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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歷史: 환상향 역사 특별전' 리뷰 목록

패드쟝 2025. 3. 22.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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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와여행비둘기' 님, '양서토' 님, '무아원경' 님 리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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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xin******* 님 리뷰 전문 (메일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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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된 노릇인지 작년 소감은 대충 휘갈겨 썼는데 참가자들에게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악담일텐데 왜 일까요? 자기가 당해도 아홉 명이 같이 당하니까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나.
 
덕분에 참가 요건도 만족 안 했는데 케이크 세트까지 냠냠 먹었습니다.
 
케이크값이다생각하고 이번에도 비평에 참가합니다. 

 

그나저나 비평받는건 좋은데 이 친목의 세계에서 제 건 읽으셨나요? 
 
네? 니 문학은 필요없으니 비문학만 내놓으라고요?
 
괜찮습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다 그렇게 미어캣이 되는겁니다. 
 
 
이번 팬픽 모음집만 읽으면서 든 생각 
- 동덕이 최애캐가 된다는 생각은 틀렸다. 자기가 되고 싶은 걸 최애캐로 정한 거다.
- 문제는 그런 최애캐에 대한 상상은 팬덤이 공유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혼자만이 상상한 이미지라는 것.
- 후술하듯, 모든 종류의 창작은 선행하는 창작과 사건의 영향을 받는다. 
- 책 전체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에서 고전의 향기가 깊게 나타난다. 모두 명작을 읽읍시다. 
- 3회차쯤 되니까 슬슬 참가자들이 독자들보다는 다른 참가자들보다 뒤떨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하는거 같은데 이건 기분탓인가. 기분탓이면 1회차 소설 한권만 새로 뽑아서 나눠주세요. 저 그거 없어요.
- 작가가 의도한건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독자들도 짐작하고 있는 법이다. 그 정도의 내공 없으면 500페이지짜리 책 안 집어든다. 
- 그나저나 테마가 역사인데 케이네는 없고 풍신록 캐릭터들만 천지군요.
 
천도라 불리었던/모랴
 
결론부터 말하자면 질을 따지기 전에 양을 늘려야 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찾고 향후의 지향점을 찾는 건 그 다음의 일입니다. 시간과 예산도 불분명한데 여행 계획을 짜는 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원작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할까요. 아래 냉전 시대 이야기처럼 작정하고 원작을 무시했으면 팬픽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내용 없는 일상물에서도 원작은 무시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성이 가장 중요한 소설에서는 동방 그 자체에 대한 감상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맹월초의 파츄리 대사를 빌리자면 "오리지널을 존중하면서 우리의 독창성을 더하는 것이 마법사의 긍지"인 법입니다. 
예시를 들어봅시다. 신령묘에서 곽청아는 미코를 "요괴를 멸하고 미래를 구원하실 분"이라고 언급하고 구문구수에서도 미코는 "인간이 능력을 확립하기 전에 통치를 보조할 존재는 있어야한다."고 언급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원작에 대한 반대적 해석을 시도하는데 그에 대한 작가 개인의 해석은 없습니다. 뒷부분에서 말했듯 작가가 읽은 책에 대한 주입만이 있을 뿐입니다. 
최대한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동방을 이미 확립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 의미있습니다. 자신의 이해에 기반해서 팬픽을 쓰는 건 결론을 정해놓는건 조별과제에서는 물론 좋은 방법이지만 스스로의 창작에는 긍정적인 시도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도라고 하지만 이름이 붙여졌다면 그건 도가 아닙니다. 다음에는 정명正名이 확립되기를 기원(wish)합니다. 
ps : 이쯤되면 내가 이렇게 악평받을 소설을 썼나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저를 증오하실겁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의 잘못은 전혀 아닙니다. 사실 다른 참가자중 세 분 정도가 비평을 써달라고 하셔서..... (삿대질하는 모토오리 코스즈)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잉딱
마침내 한국인에게도 카제나키시에 버금갈만한 명작이 나왔군요. 물론 망언입니다. 모든 종류의 창작은 선행하는 창작과 자신의 배경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허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소설은 아주 훌륭합니다. 
인간은 신의 기원(起源 ; origin)이고 신은 인간의 기원(祈願 ; wish)을 이루어주는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과 신 중에서 누가 우월한가를 다루는 것은 이미 카제나키시에서 끝난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거기서 더 나아갑니다. 카제나키시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단편적입니다. 인간이 신을 대할 때 신은 침묵하고, 신이 인간을 대할 때 인간은 무력합니다. 즉 카나코-스와코-사나에는 서로 자기 할말만 하는 존재지 서로 유기적으로 화합하는 존재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사실 카제나키시는 카나코를 천진신으로 대한 시점에서 이미 고증은 다케다 키츠요리와 함께 죽은지 오래된 작품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인간은 신을 소생시키고 신은 그러한 인간을 자신의 일부이자 그 자신으로 대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불신자들은 죽습니다. 그리고 그건 재앙으로 표현되지만 사실 자업자득입니다. 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군주가 신하를 손발로 대하면 신하는 군주를 심장으로 여기고, 군주가 신하를 가축으로 여기면 신하는 군주를 원수로 대하는 법"입니다. (현인)신은 인간에게 대했던 그만큼 되돌려주었을 뿐입니다. 원한이 강했기에 심판처럼 묘사되었을 뿐이지요. 그렇게 인간은 신의 도움으로 구원받고 신은 인간의 힘으로 생명을 되찾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도왔으며 스스로가 스스로를 안식을 준 셈입니다. 
작가 특유의 템포나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표현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주 좋습니다.의심할 여지없이 역사에 남을 명작입니다. 결말도 아주 훈훈해요. 행복한 지배. 그걸 이루는 존재라면 필경 인간스러운 신이 되거나 신적인 인간이 될 수 있겠죠. 그대가 진정 인간이라면, 그대는 신 또한 될 수 있을지어니. 스스로를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할지어다. 
 
 
(뭐라쓰고 읽는지 모르겠음)/경도대동방학과
제목이 그리스어라 그런지 네 위位 중 셋은 동방 프로젝트 캐릭터인데 하나는 동방 정교회가 되었군요. 아니,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제목만 보고 케이키 소설인가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몇 페이지 읽다가 익숙한 추리소설 향기가 풍겨와서 (죠죠의 기묘한 모험 아무 장면이나 떠올리며) 다시 그리스어 파트로 시선을 옮겨서야 작가 이름을 읽었습니다. 한국 동방 팬픽계에서 이렇게 글 쓰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죠. 특색이 있다는건 굉장히 드문 재능입니다. 갈고 닦으시길 독자를 대신해서 빕니다.  
본문으로 들어갑시다. 해당 소설은 결말이 다 정해진 작품입니다. 이 소설이 옴린리교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노벨상 못탄 작가가 관심가졌던 주제죠.) 중요한 것은 정해진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입니다. 따라서 해당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들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제각기 거품경제가 꺼진 후의 사회상을 조금씩 반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아니고서야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니까요. (장애인의 모습은 영야초 결계조를 상상하십시오.)
아직은 흔적이 남아있지만 점차 피폐해져가는 사회. 안토니오 그람시는 "옛 것이 몰락했는데 새로운 것이 등장하지 않을 때 위기가 발생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작중에서는 당대 일본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그 속에서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제각기의 생각을 가지고 사건에 띄어듭니다.(물론 근본적으로는 한 명의 생각입니다만 그 한명의 생각은 수십개의 근원에서 태동했으니까 상관없습니다.)
그 사건 속에서 수많은 장르소설풍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종교, 전투, 사회, 느와르, 사회풍까지. '환상향의 가장 긴 소설' 속에서 모든 것이 들어가있습니다. 덕분에 기나긴 분량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소설은 길고도 긴데 비평이 짧은건 무례한 일인데 제 능력이 부족해서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총평하자면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수많은 사건들과 기나긴 분량. 마치 SRPG게임을 만렙까지 다 찍어가는것같군요. 그렇게 오랫동안 공들여서 클리어하니까 비로소 알겠습니다. 열심히 쓰셨습니다. 
 
 
신세계에서/유동
 
이 소설에 고전 좀 읽는다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다 들어가있습니다. 작가의 내공은 이 정도로 충분히 판독이 가능합니다. (혹시 락이나 영화 좋아하시는지요?) 
작품의 공간은 크게 유엔 상임이사국들을 연상케하는 원로원과 그들이 관할하는 인간세계로 양분됩니다. 현실에서의 유엔에서 수많은 분쟁을 겪으면서도 강력한 상임이사국들은 자신들의 가치관과 이해관계로 인해서 무력한 것처럼 환상향의 현자들도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타자인 그들이 개입하고 해결하기에 환상향의 인요들의 갈등은 너무 오래되었고 깊었기 때문입니다. 
디만 제 마음에 쏙 드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평소에 시리어스물 2차 창작보면서 꺼림칙하는게 주인공이나 관찰자들은 머어어어어얼쩡하더라고요. 마치 일본의 노벨상 못타는 작가가 "계란이 벽에 부딪쳐 깨진다면 난 계란의 편이 되겠다."라고 말하면서도 죽어도 계란 그 자체는 안 되는 것을 연상케했습니다. 말만 부조리만 언급하고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한 도전에 나서지 않는건 왤까요? 그 사람들은 부조리의 지적을 통해 면책특권만 얻고 부조리가 영원하기를 바라는게 아닐까요? "부르주아의 자비가 가진 진정한 목적은 빈민들이 자신들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라는 엥겔스의 말을 연상케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해주셨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입만 나불대는 놈 몇 명과 아예 등장도 안 하는 쓰레기(무릎을 꿇는 날이 올까요?) 한 명과 다르게 1면 보스가 가장 결정적인 진전을 해주었습니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전 이 장면이 이 전집을 통틀어 가장 좋았습니다. 역시 큰 일은 유동이 한다. 
신분세탁한 오니의 언행은 전반적으로 마음에 안듭니다만 그건 비평의 영역하고는 거리가 멀지요.(할말이 없다고 카를 슈미트를 언급하냐?) 다만 '헌신'의 각오를 하고 현상을 개선해나가는 존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역사를 볼 때 사회에 진보를 가져다 준건 그런 소수의 용기있는 사람들 덕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환상향의 인간들에게 '영광이 다시 오길'.  아무튼 하루키와 보법부터 틀린 노벨문학상감입니다. 중요하니까 두번 말하겠습니다. 노벨문학상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당연히 히에다가 조센징이라는 뜻이죠.
 
 
history and bullet in the air/ 동프학선언
코민테른 이야기를 잠깐 해봅시다. 러시아 혁명 이후로 소련 공산당은 혁명 수출을 모토로 공산주의, 민족주의 운동들을 원조합니다만 그건 서방 세계가 상상하듯 전세계를 지배하겠다는 그런 야심찬 음모론이 아니었습니다. "왜 아무도 혁명을 못 하는거야? 나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라는 절박한 고립감 속에서 어떻게든 활로를 모색하고자 했던 몸부림에 가까웠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월인들은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불신 속에서 암중모색을 이어갑니다. 그것은 지상보다 우월하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계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의 몸부림입니다. 
그런 의미에는 월인들은 공산주의자입니다.(그럼 야고코로 에이린은 트로츠키일까요?) 이런 의미에서 월인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냉전스럽게 풀어내는건 앞으로도 흥미로운 떡밥이 될 법합니다.  아무튼 지상에 간섭하려는 월인의 시도는 비참하게 실패로 끝납니다. 1927년 혁명전파론이 끝장난 것처럼 말이죠.(순호는 이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설사 자신이 누군지 잊어버린다고 해도) 그런 의미에서 역사성은 그 자체로 문학이고 그 역도 성립합니다. 이 이야기는 맨 마지막 수록작에서 다시 한번 해봅시다. 
ps : 만요슈랑 냉전 시기 담화들은 안 읽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다 아는 내용이라서 그런건 아니고 사실 고대 일본사랑 냉전시기에 대한 초보적 이해가 있으면 무시해도 소설 이해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리고 모더니즘적 서술기법에 대해서도 이야기안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야합니다.(클라인의 병같기는한데...) 작가가 독자의 비평을 기억한다면 독자 역시 작가의 작품을 기억해야하니까요. 
 
 
나를 찍지 말아줘/ 장기짝
 
나를 보내지 마 처럼 난해한 소설이 아닐까 우려했는데 다행히 정석적인 소설입니다 . 전 그런 종류의 소설은 못 읽거든요.
선물 크기에 비해서 선물 상자가 굉장히 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코치야 사나에를 다루는 부분과 샤메이마루 아야를 다루는 부분이 개별적으로 쓰여져서 장편이면 모를까 단편에 적합한 소설같지 않습니다. 특히 역사라는 대주제는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가 미시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걸까요.
그리고 글의 짜임새는 적당한 템포로 잘 짜여져있습니다. 이 이상의 표현은 불필요하겠군요. 동방 프로젝트 2차 창작물이라는 느낌이 덜하다고 해야하나요? 작가로서의 개성이 잘 드러나지않고 무언가 모범적인 작법에 따라서 소설을 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소설들은 하나같이 동반자들이나 독자를 의식하려는데 이건 동방 팬픽이라기보다는 익숙한 태도로 소설다운 소설을 썼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왜일까요?
제 근거 없는 개인적인 감상은 이것입니다. 이 소설은 습작입니다. 대충 썼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이 소설을 써 달라고 요청해서 작성한 작품이라는 기분입니다. 언젠가 높은 곳에 올라가면 이런 곳에서는 찾아뵙기 힘들 텐데 동료 작가들에게는 영광일 것입니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데 제때 읽은 것같군요.  
 
 
구상천/패드장
 
모든 역사는 결국 역사가에 의해서 작성됩니다. 기록의 독점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라고 읽는 건 결국 누군가의 정제를 통한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예시를 들어봅시다. 
패전 직후의 일본에서는 전쟁 기간을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1941~1945년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에 반대하면서 만주사변까지 소급한 1931년을 개전으로 간주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만주사변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멈출 기회는 있었다면서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으로 재조정한게 오늘날의 결과물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937~194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전쟁도 결국 하나의 의견일 뿐 정말로 실제로 일어난 사건하고는 거리가 어느 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기록되지 않는 것으로 역사를 선택합니다. 어쩌면 서술의 제외야말로 역사의 진정한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라고는 하지만 [역사란 무엇인가] 뒷부분에 '대화라고 첫단락에 그렇게 말하지는 했지만 애초에 현재와 과거는 편의상 만들어낸 존재다.'라고 적혀져 있는 것처럼 말이죠. 역사는 결국 읽히기 위해 목적으로 만들어낸 가공물일 뿐입니다. 캐릭터나 사건이 멋져보인다고? 그거야 문학성을 가진 역사가들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그렇지!
현실은 그 사람들은 진작 죽었다는 허무함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거짓을 은폐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인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각설하고, 앙드레 말로가 쓴 인간의 조건 한 문장이 이 소설에 적절하겠군요. "한 사람이 인간이 되는 데는 60년이 걸리지만 다 만들어진 존재는 이미 죽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인간이란 죽음을 목도하고 난 그 시점에 이르어야 삶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느낌이 되었습니다. 시선이던, 사신이던 말이죠....
 
PS : 다만 구문사기에서 케이네는 새역모를 풍자한 인간식 역사서술을 비판하는 행보를 보인걸로 봐서는 2차 세계대전도 그렇게 진지하게 잡아들지 않을 것같습니다. 주인공이 코마치이기에 본문에는 언급하지않지만 여기에 갈음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해권

 

이걸 동방 팬픽으로 쳐야하나, 말아야하냐? 쳐야하나 말아야하냐? 이 또한 동방이지요.
제목에 걸맞은 이질적인 주인공입니다. 다른 작품들과는 동방 프로젝트에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들이 등장인물입니다.(그리고 앨리스는 구작들이해버렸습니다. 솔직히 등장할 줄 알았다....) 그 덕분인지 한번에 이해가 되지않는다는 글도 있더군요. 저만 그런게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독서능력이 빈곤하면 이렇게 등장인물이 늘어날 때 밑천이 들통납니다. 
아무튼 이 팬픽은 관동대지진이라는 거대한 대사건이 환상향과 접촉될 때 생기는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환상향은 전체적으로 통상적인 동방을 따라가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주관이 강하게 표현된 작가만의 환상향입니다. 두 개의 공간과 두 개의 시간은 두 개의 등장인물을 통해서 통합됩니다.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당연하면서도 언제나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감동물은 지긋지긋하지 않냐고요? 아니요, 볼 때마다 새롭고....
개인적으로는 일본 다녀온 감상문과 2010년대 후반부터 슬슬 나이먹어들어가는 사나에의 융합물을 팬픽을 통해 풀어낸것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이 또한 근거없는 악담에 불과합니다. 이런 악담이 자꾸 나오는 걸 방지하려면 절판된 1권을 어서 받아야 합니다. 
 
 
나는 기자로소이다/NANNDA
 
개인적으로 아야를 싫어하는데 제가 보기에 아야는 장마철에 인화물질을 잔뜩 배치해놓고 불이 나면 "불 지른건 내가 아닌데요?"라며 웃으면서 불을 쬐는 광인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비슷한 애로 마미조우가 있습니다. 유카리는 도게자했으니 괜찮습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아야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여러가지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찾아가는 개척형 캐릭터입니다. 이런 애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지, 공식이 잘못했고 이게 원래 아야지. 
... 아무튼.  아무튼 같은 회지에 수릭된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오히려 소박하고 평화로운 편이지만 오히려 이게 "옛 환상향"스러워서 좋아요. 이런 작품들도 꾸준히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명입니다. 써줘서 감사드립니다. 캐릭터 묘사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언행과 행동으로 묘사하는 것도 제 개인의 기준에서는 정말 감사드릴 뿐입니다. 아야야야, 아야야야.
 
shanghai/초핫.
 
앨리스는 여기 있었군요. 구작과 신작의 경계 이야기는 진부하고 1985년의 상하이 국제조계 이야기 또한 진부합니다. 하지만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작가는 문학성을 간소화하는대신 역사성을 극대성하는 방법으로 메이지 17년의 상하이를 이색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한국에서는 최초입니다. 덕분에 멸망할 수 있었던 주제는 오히려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역사라는 대주제에 가장 걸맞는 소설은 바로 이것입니다. 
참고로 부쿠레슈티의 마술사를 루마니아 수도에 비견하는 견해가 이번에 자주 나왔는데 제 의견은 부쿠레슈티의 별칭이 "발칸의 파리"고 상하이의 별명이 "동방의 파리"라서 생긴 것이라는게 제 견해입니다. 앨리스는 차라리 독립조계가 있는 프랑스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쓰여진 영국이 더 적절하다는게 제 견해입니다. 그리고 두가지 더. 영어가 국제표준어의 위상을 차지한건 미국의 영향으로 베르사유 조약이 영문본이 기준이 된 시점부터로 그 이전에는 중세시대부터 표준어가 확립된 프랑스어가 국제공용어로서의 위상이 더 강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명청시대 강남은 난징 일대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광둥성 지역은 월粤이라고 하던가 아니면 조금 더 로컬풍으로 표현하고 싶다면 영남嶺南이라고 표현하는게 좋습니다.    
ps: 작중에서 언급했듯 내셔널리즘이 최초로 태동하던 메이지 17년의 상하이는 중국 혁명이 시작된 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혁명에 투신했다는 사람은 올해로 죽은지 백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혁명가는 자신이 누군지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총평 :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캐릭터의 비중이 줄어들고 사건의 중심이 되는 소재의 성격(모랴, 해권,초핫)이 강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그 특성상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순간, 현상, 관념으로 이해되기 떄문이라고 봅니다.
또한 (환상향 자체가 과거의 산물이라는 2000년대의 관점에서 불구하고) 환상향 외부의 소재가 개입되는 것을 회피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과거의 사건을 해석하는 작가 개인의 성격 또한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이 둘이 어디에서 어디까지 관련되었는지 분리하고 분석하는건 제 능력 밖이기에 자세히 적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과거를 통해 현재를 재해석하거나(잉딱) 그 현재의 관점으로서 과거를 다시 해석하려는(동프학선언, 교토대동방학과) 시도는 언제나 있어 왔기에역사는 결국 또다른 의미로의 현재고 현재는 결국 언젠가는 역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샤메이마루 아야와 마타라 오키나를 제외하고 비중이 골고루 돌아간 것이 좋았습니다. 이것은 과거로 가기 위해서 현재의 관점에 상대적으로 덜 구애받겠다는 작가분들의 노력이거나 혹은 과거를 이해하는 방법이 아주 다양할 수 있다는 이해를 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덕분에  오리지널 캐릭터들과 인기 순위가 낮은 캐릭터들이 상대적으로 조명받은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한편으로 일부 작가분들이 역사가 그 자체가 아니라 가공된 해석의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캐치한 것(장기짝,패드쟝,NANNDA) 또한 빼먹을 수 없습니다. 이런 소재에 있어서 작가들은 간혹 자신들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거기에 동화되는 일이 왕왕 발생하는데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독자들이 이런 위협에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분들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상의 내용을 기계적으로 대입하는건 위험한 시도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해석에 전면적으로 반대되는 소설도 존재하니까요.(1.218) 그렇기에 우리들은 역사가 그렇듯 문학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존재합니다. 어쨌든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가 인용할 말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로 끊임없이 떠밀려 내려가면서도 내일로 나아간다."
 
갈무리 : 역사는 모호하면서도 제한적인 소재지만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스스로를 통해 재능을 훌륭히 개화하셨습니다.  의심할여지없이 여기에 참석하신 분들은 하나같이 전례없는 내공과 경험, 기술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심지어 모든 분들이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더 나갈 조짐을 보인다는 점에서 전율까지 느껴지고 있습니다. 작성, 편집 기타 모든 방법으로 참가한 모든 참가자들이 동방 프로젝트를 통해서 원하는 바를 관철하시고 스스로에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내기를 빕니다. 좋은 소설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이렇게 말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언제나 이 환상향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언젠가 뵙는다면 서로에게, 모두에게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