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어서, 그리고 메리가 그 곳에서 본 것 - 동프학선언
Row, row, row your boat,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너의 배를
Gently down the stream.
시냇물 따라 천천히
Merrily, merrily, merrily, merrily,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Life is but a dream.
인생은 한낱 꿈일 뿐.
나, 마에리베리 한은 문득 익숙한 멜로디를 떠올렸다. 달리 이유는 없었다. 어렸을 때는 고국에서 어머니가 자장가로 불러주기도 했지만… 그러고 보니 작년 방학 중에 렌코와 한국에 놀러갔을 때에는, 이 곡조에 한국어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꾀꼬리 목소리 개나리 울타리
오리 한 마리―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분명 2절도 있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메리, 안 자고 뭐해?”
“아, 이제 자려고.”
나는 스탠드를 끄고 누워 다시 렌코를 불렀다.
“저, 렌코.”
“응, 왜?”
렌코가 문을 살짝 열고 물었다.
“자장가 불러줘.”
“으응? 하하, 메리도 참. 무슨 노래 불러 줄까?”
렌코가 들어와 내 머리맡에 앉아 나를 쓰다듬었다.
“그 노래 알아? Row, row, row your boat… 하는.”
“그럼, 알지.”
그러고는 렌코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Row, row, row your boat,
Gently down the stream.
Merrily, merrily, merrily, merrily,
Life is but a―
1장. 신사 길
나는 인형 집에 있다. 지난번, 붉은 저택에서 쿠키를 받고 죽림에서 죽순을 따 가지고 왔을 때에도 들른 적이 있다. 별로 편안한 곳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인형들이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집주인인 인형사처럼 인형들에게 “잘 잤니?” 하고 말을 걸어 보았다. 그러다가 나는 생각했다.
‘아, 서두르지 않으면 다른 곳은 구경하지도 못하고 꿈을 깨버릴 지도 몰라!’
곧장 집에서 나와 보니 완연한 숲속이었다. 죽림의 기억이 떠오르며 막막했지만, 문득 몇 발자국 내딛으니 어느새 신사로 올라가는 산기슭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꿈은 평소와는 뭔가 다른 것 같았다. 꿈은 분명히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것이건만, 현실 같던 평소의 꿈과 다르게 뭔가…몽롱했던 것이다. 간만에 진짜 꿈을 꾸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며 신사로 산 길을 걷던 중 분홍 머리에 오른손에 붕대를 하고 있는 여자를 만났다. 저번에는 본 적 없는 선인이다.
“어머, 네가 여기는 웬일로?”
신사로 가는 길.
“지금 레이무 없어. 별다른 이변도 없을 텐데 수행을 하지 않고 어딜 돌아다니는 건지. 분명히 또 돈벌이 찾는다고 하고 있을 거야. 꼴에 신물을 그렇게 휙휙 바꿔서야... 신사에는 왜?”
달리 이유는 없어.
“움직일 때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니? 어디든 가는 건 오래 걷기만 하면 할 수 있잖아. 너라면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쓸데없는 소리할 거면 가.
“옥수수라도 먹을래?”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나는 옥수수를 받아 뜯었다.
“신사로 간다고? 지상으로 간다면... 아마도 전철로 가야겠지. 아주 빨리 갈 수 있을 거야. 일본어로 한 마디도 생각이 안 난다면 가로문자로 이야기 해 보렴. 잘 가!”
하고는 그 선인은 어디선가 날아온 독수리의 발을 붙잡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2장. 버스와 죽림
워낙 일방적으로 말하고 사라진 탓에 무슨 소리인지 의아할 법도 했지만 의아해 할 틈도 없이 길 옆의 나무 사이에서 전철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튀어나왔다. 나는 휘몰아치는 바람에 머리를 잡아 눌렀다.
이윽고 전철이 멈추었을 때, 그것은 마지막 칸만 남아 어느새 버스가 되어 있었다. 버스에 올라타자 안에는 차장으로 보이는 요괴고양이 하나와 시답잖아 보이는 요정 여럿 및 요괴 몇이 앉아 있었다. 내가 앉고 버스가 출발하자 얼마 안 있어 요괴고양이가 나에게 와 말했다.
“표를 보여줘.”
그리고 요정과 요괴들이 떠들어댔다.
“차장을 기다리게 하지 마! 걔의 시간은 1초에 2천 엔이나 한다고!”
“지폐 한 장으로밖에 안 받아.”
미안하지만 표가 없는데. 매표소가 없었어.
내가 말하자 요정과 요괴들이 다시 지껄였다.
“쟤가 있던 데엔 그런 게 없었어! 거기는 땅 1촌에 2천 엔이나 하니까!”
“그럼 버스에 타서 냈어야지.”
아니, 애초에 버스에 표가 있니?
“버스의 경우는! 한 대에 2천 엔이나 한다고!”
아니, 버스 한 대에 2천 엔?
“왜냐하면 환상향에는 버스가 없으니까!”
그 순간 버스는 사라지고 나는 바닥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나는 일어서서 옷을 탁탁 덜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날의 죽리이었다. 아까 숲처럼 몇 발자국 옮기면 나올 것을 기대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슬슬 가슴이 뛰기 시작할 때 쯤, 갈림길이 있었다. 이정표 대신 있는 나무 한 그루(‘대나무는 나무가 아니지’ 하고 내가 생각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당근 목걸이를 한 요괴토끼 한 마리가 굵은 가지에 걸터앉아 있었다.
‘흰 토끼지만 머리가 검어서야 흰 토끼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하고 나는 생각했다. 토끼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네가 여긴 웬일로... 아아, 알만하네. 그래서 어디로 가는 길?”
길을 잃었어.
“꼴사납구나.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어?”
환상향엔 버스가 없어서 2천 엔이라며 사라져서 여기에 떨어졌어.
“그럴 줄 알았어. 그럼 길을 알려줄게. 왼쪽 길은 미친 의사 선생 네고, 오른쪽은 자칭 죽림 안내인. 양쪽 다 땅주인은 나야.”
...둘 다 싫은데.
“어라, 안내인 쪽은 괜찮지 않아?”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만, 약간 무서워.
“하긴, 둘 다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문을 열어줄게.”
요괴토끼는 그렇게 말한 후 손을 살짝 휘두르더니 훌쩍 사라졌다. 나무 줄기에 문이 생겼기에 가까이 갔더니 요괴토끼가 나무 위에 다시 나타나 물었다.
“방금 2천 엔이라면서 사라진 게 버스(バス)라고 했니, 파스(パス)라고 했니?”
버스.
“역시. 파스는 미친 의사 선생 네에 있거든. 2천 엔씩 안 해. 천 엔.”
그러고는 다시 사라지기에 문을 열고 한 발을 내딛었다. 다른 한 발도 내딛는 순간, 요괴토끼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어디로 나가질지는 몰라.”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뒤를 돌아봤지만, 발은 이미 내딛은 뒤였다.
3장. 모터와 보따리
주위를 둘러보니 골동품이 쌓여있는 가게였다.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걸었다.
“응? 당신이 여기 웬일인가?”
어쩌다 보니.
“딱히 볼일은 없는 건가. 그럼 잘 됐군. 봐봐, 새로운 물건이 들어왔는데...”
좀 둘러보고.
“아니, 뭐, 그러겠다면 그러고.”
그렇게 말은 해뒀지만 주인장 뒤편에 놓여있는 괴나리와 보따리 말고는 그다지 눈길 가는 것은 없었다.
“관심 가는 게 있나?”
거창한 건 그다지.
“그럼 와서 이걸 봐봐. 무연총에서 주운 건데... 내가 도구의 이름과 용도를 알 수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이게 이름은 축이라는데, 노와 같은 역할을 한다더군.”
그가 쇠막대 같은 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축이라면 바퀴를 지탱해야 할 텐데, 그러기엔 너무 얇아. 그렇다고 이걸로 노를 저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분명 스크루가 달려있던 축일 거야’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가 나에게 쇠막대를 넘기며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노 저을 줄 아나?”
응, 조금. 하지만 땅에서는 못 해. 쇠막대 가지고도 못하고.
내가 말을 시작하는 순간 갑자기 손 안의 쇠막대가 노로 변하더니, 어느새 둘 다 보트에 올라탄 채 강둑 사이를 유유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나는 계속 노를 저었다. 그러다나 나는 무심코 노 위에 콧노래를 얹기 시작했다.
Row, row, row your boat,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괴나리 보따리 댑싸리 소쿠리―
그래. 괴나리와 보따리였다. 가게에 놓여있던 그것들의 모습이 겹쳤다. 그 순간, 한 쪽 노의 날이 물속에서 한 번 콱 박히더니 나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노 손잡이에 턱을 맞고 말았다. 주인장이 이를 보고 말했다.
“메기라도 물었나보군.”
여기 메기도 있나.
“메기랑 그 외에 여러 가지 있지. 고를 건 많아. 마음만 정하면 돼. 비매품이 아니어야겠지. 자, 이제 사고 싶은 게 뭔가?”
산다고?
주위를 둘러보니 한 순간 노와 보트와 강물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다시 골동품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되니 눈여겨 놓았던 보따리에 눈길이 갔다.
보따리를 사고 싶은데. 얼마야?
“음, 그건 한 개에 5백 엔이야. 두 개에 2백 엔이고.”
두 개가 한 개보다 싸?
“두 개를 사면 두 개 다 써야 해.”
그럼 하나만.
나는 돈을 냈다. 주인장은 돈을 가져가고선 말했다.
“직접 가져가. 비매품으로 할 생각도 있던 거라서 직접 건네주긴 싫군.”
이렇게 말하면서 주인장은 가게 뒤편으로 들어가 버렸다. 보따리는 계산대 뒤편 진열장에 놓아둔 채였다. 나는 탁자와 의자 사이를 헤치며 그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나 보따리는 내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 멀리 물러나는 것 같았다. 더불어 가게는 점점 밝아졌고, 탁자와 의자는 나무가 되었다. 한참을 걸어 비로소 보따리 앞에 다가섰을 때, 진열장은 담장으로 높아져 있었고, 보따리는 사람만큼 컸다.
4장. 너구리와 행차
보따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보따리가 갑자기 튀어 오르더니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튀어나와 담장에 앉은 것은 안경을 쓰고 긴 옷을 입은 너구리였다. 생각해 보면 보따리의 매듭이 솟아오른 모양이 너구리의 귀 같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호, 자네가 여긴 웬일... 아이고, 알만하이, 알만하이. 신경쓰지 말게나.”
여긴 어디지?
“인간 마을 외곽인디, 나말고 다른 요괴는 거의 없으이. 걱정 안 해도 되어라.”
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알지는 모르겠지만.
“뭣이든 물어보게나.”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꾀꼬리 목소리 개나리 울타리
오리 한 마리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괴나리 보따리 댑싸리 소쿠리―
마지막 가사를 모르겠어.
“한글어?”
뭔 소린지.
“그러니까 조선어. 아니면 한국어라고 하는 거이 편한가?”
한국어. 원래는 따로 영어 가사가 있는데 곡만 따온 거야.
“한국어도 약간은 알다마다. 보면... 마지막 가사는 두 글자 더하기 세 글자구먼. 각자도 단어고 ‘리’로 끝나는 것 아닌가.”
그렇겠네.
“아, 이게 중요하겠으이. 1절은 덜하지만서도 꾀꼬리허고 오리 한 마리가 둘 다 새라는 것이여. 2절의 괴나리부터 소쿠리까지 댑싸리 빼고 죄다 뭔가 담는 것이니, 마지막도 담는 거이 아니것나?”
그럴 듯 하네.
“뭐, 실은 정답을 아네만, 그냥 알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해해 주게나.”
뭐?
그 순간 너구리는 펑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눈앞이 보이길 기다려도 연기는 바닥으로 가라앉을 뿐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윽고 연기는 묽은 연기가 아니라 진한 구름이 되어있었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혼자 오신 건 의왼데요. 벨 뻔했어요. 웬일이세요?”
회색 단발의 정원사가 뽑았던 검을 칼집에 넣으며 말했다.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야.
“아! 유유코님 오시네. 유유코님!”
분홍 머리의 망령은 팔을 활짝 편 채 공중에서 날갯짓을 하듯 퍼덕거리며 걸어와선 정원사에게 말했다.
“요우무, 잠자리가 맛있대.”
“어우, 유유코님, 저번엔 가오리 얘길 하시더니, 이번엔 잠자리요?”
“뱀 허리나 종아리보단 낫지 않니?”
실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는 무심코 다시 노래를 흥얼거렸다.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괴나리 보따리 댑싸리 소쿠리―
“다리 건너리.”
망령이 말했지만 그게 정답이 아닌 것은 분명했으므로 무시했다. 망령은 다시 정원사에게 말했다.
“약간 어지럽네. 요우무, 가오리를 줘.”
“이젠 해파리밖에 없어요.”
정원사가 퉁명스레 말했다.
“그럼 해파리를 줘.”
정원사가 해파리를 꺼내주자 망령은 해파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어지러울 때는 해파리만 한 게 없지.”
찬 물로 세수를 하거나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해파리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는 안 했단다. 해파리만 한 게 없다고 했지.”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 순간 정원사가 외쳤다.
“염마님이 뜬금없이 행차하셨어요!”
그쪽을 돌아보니 초록 머리의 염마가 있었다. 염마는 별 말도 하지 않고 바닥에 수많은 회오의 봉을 꽂아 내렸다. 봉이 떨어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더니,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와 내 머릿속에까지 울려 퍼졌다. 나는 너무 귀가 아파 귀를 막고 바닥에 웅크려 붙어 눈을 꼭 감았다. 계속 그러고 있었다.
5장. 연회
얼마쯤 지났는지 소리가 사라져 고개를 들어봤을 때는 한창 연회 중인 신사였다. 누구라고 빠질 것 없이 모여 있어 시끌벅적했고, 가운데 있는 식탁보 덮인 탁자에는 처음의 선인과 방금의 망령이 앉아 있었다. 선인이 내게 말했다.
“늦었구나. 시간 정도는 지키는 게 좋아.”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고 탁자의 빈 자리에 앉았다.
“이번 요리는 꾀꼬리 요리야.”
앞을 보니 탁자에 괴나리봇짐이 올려져 있었다. 봇짐을 풀자 수많은 꾀꼬리들이 날아올랐다. 펼쳐진 천 위에는 알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걸 먹으면 되는 건가.
“아니, 그걸 키워서 꾀꼬리를 먹어야 해.”
“그걸 누구 코에 붙이니. 다음 요리야.”
망령이 건네준 접시의 뚜껑을 열자 보따리가 나왔다. 매듭을 풀어내자 속에서 목청 좋게 소리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 음-! 요-! 리-! 야---!”
점점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목소리 요리였어. 다음 요리.”
건네받은 접시에는 댑싸리로 장식된 개나리 꽃송이가 한 가득 들어있었다.
‘사쿠라모찌 같은 것도 있고 한국에서는 화전도 부쳐 먹는다지만 이래서는 먹을 수 없잖아.’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자, 여기.”
내 앞에 놓인 소쿠리에는 울타리 철조망이 한 가득 들어 있었다. 이미 심장은 죽림에서보다 더 빨리 뛰고 있었다.
“자, 이제 마지막 오리 요리.”
요정 두 명이 겨우 들고 와 탁자 한가운데 놓은, 크고 싶은 뚱뚱한 모양의 유리 그릇에는 오리 스프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그때, 일어나서 스프를 뜨려는 순간 옆에서 탄이 내 머리로 날아와 겨우 피했다. 가슴이 뛰었다. 황급히 그쪽을 돌아보니 탄막 싸움이 시작된 것 같았다. 또다시 탄이 날아와 탁자 옆의 땅에 맞아 탁자도 덜컹거렸다. 망령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보니 의자에는 망령은 없고 가오리가 펄떨이고 있었다.
“여기야!”
수프 그릇에서 망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프 그릇을 보니 망령의 얼굴이 수프 그릇 안에서 잠깐 미소를 짓더니 곧 그릇 가장자리로 사라져 버렸다.
술 취한 몇이 난동을 부렸다. 탄막이 몇 개 더 날아왔다. 가슴이 뛰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더 이상은 못 참겠어!
내가 외쳤다. 나는 양손으로 식탁보를 잡고 확 잡아당겼다. 식기구들이 쏟아져 내리고, 소쿠리도 쏟아져 내리고, 유리 그릇도 쏟아져 내려―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괴나리 보따리 댑싸리 소쿠리,
유리 항아리.
쨍그랑.
단단해 보였던 유리 항아리는
한낱 꿈으로
깨어 버리고.
거기! 거기 달신 말이야!
내가 선인에게 소리 지른다. 당황하는 선인의 멱살을 잡는다.
내가 당신을 흔들어서 고양이로 만들어 버리겠어, 그러고 말 거라고!
아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이건 앨리스의 행동이다. ‘내’ 행동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꿈을 깨고 만다. 당황한 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응?
나를 바라보았다?
내 모습을 뜯어보았다. 금발 단발에 머리띠, 인형 같은 옷차림, 허리의 벨트, 가죽 부츠.
‘내’가 아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비로소 나의 육체를 되찾고, 공중에서 튕기듯 떨어져 나와 땅에 떨어졌다. 완전하진 않았지만 아까까지보다는 훨씬 현실 같았다.
나는 아직도 영문도 모른 채 실랑이를 하고 있는 인형사와 선인 사이를 비집고 둘을 떼어놓은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히, 붉은 왕이, 자고 있는 이가 있을 것이었다. 나무 하나를 보니 보라색 옷에 긴 금발 머리를 한 이가 눈에 들어왔다. 옆에 양산을 두고 자고 있었다. 내가 성큼성큼 다가가니 갑작스레 홍백의 무녀와 구미호가 가로막았다. 무녀가 말했다.
“깨워선 한 돼!”
“됐으니까 비켜.”
내가 일갈했다. 다시 가슴이 뛰었다.
“저분은 지금 꿈을 꾸고 계셔. 무슨 꿈인지 알고 하는 소리야?”
구미호가 말했다.
“알 게 뭐야.”
내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하자 무녀가 말했다.
“바로 너에 대한 꿈이야.”
“저분이 너에 대한 꿈에서 깬다면, 넌 어디에 있게 되겠어?”
“내가 있는 데에 있겠지.”
“넌 어디에도 없을 거야. 쟤의 꿈에 나오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니까.”
“저분이 깨어나게 된다면, 넌 사라질 거야! 등잔불이 꺼지듯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래서 내가 저 여자 꿈에 나오는 거일 뿐이면, 당신들은 뭔데?”
“마찬가지!”
“마찬가지.”
“개소리 말고 비켜 좀.”
“너는 어차피 저분을 깨울 수 없어! 넌 저분이 꾸는 꿈속의 인물일 뿐이라니깐? 꿈속 인물이 어떻게 꿈꾸는 이를 깨우겠어?”
“좋아! 알겠어! 내가 꿈속 인물인지 아닌지 한 번 보자! 이게 내 꿈인지 쟤 꿈인지 한번 보자고!”
6장. 흔들기
나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둘을 양쪽으로 밀쳐버리고 보라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 위로 올라타 어깨를 붙잡고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서서히 눈을 떠 그 보라색 눈동자가 나의 눈과 마주친 순간, 보라색 눈동자는 서서히 갈색이 되고, 머리도 점점 갈색이 되며 짧아지더니.......
7장. 깨어남
......마침내 렌코가 되어있었다.
8장. 누가 꾼 꿈이지?
“메리, 왜 그렇게 흔들고 그래.”
렌코가 나를 깨우기 위해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나도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꿈을 꿔서.”
“어, 뭐라도 가져왔어?”
“아니, 이번에는 뭐랄까... 현실 같지 않았어서.”
“그렇구나. 우리 메리가 간만에 진짜 꿈을 꿨으려나? 무슨 내용이었는데?”
“음... 다 설명하긴 길고... 아, 보트가 좀 나왔어.”
“하핫, 노래 불러 달라고 하더니.”
하고 렌코는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Row, row, row your boat,
Gently down the stream.
Merrily, merrily, merrily, merrily,
Life is but a dream.
인생은 한낱 꿈― 나는 생각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저번 꿈에 본 이들도 몇은 나온 것 같았다. 혹시 누군가 다른 누군가의 꿈에 나온다면, 렌코도...나오지 못할 이유는 없었으리라. 그렇다면 렌코는 누구였을까?
애초에 그들이 내 꿈에 나온 게 맞을까. 그건 내 꿈이었을까? 아니면 보라 여자의 꿈이었을까?
“메리! 밥 먹어! 네 집 공사 상황 보고 와야지!”
렌코가 부엌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주섬주섬 이불을 개고 부엌으로 걸어갔다.
여러분은 누가 꾼 꿈이라고 생각하나요?
작가의 말
모르는 분께는 그럴듯하고, 아는 분께는 오마주는 무리고 패러디 쯤 되겠습니다. 아무리 고전이라지만 명시를 안 하면 표절이 되겠지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많은 부분을 따왔습니다. 하지만 ‘Row, row, row your boat’와 번안곡 ‘리 자로 끝나는 말’ 사이의 연관성에 착안한 건 제 아이디어입니다. 여기서 ‘보트’와 ‘유리 항아리’에 착안해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끌어들였습니다.
더 할 말은 없습니다. 이만 줄이는 게 좋겠습니다.
아, 주제는 당연히 몽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