신 사구메는 그야말로 모순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고, 고민고민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애매모호함이 모순을 만들어 낸다.
레밀리아 스칼렛은 어떤가? 그녀는 운명을 조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녀는 왜 덥다는 이유로 홍무이변을 일으키고, 무녀에게 머리가 깨졌을까? 마조히스트가 아닌 이상에야 굳이 자발적으로 머리가 깨질 이유는 없다. 이에 대해서 레밀리아는 정형적으로 ‘운명을 조종하는 건 재미가 없으니까’라 이야기한다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그녀가 정말 능력을 사용하는 걸 싫어하는지 아니면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사건만 두고 봤을 때 레밀리아는 피학을 좋아하는 변태이거나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운명을 조종할 수 있는데 운명을 조종하지 못한다.
입 밖으로 낸 것을 역전시킬 수 있는데 역전시키지 못한다. 둘 모두 꽤 그럴듯하게 비슷하다.
“왜 말이 없으신 거죠, 사구메 님?”
키신 사구메는 침묵한다. 대화를 하지 않는 건 그녀의 습관 아닌 습관이다. 화이트보드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린다. 그리고 매직을 들었다가 내려놓은 뒤, 차를 마신다. 한 모금의 따뜻함이 목을 넘어갈 때 다시 매직을 들고 무언가를 끼적거린다.
[노코멘트]
“노, 노코멘트? 그게 지금 여기서 통할 거라 생각하세요? 역시 당신은 그냥 컨셉질.”
“조용히.”
따지려고 일어서는 아큐를 향해 낮게 읊조린다. 설화의 여신의 화가 무슨 화인지는 본인을 제외하곤 아무도 모르겠으나 그녀는 감히 인간이 함부로 바라볼 수 있는 단순한 여신은 아닐 테다. 검지를 입술을 가져다 대고, 명령하듯 말하자 아큐는 입을 닫았다.
사구메의 능력이 어떻게든지 발현된 걸까? 그 짧은 말을 듣고 아큐가 입을 다문 건 능력 때문일까, 자기 의지일까? 사구메는 본인도 능력의 결과를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므로 이건 능력 때문이라고 답할 수도 있고, 능력이 아니라 여신의 위압감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테다.
“대화는 여기까지.”
이야기의 막을 내린다. 어른의 사정으로 나오지 못한 어떤 사람이 보았다면, 사구메를 보고 ‘컨셉을 아바투르로 바꿨네’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없다. 사구메가 아큐의 양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아래로 내리쓴다.
이윽고 손이 얼굴에서 벗어났을 때 아큐는 곤히 잠든 것처럼 숨을 쌕쌕 쉬고 있었다.
아큐가 갑자기 잠이 든 이유는 뭘까? 두 번이나 능력이 발현하지 않은 걸까? 그게 아니면 여신의 다른 능력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큐가 기면증에 걸려서 갑자기 잠에 빠진 걸까? 아무래도 상관 없을 추측이다. 아큐는 역할을 다하고 잠에 들었다.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사구메가 한숨을 뱉을 때, 다음으로 물음을 던진 건 도레미였다.
“컨셉, 이었어요?”
마음대로 생각해. 사구메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고 나서 남은 차를 마저 마시고, 뻥 뚫린 천장을 쳐다보며 한가롭게 말했다.
“차 향이 좋네.”
“제가 끓인 차에 불만이 있으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해주세요.”
펑, 펑, 펑. 관중으로 있던 비누방울이 터지고 아큐도 사라지고 꿈의 세계가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구메는 기지개를 편 뒤 사라지지 않은 소파에 손목 받침대 쪽으로 머리를 기대며 박수를 두 번 쳤다. 도레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녀의 부탁대로 책을 창조했다.
환상향연기나 능력이 어쨌든 간에 키신 사구메는 설화의 여신이다.
인간은 보는 것만 믿고, 보이는 것만 믿는다. 야밤에 흔들리는 커튼을 보며 정체불명의 요괴라 생각하는 어린 아이의 생각은 요괴에게 양분이 된다. 인간과 신의 경계 사이에서 오가던 산의 무녀는 환상향에 오고 나서 신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인간이 보내는 신앙이란 무릇 이렇다.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신 또한 편의적이게 바뀐다. 반대로 신이 의도한다면 인간의 생각을, 신앙을 고정시킬 수 있다. 설화의 여신은 그 능력이 실로 위험해서 말을 하지 않는다. 환상향연기에 그리 적혔으니 인간은 그리 믿을 것이다.
바깥 세계에서 온 인간이 의문을 자아내도 상관없다. 그는 톱니바퀴 중에서도 작은 축에 속하며, 큰 축들은 바깥 세계의 인간이 아니라 환상향의 인간들이다.
그리고 어차피 환상향이라는 곳 자체가 작위적인 부분이 모인 모순 덩어리인데 괜히 머리 아프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 능력을 제어할 수 있어요?”
도레미가 물었다. 사구메는 고개만 까닥였다. 왜 계속 그런 걸 물어보냐는 의미다. 도레미는 멋쩍게 볼을 긁적이다가, 살짝 뒤돌며 중얼거렸다.
“아니, 뭐… 제어가 가능하면 지금까지 제게 아무 말도 안 했던 게 조금 아쉽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음,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정도는 해도 됐을 텐데…….”
목소리가 위로 샌다. 연기 구름처럼 올라가더니 픽 고꾸라진다. 사구메는 눈을 깜빡거렸다. 등을 돌린 도레미의 귓볼이 약간 붉다. 책을 한 손으로 집고, 다른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인상을 쓴다. 쓸데없이 귀엽기는. 소근거리며 책을 살짝 눕혀 제대로 도레미를 바라본다. 그리고 괜스레 혼자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를 향해
“그런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하고 작은 목소리로 당근을 주자, 도레미는 놀란 달 토끼처럼 귀를 쫑긋거리며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뒤여서, 사구메는 다시 책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끝>
ㅡ작가 후기ㅡ
안녕하세요.
대회에 걸맞게 B급 감성을 녹여내기 위해 여러 패러디를 차용했습니다.
동방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가볍게 미소 짓기를 기대하며 싼마이 감성으로 적었습니다.
최근 많은 곳에서 활약하고 계신 고이즈미 신지로, 통칭 펀쿨섹좌에게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모순’을 주제로 글을 적었습니다. 마지막에 있어 보이려고 신앙도 시골 인심처럼 곁다리로 넣고, 백합을 좋아해서 겸사겸사 도레사구도 넣어봤네요.
사실 마지막 부분에서 집착을 넣으려다 라스트 오브 어스 2가 될 것 같아 그만뒀습니다.
글은 환상향연기에 적힌 사구메에 관한 내용은 모순적이다, 라고 말하지만, 원제는 사구메 능력의 애매모호함이 될 수 있겠네요.
여담으로 어른의 사정으로 못 나오는 캐릭터는 조아라, 동방 패러디 소설 ‘백합’에서 연재중인 오리지널 캐릭터이며,
사구메의 능력에 관한 건 제 소설에서 나올 예정입니다.
짧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글이 나쁘지 않다 싶으면 조아라에서 검색해서 시간 남으실 때 한 번 봐주시고, 이 새끼 좀 괜찮다 싶으면 선호작을 해주시면 굉장히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동바~ (동정 바이라는 뜻 ㅎ;
'제 2회 글알못 팬픽대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덜 지하로부터 - 1.218 (0) | 2020.07.04 |
---|---|
사춘기의 뱀파이어 - Koakuma (0) | 2020.07.04 |
영원의 저주 - 카라니아 (0) | 2020.07.04 |
'매미는 여름에 생을 다한다' 3부작 - 셰도우암 (1) | 2020.07.04 |
독심독신(讀心獨身) - 큘라마도마 (0) | 2020.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