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솔직히... 테루모코가 더 좋다고 생각해요... - 아야벅지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고요한 죽림, 그 깊은 곳에 존재하는 영원정. 영원정 뒤편 정원 달이 잘 보이는 자리에 공주가 앉아 있었다. 백금과도 같이 흰 피부에 옥처럼 빛나는 눈을 가진 그녀, 호라이산 카구야는 그저 달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마치 모든 것이 정지한 한 장의 명화처럼 그녀는 그저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주님, 이제 추워지니 이만 안으로 들어오심이..." 멈춰있는 세상에 붉은 파장이 일렁이었다. 카구야를 부른 그녀는 레이센 우동게인 이나바, 달의 현자의 아래에서 조수를 맡은 지상의 토끼였다. "응...? 이나바 왔어? 알았어... 곧 들어갈게." 스승의 명령으로 공주를 데리러 온 이나바와 자신을 부르는 이나바의 부름에 답하는 카구야. 카구야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서늘한 밤의 죽림은.. 더보기 망상향 - 반짝반짝 ...그리고 비가 내렸다. 모자를 앞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듯 더욱 푹 눌러 썼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아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있었다간 코와 입, 그리고 목으로도 울어버릴까봐? 평소라면 그런 대답으로도 좋았을 것이다. 하나 지금 그 머리는, 그 눈에서 흐르는 빗방울, 하늘의 빗방울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져버린 그 물방울이야말로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이어주는 유일한 것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잔뜩 깨져버린 바닥에 주저앉아 그저 울고 싶은 충동에도, 애써, 어쩌면 아무런 자각 없이, 뺨을 가로지르는 순수를 열심히 팔로 받아냈다. 하늘에서 추락해 바닥의 균열을 메우고 넘쳐 흐르는 중오염수와, 자신의 순수가 섞이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더보기 곽청아 - 콩고산콩고물 하기의 이야기는 환상향 최속의 정보를 자랑하는 본지 붕붕마루 신문에서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망령의 이야기 청아 공은 말하자면… 좀 별난 사람이지요. 아니, 인간의 기준으로 일평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넘도록 알고 지내는 입장으로서 단순히 별나다는 말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자님이 아직 인간의 몸으로 통치하시던 시절, 심하게 기근이 들어 수많은 백성들이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청아 공이 아끼던 몸종 하나가 죽었는데, 청아 공은 주저앉아 한참을 서럽게 울면서도 홀린 듯 시신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지요. 청아 공의 인간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미심쩍은 이야기입니다만… 지금까지도 제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청아 공이 워낙 서럽게 울던 탓으로, 저는 아직까지도.. 더보기 마계의 모두와 함께 - 안쓰는계정 따사로운 햇볕이 유리창을 향해 내리쬐는 곳. 그런 장소에서 한 명의 여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드러나는 그녀의 찬란한 은발은 한쪽이 붉은색의 구슬 머리띠로 묶여 있었다. 이윽고 빛이 여인의 모습을 환하게 비쳤을 때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머, 앨리스. 정말 오랜만이구나. 마계로 오는 데 불편한 점은 없었니?" 말을 한 그녀의 이름은 신키. 마계의 창조자임과 동시에 앨리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존재였다. 그렇게 말한 신키는 방의 중앙에 위치한 2개의 소파로 걸음을 옮겼다. 그 후 앨리스가 앉은 맞은편의 소파에 사뿐히 앉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신키의 미소와는 대비되듯 앨리스의 얼굴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갈 곳을 잃은 듯 방황하는 손은 .. 더보기 외래종의 노래 - 장기짝 소녀가 암만 불러봐도 대답하는 이는 없다. 배가 흔들리면서 삐그덕거리는 소리만이 그나마 답할 뿐. 혼자 하던 탐험 놀이도 이제는 슬슬 지겹다. 다른 배였으면 선원들에게 혼났을 조타실도, 도대체 누가 쓰는지 모를 선실들도 이미 모두 발 도장을 찍은 뒤다. 탐험 놀이의 결과일까, 소녀는 이제 괜히 입이 심심해진다. 배가 소녀의 부름에 답한 것일까, 넓디넓은 선실의 한구석에 자리 잡은 진열장이 소녀의 눈에 들어온다. 진열장 안에 가지런히 놓인 종이봉투들. 소녀는 손을 뻗어 봉투를 하나 집어 들고 안을 들여다본다. 소녀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옛날 과자가 몇 조각 들어있다. 소녀가 좋아하는 과자는 아니지만 지금은 이거라도 고마울 따름이다. 한 입 베어먹으니 입안에 바삭하게 부서지는 것이.. 더보기 향수병 - Koakuma "하아..." "..." 한숨을 쉬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붉은 머리의 악마.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보라 머리의 마녀.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엔 침묵이 흘렀고, 소악마가 또 한숨을 쉬려고 할 때, 파츄리가 열어두었던 책을 소리 나게 닫았다. "소악마. 홍차 좀 달라고 했잖니?" "아... 아, 네. 죄송합니다." 파츄리의 말에 정신을 차린 소악마는 서둘러 티포트를 찾았고, 허둥지둥하며 찻잔에 차를.... 쪼르르 "아..." 찻잔이 아닌, 파츄리의 치마에 홍차를 따라버린 소악마. 파츄리와 소악마는 조용히 젖어버린 치마를 바라보았다. "..." "..." 잠시 치마를 바라보던 파츄리는 자신이 보고 있던 책을 뒤적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 책에는 차가 쏟아지지 않았다. .. 더보기 나의 그리움 - 교복입은 레이센 누구에게나 그리움은 있다. 뭐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는다나. 하지만 '나' 는 아무나가 아니다. 나는, 탈영병이다. 이것은. 탈영병인 나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그리워 하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탈영병, 그래. 탈영한 병사. 탈영은 '군인'이 복무하던 '부대'나 작업, 훈련지 등에서 허가 없이 이탈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 나는 군인이었다. 그것도 그냥 군인이 아닌,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난 실력 최우수에 미모에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었다. 그런 내가, 과거를 저버리고, 고향을 저버리고, 모든 것을 저버리고 떠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살던 곳에 누군가가 쳐들어왔다. 그들은 '인간' 이라는 종족이었다. 우리.. 더보기 환상을 그리며 - hanakoi https://youtu.be/X791IzOwt3Q 여관 밖에는 꽤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늘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한쪽에선 흐릿하게 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전하게 차오른 보름달의 형상은 인간의 시간이 끝나고 요괴의 시간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 그렇지만 그것은 이제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유성군, 그것이 달에 모여드는 기현상이 며칠 연속으로 보였었다 달은 지표에서도 환히 보일 정도로 타오르고 있었고 무너져 완전한 원이 되지 못한 달은 그 힘을 잃어버렸다. 달의 마력이 사라지자 환상향에서 환상은 사라졌다. 우리는 무너지고, 죽고, 사라져갔다. 공포와 혼란의 아수라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정신차려보니 나는 이 콘크리트 대지 위에 버려져 있었다.. 더보기 검은 불꽃을 밝히다 - 장기짝 축생계에 왔을 때부터 목소리는 속삭였다. 고향이 그립지 않느냐고. 황량한 갈색 대지에 모두가 모여 있다. 모두가 대지에 엎드려서, 누군가는 몸을 들썩이면서, 누군가는 마르고 갈라진 손바닥으로 거친 모래를 움켜쥐면서, 누군가는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모래 먼지를 들이마시면서. 모두가 자기만의 신을 찾고, 자기만의 기도를 올리면서, 돌아오지 않을 답을 바라면서 엎드려 빌고 있다. 그 누구도 감히 고개를 들 엄두도 못 내고 두려움을 속으로 삭이면서, 그러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무서워하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렇게 모두가 층층이, 하나의 점을 감싸면서 땅바닥에 엎드려 떨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그들이 둘러싼 바로 그 중심이 되는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더보기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나에 - 안쓰는계정 새하얀 눈이 내리는 날.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여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자아냈다. 나도 이 순백의 눈처럼 마음속 고민이 해결되면 좋으련만. 하지만 나는 여러 가지 고민들로 인해 마음에 안개가 낀 상태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러하다. "우리 모리야 신사가 인간을 습격하는 요괴 퇴치에 대한 의뢰를 제일 먼저 받았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일을 해결하는데 막힘이 생겼다면 카나코님과 스와코님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게 아니겠냐고. 하지만 지금의 나, '코치야 사나에'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두 분한테 기대기만 한다면 어엿한 한 명의 무녀가 될 수 없을 테니까, 나 스스로 성장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두 분의 도움 없.. 더보기 이전 1 2 3 4 5 ··· 9 다음